새로운 연애에 훼방을 놓고, 집 앞에까지 찾아와 키스를 하거나 몸을 만지려 드는 구남친을, 말 몇 마디로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순진한 생각이다.
그는 K양이 SNS를 다 탈퇴하고 전화번호까지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번호를 알아내 연락하며, 전화를 받지 않으면 지금 집으로 찾아가겠다며 위협까지 하고 있다. K양은 이걸 '스트레스' 정도로 여기는 것 같은데,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면 K양과 구남친의 이야기는 곧 신문 사회면에 소개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이건 K양이 혼자 상대를 설득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글을 보는 즉시 구남친이 그런 행동을 한다는 걸 K양 가족들에게 알리고, 필요하다면 경찰에 신고를 하길 권한다. 구남친이 K양에게 저지르는 건 성추행인데 그걸 '예전에 사귀던 사이니까'라고 이해해선 안 되며, 일이 더 커져 사람들이 아는 건 싫다며 적당히 구남친을 설득해보는 걸로 축소시키면 안 된다. 그러면 그럴수록 구남친은 그걸 K양의 약점으로 이용할 것이고, K양은 거기에 빠져 하나 둘 내주다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큰일 날 수 있다. 현재 K양은 내가 생각하는 해결방안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데, 이런 K양을 돌려세우기 위해 그녀의 사연부터 살펴보자.
1. 연애를 방해하고 집으로 찾아오기도 하는 구남친.
구남친이 K양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의 절반 이상은, '장난감'을 다루는 듯한 감정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그에게 K양은 새로운 여자친구와 사귀던 중 연락 하거나 만날 수 있는 구여친, 자신의 친구가 K양과 사귀고 있을 때 통화 중인 친구 전화를 가로채 골려줄 수 있는 구여친, 술에 취해 찾아가 나오라고 한 뒤 스킨십을 시도해도 별 문제가 안 되는 구여친 일 뿐이다.
그가 K양을 저렇게 보고 있는 까닭에, K양이 아무리
"저는 정색하며 그에게 제 남친을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이건 아니다'라고 말한 뒤 그를 밀쳐내고 집에 가라고 했습니다."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딱 잘라서 말했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해도 의미가 없는 거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골리는 것에 K양이 정색하는 것에 재미있어 할 수 있고, K양이 열심히 밀어내더라도 자신이 지금 집 앞으로 찾아가겠다고 말하면 나와서 만나주는 걸 보며 코웃음을 칠 수 있다.
대화나 설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건, 상대가 K양을 손톱만큼이라도 존중하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가 K양을 완구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면, K양이 시도하는 대화나 설득은 갈팡질팡 하는 것 정도로 보일 뿐이다. K양은 스킨십 시도를 하는 상대를 밀쳐낸 뒤 설득시켜 집에 보냈다고 하지만, 그건 그가 후회와 반성을 하며 돌아갔다기 보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뒤 '다음 기회'를 노리며 돌아간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K양의 집에 찾아간다고 하면, K양이 부모님들까지 알게 되실까 두려워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K양은 최대한 이 관계로 인해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꾸 축소시키려 하는데, 때문에 그는 앞으로 "지금 안 나오면 너희 집 가서 초인종을 누르겠다. 너희 부모님께는 너와 연락이 안 되어 걱정이 되어 찾아왔다고 말할 거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K양을 불러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K양이 새로운 연애를 한다고 해도, 자신이 찾아가 스킨십을 시도하거나 사랑한다고 말하면 K양이 절반 정도를 받아준다는 것도 그는 이미 경험했다. 처음엔 K양이 그에 대한 미련이 있어서 받아줬던 것이고, 그 후에는 단호히 결정을 못 내려 받아주다 밀어냈던 것인데, 그는 그 일들을 통해 거기서 더 진도를 나가는 게 꼭 불가능 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이걸 절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술 취한 구남친이 찾아와 한 번 안아보자며 매달리는 것. 뒤늦은 후회를 하며 사랑고백을 하는 것'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지 말길 권한다. 또, 그는 K양이 바뀐 번호를 어떻게 알아내서 연락한 거냐고 묻자,
"왜 내게 번호 안 알려줬냐. 내가 네 번호 알고 있는 게 그렇게 싫으냐."
라는 소리만 반복했는데, 저런 말에는 "정말 싫다. 연락하지 말아라."라고 명확하게 뜻을 밝히길 권한다. 단호하게 말하면 나쁜 사람 되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아 대충 대답해 버리면, 상대는 그걸 K양의 약점으로 여겨 앞으로도 계속 그런 프레임만 짤 것이다. 나랑 악수도 못 하냐, 나랑 밥 한 번 못 먹냐, 나랑 포옹 한 번 못 하냐,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루라도 빨리 K양 부모님께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상대가 집에 찾아온다고 하든 초인종을 누른다고 하든, 그런 위협에 K양이 겁먹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만약 상대가 찾아온다면, 그땐 지금처럼 부모님들 집에 계시니 얼른 K양 혼자 해결한 뒤 돌려보내려 하지 말고, 부모님과 함께 나가길 권한다.
일을 계속 크게 만들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상대를 위축시키고 겁먹게 만들어 더는 허튼 짓을 못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필요하다면 경찰을 불러도 좋다. 절대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자.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알리자. 그럴 수록 이 문제는 쉽게, 또 빨리 해결될 것이다.
2. 남친과 헤어졌는데, 저 잘 한 거겠죠?
최저가 주유소를 찾아다니며 기름을 넣던 지인에게, 난 정확하게 계산해 그의 행동이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며 오히려 손해가 되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해준 적 있다.
리터 당 1,302원인 주유소 A와 1,292원인 B가 있다고 하면, 얼핏 봤을 때 B주유소에서 넣는 게 이익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저 10원의 차이가 계속 쌓이면 나중엔 큰 차이가 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인데, B주유소까지 2Km를 더 가서 주유해야 한다면 오히려 돈이 더 들 거나 아무 차이도 없을 수 있다.
3만 원을 주유한다고 했을 때 두 주유소의 리터 차이는 0.2리터가 되고, 돈으로 환산하면 260원 정도 차이가 난다. 하지만 2Km를 왕복하는 연비를 따져보면 최소 500원 정도 들 수 있고, 왕복이 아니라고 해도 250원 정도가 든다고 할 수 있다. 왕복일 경우 260원 아끼자고 500원 이상을 지출하게 되고 마는 셈이다.
뜬금없이 주유 얘기를 한 건, 사연의 주인공인 J양이 연애에 임하는 모습이, 저 '정확히 따지면 오히려 마이너스'인 경우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J양이
"남친의 이러이러한 점만 개선된다면 저는 다시 만날 생각도 있긴 합니다."
라고 말한 부분을 보자.
- 거짓말하고 속이는 점. 당장 밝혀질 거짓말을 자주함.
- 연락을 안 하는 점. 남자가 집 밖에 나가면 여자가 신경 꺼야 한다고 함.
- 내가 1순위가 아닌 점. 자신에게 난 본인 어머니에 비하면 중요하지 않다고 함.
- 유흥업소에 다니는 점. 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울리고 2차 간다고 함.
- 생각 안 하고 말하는 점. 서운하고 김빠지게 만드는 얘기를 아무렇게나 함.
보통의 여성대원들은 위의 문제 중 하나만 생겨도 곧장 이별까지 생각할 텐데, J양은 저걸 다 견디고 버텨왔다. J양의 사연을 보면 남친이 데이트 중 스스럼없이 욕을 하기도 하던데, 그것에 대해 J양은
"남친이 여자를 못 만나봐서 그런지 말을 저따위로 밖에 못해요."
라고 말할 뿐이다. 남친이 남자 넷이 노래방 가서 백만 원을 긁곤 J양에게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서도, J양은
"저한테 사실대로 말하면 난리칠 거 뻔하니까, 거짓말을 한 것까진 이해해요."
라고 말한다. J양은 내게 잘 헤어진 거라는 확인이 받고 싶어서 사연을 주신 것 같은데, 이건 잘 헤어진 게 아니라 진작 헤어졌어야 하는 관계다.
"남친이 연애 초반에 제게, 자긴 진짜 저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 적 있어요. 일이든 뭐든 자신에게 저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그 말에 전 진심으로 감동했고, 이후 헌신하고 잘해주려 노력하고, 투정도 부리지 않으며 무조건 숙이고 들어가려 애썼어요."
그런 태도가 남친을 더욱 괴물로 만들었든 뭐든, 이건 일단 헤어지고 인생에서 그를 삭제한 뒤 생각한 게 맞다. 남친이 말은 저렇게 했지만 이후 행동은 전혀 다르게 하지 않았는가. 저건 연락 때문에 투정 부리는 J양을 진정시키기 위해 한 말이었을 뿐이다. 말과 달리 그는 성매매를 하다 걸려도 "남자가 밖에서 하는 일에는 신경 꺼라. 그래야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거다."따위의 괴상한 말만 하지 않았는가.
이걸 두고 '잘 헤어진 것인가, 아닌가'하는 고민을 하기엔, 시간이 아깝다. 지금 길 가는 남자 아무나 붙잡고 그에게 사귀자고 해도, 그와의 연애가 구남친과의 연애 보다 마음고생할 일 없을 가능성이 99% 이상이다. 그러니 절대 그 어떤 미련이나 후회도 갖지 말길 권한다. 그는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했던 거고, J양은 사람이 버틸 수 없는 것까지 버티려고 했던 거다.
밤 11시 일산 동국대 병원 1층 대기실에서, 환자복을 입은 채 링겔 병을 달고 내려와 남친과 통화하던 여자가 떠오른다. 난 옆에서 폰으로 책을 읽고 있다가 우연히 대화를 엿듣게 되었는데, 그녀가 입원한 지 3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친구가 아직 한 번도 안 찾아 왔던 상황이었던 것 같다. 여자는 통화하다 감정이 복받쳤는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계속 따져 물었는데, 남자는 사람들과 만나는 중이니 끊고 나중에 통화하자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지금이라도 병원으로 와달라고 남친에게 부탁했다. 사람들과의 모임이 파하고 난 뒤에라도 와달라고 했고, 그 말에 남자는 '택시비가 없어서 못 간다'는 핑계를 댔던 것 같다.
"내가 택시비 줄게 와. 택시비 갖고 정문으로 갈게."
여자가 그렇게 사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못 가겠다는 말을 한 채 전화를 끊었다. 여자는 끊긴 전화를 쥔 채 고개를 숙이고 서럽게 울었다.
난 노멀로그의 독자 분들이 사랑에 눈이 멀어 저런 상황까지 가기 않기를, 또 저런 상황에 놓여 있다면 얼른 정신을 차리기를 바라며 매뉴얼을 작성하고 있다. 그래서 상대에게 존중과 책임감이 있는지를 보라는 얘기를 질리도록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대원들은 마음 굳게 먹고 돌아앉았다가도, 상대에게 전화 한 통 오면 마음이 먼저 달려 나가 상대를 또 맞이하고 만다.
두 번째 사연의 주인공 J양 역시, 현재 구남친이 J양과 둘 다 아는 지인에게 소문을 내는 걸 들으며 흔들리는 중이다. 그는 이별 후 자신이 폐인처럼 지내며 몸도 안 좋다는 식의 소문을 퍼뜨리는 중인데, 그걸 들은 J양은 거기에 마음이 쓰여 '상대가 어떤 사람이며 무슨 짓들을 벌였었는지'를 점점 잊고 있는 중이다. 난 J양에게, 그건 그의 '개수작'일 뿐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미운 정도 정이라 아프다는 그가 가엾게 느껴지고 지금이라도 J양이 달려가 보살펴줘야 할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다시 그에게 가는 순간 J양 팔자는 J양이 스스로 꼬고 마는 것이라는 걸, 절대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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