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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한 번 보고 반한 남자에게, 먼저 다가가도 될까요? 외 1편

by 무한 2016. 10. 27.

걱정이 너무 많아 자꾸 망설이기만 하면, 인생은 점점 정적으로 변한다.

 

- 뭐,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할 건 없잖아.

- 괜히 그랬다가 이상하게 보일지도 몰라.

- 발을 들여 놓으면, 더 많은 문제들이 생길 거야.

- 했다가 잘 안 되면 어쩌지?

 

나도 나이가 들수록 정확히 두 배씩 위와 같은 생각이 늘어가는데, 여하튼 이럴 땐 세상을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이 남긴 말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저널리스트이자 유머작가였던 Helen Rowland의 말을 들어보자.

 

“The follies which a man regrets the most in his life…”

 

저기까지가 문장의 전부인 줄 아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런 건 아니고 옮겨 적다가 영어 울렁증이 도져서 저기까지만 적었다. 번역된 문장을 보자.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기회가 있을 때 저지르지 않은 행동이다.”

 

물론 저질러야 할 때와 그러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지 않은 채 무작정 저지르기만 하면 감당이 안 될 수 있지만,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상대와의 인연이 여기까지일 수 있는 H양의 경우는 반드시 저질러야 한다. 망설이고만 있는, H양의 사연부터 함께 살펴보자.

 

 

1. 한 번 보고 반한 남자에게, 먼저 다가가도 될까요?

 

H양의 저 질문은,

 

“이번 겨울에 제가 로마에 다녀올까 하는데, 가도 될까요? 무사히 잘 다녀올 수 있을까요?”

 

라고 묻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로마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면, 이후

 

- 항공권은?

- 숙박은?

- 현지에서 이동은 어떻게?

- 어디서 뭘 먹어야 하지?

- 가서 소매치기 당해 난처해지는 것 아닐까?

 

등의 문제들이 떠오르게 될 텐데, 저런 문제의 대부분은 고민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일단 뭔가를 질러야 다음 문제들의 답도 구할 수 있다. 항공권을 질러야 숙박을 알아볼 수 있게 되는 거고, 숙박을 예약해야 공항에서 숙소까지 어떻게 갈 것인지를 정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H양의 경우 ‘상대에게 연락해보고 싶다’는 마음만 가진 채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으니, 진도가 딱 거기서 멈춰 있을 수밖에 없다. 연락을 해야 상대가 품절남인지 아닌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양념치킨과 간장양념치킨 중 뭘 더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먼저 다가가도 되는 걸까요? 제가 다가가는 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요? 다가가도 되는 거라면,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요?”

 

첫 질문에 대한 답은 위에서 했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 이상한 이성 혐오증에 시달리는 중이라거나 이미 너무 싫어진 사람이 들이대는 게 아니라면, 거의 모든 경우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특히 ‘여자사람’이 호의적인 태도로 남자에게 먼저 말을 거는 건, 99.82%의 남자에게 ‘자신감 충전’과 ‘급격한 관심’을 이끌어내기 마련이다. 못 믿겠으면, 오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있는 남자에게,

 

“그 책 재미있어요?”

 

라고 물어보길 바란다. 그럼 그때부터 그가 이쪽을 신경 쓰며 힐끔힐끔 계속 쳐다보거나, 얼마 후 다가와선 “이 책 보실래요?”라며 말을 거는 걸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가’에 대해선, 이미 여러 차례 매뉴얼로 이야기를 한 적 있으니 간단히 적도록 하자. 상대가 잘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하면 되고, 더불어 어렵지 않게 해줄 수 있는 일에 대해 부탁을 하면 된다. 이렇게 얘기했더니 상대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대원들이 있던데, 본인이 해도 되는 걸 남에게 시키는 건 부탁이 아니라 심부름이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H양의 경우 누군가에게 확인을 받아 자신감을 충전하고자 사연을 보낸 것 같은데, 이 정도면 80% 이상 충전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100%가 다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간 시간과 기회를 날리게 될 수 있으니, 이 글을 보는 즉시 연락을 하길 권한다. 수습은 내가 힘닿는 데까지 도울 테니, 일단 바로 저지르길 바란다.

 

 

2. 제가 미저리 같나요?

 

고양이들은 독립적으로 생활하며 강아지들처럼 사람이 놀아주길 바라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우리 집 까망이(코숏, 고등어태비)는 시도 때도 없이 내 방 문을 열려고 하며 문 앞에서 야옹거리며 날 부른다. 때문에 이제는 커피를 가지러 거실에 나갔다가도, 간식을 멀리 던져 까망이를 보내고 난 뒤 부리나케 들어와 문을 잠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먼저 내 방으로 튀어 들어와 배 째라며 드러눕거나, 점프해선 문고리를 돌려 연 뒤 들어온다.

 

까망이를 방에 들이지 않는 이유는, 방에 들어와선 ‘이어폰 학살’을 벌이기 때문이다. 벌써 몇 개째 새로 샀는지 이제 셀 수도 없을 정도다. 한 쪽을 물어뜯어 놓은 이어폰을 가지고 놀라고 던져주면 그건 또 가지고 놀지 않고, 새 이어폰으로 다가와 한 쪽만 물어뜯어 놓는다. 나쁜 놈이.

 

게다가 내가 타자를 치고 있으니 책상 위까지 한 번에 뛰어 올라와 자기가 대신 글을 쓰겠다며 키보드를 두드리기도 하고, 아니면 본체 위에 올라가 정확하게 재부팅 버튼만 눌러 컴퓨터를 꺼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냥 얌전히 있거나 자꾸 내 손 쪽으로만 오지 않아도 방에 둘 텐데, 내가 움직이기만 하면 움직이는 쪽으로 와서 관심을 빼앗으려 하니 벅차다.

 

또 얼마 전에는 일이 있어 난 하루 종일 밖에 있다가 아주 잠시 집에 들어온 뒤 다시 나가야 했는데, 잠깐 들어왔던 그 짧은 사이에 까망이는 후다닥 뛰어와 내 방으로 들어오려 했다. 난 책상 위에 있는 물건 몇 가지를 챙겨 다시 나가려던 거였는데, 혹 까망이가 들어와 또 사고를 칠까봐 문을 닫자 까망이는 문 밖에서 슬프게 야옹- 하며 길게 울었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께서

 

“걔는 하루 종일 턱 받치고 너 기다렸는데, 넌 어떻게 이름 한 번 안 불러주고 그렇게 들어가냐.”

 

라고 하셨다. 난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말 빨리 챙겨서 나가야했기에 그랬던 건데, 그 일로 인해 까망이가 상처를 받았을까봐 또 간식을 챙겨주고 나갔다.

 

사연의 주인공인 L양은

 

“전 제가 미저리 같냐고 물어본 건데, 왜 묻지도 않은 고양이 얘기만 하시나요?”

 

할지 모르겠는데, L양의 사연 속 L양은 위 이야기에서의 까망이 같고, L양의 남자친구는 나 같다. 다만 L양은 고양이가 아닌 까닭에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고, 계속해서 관심을 더 보이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라는 이야기를 하라고 재촉하며, 서운하고 섭섭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온 신경을 남친에게 집중하고 있으며, 1분 1초의 공백마저도 무관심으로 여긴 채 계속 싸움을 건다면, L양이 남친에게 할 것은 잔소리와 불평밖에 없으며 그는 결국 이 관계를 내려놓아야 자신이 숨을 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저보고 병원 가보라고 하네요. 자긴 너무 지쳤고 더 이상 못하겠다고. 피가 마른다고. 지금 오빠한테 전화도 안 되고, 제가 보낸 메시지도 읽지 않습니다.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요. 제가 정말 이상하고 집착하는 사람인지, 너무너무 힘든 마음에 사연 보냅니다.”

 

상대가 당장 뭘 어찌해줄 수 없는, 다시 바꿔줄 수도 없는 ‘어느 순간부터 내게 소홀하고…’라는 지적은 그만두자. 계속 그 부분만 집요하게 쪼며

 

“오빠 말투가 다르다.”

“예전처럼 달달하지 않다.”

“사랑한다는 말도 진지하게 들리지 않는다.”

 

라는 이야기를 하면 상대도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L양은 또 L양대로 속상해서 울며 가슴을 쥐어뜯으면, 둘 다 괴롭기만 할 뿐이다.

 

현재 오로지 남친에게만 집중된 L양의 관심을 L양의 삶으로도 좀 분산시키고, L양의 모든 외로움과 심심함과 쓸쓸함까지를 ‘남친의 관심 부족 탓’으로 돌리는 걸 멈추자. 나도 연애 중이지만, 카톡을 보내면 3시간 후에 답장이 올 때도 있고 피곤해서 못 만나는 날도 있다. 새벽에 혼자 별사진을 찍으러 나갔다가 그 시간에 통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외롭기도 하고, 모든 걸 같이 하고 싶어하는 나와 달리 공쥬님(여자친구)은 혼자서도 잘 하며 효율을 따지는 까닭에 따로따로 움직일 때도 있고 말이다.

 

이러다 끝나는 건가 하는 불안 때문에 계속 쪼게 되고 매달리게 되는 거라면, 현재 두 사람을 갈라놓고 있는 불화의 가장 큰 원인은 L양의 ‘남친 탓’이라는 것도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한다. 연애가 L양의 모든 결핍을 다 채워줄 순 없는 것이며, 연애 초반의 설렘은 시간이 지나며 정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이런 걸 인정하지 않은 채

 

“예전 저에게 보였던 오빠의 그 모습과 말들은 다 가식이었던 건가요?”

 

라는 질문만 하고 있는 건, L양 스스로를 비참하게, 상대를 나쁘게 만드는 일일 뿐이다.

 

남친이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해도 뉘앙스가 예전만큼 달달하게 들리지 않는다며 쪼아대면 방법이 없으니, 숨고르기 한다 생각하며 ‘지금 우리 둘이 같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시작해 보길 바란다. 지금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수 만 가지가 넘는데 왜 과거로의 회귀만을 요구하고 있는가. 난 L양이 뒤를 돌아보며 남친을 몰아세우는 걸 그만하고, 이젠 앞을 봤으면 한다.

 

 

자, 오늘 준비한 얘기는 여기까지다. 어제 발행한 매뉴얼에서

 

“성별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여자의 경우 남자가 과거에 유흥업소에 출입했다거나 이상한 관광을 다녀왔다는 걸 알게 될 경우 고민에 빠진다. 남자의 경우는, 여자가 과거 남친과 스킨십 했다는 걸 알게 되거나 잠시 헤어져 있는 사이 소개팅 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모든 정을 다 떼어버리곤 한다.”

 

라는 이야기를 한 부분이 오해를 부른 것 같은데, 저 문장의 뉘앙스는

 

“그러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는 종종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라는 거였다. 그런데 이 부분이 예민하신 일부 독자 분들의 레이더에 ‘동일선상에서의 비교’로 읽히기도 하고, 나아가 ‘성을, 여성을 살 수 있다는 전제로 깔고 하는 일을 어떻게….’하는 생각까지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난 내가 써서 그런지 다시 읽어봐도 그런 뉘앙스로는 안 읽히는데, 여하튼 저 문장 때문에 불쾌하셨다거나, 상처를 입으셨다거나, 놀라셨다거나, 실망하셨다거나, 충격과 공포에 빠지셨다거나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젠 안 그러셔도 괜찮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좋은 목요일이다. 하룻밤만 자면 또 불금이 돌아오니, 다들 조금만 더 힘내시길 바란다. 즐거운 목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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