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 주변의 이성을 오로지 ‘사귈 수 있느냐, 없느냐’의 잣대로만 보니까 자꾸 어장관리를 당하는 거다. 누가 조금만 잘해줘도
‘나한테 관심 있나?’
하는 생각을 먼저 하고, 그러면서 나름 상대가 다가오기 편하게 길 닦는다며 맹목적 긍정을 보이고, 그러다 기대했던 것만큼 빨리 가까워지지 않으면 조급해하며 상대의 연락을 기다리게 되고, 감정의 널뛰기를 하다가 답을 듣겠다며
“오빠, 우린 무슨 사일까요? 그냥 오빠동생?”
따위의 질문이나 할 뿐이니, 결국 그렇게 일등참치가 되어갈 수밖에 없다. 힘차게 헤엄쳐라 일등참치여!
자신이 그저 떡밥을 기다리는 일등참치였다는 걸 깨닫고 나면 상심하며 어장 구석으로 가 주눅 든 채 있기 마련인데, 그 때 또 누가 조금만 잘해줘도
‘얘야말로 나한테 관심 있나?’
하며 위의 수순을 그대로 다시 밟는다. 다시 또 헤엄쳐라 일등 참치여!
평생을 일등참치로만 살 순 없는 법이니, 왜 자꾸 어장에 들어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지, 그 저주의 사슬을 끊기 위해선 뭘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1. 누군가의 게임초대도 반가울 정도로 외로움.
편히 쉴 곳 없으며 마음 둘 곳 없이 히치하이킹 하는 사람처럼 길가에 서 있을 뿐이니, 그냥 지나가는 아무 차나 얼른 잡아타고 싶어 하듯 누군가가 다가오면 손을 드는 것이다. K양이 한 말들을 보자.
“그 오빠에게 게임초대가 왔는데, 무지 반갑더라고요.”
“오랜만에 하루 종일 카톡을 하니까 너무 재밌었어요.”
“누군가와 이렇게 하루 종일 연락이 닿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어요.”
이래버리면, 방법이 없는 거다. 보통의 사람 같으면 생사여부도 알 수 없이 지내던 상대가 게임초대만 틱, 보내면 그 무성의함과 예의 없음에 분노하곤 하는데, K양은 망망대해에서 홀로 표류하다 사람을 만난 듯 상대에게 열심히 헤엄쳐 가지 않는가. 상대가 H씨가 아닌 J씨, Y씨, P씨였어도 K양은 그쪽으로 헤엄쳐 갔을 것이다. JYP.
상대에 대해 아는 것도 없이 그냥 일단 무작정 헤엄쳐 간 것이면서, 말 몇 마디 나누자마자 ‘연애’부터 기대하기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K양의 말을 보자.
“호감이 생겨버린 건지, 갑자기 잘 오던 연락이 드물어진 것 같고 왠지 내 카톡에 답장하는 속도가 느려진 것 같고 너무 불안하더라고요. 이 오빠랑 잘될 것 같다는 이상한 과대망상이 생겨버려서인지, 밀당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카톡 하나하나, 연락 안 오는 것, 그 밖의 사소한 것에도 너무 속상하고 스트레스 받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한 발 물러서서 살펴보니, 둘 사이에 뭐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게임초대 메시지를 보내온 상대와 수다를 조금 떨었을 뿐인데, K양은 얼른 연애가 시작되길 기대하고 있다는 게 명확히 보이지 않는가? 이렇다 할 교감도 없는 와중에 K양이 외롭다고 해서 당장 가장 가까운 사람을 연인으로 고용하려 들면, 주변의 이성을 모두 멸종시킬 수 있을뿐더러
‘내게 잘해주지만 나랑 사귀진 않는 사람 = 어장관리자’
라는 괴상한 혐의만 붙일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2. 아닌 거 알면서 확인 받아야겠다며 또 묻기. 그리고 답정너.
이쪽에서 돌려 질문한 거라 해도, 어쨌든 상대가 사귈 생각 없다는 뉘앙스로 대답을 했으면 그게 상대의 진심인 거다. 이건 사실 여성대원들보다는 남성대원들이 주로 쓰는 ‘무효를 노리는 떠보기’인데, K양이 바로 그 ‘돌려 말해놓고는 물어본 걸로 카운팅 안 하기’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직접 묻진 않았지만 돌려서 다 질문해 놓고는,
“아 저건 그냥 물어본 거예요. 궁금해서.”
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질문 안 한 게 되는 게 아니다. 앞서 말했듯 남성대원들이 주로 이런 짓을 저질러 넣고는
“이번엔 정말 제대로 물어볼 생각입니다. 무슨 대답을 듣든, 확실하게 물어보려 합니다.”
라며 비장한 표정을 짓곤 하는데, 난 그들에게
“이미 몇 번 떠봐서 무슨 답이 나올지 다 알고 있으면서, ‘이번엔 제대로’라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이래놓고 또 슬픈 예감이 틀리질 않느니 어쩌느니 하고들 하는데, 그러지 좀 맙시다. 돌려서 말하거나 물은 것도 다 카운팅 된 겁니다. 장난이었다, 농담이었다, 하는 이야기를 했다고 카운팅으로 안 치는 게 아닙니다.”
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K양에게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또, 둘의 관계를 인질로 삼아 연애의 가능성을 알아보려는 행동을 한다든가, 상대의 대답을 극단적으로 좋지 않게 해석해 되묻는 행동을 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럼 꺼지라는 거죠? 오빠가 한 말은 나더러 꺼지라는 건데? ㅋㅋㅋ”
“오빠랑 난 그럼 이제 빠이인 거죠? 빠이~ ^^”
“난 괜찮은데 오빠가 불편하겠죠. 오빠도 편하다고요? 웃기시네~”
“보고 싶지 않다는 게 아니라, 발전 가능성 없다는데 계속 보면 내가 좀 불쌍하잖아요.”
저런 말들을 해서 상대가 ‘그런 의미로 말한 건 아니다’라는 대답을 해주면 당장은 희망이 다시 생긴 것 같아서 기쁠지 모르지만, 돌직구를 날리자면,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은 찌질하고 추해보이며 매력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상대입장에선, 대화할 때마다 저러면 말 섞기가 싫어지며 연락 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 수 있고 말이다. 장난? K양은 저걸 장난이라고 말하던데, 상대는 확실히 짜증이 나 있다. 상대가 한 말을 보자.
“내가 무슨 너한테 뽀뽀를 해놓고 동생이라 그러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대역죄인이 되가지고 지금….”
더불어 자신은 상대에게 “그럼 여자 소개 받아요. 동갑으로.”따위의 이야기를 해놓곤, 상대가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하면 ‘잔인하다. 상처 받았다. 내 속을 긁었다’며 분노하는 것 역시 스스로를 좀먹는 행동일 뿐이다. 이렇게 혼자 기대를 시작해선 빙빙 돌아가며, 기대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실망과 짜증을 장난인 것처럼 상대에게 집어 던지지 말고, 그냥 좀 제대로 된 길로 다가가 친해지면 안 되는 걸까?
“선 긋는 거 다 알아요. 선 진짜 잘 긋네. 피카소인줄 ㅋㅋㅋㅋ 자전거 얘기하지 마요. 자전거 제일 싫어할 거야.”
라며 비뚤어져선 찔러대지 말고, 그냥 좀 만나서 자전거 같이 타면 안 되는 걸까?
3. 남자는 관심이 없는 여자에게…?
상황을 이렇게 만들고 만 대부분의 대원들이, 그래놓고는 또 내게 와서 약속이나 한 듯 ‘원론적인 질문’을 똑같이 하곤 한다.
“남자는 관심 없는 여자에게 연락 절대 안 하죠? 만나자고 할 리도 없고요. 그런데 그 오빠와 전 연락도 하고 만나기도 했거든요. 그럼 관심이 있긴 있다는 거죠?”
성적표가 나왔지 않은가. 수능점수 307점. 결과가 이렇게 나와 있는데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거 맞죠? 저 나름 열심히 했거든요. 그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거죠?”
라고 물으면 뭐라고 난 대체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남자는 관심 없는 여자에게 연락 절대 안 한다’는 말은 두 사람이 소개팅으로 만난 직후라든가 하는 상황에서만 ‘참’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다. 알고 지내며 같이 종종 수다 떨던 사이라든가, ‘학교 선후배’나 ‘아는 동생’등의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으면 ‘연애 할 생각’이 없이도 얼마든지 연락하거나 만날 수 있다. 두 사람이 공통으로 아는 사람도 많고, 또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으니 반가움에 그간 어떻게 지냈다 대화나 할 겸 볼 수도 있는 건데, 그걸 ‘연락과 만남=관심’으로 단순 해석하는 건 많은 착각을 부를 수 있는 행위일 뿐이다.
K양은 친구들에게 자신과 상대의 이야기를 한 결과 친구들이 ‘어장관리’의 혐의를 강하게 의심했다고 하던데, 상대가 누군지,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K양 구미대로 편집된 이야기를 해서 답을 듣는 건 ‘답정너’를 벗어나지 못한다. K양의 이야기를 그저
“어쩌다 연락이 닿은 오빠가 있는데, 연락도 하고 만나기도 했지만 사귀는 건 거절했다. 그러면서도 관계를 완전히 끊으려고 하진 않고, 계속 연락하며 가능성만 열어두고 있는 것 같다.”
라고 말하면, 그 얘기를 듣는 사람은 당연히 어장관리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사실은 저렇게 요약될 수 있는 얘기가 아니고, 바르게 요약하자면
“외롭고 심심할 때 상대가 카톡 게임하다 게임 초대를 무작위로 돌렸는데, 그 중에 K양이 있었다. K양은 오랜만에 연락한 그에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는데 그가 잘 받아 주었다. K양은 하루 종일 얘기해도 귀찮은 기색없이 그가 받아줘서 곧 사귀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고, 몇 번 떠봤지만 오빠동생으로만 지내겠다는 마음은 완강했다. K양이 그럼 인연 끊겠다는 식의 강수를 두자 그는 인연을 왜 끊느냐고 했다. 현재는 그렇게 지내며 K양은 ‘사귈 거 아닌데 왜 연락 안 끊고 잘해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라고 하는 편이 가장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해석이 될 것이다. 상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K양이 듣고 싶은 판정을 받는다고 해도, 결국 상대가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라는 걸 기억해뒀으면 한다. 남들의 판정으로 될 일 같으면 내가 이런 글을 쓰는 대신 오늘부터 나가서 서명운동이라도 하길 권하지 않겠는가. 아닌 걸 이미 본능적으로 직감했으면서, 억지로 우겨보려 하지 말자.
중간에 날린 돌직구 때문에 K양이 먹먹한 가슴으로 손발을 떨고 있진 않을지 걱정이 된다. K양이 기대했던 이야기가 아니라 글 전체가 쓰게 느껴지겠지만, 입에 쓴 게 또 몸에는 좋다고 하니 글을 통해 K양의 ‘금사빠와 어장관리 판정의 습관’을 이번 기회에 피하지 말고 마주봤으면 한다.
K양처럼 혼자 누군가에게 기대를 건 채 언제 연애가 시작되나 하며 목을 빼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또 내게
“친구들이 남자 소개해줬거든요. 그래서 만나보기도 했는데, 그 사람보다 이 오빠랑 연락하고 만나는 게 더 재미있어서 접었어요. 그만큼 제 마음이 오빠를 향해 있는 것 같아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건 이미 마음의 집에 상대를 들여 놓곤 새로 만나는 사람을 현관문에서 돌려 보내기 때문에 그런 거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짜 사랑’이라는 증거가 될 순 없으며,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소개 받은 남자가 덜 잘해주고 덜 매력적이라서 그냥 마음을 접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K양이 왕십리 모차르트라고 불리는 Y씨를 만났다면, Y씨에게로 마음이 옮겨 갔을 수도 있다.
“왕십리 모차르트가 누군가요?”
많이 알면 다칠 수 있으니,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진 말길 바란다. 왕십리 모차르트가 중요한 게 아니라 K양이 그 구애와 기대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니, 혼자 만든 상대의 이미지는 이제 그만 내려놓길 바란다. 추측과 예상, 그리고 지인들과의 의논에서 벗어나, 현실에 발을 딛고 당사자인 상대와의 대화를 통해 관계를 구축해나가길 권한다.
자 그럼, 더운데 다들 더위조심하시고 즐거운 수요일 보내시길! 두 밤만 자면 불금이니, 조금만 더 버텨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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