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꾸러기인지 아닌지를 궁금해 하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태도를 분명하게 하자. 남친 있으면서 상대가 번호 달란다고 주고, 술 마시자는 얘기가 나오니 약속까지 이쪽이 먼저 잡는 상황이라면, 모든 걸 상대의 ‘흑심’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하긴 어려울 것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거고, 상대도 누울 자리가 보이니 다리 뻗는 것 아니겠는가. 상대에 대해 속으로는 ‘날티가 나며 꾸러기인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카톡으로는
“저희 진짜 술 먹는 거예요? 그럼, 이번 주 일욜 어때요?”
하고 있으면, 이쪽은 피해자라기보다는 공범에 가까워지고 만다.
훗날 뒤통수를 맞고 난 뒤 친구들에게 하소연 하면 “걔 완전 쓰레기였네.”라며 위로는 해주겠지만, 그렇게 합리화를 한다고 해서 K양의 잘못이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그런 남자들을 계속 경험하게 될 수도 있고 말이다. 이걸 막기 위해 K양이 알아야 할 것들, 함께 살펴보자.
1. 남자친구 있는 여자가 이러면 나쁜 건가요?
너무 당연한 걸 묻고 있기에 사실 좀 당황스럽다. 남친이 학원을 다니는데 그곳 여자 선생님과 사적인 카톡을 나누며 술 마실 약속을 잡는다면, 그것도 남친이 먼저 언제 시간 괜찮냐고 묻기까지 한다면, K양은 그것만으로도 이별사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K양이 상대에 대한 관심을 친구에게 털어 놓았을 때 친구는 그저 K양의 편에서 이야기를 해준 것 같은데, 그건 사실 그 친구가 K양의 연애에 큰 관심이 없으며 괜히 듣기 싫은 소리 해서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고자 그런 거지, K양을 이해하며 K양의 행위가 정당화 될 수 있기에 그런 건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나 역시 내게 조언을 구하며 사연을 보내는 대원들에겐 마음을 써가며 솔직하게 이야기 하지만, 그저 친구가
“내 여자친구 정신적으로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얘네 집안사람들도 다 이상해. 얘네 언니는 어쩌고저쩌고.”
라는 이야기를 하면, “그래? 다이나믹한 집안이네.”하고 말 뿐이다. 친구 여친이 아직 어린 까닭에 작은 일에도 겁먹을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거나, 집안 분위기의 차이인 것 같다거나 하는 긴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속으로는
‘여자친구에게 정신질환 판정을 내린 후 집안사람들까지 싸잡아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솔직히 이러이러한 부분은 상대 집안사람들이 이상해서 벌어진 게 아니라 이쪽이 이상해서 벌어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도, 감자탕이나 먹으러 가자는 얘기를 하고 말 뿐이다.
남친과 K양의 입장을 바꿔 만약 남친이 K양처럼 행동한다면 K양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 것 같은지, 남친이 그랬다고 해도 K양의 친구가 같은 말을 할 것 같은지, 남친이 그런 일을 저지르고는 ‘이게 나쁜 건가요?’라고 묻고 있다면 그걸 보는 K양의 심정은 어떨지 등을 고민해 봤으면 한다. 이 부분에서 떳떳할 수 있어야 정상적인 사연인 거다. 이걸 그저 합리화해 넘기면 정신승리는 할 수 있겠지만, 자기 무덤 자기가 판 모습에선 벗어나기 어렵다는 걸 잊지 말자.
2. 관심 때문이 아니라, 쉬운 여자로 보여 들이댈 수도 있다.
K양의 수영 선생님이 K양에게 관심이 있는 건 절대 아니다. 이성으로서의 관심이 있었다면 톡으로 대화를 할 때에도 보다 적극적이었을 거고, 이미 여러 번 선톡을 했을 것이며, 수영 끝나고 밥 같이 먹자는 등의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사실 K양이 하는 많은 행동들이, 남자 입장에서 보자면 ‘여지’를 남기는 신호로 해석된다. 강습 중 K양이 상대에게 말 한 마디 더 거는 것도 그렇고, 상대가 장난삼아 말을 던져도 K양이 거절하는 법 없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그렇고, 연애중이면서 다른 남자와 밖에서 만나 술 먹는 것에 아무 거리낌 없어 보이는 것도 그렇다.
보통의 경우, K양처럼 상대에 대해
“상대는 몸에 문신도 있고요, 행동에서도 좀 날티 나는 부분이 있어요. 프로필 사진 올려둔 걸로 추측해봤을 때 여친도 있는 것 같고요.”
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면, 상대가 뭐라고 떡밥을 던지든 그저 ‘의무적인 접대멘트’로 받기 마련이다. “언제 한 번 밥 먹어야죠.”라고 하면, “네~ 그래야죠~”정도로 받는다는 얘기다. 그러고는 정말 상대가 약속을 잡으려 해도, 다른 핑계를 대며 미루거나 돌려서 거절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K양은, 상대가 지나가는 말로 (K양이 고등학교 후배라는 걸 알게 되어)동문회 한 번 해야겠다고 한 걸 두곤, 오히려 앞장서서 상대에게 언제 술 마실 거냐고 날짜 잡으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일이 있어 수영 빠진 걸 두고 상대가 그날 왜 안 왔냐고 묻자, “아파서 못 왔어요. 마음이. ㅎㅎㅎㅎ”라는 드립 같은 걸 치고 있으면, 미안하지만 그냥 좀 쉽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K양 남동생이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갔다가, 거기 헤어디자이너가 상냥하게 챙겨주고 말도 잘 통하는 것 같아 번호를 물었다. 그러자 헤어디자이너가 번호를 주고 둘은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그녀에겐 남친이 있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K양 남동생이 일요일 저녁에 술 마시자고 하면 그녀는 알았다며 약속을 잡고, 그녀가 선톡을 보내 대화를 이어가기도 한다. 이런 경우라면, K양은 그 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지금 K양의 태도가, 이 이야기 속 헤어디자이너의 모습과 다를 게 없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3. 이성에 대한 허용도와 장난기에 대한 이야기.
K양은 내게
“선생님이 제게 관심이 없는 건 알겠습니다. 관심이 있는 여자한테 저렇게 하진 않을 테니까요. 그럼 이건 회원관리인 건가요? 아니면 그냥 번호 컬렉터? 연락할 여자들이 있다는 것에 만족하는 그런 꾸러기인 건가요?”
라고 물었는데, 전에도 얘기했지만 그냥 ‘이성에 대한 허용도’가 높은 사람들이 있으며,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고객을 ‘손님’보다는 ‘학교 후배’처럼 대하는 경우도 있다.
번호를 묻거나 언제 한 번 술 한 잔 얘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나 역시 연하의 이성들과는 딱딱하게 지내기보다는 동네 오빠동생이나 사촌오빠처럼 지내곤 한다. 만약 내가 수영강사고 K양이 내 후배였다면, 난 ‘교가제창’같은 것까지 함께 하며 놀았을 수 있다. 오늘은 선배가 힘드니 후배가 강의하라는 얘기를 했을 수도 있고 말이다. 수영을 가르칠 때에도
“저을 때 팔 더 쭉 펴시고요.”
라며 딱딱하게 말하기보단,
“그래. 잘 하고 있어. 팔 더 쫙 펴고! 나중에 남친 물에 빠지면 구해줘야지!”
라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저건 K양에게 호감이 있거나 K양을 이성으로 봐서가 아니라, 그냥 이쪽이 원래 이성을 대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으며 장난기가 많아 그러는 것이다. 또, K양은 그가 자신에게만 그러는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다음 타임의 수강생 중 누군가에게도 그럴 수 있고, 다른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우는 누군가에게도 그럴 수 있다.
굳이 상대에게 셋 중 하나의 혐의를 씌워야하는 거라면, ‘회원관리’정도가 그나마 나을 것 같다. 근데 사실 회원관리라고도 볼 수가 없는 게, 그가 개인강습을 하는 것도 아니고 K양이 수영장에 나오지 않아도 월급에는 변화가 없으니, 굳이 ‘관리’씩이나 한다고 보기도 솔직히 좀 어렵다. 그냥 매일 비슷비슷한 걸 여러 번 가르쳐야 하는 지루한 강습시간 동안, 장난을 쳐도 잘 받아주고 마침 동문이라 후배 대하듯 대해도 이해해주는 K양에게, 말장난 정도나 하는 거라 보는 게 가장 바람직할 것 같다.
K양은 내게
“무한님의 글을 보면서, 나쁜 남자나 꾸러기들 판별법에 대해선 나름 많이 공부도 했고, 이젠 구분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부족한가 봅니다.”
라고 말했는데, 솔직히 K양은 ‘나쁜 남자나 꾸러기 판별법’에 관한 매뉴얼보다는 ‘서비스직 남자의 서비스를 관심으로 오해한 여자’와 관련된 매뉴얼을 참고해야 한다.
‘연애 때문에 인생이 기구해진 선배 대원들’의 이야기를 보면,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발을 담그지 않을 괴상한 것들에 발을 들여놓은 사례가 많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 여친 있고, 날티 나고, 내겐 관심 없어 보이지만 술 마시자는 남자.
를 두고 고민하는 사람들은, 계속 그런 형태의 고민을 반복하게 된다는 얘기다. 길 걷다 누군가 “심상찮은 아우라가 보여서 말 걸게 되었습니다. 영혼이 맑으신 분 같네요.”라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 따라가는 사람이, 이후 어디서 맨발로 도망치고 쫓아오는 봉고차를 마주하게 되는 경험을 하는 것과 비슷한 거라 생각하면 되겠다.
아무리 호기심이 생기더라도 아닌 게 분명하면 발을 들여 놓지 말아야지, ‘이러면 나쁜 건가요?’라며 모르는 척 하고 나머지 부분들까지 합리화 하며 발을 들여 놓으면, 훗날 가장 힘든 시기에 그 책임까지 져야 한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잘 생기고 몸 좋은 남자랑 술 한 잔 하려고, 보금자리 내팽개치고 어둠의 골짜기로 걸어 들어가진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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