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엔 여행 때문에 일주일의 절반가량 매뉴얼을 빼먹었으니, 주말에도 달려보자. 굵고 짧게 요점만 살펴보는 사연 모음이니, 마중글은 생략하고 곧바로 출발하자.
1. 빠지게 해놓곤 사귈 생각 없다는 남자, 왜 그런 거죠?
남자가 '빠지게 했다'기 보다는, '수작을 부렸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모임에서 같이 놀 때 터치를 하며 반응을 보고, 자긴 혼자 사니 자기 집에서 요리 좀 해달라고 하고, 보고 싶으니 첫 차 타고 자기 집에 놀러오라고 하는 건, 호감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떡밥을 던져 반응을 보는 거라고 봐야 한다.
그렇게 던진 떡밥을 C양은 빠짐없이 다 물었고, 상대의 집에 가서 한 이불 덮고 자는 일들까지 벌어지다보니, 스킨십 진도도 다 나가게 되었다. 첫 차 타고 오라는 상대에게 C양은 나름 자존심을 세운다며
"데리러 오면 가겠다."
라는 이야기까지 했지만, 당연히 상대는 떡밥 한 번 던져 본 거니 데리러 오지 않았고, 자신이 안 가면 흐지부지 될까 아쉬워진 C양은 결국 첫 차에 몸일 싣고 상대를 찾아가고 말았다.
"관계를 명확히 할 생각으로 제가 말을 꺼냈거든요. 그랬더니 오빠는 저와 함께 속한 모임에 자신의 구여친도 있고, 사람들 눈도 있고 해서 애매하다고 대답하더라고요. 그러면 저를 왜 건드린 걸까요? 오빠 말을 듣다 보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데…."
C양이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남자는 꾸준히 "네가 나를 좀 즐겁게 만들어라."라는 요구를 해왔을 뿐이다. 그에게 정말 C양에 대한 마음이 있었던 거라면, 설마 집에 와서 요리나 좀 하라고 하거나 첫 차 타고 와서 옆에 누우라고 하겠는가. 그의 입장에선 C양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사람이니 '그래도 되는 여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닌 것 같은데요. 오빠가 절 걱정하듯 말하고, 또 챙겨준 적도 있어요. 그건 어떻게 설명하실 거죠?"
너무 직설적으로 말해서 미안한데, 그건 그냥 '팬서비스'인 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와서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며 수고했으니, 춥게 하고 다니지 말라고 목도리 둘러준 것 정도로 말이다. C양도 바보가 아닌 까닭에 그의 축적된 행동에서 느껴지는 '마음 없음'을 눈치 채곤 현재 모임에서 탈퇴한 상태인데, 그는 여전히
"이제는 내게 너에 대한 마음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너와의 인연을 잃고 싶지는 않다."
라며 떡밥을 던지고 있다. 저게 자신에게 반한 C양의 마음을 좀 더 가지고 놀려는 포석이라는 것에 내 국민은행 통장을 걸 수 있으니, C양 인생에 해충의 역할만 할 가능성이 높은 상대와는 여기서 인연을 끊길 권한다.
2. 제 연애스타일이 '착한 남자'거든요.
내가 M군 친구이며 우리가 함께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내가
"그러게 텐트를 뭐하러 가져와? 캠핑이 아니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목적이었는데, 괜히 그거 들고 와서 움직일 때마다 힘만 들잖아. 지금이라도 그냥 텐트는 집으로 택배 보내. 일정 다 틀어지잖아. 칠 줄도 모르는 텐트를 들고 와서 뭐 하는 거야 지금."
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가정해 보자. 저 얘기를 들은 M군은 내게
"화났어? 미안해. 바로 택배 보내고 올게. 화 풀어."
라는 대답을 한다. 그러는 M군은, 착한 걸까? 그렇게 사과하고 뭐든 내 의견대로 따르겠다고 하는 게, 정말 '착한 남자 스타일' 인걸까?
M군이 여자친구와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 글을 보자.
"제가 리드해서 맛있는 걸 먹으러 갔을 때, 여친이 너무 맛없다고 한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 메뉴선택은 여자친구가 다 해요. 제가 리드하려 할 때마다 매번 지적받는 게 많은데, 그건 이유가 있어서겠죠? 그래서 참 힘듭니다. 앞으로 또 비슷한 일이 생겨 제가 어버버버 하면서 대처하면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할 수도 있는 상황이거든요. 제 연애 스타일이 '착한 남자'이다 보니…."
그건 착한 게 아니라, 바보 같은 거다. 혹 여친의 비위라도 건드리게 되는 건 아닐까 하며 쩔쩔매는 것이며, 겁쟁이처럼 상대 눈치만 보며 전전긍긍하는 것일 뿐이다.
나 역시 내가 메뉴선택을 해서 밥을 먹으러 갔는데, 맛이 없는 경우가 꽤 많다. 하지만 이건 내가 상대를 일부러 골탕 먹이려고 그런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평이 좋은 곳을 찾았지만 그게 그 가게가 조작한 평점이었다거나 그 가게의 마케팅에 낚인 것이라 그럴 수 있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그럴 때 난 상대의 반응에 동의하며 '식당'을 공동의 적으로 만들어 함께 욕한다.
"그래도 한 술 더 먹어둬. 이게 우리가 이 가게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가 될 테니까."
라는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감이 생긴다. 내가 식당을 열어도 여기보다는 맛있게 할 것 같아. 여긴 우리가 방문했던 식당 중 워스트 5에 당당히 들 수 있을 것 같아. U냉면집 빼고 여기를 넣자."
라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연애 중이니까 '나 VS 너'가 아닌, '우리'로 놓고 생각하는 것이다. M군의 경우 연애를 하고 있긴 하지만 '나 VS 너'로 생각하며, 때문에
'상대의 부정적인 반응 = 나에 대한 실망이나 질책'
이라는 생각으로 귀결되고 만다. 그러니 이 부분에 대해선, '여자친구가 100% 만족할 만한 것들'만 찾지 말고, 둘을 '우리'로 놓고 생각하는 습관부터 기르길 권한다.
또, 상대가 무례한 태도를 보이거나 존중이 결여된 말을 한다면, 그땐 M군도 자신의 입장을 상대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내 경우, 만약 하루 종일 써야 할 글이 있어 데이트를 못 하는데 그걸로 공쥬님(여자친구)이 삐친다면, 나도 놀고 싶지 글 쓰고 싶은 게 아니라는 것과 더불어 이건 '우리의 미래'를 위해 일을 하는 거라는 지점을 설명한다. M군은 이런 과정 없이 "미안해. 화났어?"라고만 응대하는 것 같던데, 그런 맹목적인 사과만 하는 태도도 수정하길 권한다.
3. 2주 만에 연인, 이후 2주 만에 이별.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소개팅이나 연애를 할 생각이 없던 남자가 소개팅에 나왔다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후 '연인 역할극'으로 2주의 연애를 했지만, 맨정신으로 돌아올 때면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어 이별을 고한 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연애를 시작한 이후, 상대는 '연인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생각으로 많은 것들을 의무적으로 했던 것 같다. 영화관에서 뭔가를 먹을 때 먹여주는 거라든지, 집에 데려다 주는 것, 계속 연락을 하는 것, 여자친구를 보러 가는 것, 만나서 뭐 할 건지를 정하는 것, 선물을 준비하는 것, 선물과 함께 여자친구가 기뻐할 만한 멘트를 마련하는 것 등을 고민한 흔적들이 사연 속에 보인다.
L양이 뭔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힘을 잔뜩 주고 연애를 시작했다가 스스로 힘겨워하며 거기에 '자기 비판'의 버릇까지 발동해 헤어지게 된 거라 나는 생각한다. 그는
"친구들은 이제 다들 전문직을 갖기 시작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 준비해야 할 게 많다."
"난 새로운 도전을 할 건데, 그러려면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고 그럼 넌 실망할 수 있다."
"너는 서운해 할 거고, 나는 미안해해야 하는 그런 미래일 것이 분명하다. 자신 없다."
등의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그는 저런 생각을 소개팅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L양의 번호를 받은 뒤 열흘이 넘도록 연락을 안 하기도 했고, 만날 약속을 잡은 뒤에도 다른 핑계로 만남을 두 번이나 미루지 않았는가. 그걸로 미뤄보자면 그는 자신이 현재 '연애 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L양과 만나며 L양도 만나보고 싶다는 뜻을 밝히니 일단 사귀어보기로 한 것 같다.
난 그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속으로는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사랑에 빠진 체 했던 부분, 특히 이별을 말하는 날에도 그가 L양을 너무 보고 싶어 얼굴 보러 가겠다는 뉘앙스로 말을 한 부분을 보면, 그에게 이 만남은 '자신'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남친 역할 수행 능력'을 보여주는 미션처럼 여겨졌던 것 같다. 연애에선 이랬던 거고, 또 자신의 삶과 미래에 대한 강박은 그것대로 남아 있으니, 본인이 그리는 이상적인 생활에 스스로가 압사당하기 전 뭐에서라도 하나 발을 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L양이 내 여동생이라면, 난 두 번 고민할 것 없이 이별을 권할 것 같다. 상대가 '완벽한 남친'을 아무리 잘 연기한다고 해도, 그러다 지칠 때 관계의 뿌리를 뽑는 것을 택한다면 의미 없는 일이니 말이다. 짧은 연애였지만 그 기간 중 상대가 역할극에 최선을 다한 까닭에, L양은 현재 그를 '손에 뭐 묻는다며 먹여주기까지 하던 남자'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원래 그런 남자라서'가 아닐 확률이 98.72% 이상이니, 짧은 기간 동안 상대가 했던 전력질주를 그의 본 모습이라 착각하지 말고, 2주 불태우곤 협의도 없이 이별을 택한 그의 태도가 본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하길 권한다.
4. 모쏠 친구들 다 연애시작하고 저만 남아 있는데요.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K군은 내게
"뭐가 문제일까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라도 할까요? 이런 걸 물어봐서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이젠 더 물러설 곳도 없거든요."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게 아니라, 뭐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벌어진 거다.
생일 축하 전화를 예로 들어보자. 올해 K군 생일엔 아무도 축하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이게 K군이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던 중 발생한 일이라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K군이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생각으로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살며 나아가 K군 역시 1년 동안 아무에게도 축하 메시지를 보낸 적 없기에 벌어진 일이라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생일축하 얘기가 나왔으니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을 하나 하자. K군은 이성 몇 명의 생일을 알고 있으며 지난 1년간 몇 명의 이성들에게 생일축하 메시지를 보냈는가? 가족이나 친척, 은사님 등을 제외한 나머지 이성들에게 보낸 생일축하 메시지가 '0'에 수렴한다면, K군에게 이성과 관련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소개팅이 들어와서 해 본 적도 있지만, 이성과 일 대 일로 만나서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다 보니 너무나 힘이 듭니다. 그렇게 만나는 게 힘들고 불편해서 제가 그냥 거절한 적도 있고요."
해봐야 는다. 예전엔 폰을 바꾸면 제조사 별 자판이 달라 오타도 많이 내게 되고 문자 쓰는 속도도 현저히 떨어지곤 했는데, 그것도 쓰다 보면 또 적응이 되어서 빨라졌다. 속도도 안 나고 오타 내게 된다고 문자 쓰는 걸 포기하면, 딱 그 상태에 멈춘 채 늘지 않았고 말이다.
내가 K군처럼 이십 대 중반이며 솔로부대에 복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계속해서 나를 이성이 있는 환경에 노출시켰을 것 같다. 연애가 급하니 누구라도 일단 나랑 좀 사귀어 달라는 마음 말고, A는 어떤 사람이고 B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는 것이다. 어디 놀러 갔다가 게스트하우스에 함께 묵게 된 이성들과도 대화를 해보고, 의무적으로 들르게 되는 미용실에서도 이성인 헤어디자이너와 대화를 해보며, 낯선 이성들이 불편하다면 친척 여동생이나 누나에게 말이라도 한 마디 더 걸어 대화를 할 것 같다. 자연스레 접하게 되는 여자 동기나 여자 동료들과도 대화를 할 것이고 말이다.
저런 과정 필요 없이 때가 되어 인연을 만나면 저절로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원들이 종종 있는데, 그건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린 말이다. 이성과의 교류가 거의 없다면 구두를 신은 상대를 데리고 남산을 오르거나, 밥 먹고 와플을 또 먹는 걸 이해 못하거나, 같이 밥을 먹을 때 이것도 먹어보라며 덜어주는 것 등을 아예 모를 수 있다. 가을 야구장에서 상대는 저체온증으로 입술이 파랗게 질려 가는데, 그런 상대에게
"왜? 재미없어? 내가 괜히 오자 그랬나…."
하는 얘기만 하고 있을 수 있고 말이다. 뭐, 그런 시행착오도 전부 이해하며 옆에 있어줄 사람을 만났다면 축복받은 것이겠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총체적 난국인 모습만을 가지고 있다면 상대가 힘겨워 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 될 수 있다.
이건 누군가에게 물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시행착오와 실수를 통해 체득해야 하는 부분이며, 경험을 통해 울렁증에서 벗어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다. 비슷한 처지에 있던 모쏠 친구들이 연애를 시작했다고 급한 마음을 갖거나 신세한탄을 하는 건 K군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니, 생각이나 염려는 그만 하고 이젠 밖으로 나가 이성을 만나길 권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잘 하는 방법'을 묻지 말고, 하다가 막히면 그때 날 찾아오길 바란다.
굵고 짧게 요점만 살펴보려 했는데, 오늘 고른 사연들이 간단하게 말하면 더 혼란스러워질 수 있는 사연들이라 글이 길어지고 말았다. 될 진 모르겠지만, 다음부터는 모음 사연을 다룰 경우 네 문단 이내로 정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매화축제를 소개 받아 한껏 즐기고 왔으니, 나도 벚꽃축제 중 하나를 알려드리는 것으로 보답할까 한다. 올해 개장여부에 대해선 아직 소식이 없는데, 렛츠런 파크(과천 경마공원)에 가면 어마무시한 벚꽃들을 볼 수 있다. 작년에 처음으로 26년 만에 일반인들에게 공개한 거라고 하던데, 거짓말 조금 보태 벚나무가 버즘나무(플라타나스)정도로 크다. 굵기와 크기가 엄청난데, 반대로 그게 살짝 단점이 되기도 한다. 꽃이 달린 가지들이 대개 사람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이 있기에 꽃에 파묻힌 인물사진 찍기는 좀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올해도 그곳이 개방을 하고 혹 그곳에 가시게 된다면, 안쪽으로 들어간 후 우측으로 이어진 오르막에서 사진 찍기를 권한다. 길이 기대보다 짧은 게 아쉬울 수 있지만, 난생 처음 아름드리 벚나무를 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야간 개장 때는 벚나무 마다 조명을 비춰 황홀한 분위기가 연출되니, 그것도 놓치지 마시길 권한다.
자 그럼, 다들 즐거운 일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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