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관계 지저분한 남자에게선, 깊게 고민할 것 없이 로그아웃하자. 그건 그런 연애를 하는 당사자에게도 시간낭비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매뉴얼까지 써야 하는 내게도 시간낭비다.
“하지만, 그래도 남친 얘기를 들어보면….”
말은 다 필요 없다. 특히 연애 중 다른 여자들과 동시다발적으로 썸을 타고, 나아가 이전에 사귀던 여자친구까지 만나는 남자가 하는 말은, ‘능숙해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 남을 속여 가며 무책임하게 살다 보면 늘 책임회피와 변명을 해야 하는 까닭에 자연히 언변이 늘게 되는데, 거기에 한 번 넘어가면 헤어 나오기가 힘들다. 상대는 자신이 잘못을 해놓고도 그게 이쪽의 문제 때문에 벌어진 것처럼 물타기를 할 것이고, 또 그래서 결국은 헤어지자는 거냐며 이쪽이 관계를 끝내는 것인 양 프레임을 이상하게 짤 것이다.
내가 늘 얘기하듯 상대의 말보다는 행동을 보고, 그래도 모르겠다 싶으면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가 내 등짝을 때릴 것 같은가, 아닌가?’
에 대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엄마가 등짝을 때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거기서 얼른 뒤돌아 나와야 더 비참해지는 걸 막을 수 있다. 이 과정을 무시하고 상대의 말을 나침반 삼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나중엔 엄마도 모르는 알코올중독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이렇게만 적어두면 첫 사연의 주인공인 D양은
‘아, 저건 내 얘기 아닌 듯. 내 남친은 저 정도는 아니고, 나도 저런 여자들하고는 다르니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기에, 그녀에게 하는 말이라는 걸 확인시켜주고자,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줘야 할 것 같다. 출발해 보자.
1. 여자관계 복잡한 남친, 어떻게 대처해야 하죠?
D양은 우연히 남친의 폰에서 소개팅 어플 알람이 뜨는 걸 봤다. 그걸 본 D양은 남친에게 다른 여자들과 연락하고 지내는 걸 알고 있다는 식으로 넘겨짚었고, 거기에 걸려든 뒤가 구린 남친은 아래와 같은 핑계를 댔다.
“너랑 연락도 잘 안 되고, 네가 외박도 안 된다고 하니 나에 대한 마음이 식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외로운 마음에 어플에 접속했던 거다.”
이해하려는 노력도, 상대가 하는 말이 말 같을 때 그래야 하는 거다. D양은 이걸 두고
“오빠의 사과를 받아들였어요. 제가 연락도 잘 안 하고, 외박도 이젠 하지 않으려고 했던 건 사실이었으니까요.”
라고 말하는데, 그런 ‘조건부 복수에 대한 이해’가 가능한 관계라면 이후 서로를 탓하고 잘잘못을 가려 되갚아 주는 것은 일상이 되고 말 것이다. 저 ‘다른 여자’의 문제 이후, 그가 ‘구여친’과의 문제를 일으켰을 때의 변명을 들어보자.
“회사 일로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힘들다. 진지하게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마음에 여유가 없고 힘든 와중에 너에게는 점점 못해줘 미안한 마음이 들고, 그래서….”
역시나 ‘구여친과 다시 사귀기로 했다며 D양과에게 이별을 통보한 것’과는 별 상관이 없는 변명이다. ‘못해줘서 미안한 마음이 든 것’이 ‘구여친과 연락해 다시 사귀기로 한 것’에 대한 이유는 될 수 없는 것 아닌가. 이런 남친의 말에 D양은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녀의 말도 들어보자.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하는 말에 마음이 약해져 다시 한 번 용서하게 되었네요.”
바로 이렇게, 상대의 말을 따라 길 없는 곳으로 계속 들어가게 되는 거다.
“용서하긴 했지만, 이후 남친은 계속 저랑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 같아요. 또, 전 여자친구와 완전히 정리를 안 한 건 아닌지도 신경 쓰입니다.”
나도 똑같은 부분이 신경 쓰인다. 그가 구여친과의 문제를 일으킨 걸 보면, 그는 D양에겐 요즘 너무 힘드니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한 뒤, 구여친과 다시 사귀게 되었다고 통보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그는 D양과 사귀던 중에는 한 번도 D양 사진을 프로필에 올려두지 않았으면서, 구여친과 다시 사귀게 되었다는 말을 하곤 곧바로 그녀의 사진을 프로필에 올려두었다.
이걸 억지로라도 극복해 보려 한다면, 상대에게 D양 사진을 프로필에 올려두고 사귄다는 것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그렇게 해서 그가 그러겠다고 한다면 ‘구여친과의 관계 정리’에 대해서는 절반정도 의심을 걷어낼 수 있긴 하지만, 아마 그는
“내가 구여친과 헤어진 이유는, 걔가 자기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하라고 하는 등 집착하고 날 구속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너도 구여친과 똑같은 요구를 내게 하고 있다.”
라는 말로 빠져나가려 할 것이다. 저 따위 애기를 듣고 또 ‘아, 그런가?’하고 있으며 그땐 더욱 답이 없을 뿐이니, 그냥 이런 고민 자체를 할 필요 없는 좀 정상적인 남자를 만나 연애하길 권하고 싶다. 한두 달 사이에 이 여자 문제, 저 여자 문제, 이별통보, 구여친 문제, 거기다 재회까지 더해가며 칼춤을 추는 남자에게선 피하는 게 답이다. 우리, 엄마가 들으면 가슴아파할 그런 연애는 하지 말자.
2. 소개팅했다 헤어지고 엔조이가 되었는데요.
D양 사연은 D양 어머니가 등짝을 때리는 것 정도로 끝나지만, 나영씨 사연은 나영씨 어머니께서 우실 것 같다. 귀한 딸이
- 그냥 편하게
- 당장 만나는 사람도 없고
- 일단 상대에게 끌리니까
라는 이유로 거기서 그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시면, 뒷목을 잡고 쓰러지셔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 될 수 있다.
수작을 부리는 남자들 중엔, 자신이 원하는 뚜렷한 여성관이나 연애관을 밝히는 경우가 많다는 걸 기억하자. 자신은 첫눈에 반해야 사랑할 수 있다든가, 이전 여자친구의 모습에서 온순함이 추가된 여성을 원한다든가, 자신을 구속하거나 지휘해 줄 여자를 원한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례가 많다.
그들은 그런 여자가 나타나기만 한다면 자신은 간도 쓸개도 빼주며 무조건 복종할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건 ‘그런 척 하면서 은연중에 비교하고 세뇌하기’라는 작전일 뿐이다. 저 말들에 밑밥이 깔려있다는 걸 모르는 여자는 안타깝게도 ‘내가 저런 여자가 되어야겠군’이라고 생각해 버리지만, 사실 저건 ‘내 이상형’을 밝히며 상대를 거기에 묶어두려는 수작으로 보는 게 맞다.
“제 지인들 중엔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 사람이 현재 여자 만날 상황도 아니고 돈도 없는 상황이라서, 결혼해야 할 저를 만나긴 부담스러워 그냥 이렇게 지내는 거 아니냐면서요.”
남의 인생이니까. 본인 인생 아니고 나영씨 인생인데 나영씨가 긴가민가하니, 그냥 듣고 싶어할만한 얘기나 해주고 마는 거다. 자기 딸이 그러고 있다는 걸 알면 가슴이 먹먹하고 손발이 떨리며 말도 잘 나오지 않을 텐데, 나영씨 인생이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겠냐. 아니면 말고.”하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거라 생각하기 바란다.
이 관계가, 나영씨 말로만 ‘엔조이’인 거지 정작 나영씨는 거기서 얻는 기쁨보다 슬픔과 분노가 더 크지 않은가. 상대가 일 때문에 타 지역에 가면 속 타는 것은 나영씨고, 이런 관계가 싫어 끊으려고도 했지만 상대의 “연락을 끊는 건 아닌 것 같고, 자제해보자.”라는 말에 여전히 그 관계에 묶여 있다.
이건 앞으로 봐도 상대가 “너도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야지.”라는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라 답이 없고, 뒤로 봐도 상대에게 결혼할 생각이 없고 능력이 안 된다는 점에서 답이 없다. 이런 와중에 또 하나 염려되는 건, 상대가 나영씨에게 ‘소개팅 했냐’, ‘남자친구 생겼냐’등의 질문을 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계속 확인하려 한다는 점이다. 나영씨는 단순히
‘어차피 나도 외롭고 이 사람이 좋기도 하니까, 놀면서 지낸다 생각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서른 넘어 거기서 그러고 있다간 인생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상대는 나영씨가 자신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걸 알기에, 다른 남자와 만나려 하면 여지를 남기거나 질투하는 척 하면서 장난을 칠 수 있다. 못된 심보를 지닌 사람들이 종종 저지르는 일인데, 이런 수작에 넘어가 삼십대 중반까지 헛물만 켜는 대원의 수가 꽤 된다.
또, 나영씨가 이 관계를 끊겠다 다짐을 해도 그가 나영씨에게 몇 마디만 하면 다시 ‘엔조이’ 모드로 진입하는 건 일도 아닌 까닭에, 그는 나영씨가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계속 뒤에서 조종하려 들 수 있다.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나영씨만큼 쉬운 여자도 없기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추파나 던져 보는 것인데, 거기에 넘어가면 그땐 진짜 끝장이다.
“이 사람이랑 진짜 연인으로 발전할 가망은 없는 걸까요?”
컵라면 사면 젓가락 공짜로 주는데, 굳이 젓가락 돈 주고 살 사람 있겠는가? 똑같은 이치다. 사귀지 않아도 할 거 다 할 수 있는데 그가 뭐하러 나영씨와 사귀겠는가. 그는 자신이 나영씨에게 ‘보고 싶다’, ‘통화하고 싶다’는 애정표현 몇 마디 던져주는 것으로 계산은 다 끝난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당장 애정표현을 하고 적극적으로 나영씨를 만나려 한다 해서 속지 말자. 그건 이 기형적인 관계로 지내는 것에 보상을 대충 해주고자 하는 말이지, 그는 나영씨의 생일이 언제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을 것이다.
당장 거기서 벗어나면 맨발이 되어버리는 듯하는 느낌, 그리고 상대가 계속 여지를 남기는 까닭에 ‘혹시나’하며 품게 되는 기대, 그런 것들로 인해 쉽게 끊지 못한다는 거 안다. 나영씨 이전의 선배대원들도 그런 상황에서 내게 정신 차리게 욕을 해달라느니 시리도록 차가운 말을 해달라느니 하는 얘기를 했지만, 내가 “엔조이는 얼어죽을.”이라는 얘기까지 해도 거기서 잘 벗어나지 못했다. 절친이 “너 걔 다시 만나면 나 너 안 본다.”라는 이야기를 해도 상대를 끊지 않고 오히려 절친을 끊기도 했다.
상대는 나영씨가 벗어나려 하면 더욱 달콤한 말과 기대를 품게 하는 행동들을 할 것인데, 거기에 넘어가 정신줄 놓고 있으면 우리 내년 이맘때 똑같은 얘기 또 하고 있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슬리퍼 신고 나오는 마음으로 나영씨를 만나는 남자와 어찌 먼 길을 갈 수 있겠는가. 나영씨가 이 관계 끊고 새로운 썸남과 만나겠다는 다짐을 하면 내가 적극 도와줄 테니까, 어서 그 시궁창에서 빠져나오길 권한다.
수작 부리는 남자들을 만나 고통 받고 있는 여성대원들을 구출하는 게 쉽지 않다. 하긴, 내가 그 남자라고 해도, 누군가 노멀로그에 올라온 매뉴얼을 보여주며 ‘너도 이런 거지?’라는 이야기를 하면,
“넌 지금 옆에 있는 내가 아니라, 누군지도 모르는 이 사람 말을 더 믿는 거야?”
라며 단번에 ‘네 탓’으로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남자들은
“남자라서 그런지 남자를 잘 아네.”
라며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식으로 나가기도 하는데, 이러면 또 그 여성대원은
“무한님, 이제 어쩌죠?”
라며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 내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런 상황까지 가는 걸 막고자 내가
- 상대의 말보다, 축적된 행동이 무얼 증명하는지 보세요.
- 상대에게 이쪽에 대한 존중과 책임감이 있는지 보세요.
- 상대에게 물어 답을 들으려 하지 말고, 스스로 판단하세요.
라는 이야기들을 지겹도록 반복하고 있는 것이니, 일단 스스로가 자신을 딸처럼 생각하며 ‘내 딸이 이런 상황에 있다면 난 무슨 조언을 할까?’라는 것까지도 살펴보길 권한다. 자신이 먼저 스스로를 귀하게 여겨야지, 그렇지 않으면 남들도 함부로 대할 뿐이다. ‘나를 먼저 사랑하자’라는 게 무슨 아끼고 참았던 지름을 대책 없이 지르라는 게 아니라, 바로 이런 과정임을 꼭 기억해 두길 바란다. 자 그럼, 다들 즐거운 화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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