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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남자친구의 술 문제와 욕설도 참아왔는데요. 외 3편

by 무한 2016. 4. 8.

수년간 글쓰기 도구로 삼고 있던 에디터의 글자 설정이 바뀌었다. 그간 9pt 굴림체로 글을 써왔는데, 기본설정이 고딕체로 바뀐 까닭에 9pt로는 알아보기가 힘들다. 물론 고딕체도 10pt 정도로 글자크기를 키우면 가독성에 문제가 없긴 하다. 하지만 그렇게 작성하면 글 자체에 폰트스타일이 전부 적용되는 까닭에, 최종적으로 블로그에 보이는 모양에 변화가 생기고 만다.

 

그냥 어느 에디터에건 쓰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런 부분에 내가 좀 민감하다. 키보드의 엔터키가 역 L자 모양이 아니라든가, 쉬프트 키가 작다든가, 한영키나 한자키를 이상한 곳에 배치되어 있다든가 하면 거기에 온통 신경이 쓰인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에디터도, 현재 작성중인 글자의 반영색이 검은색으로 표시된다. 이전에 쓰던 에디터는 반영색이‘#3399FF’였는데 말이다. 자간도 어색하고, 문단정렬도 전에 쓰던 것과 달라 남의 집 컴퓨터를 이용해 작성하는 느낌이다. 내가 구글 크롬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글을 쓸 때 작성중인 글자에 밑줄이 그어지는 게 너무 싫어서 인데….

 

에디터에 대한 개인적 편집증상 고백은 이쯤 줄이기로 하고, 불금맞이 매뉴얼을 시작해 보자. 지금 글자 하나하나를 써 넣을 때마다 마우스 포인터가 깜빡깜빡 거리는 게 또 신경 쓰이긴 하는데, 여하튼 괜찮은 문서작성 프로그램을 아시는 분은 댓글로 프로그램 추천을 좀 부탁드린다. 출발해 보자.

 

 

1. 남자친구의 술 문제와 욕설도 참아왔는데요.

 

K양에겐, ‘남 걱정 이전에 내 걱정이 먼저다.’라는 마음이 필요하단 얘기를 해주고 싶다. 지금 남 걱정, 남친 걱정 할 때가 아니다. 상대의 부모님도 상대를 어쩔 수 없었던 부분들에 대해선, K양도 포기하자. 답 없는 사람이 답 없는 짓을 하는 건 신도 어쩌지 못한다. 이걸 사람의 힘으로, 그것도 상대가 무시하고 멸시하고 등한시하는 K양의 힘으로 해결하려 하면, 스트레스성 탈모 같은 게 찾아올 뿐이다.

 

K양처럼 답 없는 상대와 헤어질 생각을 하면서도, 상대의 답 없음을 걱정하며 어떻게 해서든 ‘이별 선물’로 상대를 바로잡아주려는 선배대원들의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 시도의 대가는 대부분 상대로부터 욕을 먹거나 맞는 것이었고, 그들의 걱정과 달리 상대는 또 자신에게 맞는 다른 사람을 찾아 잘 살았다. 그러니 상대 인생은 상대가 책임지게 두고, K양은 본인 인생을 책임지길 바란다. 

 

“술집에서 남친이 취해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려 제 친구는 보다 못해 집에 가버렸습니다. 저는 너무 창피해서 남친에게 짜증을 냈는데, 그러자 저를 때리려고 하고 가방을 집어 던지려고 했습니다. 피해야 할 것 같아서 제가 도망치자, 남친은 다른 사람한테 시비를 걸었습니다. 경찰이 왔고, 남친은 경찰을 밀고 반항하다 넘어뜨려 체포되었습니다. 저는 탄원서도 써주고 재판 진행도 도와줬습니다. 그런데 일이 다 해결되고 나니, 남친은 그때 제가 자신을 화나게 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내게 하소연해서 뭐하겠는가. 친구에게 하소연해서 뭐하겠는가. 남친 부모님에게 하소연해서 뭐하겠는가. 상대가 저러는 데도 K양은

 

“종교의 힘으로 언젠가는 깨닫겠지, 하고 넘어갔습니다.”

 

라는 얘기만 하고 있을 뿐이라면, 답이 없다. 종교에 기대며 남친이 언젠가는 변하겠지 하는 것도 1~2년이지, K양은 5년 이상 그런 기대만 하고 있지 않았는가. 이젠 남친이 싸울 때 K양에게

 

“재수 없는 *”
“개 같은 *”
“또라이냐?”

 

라는 이야기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는데, 저게 술에 취해서 한 말이든 뭐든 이 정도 됐으면 K양도 이 관계엔 답이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그래도 술 깨고 나면 남친은 사과를 해요. 본인도 충격이었대요. 자신이 술 취했을 때 저에게 욕 했다는 게요. 그러면서 제가 싸울 일만 만들지 않으면 자기가 그러지 않을 거라며 제 잘못이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정말 제 잘못일까요?”

 

저 따위 말에 설득 당하고 있는 K양의 등짝을 한 대 때려주고 싶다. 정신 차리자. 이 관계를 지속할 경우 K양이 얻을 거라곤 멍과 상처 밖에 없다. K양은 상대가 맨정신 일 땐 좋으니 ‘나쁜 술버릇’만 고치면 해결될 거라 단순하게 생각하던데, 매번 약속을 해도 일주일도 안 지나 다시 또 취하는 상대를 5년 이상 경험했으면, K양도 깨닫는 게 있어야 하는 거다.

 

남친에게 맞으면서도 못 헤어지는 여자들이 걸고 있는 기대가 K양의 기대와 완벽하게 일치하니, 그 기대는 내려두길 권한다. 청춘 다 바쳐 만난 남친인데 이대로 헤어지는 것보다 그래도 고쳐보는 게 낫지 않냐고 K양이 내게 묻는다면, 난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는 대답을 해주겠다. 이 와중에도 상대를 걱정하며 “나와 헤어지더라도,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게….”라는 얘기 할 생각 하지 말고, 즉시 돌아 나오길 권한다. 상대나 상대 부모님 말고 K양 부모님을 생각하자. K양 부모님이 이 얘길 들으시면 땅을 치며 우실 일이니 말이다.

 

 

2. 친구인 듯 친구 아닌 친구 같은 사이. 어쩌죠?

 

달달하다. 이건, 상대가 장난스레 하는 말이나 남들과 함께 있을 때 밀어내듯 하는 말을 무시하고 다가가는 게 좋다. 상대와 Y양은 ‘친구끼리 가는 여행’이라는 걸 테마로 종종 놀러 다닐 수 있으니, 그 ‘되는 부분’을 적극 활용하자.

 

상대가 남들과 함께 있을 때 둘의 관계를 부정하는 건, 남들이 두 사람 연인 같다고 하니 쑥스러워서 그러는 것일 확률이 높다. 상대는 어머니 생신에 꽃다발 사가지고 가는 걸 ‘꽃을 쑥스러워서 어떻게 사고, 어떻게 드리냐’고 할 정도로 부끄럼쟁이니, 그가 Y양과의 관계에 대해 뭐라고 하든 그 ‘말’ 보다는 ‘행동’을 봐야 한다.

정말 상대가 Y양에게 아무 감정도 없는데 같이 놀러 가자고 하고, 드라이브 하자고 하고, 또 Y양에게 뭔가를 베푼 뒤 Y양이 돈 내려고 하면

 

“돈 갚는 건 됐고, 나중에 바다 보러 갔다 오자.”

 

라는 이야기를 하진 않을 것이다. 특히 Y양이 흥얼거렸던 노래를 상대가 몰래 검색해서 다운 받은 부분은, 그가 표현을 하지 않을 뿐 속으로는 둘의 관계에 어느 정도 무게를 두고 있다고 봐도 좋다.

 

“저에게 마음이 있지만 연애를 해서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 밀어내는 걸까요? 아니면 절대적인 친구로만 생각한 채 연애의 가능성을 접은 걸까요?”

 

그런 건 지금 고민하지 않아도 좋다. ‘얘랑은 그냥 친구로 내 감정의 40%만 할애해야지.’ 따위의 작정을 한 채 누굴 만나는 사람은 없으니, 상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든 그건 여러 가지 변수, 특히 Y양이 어떻게 하냐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자.

 

현 상황에서 문제가 되는 건, Y양이 상대와의 관계를 긍정적이었다고 생각하다가도 모임에서 누군가 ‘둘이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상대가 부정하면, 그때 Y양이 분노와 증오의 마음을 품어버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상대보다 한 술 더 떠 강렬하게 부정하고, 상대에겐 “넌 절대 내 이상형 아님.”이라는 뉘앙스의 말들까지 해버린다. 이걸 두고 Y양은

 

“그 아이를 미친 듯이 좋아했다가도, 확 포기해서 돌아서는 걸 반복했습니다.”

 

라고 말하던데, 절대 그럴 필요 없다. 그래버리면 부끄럼쟁이에다 살짝 소심한 상대는 상대대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으니, ‘단 둘이 만나 놀러 다니는 것’을 목표로 둔 채 많이 만나보길 권한다.

 

아직 상대랑 팥빙수도 먹어본 적 없으면서 마음을 접거나 관계를 엎을 필요 없다. 마침 요즘 벚꽃들이 ‘날 보러 와요’라고 말하듯 흐드러지게 피어있으니, 폰 배경화면으로 쓸 벚꽃 사진 찍으러 간다는 핑계로 상대와 벚꽃구경부터 가보길 권한다.

 

 

3. 꿈에 전남친이 찾아왔어요.

 

주연아, 오빠한테 이러지 마. 그냥 너도 찾아가.

 

 

4. 200일의 연애. 여친에게 권태기가 왔다고 합니다.

 

사귄 지 173일에서 216일 사이에 권태기가 찾아왔다면, 그건

 

- 연애에만 푹 빠져 있다가 현실을 마주하고 정신 차림.
- 상대가 서운하다는 얘기를 자주하며 ‘더더더더’를 외침.
-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한데 상대는 계속 매달리고 징징거림.

 

이라는 이유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무한님, 근데 저 173일에서 216일 사이라는 건 어떤 수치인 거죠?”

 

그냥 느낌이 오는 수치를 적어둔 것이니 너무 깊이 알려곤 하지 말길 바란다. 이렇게 적어두면 누가 또 베껴갈 때, 똑같이 베낄 순 없으니 ‘170일에서 220일 사이에’또는 ‘200일 전후로’라고 쓸 것이고, 그럼 난 ‘또 잡았다 요놈!’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응?) 허튼소린 이쯤하고.

 

사연의 주인공인 P군은

 

“정말 뜨겁게 서로를 좋아했는데, 한순간에 이렇게 되는 것 같아 허무하기도 하고….”

 

라는 얘기를 하던데, 난 이제야 두 사람이 정상적인 연애를 할 준비가 되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예전처럼 매일 만나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올법한 대사들로 대화를 하고 그랬던 건, 그냥 뭔가에 잠깐 미치듯 호르몬의 도움을 받아 불타올랐던 거다. 연애가 시작되었으며 자신이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꼈던 것이지, 실제로 따져보면 서로는 서로가 누군지도 잘 모른 채 연애의 즐거움만 만끽하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P군 역시, 그간 연애가 즐거움과 위안이 된다는 이유로 연애 자체에 함몰되어 있었던 건 아닌지 생각해 보길 권한다. 사실 지금도 상대는 P군에게 연락하고, 보고 싶다고 말하고, 또 만나거나 같이 밥을 적자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P군은 상대가 연애에 100% 올인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일도 하고, 또 혼자만의 시간도 갖는 다는 것 때문에 시무룩해 하는 중이다. P군도 해야 할 일이 있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예전처럼 죽고 못 사는 태도로 연애에 매달리지 않기에, 그게 서운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고 있고 말이다.

 

이제 더 이상 그녀에게 ‘P군과의 연애 말고는 다 필요없다는 태도’가 보이지 않기에 P군이 너무 힘들고 울적하며 거기에 신경이 쓰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거라면, 헤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난 생각한다. 이미 P군도

 

“예전과 같은 모습이 사라져 저도 여친에게 정이 떨어졌는지, 이젠 여친이 애정표현을 해와도 별 감흥이 없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기에, 여기서 내가 뭘 더 권해봐야 마음 식은 당사자에게 부담만 심어주는 일이 될 것 같다. 다만, 누구와 만나든 이런 순간은 다시 찾아올 수 있으며, 그때마다 ‘이제 못 쓰게 된 것’이라는 평가를 해버리면 늘 짧은 연애만을 반복하게 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혹 아직 더 노력해 볼 마음이 남은 거라면, P군이 상상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과 상대를 비교하지 말고,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거기서부터 시작해 보길 바란다.

 


며칠 전 한 독자 분으로부터, 좋은 시 하나를 소개받았다. 널리 알려진 시이고 청첩장에다가도 많이들 써 넣으시는 시 같던데, 이수동의 <동행>이라는 시다. 마지막 사연의 주인공인 P군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시다.

 

꽃 같은 그대,
나무 같은 나를 믿고 길을 나서자

 

그대는 꽃이라서
10년 이내 10번은 변하겠지만
나는 나무 같아서 그 10년,
내 속에 둥근 나이테로만 남기고 말겠다

 

타는 가슴이야 내가 알아서 할테니
길가는 동안 내가 지치지 않게
그대의 꽃향기 잃지 않으면 고맙겠다

 

내가 계속해서 2연 두 번째 행 ‘10년 이내 10번은’‘십 년이면 열 번은’으로 바꾸고 싶은건, 직업병 같은 걸까. 이젠 시를 읽으면서도 겨우 이런 생각이나 하게 되는 걸 보니, 나도 나이가 드는가 보다. 수수꽃다리 향기가 맡고 싶어지는 금요일이다. 다들 불금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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