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우, 소개팅에 나와서 전 남친 얘기를 하며 우는 여자는 좀 별로다. 이후 연락을 하며 그녀가 ‘아는 동네오빠’와 술을 마신다는 이야기를 하면 더욱 별로이며, 그런 와중에 만나자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난 급약속 말고 날짜 정해서 보는 걸 좋아해요.”
라는 이야기를 할 뿐이라면, 속으로
‘그래, 많이 좋아해라.’
하는 생각을 할 뿐이다. 연애가 급하며 당장 사귈 가능성만 좇는 사람이라면 상대의 저런 ‘여왕벌의 춤’에도 넘어가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저런 얄팍한 떡밥에 넘어가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연애나 이성에 대한 환상이 많이 깨진 서른 이후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연인을 만나려는 사람이라면, 인간적인 관심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저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1. 반응 없는 남자, 넘어오게 만들 방법 없나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S양이 소개팅에 나갔는데, 거기 나온 남자가 전여친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보인다. S양은 그게 좀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후 그는 다시 S양에게 연락을 해와 ‘아는 동네누나’랑 술을 마신다고 한다. 이쯤 되면 S양은
‘얜 왜 나한테 연락하는 거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게다가 그 이후엔 그가 또 자기가 언제 뭘 한다느니, 그거 끝나고 보자느니 하는 이야기를 해온다. 이런 와중에 그가 내게 ‘S양을 넘어오게 만들 방법’을 묻는다면, 난 저 잘못된 태도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게 되지 않을까?
S양이 상대에게 한 말을 보자.
“오빠, 난 오빠한테 연락 자주 하고 싶은데 하지 말까?”
저건 호감을 밝히며 다가가는 게 아니라, 상대를 떠보는 거다. 몇 년 전까지 일부 남자들은 S양이 연락만 해줘도 황송해하는 모습을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이젠 그게 통하지 않으며 S양이 그럴수록 상대는 S양에게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
“이전까진 내가 좋아하는 사람보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하지만 이제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 생각이라면, 이렇게 수동적인 태도로 가만히 있거나 말 몇 마디를 해 상대를 ‘넘어오게’만들 방법만 찾고 있으면 안 된다. S양의 말을 보자.
“남자의 연락이 미적지근하여 저도 가끔식 연락을 하는 정도였고, 그러던 중 다른 남자의 적극적인 대시에 잠깐 만나봤지만 잘 안됐습니다.”
보통, 상대에게 호감을 갖게 된 사람들은 상대에 대해 궁금해 하고 상대에 대해 좀 더 알아가려고 하기 마련인데, S양은 상대에 대해 ‘괜찮다’고 생각할 뿐 더는 뭘 하지 않는다. 이성이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것에 습관화된 탓인지 여지를 남기는 말만 한 번 던지거나, 대충 호감을 표시하곤 그때부터 상대가 알아서 하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게 무슨 예약제로 운영되는 게 아닌데, 그러던 중 더 적극적인 사람이 다가오면 이 사람은 킵 해두고 다른 사람이랑 만나기도 하고 말이다.
S양의 마음이 이렇다는 걸, 상대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그가 더 S양과의 관계를 발전시키지 않으려 하는 것이며, S양이 동안에 귀엽고 날씬하든 뭐든 연애만을 목적으로 한 연애를 하고 싶진 않기에 사양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적인 관심 보다는 연애를 위한 떠보기가 분명 더 크게 보이는데, 거기에 덜컥 넘어가 연애를 위한 연애는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말이다.
S양이 당장 연애를 하고 싶은데 마침 상대가 연인으로서의 조건을 갖췄다고 해서 얼른 ‘넘어오게’ 만들려 하지만 말고,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시작되었다는 생각으로 그를 알아가 봤으면 한다. 현재 S양은 상대가 S양에게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자꾸 떠보려 들며 그에게 여지를 남기는 듯한 말만 가끔씩 던질 뿐인데, 그런 구애의 춤을 출 것 없이 상대와 연락하고, 만나고, 맛있는 것도 함께 먹으면 된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영화 볼 약속을 충분히 잡을 수 있는 걸, ‘상대는 나랑 영화 보고 싶어 하는가 아닌가’라는 걸 떠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느라 아깝게 날리진 말았으면 한다.
2. 연애 직전까지 갔던 여자후배와 끝났습니다.
박군의 문제는, 착하고 다정하긴 하지만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거다. 사실 이건 ‘문제’라기보다는 성향에 더 가깝기에 가타부타 할 수 없는 일이긴 한데, 아무튼 이 사연에서는 분명 박군의 그 진지하고 고지식한 성향이 상대로 하여금 박군을 밀어내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상대가 박군을 밀어낼 때 박군이 한 말을 보자.
“굳이 내가 아니라도 편한 사람도 사랑의 종류라는 걸 나한테 배울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중략) 나는 너의 도구가 되어도 괜찮아. 도구라는 게 부정적인 뉘앙스로 들릴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네 인생에서 난 의미 있는 사람이 된 거잖아. 난 그걸로 충분히 만족해. 그러니 너야말로 내게 미안함 섞인 이야기를 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무슨 얘긴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여전히 재미없다. 박군은 나더러 왜 그렇게 재미만을 추구하는 거냐고 물을지 모르겠는데, 그건 어떠한 형태로든 재미가 있어야 마음도 가기 때문이다. 분명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연락하는 게 공부하는 것처럼 머리 아프며, 대화하는 게 수업을 듣는 것처럼 지겹고, 나아가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교육자나 훈육자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으면 피곤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게다가 편하고 플라토닉한 감정이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그 근본에 이미 패배감이 자리하고 있는 마음은 매력적이지 않다.
“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 넌 장난이라 해도.”
라는 마음 같은 게, 저런 순애보를 남자 입장에서 노래로 들으면 함께 애절해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저런 태도로만 상대를 대하면 상대는 질리고 만다. 확 이끌든가 빵빵 터지게 해주는 거면 모르겠는데, 그게 아니라 그냥 교과서 같은 관계로 ‘바른 생활과 연애’를 추구하고 있으면 지겹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슨 자신을 도구로 사용하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면 괜히 또 그랬다가 나쁜 사람 되는 것 같으니 피하고 싶을 수 있고, 또 무슨 훨씬 잘생기고 착하고 매력 있고 예의바른 남자를 만나라느니 하는 소리를 하고 있으면 그만 대화하고 싶을 수도 있다.
박군은 상대의 아빠가 아닌 학교 오빠이며, 상대에게 무슨 ‘모범적인 바른 관계와 연애’를 전도하려는 게 아니잖은가. 내가 만약 박군이었다면, 썸을 정리하려는 상대에게 박군이
“정말 후회가 된다면, 그땐 나한테 꼭 연락해줘. 나도 전에 편한 사랑을 하려고 내게 다가왔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걸 밀어내고 정말 많이 후회했거든. 언제든 괜찮으니 연락해줘.”
라고 이야기 한 것과 달리,
“왜때문이지?”
정도로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나도 ‘바른 관계와 연애’를 추구하긴 하지만, 재미없고 지겨우며 나 혼자 멋있으려고 하는 건 싫으니 말이다.
박군이 상대를 단속하려 하지 말고, 교화시키려 하지 말고, 교훈을 주려 하지 말고, 상대의 행복을 빈다며 자꾸 먼저 뒤로 물러나지 말고, 그냥 좀 어울려 놀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박군 자체가 경직되어 있는데, 그런 와중에 상대보고 편하게 생각하라고 하면 편하게 생각할 수 있겠는가. 박군은
“상대가 아직 어리기에, ‘설렘’이라는 걸 사랑의 가장 큰 조건으로 생각한다는 걸 저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환상도 많을 나이고요. 그래서 더욱 아쉽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랑 박군이랑 두 살 차이다. 겨우 두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뿐인데 박군은 혼자 모든 걸 통달한 사람의 입장에서 상대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상대가 아직 어리고 뭘 잘 몰라 실수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이런 태도가 바로 박군이 상대에게 교장선생님이라도 된 듯 딱딱한 훈화말씀을 하게 된 이유 같으니, 둘 다 아직 어리며 한창 즐겁게 청춘을 만끽할 나이라 생각하며 만나봤으면 한다. ‘오빠’이기 때문에 상대를 더 단속하고 교훈적인 이야기들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상대도 박군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지난 글의 해명이 또 다른 오해를 낳은 것 같다. 다시 읽어보니 확실히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걸로 꼬투리를 잡아 이별을 말하는 사례가 꽤 있다. 성별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라고 읽으면 이후에 등장하는 사례가 모두 ‘놀랍게도, 꼬투리를 잡아 이별을 말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것 같다. 글을 이따위로 밖에 못 썼다는 것에 나는 심한 수치심을 느꼈고, 하얗게 불태우겠다던 이번 주말 포스팅을 생략하며 주말간 붓을 꺾기로 결심했다.(응?) 해명글에서 내가 이걸 ‘일부 예민한 독자분들’이라고 표현해 기름을 끼얹은 것 같은데, 그런 표현들 때문에 혹 상처를 받으신 분들이 있다면 사과를 드리고 싶다.
해당 문장을,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걸로 꼬투리를 잡아 이별을 말하는 남자들의 사례가 꽤 있다. 여자의 경우 남자가 과거에 유흥업소에 출입했다거나 이상한 관광을 다녀왔다는 걸 알게 될 경우 고민에 빠진다. 이런 엄청난 ‘과거’에 대해 알고서도 그저 고민만을 하는 것인데, 반면 남자의 경우는 여자가 과거 남친과 스킨십 했다는 걸 알게 되거나 잠시 헤어져 있는 사이 소개팅 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모든 정을 다 떼어버리곤 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다.”
정도로 바꾸면 어떨까 싶다. 성매매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옹호하는 입장이라는 혐의까지를 받고 나니 지금 저 문장도 혹시 다른 뜻으로 읽히지 않을까 곧바로 판단이 서질 않는데, 오해가 없는 문장이라면, 내가 의도했던 의미가 바로 저 뜻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다시 읽어보니, 저 문장도 ‘여자의 경우’라는 말이 앞의 문장의 뜻을 잇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자신이 없어진다. 나도 누군가에게 첨삭을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 사람이라면 우주의 기운을 받아 내 글을 첨삭해 줄 수 있을 텐데…. 첨삭은 대박.
불금, 다들 만끽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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