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연속 연애 사연은 접어두고‘페르세우스 유성우’이야기만 했더니, 별똥별 보러 갈 계획 없으니까 그 얘긴 그만하고 빨리 자신의 사연부터 좀 다뤄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좀 섭섭하긴 했지만, 그래도 또 물에 빠진 기분으로 허우적대고 있는데 저쪽에선 사진 찍는 법에 대한 이야기나 하고 있으면 속이 타들어가는 그 느낌 아니까. 밀린 사연을 펼쳐봤다.
사연을 읽으며 담배 반 갑은 핀 것 같다. 이상하게 오늘은 읽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사연들이 줄을 서 있었는데, 이런 사연을 보내는 대원들에겐 담배 한 갑씩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안 그래도 오른 답배 값 때문에 허리가 휘고 있는데, 수명단축이야 내 탓이니 그러려니 하더라도 담배를 입에 물지 않으면 더 읽어 내려가기 힘든 사연들이 많다. 이 글을 읽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분들은 훗날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면세점을 지나칠 때,
‘아, 맞다. 그때 그 매뉴얼이 없었다면 이 신혼여행도 없었겠지….’
하는 생각으로 면세 담배 한 보루씩을 꼭 구입하길 바란다. 참고로 난 디스를 피우는데, 면세점에 디스를 안 파는 경우도 있으니 그럴 땐 디스플러스를 사면된다.
허튼소리는 이쯤하고, 오랜만 만나는 금요사연모음 출발해 보자.
1. 다른 남자와 썸 타는 것도 이해해주는 남친, 이건 뭐죠?
결코 듣고 싶지 않은 얘기겠지만, 영선씨와 남친은 ‘연애’가 아니라 ‘엔조이’ 관계라는 얘기를 해줘야 할 것 같다. 연애 중 여친이 다른 남자와 썸 타는 걸 이해한다며 방치해두는 건, 상대에게 ‘꼭 너여야 한다’는 마음이 전혀 없으며, 차라리 영선씨가 그렇게 떠나기라도 하면 자신은 귀찮을 일 없이 헤어질 수 있어 오히려 잘 된 일이라 생각한다는 증거다.
그리고 사실 이건, 영선씨에게도 큰 문제가 있는 거다. 영선씨는 신청서에
“남친이 연락에 무심한 걸 보면, 우리 사이에 존중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라고 적었는데, 남친에게 다른 남자와 썸 타도 되냐는 허락을 받으려 하고 실제로 다른 남자와 썸 타는 중인 사람이 무슨 존중을 운운하는가. 남자친구에게
“토요일은 그 사람이랑 약속 있어.”
라는 이야기를 하는 연애는, 분명 정상적인 연애가 아니다.
“그럼 남친은 왜 제가 헤어지자고 하면 자기가 잘 하겠다며 붙잡고, 연락 없는 것에 대해 따지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거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영선씨가 사연에 써두었다.
“남친이 한 말 중 기억에 남는 건, 절 보면 흥분된대요.”
“남친은 제가 구속하지도 않고, 기념일 안 챙겨도 되고, 신경 많이 안 써도 돼서 좋대요.”
“데이트는, 만날 때마다 쉬러 가는 것 같아요.”
교회도 아니고 절을 보면 흥분된다는 말에 답이 있다.(응?)
사귀는 것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 사귀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그냥 지금 당장 사귀자고도 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어차피 길게 보는 거 아니고 ‘연인’으로 등업만 되면 여러 권한이 생기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거라, 필요할 때 사귀자고 했다가 지겨워지거나 필요 없으면 헤어지자고 할 수 있다. 난 영썬씨의 남친이 후자의 마음으로 영선씨와 만나는 거라 생각한다.
당연히 이런 걸 적나라하게 드러내놓으면 머리에 총 맞은 사람이 아닌 이상 관계를 지속하진 않을 테니, 이 핑계 저 핑계 거기다 궤변까지 더해 헷갈리게 만들며 ‘임시 연애’를 즐기는 것일 뿐이다. 가장 손쉽게는 일에 대한 핑계로 무책임에 대한 양해만 구할 수 있고, 이렇게 만나다 집안 문제를 내세워 손 털고 나갈 수 있으며, 잔인하게는 오랫동안 방치해둔 것에 대해 항의하면 ‘내가 널 힘들게만 하는 것 같다’라며 발을 뺄 수도 있다.
어떠한 경우든 결국 영선씨는 지붕 쳐다보는 걸로 끝나는 관계일 뿐이니, 지금처럼 ‘한 번 더 믿어보겠다’등의 다짐을 해가며 그 시궁창에서 청춘을 낭비하진 말길 권한다.
2. 교회누나가 좋은데, 다가가도 가까워지질 않아요.
꿈과 희망을 짓밟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상대의 호의는 T군과 상대가 만난 곳이 교회라는 점, 그리고 상대가 교회에서 T군 또래 모임의 장이라는 점 등이 작용해 벌어진 것일 뿐이라는 얘기를 해줘야 할 것 같다. T군이 아니라 다른 누가 왔더라도, 상대는 격하게 환영해주며 반겼을 것이다.
먼저 전화번호를 묻고 카톡으로
“T군아 안녕? 나 **이야. 집엔 잘 들어간 거야? 오늘 T군을 만나게 되어서 좋았어.”
라는 이야기를 한 건, ‘모임의 장’으로서 의무적인 멘트를 한 것이라 봐야 한다. 또, 이후 계속 카톡을 보낸 것 역시, 그게 사적인 이야기를 하며 관심을 보이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정확하게 ‘모임 시간’에 대한 공지이지 않은가. 이런 건 역시나 모임의 장으로서 구성원들을 챙기는 것이지, 사적인 관심이라 보긴 어려운 부분이다.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T군은 이성이 그렇게까지 먼저 다가오고 자신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니, 그냥 앞뒤 안 가리고 상대에게 의지하려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미용실에서 헤어디자이너가 이쪽이 허튼소리를 해도 잘 들어주고 리액션도 충실히 해주니, 카톡 친구 맺은 뒤 계속해서 이쪽의 일상을 보고하게 된 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상대가 T군이 그런 의존을 시작했다는 걸 알아채곤 뚜렷하게 선을 긋는 부분은 사연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T군이 보낸 톡에 한참 이따가 대답하며, 그것도 더는 말을 못하게 끝인사를 붙여서 보낸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증거다. 두 번째 증거는, 이젠 상대가 이모티콘과 ‘ㅋㅋㅋㅋ’ 등을 완전히 빼버린 후 건조하게 대답한다는 것이다.
난 사실 두 사람이 카톡대화만 한 것 가지고는 크게 문제될 게 없으며 이렇게까지 변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T군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녀가 왜 그렇게 변했는지 수긍이 간다. T군이 한 행동들을 보자.
- 교회 관련된 비밀 이야기를 구실로 상대와 단둘이 대화할 시간을 얻으려 함.
- 예배 끝나고 밥 먹으러 간 자리에서 사람들 보란 듯이 상대를 챙김.
- 귀엽게, 또는 재미있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무리수를 많이 둠.
- 누군가에게 상담했는지, ‘좋아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말을 전해 들음.
그게 T군에게는 상대에게로 향하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상대 입장에서 보자면 충분히
- 신앙 안에서 호의를 보인 건데, 그걸 이용해 이성적으로 다가오는 것에 대한 부담.
이 되었을 수 있는 일이다. T군과 상대의 대화를 보자.
T군 - 누나, 나 교회 관련해서 할 말이 있는데,
T군 - 지금 말하기는 좀 그렇고 다음 주에 잠깐 볼 수 있어?
상대 – 왜? 무슨 일인데?
T군 – 큰일은 아니고 다음 주에 보면 말해줄게.
T군 – 누난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T군 – 일단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어줘~
교회와 관련된 일로 대화를 좀 하자는데, 그걸 교회 모임의 장인 상대가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긍정의 답은 들을 수 있겠지만, 솔직히 ‘별 것 아닌 일’로 이런 구실을 만들어 내는 T군이 상대에겐 부담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자꾸 그렇게 뭔가 구실을 만들어 T군이 원하는 대로 만들려 하지 말고, 그냥 T군이라는 사람의 본모습으로 상대를 대하길 권한다. 지금도 T군은 내게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는데요, 이걸 가지고 다음 주에 만나면 장난으로 삐친 척 할까요? 아니면 귀여운 척 애교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야 할까요?”
라는 이야기만 하는 중인데, 그렇게 자꾸 연기하려 하지 말고 본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이건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T군이 꾸며서 하는 행동들은 타인으로부터 하대를 부르는 행동이다. T군은 자신이 망가져가면서까지 사람들을 웃기려고 하는데, 그럴 경우 잠깐의 웃음은 부를 수 있겠지만 그게 거듭되면 우스운 사람이 될 수 있다.
“누나가 저를 일단 편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전 누나 보면 도와주고 싶고, 누나를 뒤에서라도 지켜주고 싶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T군을 잠식해 들어오는 그 판타지와 싸워 이겨야 한다. 겉으로는 애처럼 굴고 있으면서 속으로는 상대에 대한 보호본능으로 가슴이 격하게 뛰면 <인형의 꿈> 같은 노래를 자신의 인생 주제곡으로 설정하게 된다.
친해지는 데 있어서, 꼭 무슨 ‘절호의 기회’같은 게 필요한 게 아니다. 현재 두 사람은 좋든 싫든 일주일에 한두 번은 교회에서 의무적으로 보게 되는데, 그 정도면 이미 ‘기회’는 충분한 거다. 하지만 그 기회조차 얼른 상대의 흑기사가 되려는 T군의 욕심과 빨리 세상 그 누구보다 가까워지고 싶다는 바람 때문에 놓치고 있으니, 그런 건 얼른 내려두고 지금의 기회를 활용하길 권한다. 지금처럼 계속 ‘밖에서 따로 만나는 것’, ‘상대가 내게서 힘을 얻는 것’같은 것만 꿈꾸고 있으면 계속 꿈만 꾸게 될 수 있다. 상대는 현재 전혀 힘들지 않고, 도움이 필요 없으며, 만족스럽고 풍요로운 일상을 살고 있으니, 뭘 자꾸 더 해주려고 하지 말고 그냥 일단 ‘되는 대로’ 상대와 만나고 대화하길 바란다.
T군이 편한 사람이어야 상대도 T군을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거지, 지금처럼 남들 앞에서 호감 있다는 거 티내고, 다른 사람에게 상대의 속마음을 대신 들으려 하고, 신앙은 뒷전이고 그걸 구실로 연애로 이으려는 행동만 하면, T군을 기다리고 있는 건 따끔하고 확실한 거절뿐일 것이다. 구애에 몸이 달아 계속 ‘기회’만 만들려 하지 말고, 길게, 꾸준히, 천천히 가까워진다고 생각했으면 한다.
불금이다. 마침 오늘은 페르세우스 유성우도 떨어지는 날이니, 좋은 사람과 함께 밤하늘 잠시 올려다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셨으면 한다. 운이 좋아 밝은 별똥별이 떨어지면 도시에서도 볼 수 있으니, 멀리까지 안 가시더라도 밤하늘 올려다보시길 권한다. 대략 저녁 10시부터 12시까지 시간당 최고 150개 정도 떨어진다고 하니, 한 두 개 정도는 서울에서도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 그럼, 즐거운 금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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