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편 넘는 연애 사연을 읽다 보니, 그 안에서 비슷비슷하게 발생하는 일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이별통보를 한 남자들이 이별 후 구여친을 떠올리는 시점이라든가, 모태솔로 대원들이 헛발질을 하는 시점, 어장관리 중인 사람들이 사용하는 멘트, 백일도 안 되어 헤어지는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겪는 갈등의 이유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사연 하나하나 살펴보며 매뉴얼로 발행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씩 이렇게 모아 소개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순위로 살펴보는 연애>라는 코너를 만들어 종종 글을 올릴까 한다. 그 첫 시간의 주제로 ‘이별통보를 한 남자들이 이별 후 구여친을 떠올리는 순간’을 선정했다. 출발해 보자.
1. 이별 후 한 달쯤 지났을 때.
이별통보를 해 헤어지고 난 후, 남자들은 한동안
- 그동안 연애에 정신 팔려 못한 효도를 하려 마음먹음.
- 돌보지 못했던 대인관계를 정비하려 여기저기 연락함.
- 연애 하느라 할 수 없었던 것들을 마음껏 하기로 함.
- 곧 훨씬 더 괜찮은 이성과 연애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함.
등의 마음으로 사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군대 제대 후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되어 세상에 다시 한 번 풍덩 뛰어보려고 하는 것과 비슷한 건데, 제대했다고 앞에 인생의 고속도로가 놓여 있지 않은 것처럼, 그들 역시 이별했다고 비포장도로가 저절로 고속도로가 되는 걸 아니라는 걸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밤새 친구들과 게임을 하는 것도 이젠 좀 지겹고, 효도를 한다고 하는데 크게 달라지는 건 없고, 자기계발이 안 되던 건 연애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였다는 것도 깨닫고, 훨씬 더 괜찮은 이성은커녕 구여친 만한 사람도 만나기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되는 기간이 대략 평균 한 달 정도 된다. 그래서 이때 그 유명한
“뭐해?”
“자니?”
“잘 지내지?”
라는 명대사를 읊게 되곤 한다. 바람을 피우며 이별통보를 했다든가, 아니면 여자친구에게 인간적으로 완전히 실망하여 이별통보를 한 경우는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만, 대개는 한 달을 기점으로 해 구여친에게 연락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2. 술 취했을 때.
술이 불러온 충동 때문에, 또는 술에 취해 이전의 습관이 튀어나온 까닭에 전화를 하는 경우도 꽤 많았다.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폰을 만지작거리다 ‘에라 모르겠다’하며 통화 버튼을 눌러 본다든가, 그래도 최근까지 가장 가까운 관계로 지냈던 구여친이 궁금해져 연락을 하는 것이다.
이런 연락을 받은 여성대원들은, 대부분
‘뭐지? 다시 나랑 잘 해보고 싶은 건가? 무슨 의미지?’
하는 생각으로 상대의 술주정 같은 이야기들까지 전부 받아주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상대가 잠깐 볼 수 있냐고 하면 “어딘데?”라며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가거나, “취했어. 내일 다시 통화해.”라면서도 전화를 끊지 않곤 계속해서 상대의 안부를 묻는 사례들이 있었다. 혼자 살며 상대가 찾아오는 게 낯설지 않은 커플의 경우, 찾아가겠다는 상대에게 현관문을 열어주는 경우도 있었고 말이다.
그렇게 재회가 이루어지는 거라면 나도 참 좋겠지만, 예전으로 돌아간 듯한 그 감정은 상대의 술이 깨는 순간 같이 깨게 되는 경우가 98.72% 이상이었다. 몇 개월 째 상대로부터 비슷한 패턴의 연락이 와도, 그때마다 상대를 일단 받아들이고 희망을 품어보는 경우도 있었다. 이래서 내가
“상대의 술주정을 받아주지 마세요. 만나려면 해가 떠 있을 때 만나는 걸로 약속을 잡으세요. 지금 안 보면 끝이라는 듯한 상대의 협박에 넘어가지 마세요. 그런 협박이나 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해줄 리 없습니다. 주제가 친구로라도 다시 지내보자는 거든 뭐든, 맨 정신에 서로의 눈 보며 얘기할 수 있을 때 대화하세요.”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라 밝혀두도록 하겠다.
3. 못해줬던 것, 못되게 굴었던 게 떠오를 때.
구여친이 바보여서가 아니라 날 정말 좋아했기에 전부 이해해줬던 것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자신이 심사위원처럼 굴며 구여친의 단점을 지적했지만 이제 보니 자신에겐 더 형편없는 단점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을 때, 또는 구여친에게 함부로 했던 것들이 그녀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지를 시간이 지나 깨닫게 되었을 때 연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영화를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의 모난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이런 ‘깨달음의 시간’이 찾아오곤 한다. 그래서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연락했을 때 재회 할 가능성이 가장 높긴 한데, 안타까운 것은 그 깨달음의 시간이 이미 많은 것이 달라지고 난 뒤에야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틀린 문제를 풀었을 때의 시각으로, 자신이 틀렸다는 것도 모른 채 계속 그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두 번 세 번을 다시 풀어도 틀린 답을 적어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내가 갈등이 생겼을 때나 갈등으로 인해 이별하게 되었을 때 즉시 사연을 보내주시길 부탁드리고 있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매뉴얼이 꼭 정답이라곤 할 수 없겠지만 ‘다른 시각’에서 그 관계를 볼 수 있게 도와줄 것이기에 사연신청서를 작성해 보시길 권하고 있는 거다.
또 하나의 문제는, 깨달음의 시간을 거쳐 상대와 다시 인연의 끈을 묶었다 해도, 무엇이 왜 그런 갈등을 일으키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모르면, 다시 헤어지게 되는 건 시간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에 연애할 때 연락에 소홀했던 것이 미안하다며, 재회 후 그저 매 시간마다 자신이 어디서 뭘 하든지를 보고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영혼 없는 보고는 안 하느니만 못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부분들을 함께 살펴보기 위해 ‘연애오답노트’라는 코너가 노멀로그에 마련되어 있으니, 사연 신청서를 작성한 후 카톡대화와 함께 전송하기만 하면 되는 이 코너를 주저말고 활용하시길 권한다.
4. 다른 연애가 잘 안 될 때, 다른 이성을 못 만날 때.
이성과 달달한 연락도 좀 하고 싶고 새로운 이성도 만나보고 싶은데, 그게 기대만큼 안 되는 까닭에 ‘그래도 그나마 가장 가까운 이성’이라고 생각하는 구여친에게 연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연락하는 남자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 생각해주는 척, 사과하는 척 하면서 착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함.
- 재회의 가능성을 내비치지만 만나자는 말은 하지 않음. 막연하게만 이야기 함.
- 아직 자신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는지 알아보려 떠봄.
- 그렇게 떠봐서 아직 좋아하는 것 같으면, 자신감만 충전하고 돌아감.
이라고 할 수 있겠다.
때문에 난 구남친으로부터 저런 연락을 받는 여성대원들에게,
“뭔가 좀 이상하면, 상대가 하는 걸 그대로 따라하시기만 합니다. 상대가 무언가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하면, 이쪽도 미안한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 하세요. 상대가 막연히 ‘밥 한 번 먹어야지’라고 하면, 이쪽도 ‘그래, 그래야지’정도로 대답하면 됩니다. 상대가 던지는 말에 희망을 가진 채 ‘언제? 이번 주말에? 오빠 언제 시간되는데?’하며 맨발로 달려 나가진 마세요. 상대가 ‘내가 다시 만나자고 하면 넌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으면, ‘그건 진중한 태도도 아니고 존중이 담긴 질문도 아니잖아.’정도로 대답하시면 됩니다.”
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역시나 상대가 저럴 때마다 이번엔 진짜인가 싶어 휘둘리는 여성대원들이 있는데, 겨우 카톡이나 전화로 말 몇 마디 던지는 것에 그렇게 휘청휘청 하진 말길 권한다. ‘재회’를 구실로 삼았을 때 더 이상 흔들리지 않으면 ‘결혼’을 미끼로 삼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아쉬울 때에나 찾아와 자신감 충전하고 가는 사람과 잘 풀려 결혼하게 된 사례를 난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상대는 현재 보고 싶을 때 만날 수 없으며 저녁식사도 함께 하기 힘든 사람인데, 그런 사람과 어찌 결혼을 할 수 있겠는가. 이쪽은 그저 아직도 더 많이 상대를 좋아할 뿐인데, 그걸 이유로 그런 시련까지 겪게 되어 힘들겠지만, 아닌 건 아닌 게 분명하니 말 몇 마디에 너무 큰 기대는 걸지 말도록 하자.
5. 매달릴 줄 알았는데, 멀쩡히 잘 사는 것 같을 때.
이별통보를 한 남자들 중 꽤 많은 남자가,
- 상대는 내가 없는 삶을 사는 게 힘들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음.
- 내가 돌아와 주길 바라며 폐인처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임.
- 나 아니면 상대와 사귀어 줄 사람 없기 때문에 지금 무척 외로울 것임.
- 나 같은 남자 만날 수 없기에 나를 그리워하며 간절히 원하고 있을 것임.
등의 착각을 하곤 한다. 때문에 이별 후 구여친이 연락을 해오면
‘내 이럴 줄 알았지. 역시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상대가 예상하는 패턴’을 그대로 밟아나가면 상대의 근자감만 키워줄 뿐이다.
내가
“이별통보를 받을 경우, 긍정도 부정도 하지 말고 일단 가만히 두세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판단정지를 하는 겁니다. 생각을 다 한 뒤 말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제 못쓰게 된 관계라 생각하며 불타올라 짓밟지도 마시고, 정말 끝인 거냐고 계속 되물어 확인 받으려고도 하지 마세요.”
라고 권하는 게, 바로 저 ‘상대가 예상하는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궁금함도 상대가 가지게 하고, 고민도 상대가 하는 방법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보통 이별을 통보하는 쪽에선, 껄끄러운 얘기를 만나서 하기도 불편한데다, 어차피 헤어질 거 대충 카톡이나 문자로 통보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까닭에 만남을 회피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이별통보를 받은 쪽에선 어떻게든 만나서 얘기하자며 지금 찾아간다고 하거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달라고 애원하게 되는데, 그럴 경우
- 이런 얘기를 카톡이나 문자 정도로만 통보하고 끝내려 한다는 점.
에 대해서만 지적을 하고 더는 어떤 요구도 하지 말길 권한다. 그러면 상대가 이쪽을 가벼운 마음으로 만났다거나 다른 목적으로 만났던 게 아니라면, 반드시 연락이 다시 온다. 자세한 얘기는 상대가 다시 연락을 해왔을 때 나눠도 되니, 상대의 이별통보 한 번에 모든 걸 다 결론지으려 하진 말길 권한다.
상대를 궁금하게 만들고, 또 고민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가 예상하는 패턴’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이쪽이 혼자 궁금해 하고 고민하며 계속 상대에게 연락하려 하고 애원하면 그 마음을 나쁘게 이용하려는 상대에게 휘둘릴 가능성만 높아질 뿐이니, 이별 직후엔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며 ‘지금까지 그래왔던 모습’에서 변하려는 노력을 했으면 한다.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어떤 사람과 무슨 연애를 해왔는지에 따라 다르니, 내게 사연을 주시길 바란다.
자, 이렇게 <순위로 살펴보는 연애>의 첫 시간이 끝났다. 알고 싶은 순위가 있으신 분들은 댓글, 또는 비밀댓글로 남겨주시길 바란다. 어제 구름이 참 예뻐서 사진 찍으러 나가려고 하다 일이 생겨 못 나갔는데, 오늘 하늘도 만만찮게 예쁘니 좀 나가봐야겠다. 언제 또 뿌옇게 변할지 모르는 하늘, 다들 마음껏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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