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위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구)초식남’, 또는 ‘연못남(연애 못하는 남자)’이라 할 수 있다. 초식남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초식남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저건 마음이 없어서 그러는 거 아닌가요? 마음이 없어서 저렇게 대답하는 것 같은데요?”
라는 댓글이 빠짐없이 달리곤 한다. 실제로 그 둘은 매우 닮아 있기에, 초식남을 두곤 마음 없는 건 줄 알고 안타깝게 등을 돌리는 경우도 있고, 마음 없는 남자를 두곤 초식남인 줄 알고 미련하게 매달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둘은 분명 다르며, 둘을 구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음 번 순알연(순위로 알아보는 연애)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오늘 발행할 글은 초식남이나 연못남으로 살아왔지만 이제 좋은 사람을 만나 연애하고 싶어 하는 남성대원들이 읽었으면 하며, 왜 그간 상대들이 답답해하다 등을 돌렸는지 여기서 해답을 찾아갔으면 한다. 출발해 보자.
1. “어. (네ㅎ, 응ㅎ, 아니ㅎ….)”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건 좋지 않은 습관이다. 그래버리면 질문을 한 상대가 또 질문을 해야만 대화가 이어지며, 상대 혼자만 궁금해 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여자 – 오빠 점심 먹었어요?
남자 – 어.
노멀로그를 통해 ‘공대오빠의 대표적인 리액션’으로 소개한 적 있는 대화다. 문과에 서식하는 초식남들은 그나마 울림소리 받침이 들어간 “응ㅋ”을 사용하는 반면, 초식남들은 컴퓨터에 빙의해 “어.”라는 대답을 하곤 한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그런 모습은 좀 다듬어지곤 하는데, 이성과의 교류가 별로 없이 약간의 진화만 할 뿐이라면 아래와 같은 대화만 하게 될 수 있다.
여자 – 태워주셔서 감사해요!
남자 – 넹ㅋ
여자 – 맛있는 먹거리 한 번 대접하겠습니다. ㅎㅎ
남자 – 넹ㅋ
여자 – 푹 쉬고 내일 뵈어요~
남자 – 넹넹 ㅋ
넹넹? 길게 말한다고 체포되는 것 아는데, 누군가의 칭찬이나 감사, 관심을 받을 땐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몰라 단답으로 끊고 마는 것이다. 이럴 땐 “And you?”만 넣어도 매끄러운 대화가 되니, 누가 밥 먹었냐고 물어보면 그것에 대한 대답만 할 게 아니라, 대답과 함께 “너는 밥 먹었어?”라고 되묻길 권한다.
이러면 또 “응, 너는? 아니, 너는? 어, 너는?”이라며 기계처럼 대입해버리는 대원들이 나타나곤 하는데, 좀 응용을 해가면서 사용해야지, 무작정 갖다 붙이면 곤란하다는 것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여자 – 덕분에 햄버거 맛있게 잘 먹었어요!
남자 – 응ㅋ 너는?
남자 – 아, 저거 오타ㅋ 물어본 거 아님ㅋ
저래버리면, 곤란하다.
2. “전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없어요.”
이건 일종의 ‘고해성사’를 하듯 상대가 받아주기 어려운 고백들을 쏟아내는 걸 말한다. 자기 딴에는 재미있는 주제라고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건데 재미가 없고,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 놓아 깊은 대화를 한다는 건데 받는 사람은 난감할 뿐이다.
“최근엔 일주일 넘게 사람하고 이야기를 안 했어요.”
이제 나이도 있다 보니 어찌어찌 누군가를 소개 받게 된 초식남이 한 말이다. 일주일 넘게 사람하고 이야기를 안 했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저런 얘기에 상대가 “정말요?”정도의 리액션을 보여주면,
‘후후. 흥미로운 대화주제 꺼내기, 성공적.’
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최장기간 말 안 하고 살았던 적’, ‘최장기간 집에만 있었던 적’, ‘사람들과 대화를 안 해 실어증에 걸릴 뻔한 적’같은 걸 늘어놓는 경우도 있다. 주로 연구원이나 교수, 고립된 전문직 등의 직업을 가진 대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며, 이것 외에
“연애해 본 적이 없어요.”
“짝사랑만 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연구가 너무 힘들어요.”
등의 고해성사를 늘어놓는 것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더불어 만났다가도, 두 사람이 하기로 한 ‘밥 먹기, 영화 보기, 차 마시며 대화하기’가 끝나면 집에 큰일이라도 난 사람처럼 얼른 서둘러 집에 돌아가려 한다는 특징도 있는데, 이건 다음번에 소개하기로 한 ‘무관심남과 초식남 구별법’의 이야기에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3. “그럴 것 같진 않아요.”
대화라는 게, 상대가 나와 좀 다른 의견을 말해도 그게 그 사람 의견이겠거니 하며 들어주기도 할 줄 알아야 하는 건데, 고지식함 때문인지 완벽하게 진지한 태도로 토론을 하러 나온 사람처럼 구는 경우가 있다.
여자 – 제안서 잘 쓰고 계세요? 더운데 집중 잘 되시나요?
남자 – 잘 쓸 필요 없어요. 제안서라는 게 어쩌고저쩌고.
매끄러운 대인관계를 맺기 위해 그냥 예의상 물어봐주는 것도 있고 대화의 구실로 삼아 말을 건네기도 하는 건데, 이걸 무슨 과학잡지 인터뷰처럼 받아버리니, 질문을 던진 쪽에서는 뭘 어떻게 더 이어가야 할지 막막해지고 만다.
더불어 이상할 정도로 염세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로만 대답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다 의미 없어요.”
“그렇지만은 않죠.”
“뭐, 봐야 알죠.”
라는 대답들이 그것에 해당된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힘이 빠지게 된다. 저런다고 멋있어 보이는 거 아니고 오히려 작은 공감이나 동의도 해주지 않아 대화에 대한 의욕을 잃게 하는 건데, 그걸 모른 채 늘 단조의 대화를 이어가는 대원들이 있어 난 참 가슴이 아프다.
또, 상대는 예의상 이쪽이 하는 일에 대해 물은 건데, 그것에 대해 설명하다
“말해도 모르시겠지만.”
이라는 말까지 해버리는 대원도 있다. 말해도 모를 것 같으면 알 수 있게 설명을 해야지, 얼핏 들으면 무시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는 저런 얘길 하면 어쩌자는 것일까. 이래 놓고는 내게 ‘여자들은 못된(나쁜) 남자만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하소연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이쪽이 ‘착한 남자’가 아니라 ‘덜된 남자’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대답을 해주고 싶다.
4. “재밌네요 ㅎ”
사건의 지평선이란,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그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 외부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경계면을 말한다. 사건 지평선의 가장 흔한 예는 블랙홀 주위의 사건 지평선이다. 외부에서는 물질이나 빛이 자유롭게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내부에서는 블랙홀의 중력에 대한 탈출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커지므로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위키백과에서 설명하고 있는 ‘사건의 지평선’에 대한 정의다. 상대가 한 이야기에 대해
“재밌네요. ㅎ”
“귀엽네요. ㅎ”
“그렇군요. ㅎ”
라는 대답만 하고 마는 게, 바로 저 ‘사건의 지평선’내부로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대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상대의 말에 1차원적인 소감만을 답하는 것으로 대화를 끝내곤 하는데, 그러지 말고 상대가 한 말에서 풍성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 대화를 하길 바란다.
예컨대 상대가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 사진을 보내면, 고양이 이름이 뭔지, 암컷인지 수컷인지, 언제부터 키웠는지, 다른 애완동물도 키워본 적이 있는지 등을 물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여자 - <사진> 제가 키우는 고양이에요.
남자 – 귀엽네요 ㅎ
여자 – 애완동물 키우세요?
남자 – 아뇨 ㅎ
물론 저렇게만 말하는 게 아니라 이후 안부를 묻거나 다른 주제로 돌려 다시 또 대화를 이어가는 까닭에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는 걸 상대도 알게 되긴 하는데, 주제만 계속 옮겨 다닐 뿐 서로에 대해 발목 이상의 깊이로 들어가지 못하는 대화만 나누는 관계는, 의무적 친절이나 베풀다 끝나기 마련이다.
5. 말끝 흐리기, 또는 결론 안 내주기.
말줄임표 사용을 자제하고 서술어를 붙여 대화하는 습관만 들여도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그냥 다 뭐….”
“ㅎㅎㅎㅎㅎ”
“내일까지니까….”
같은 건 반쪽짜리 대답일 뿐이니, 머뭇거리거나 웅얼대지 말고 명확하게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했으면 한다.
그리고 상대가 한 말을 이해했으면, ‘대답’을 해야 한다.
여자 – 그럼 푹 주무시고, 내일 잘 하세요~
남자 - (대답 없음)
마음이 없다는 걸 대답 없음으로 표현하고 싶으면 저래도 되지만, 그게 아니라면 상대에게도 똑같이 안부를 물어주거나 최소한 “네~”라는 대답 정도는 해야 한다. 다음 날 다시 먼저 말을 거는 걸 보면 관심이 없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도 상대의 말에 대답을 생략하는 대원들이 은근히 많다.
또, 누군가의 주선으로 만나게 된 거라면, 주선자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려 하지 말고 직접 전달하길 바란다. 나이가 좀 차서 이제 선을 보게 된 대원들 중에는,
- 엄마가 아는 아줌마한테 말하고, 아는 아줌마가 다른 아줌마한테 말하고, 다른 아줌마가 상대 엄마에게 말하고, 상대 엄마가 상대에게 말하는 방식.
으로 ‘속마음 전달’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신혼여행에 그 사람들 다 데려가고 이후에도 신혼집에서 같이 살 것 아니잖은가. 어렵고 힘든 걸 엄마에게 대신 해달라고 하던 습관 때문인지 자신은 데이트만 하고 나머지 품평과 속마음은 엄마를 통해 전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일 모레 불혹인 나이에 그러고 있다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인 거다.
선 얘기가 나와서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이건 오늘 주제와 상관없지만 제발 둘 사이의 일은 둘이서 해결하고 둘이서 대화하자. 상대 집이 어떤 것 같더라는 걸 엄마에게 말하고, 엄마는 아는 아줌마에게 말하고, 아는 아줌마는 다른 아줌마에게 말하고, 다른 아줌마는 상대 엄마에게 말하고, 상대 엄마는 상대에게 말해서 엉망이 되는 사례가 종종 있으니 말이다. 이쪽에선 “집이 좀 작더라.”라고 말한 한 마디가, 사람들의 입을 거치며 “전세인 것도 마음에 안 들고 동네가 후졌다고 하더라. 집도 더럽고.”라는 말로 부풀려 질 수 있다. 이건 실제로 있었던 일이니, 이런 짓을 누군가가 또 저지르진 않았으면 한다.
자, 오늘 준비한 얘기는 여기까지다. 알아보고 싶은 연애 관련 순위가 있으신 분들은 댓글로 남겨주시길 부탁드리며, 사연은 공지(http://www.normalog.com/notice/1339)를 읽어보신 후 신청서에 적어 보내주시길 부탁드린다. 그럼 다들 즐거운 화요일 보내시길!
▼ 공감 추천,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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