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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낯가리고, 예민하고, 여리고, 걱정이 많은 남자의 짝사랑.

by 무한 2016. 11. 4.

옷을 입고, 신발을 신자. 날이 추우면 알아서 두꺼운 옷을 찾아 입어야 하는 거고, 길이 험하면 발 다치지 않도록 탄탄한 트래킹화라도 챙겨 신어야 하는 거다.

 

J씨는 옷도 안 입고, 신발도 안 신고 있는 사람 같다. 때문에 경험하게 되는 모든 것들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되며,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는 길도 J씨에겐 한 발짝 내딛기 겁나는 길이 되어버렸다. 남들은 SNS에 댓글 하나 달 때 그냥 별 의미 없이 수다 떨 듯 달곤 하는데, J씨는

 

“그로부터 15시간이 지나 그녀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제 SNS에 그녀의 댓글이 달린 건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라며 엄청난 의미로 받아들인다. 짝사랑 할 때 유독 겁이 많아지고 작은 일에도 의미부여하기 십상이라지만, J씨의 경우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

 

신청서에 빼곡하게 들어찬, 엄청나게 밀도 높은 J씨의 이야기들을 읽다가 나는 질식할 뻔 했다. 거기엔 너무 무겁고 진지하고 관념적이고 고지식한, 부정적 예측과 해석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래버리면 연애가 문제가 아니라, 사는 것 자체가 너무 복잡하고 힘들 수 있다. 어떤 캐릭터를 연기해 사람들과 겨우 어울릴 수는 있겠지만, 마음으로는 늘 자신과 상대와 전체까지를 관찰하며 끊임없이 본인 상황의 좌표를 새로고침 해야 하는데, 그러면 결국 과부하를 피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느라 남과 그냥 어울릴 수 있는 시간마저도 고민하느라 바쁠 뿐이고 말이다.

 

지금 J씨에겐 짝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을 아는 것보다 J씨가 가진 문제를 살펴보는 게 더 중요하니, 이 매뉴얼에서는 J씨가 알아야 할 몇 가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출발.

 

 

1. 사람 사이에 끼어들기 위한 푼수 짓을 멈추자.

 

사람들로부터 관심이나 사랑은 받고 싶지만 대인관계에 서툴러 그게 어려울 때, 가장 손쉽게 택할 수 있는 게 광대 짓, 또는 푼수 짓이다. 자신을 개그소재로 삼아 남을 웃기거나 허튼소리를 해 악의 없는 핀잔이라도 받으려고 하는 건데, 그게 초반에는 종종

 

- 재미있는 사람.

 

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 우스운 사람.

 

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J씨의 경우를 보자.

 

“전 제 자신이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말을 재미있게 하는 편도 아니고, 리액션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기에 제가 선택한 방법 중 하나가 샌드백(?)이 되는 것입니다. 기 센 사람들 사이에선 그냥 스스로 모자란 사람이 되어 공격을 받으며 대화에 끼게 되는 겁니다.”

 

그 결과는 어땠는가?

 

“그녀도 그 분위기에 편승해 제게 몇 마디 말을 했습니다. ‘재미없다’와 ‘생각 없이 말을 한다’. 그 상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제가 실없는 소리를 해서 그런 거 같아요. 아직 말도 못 놓을 정도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게 상처였습니다. 마음 정리 중이어서 큰 충격은 아니었지만, 상처는 되더라고요.”

 

스스로가 나서서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니 자연히 타인들도 점점 J씨를 우습게보게 되는 거고, 나아가 남들을 웃기려고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뱉다 보니 종종 수위를 넘어 남을 불쾌하게 만들거나 주워 담을 수 없는 말까지를 뱉고 마는 것이다.

 

J씨의 그런 행위는 ‘유머’라기보다는 ‘차력’에 가까운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자기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쳐가며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남들도 한 번 쳐보겠다고 하고, J씨는 그걸 관심이라 여기며 기꺼이 머리를 대준다. 그러다보니 나중엔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J씨의 머리를 쳐대는 거고, 그럼 또 J씨는 그건 자신이 원하던 상황이 아니기에 자신의 처세에 대한 총체적인 실패를 느끼며 타인에 대한 분노를 품게 된다.

 

이걸 멈추지 않으면, 거듭 경험하는 실패로 인해 J씨는 남들이 결국 J씨를 무시하거나 싫어하게 될 거라는 불안이 커지고, 그렇게 상처를 입을 때마다 남에게 복수해주고 싶은 마음에 남을 찌를 J씨의 가시만 날카롭게 다듬게 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군대에서, 사회에서 그렇게 살아온 까닭에 고치는 게 쉽지 않다면, 일 대 다수의 만남을 줄이고 일 대 일의 만남을 늘리길 권한다. 그러면 ‘대중’을 상대한다는 생각에 더욱 과감하게 망가지거나 자신을 희화화 하던 버릇은 눌러둘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 이 실없는 소리를 하면 사람들이 웃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한 번은 꾹 참고 조용히 남의 얘기를 들어보는 연습을 하길 바란다. 그럼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남을 웃겨야만 그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을 거란 생각을 서서히 내려둘 수 있을 것이다.

 

 

2. 타인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못 받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타인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못 받는다고 해서, 그게 ‘부정적인 평가’를 의미하는 건 아니며 그들이 전부 J씨를 싫어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냥 잘 모르니 데면데면한 사이로 지낼 수도 있는 거고, 또 그냥 크게 관심이 가지 않으니 가까워질 생각이 없는 걸 수도 있잖은가.

 

그런데 J씨는, 타인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거나 타인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그들이 J씨를 싫어하며 J씨의 처세는 실패한 거란 생각을 하고 만다. 마치 모든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존중을 받아야 그게 ‘안정적인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단언컨대 그건 불가능한 일이며 그러느라 세월을 보내면 J씨의 전 생애는 관심과 존중의 구걸로 점철되고 말 것이다.

 

내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다음 뷰가 존재하던 시절 구독버튼을 눌러 노멀로그의 소식을 받아보던 사람은 8만 명이었다. 물론 그 숫자는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구독 해지 신청을 하고, 다시 또 수백 명의 사람이 새로 구독신청을 해 유지되던 숫자다. 만약 내가 그 ‘구독 해지 신청’을 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느라

 

‘저 사람은 왜 노멀로그를 더 이상 안 보겠다는 결정을 한 걸까?’

‘내 글에 무슨 문제가 있나? 재미가 없나? 지루한가?’

‘구독해지 하는 사람들을 막아야 해. 그들이 읽고 싶은 걸 써주겠다고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나는 매일을 이별당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어쩔 줄 몰라 하며 보냈을 것이다. 그냥 다른 것에 더 관심이 있어서라거나, 노멀로그를 구독한다는 흔적이 남으면 안 되어서라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로 별 뜻 없이 구독해지를 한 것일 수 있는데 말이다.

 

따지고 보면, 나 역시 프로토타입 웹툰이라고 할 수 있는 어느 만화를 몇 년간 꾸준히 보다가, 군대를 다녀와서부터인지 접속을 하지 않았다. 가끔 한 번씩 기억이 나면 들어가 보긴 하는데, 관심사도 달라진데다 이젠 그 작가의 연출 패턴에 익숙해져 별로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작가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그래서 그런 건데, 이걸 만약 그 작가가 ‘왜 더 이상 내 만화를 보러 오지 않는 거지? 왜 관심이 없어진 거지? 난 뭘 잘못한 거지?’하며 자책하기 시작하면, 그는 답도 없는 괴로움을 안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J씨의 일상을 돌아보자. J씨는 남들이 자신에게 무관심하거나 긍정적인 평가를 하지 않으면 괴로워하지만, 그렇다고 J씨가 남들에게 늘 관심을 갖고 좋은 평가만을 하며 사는 건 아니다. J씨 역시 누군가에겐 아무 관심이 없고, 또 누군가와 ‘아는 사이’라고 해도 그 사람의 생일을 챙기거나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먼저 연락하지 않을 수 있잖은가.

 

분명 뭔가 이유가 있어 멀어지고, 싫어지고, 관심이 없어지고,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게 아니라, 그냥 그게 자연스럽기에 그렇게 된 거다. J씨의 말을 보자.

 

“저를 등지고 있었고, 피하는 것 같았어요.”

“친해진 거 같아 좋으면서도, ‘말 잘 듣는 오빠’가 되어버린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노래방에서 나와 사람들이 저 노래 잘한다고 칭찬해줄 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더군요.”

 

상대의 ‘앉는 자세’나 ‘칭찬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은 것’에까지 일희일비하고 있으면 답이 없어질 수 있다. J씨는 대체 타인이 어떻게까지 J씨를 위해줘야 안심하겠는가. 속으로 상대가 날 알아줬으면 했지만 현실에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 속상할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서적 자해를 하거나, 상대에게 분노하거나, 금방 체념한 뒤 상대를 적으로 설정하진 말았으면 한다.

 

 

3. 흉내만 내도 매력 없어지는 부분들.

 

J씨를 따라해 보자. 난 솔로부대원이며 오늘 마음에 드는 이성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내가 실없는 얘기를 좀 하니 그녀는 웃어주었고, 번호도 교환하게 되었다. 난 그게 ‘그린라이트’라고 생각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녀에게 밥 먹자는 얘기를 꺼냈다.

 

결과는 거절이었다. 내게 웃어주고 친절하게 대해준 것을 보면 분명 나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내 기대와는 달리 거절을 당하고 나니 알 수 없는 패배감까지 들었다. 다 내 착각이었나. 그녀는 날 남자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김칫국을 마신 건가, 아주 조금의 마음이라도 있었으면 그렇게 쉽게 거절하지 않았을 텐데….

 

난 어설프고 답답한 대시를 멈추기로 했다. 그녀가 웃는 걸 볼 때면 슬펐지만, 최대한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만큼만 대할 수 있게 노력했다. 그래서 좀 덤덤해지긴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내가 편해졌는지 장난을 좀 쳤다. 장난을 친 걸 보면 다시 그린라이트 인 것 같은데, 그 장난이 날 놀리는 거였다. 자신에게 호감을 가졌다는 걸 알면서도 내게 장난을 치나. 내가 만만한가. 난 그냥 장난이나 치는 존재인가. 화가 났다.

 

그래서 난, 그녀가 다시 장난을 걸어올 때 무시해 버렸다. 그런 장난을 받아주고 있는 내가 한심하게 생각됐다. 그런데 몇 시간 뒤 생각을 해보니, 그녀는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 않을 일을 나 혼자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그녀를 마주쳤을 때, 수고 많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내가 몇 시간 전 그녀를 무시했던 것처럼, 내 인사를 무시해 버렸다.

 

며칠 후 다시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모임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질까 하는데, 나더러 언제 시간 괜찮냐고 묻는 전화였다. 왜 내게 전화한 걸까. 나 빼고 자기들끼리 모인 걸 나중에 내가 알면 기분 나빠할까봐? 그녀는 내가 그 모임에 참석하든 안 하든 신경이나 쓸까? 모임 때문에는 그렇게 만날 수 있으면서 왜 단둘이는 못 만나는 걸까? 카톡으로 보낼 수도 있는 건데 왜 전화를 했을까? 내가 아직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기에 확인하려 한 걸까? 혹시 그녀도 내게 관심이 있는 건가? 의아하다. 의아하다. 의아하다.

 

여하튼 모임에 나가 그녀를 보았는데, 그녀는 고개를 숙여 내게 인사했다. 엄청난 거리감이 느껴진다. 난 내심 그녀가 내가 있는 테이블에 앉길 바랐지만, 그녀는 다른 테이블에 앉았다. 나와 등을 돌린 채. 내게 관심이 없다는 걸 그런 형태로 보여주려 하는 걸까. 그렇다면 아까 내 옷에 뭐가 묻었을 때 묻었다고 알려준 건 뭘까? 관심이 정말 전혀 없는 거라면 알려주지 않을 텐데. 난 그게 그녀가 내게 다가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게 등을 돌리고 앉은 걸 보면 아닌 것 같다. 그럼 이건 어장관리인가? 그녀는 날 갖고 노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여기서 적극적으로 나와주길 바라는 건가? 이건 대체 뭔가. 왜 사람 헷갈리게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건가. 다시 화가 난다.

 

며칠 후 다시 모임에서 만났을 때, 그녀는 웃으며 내게 인사했다. 하지만 역시나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걸 보니, 나와 자기 사이엔 그만큼의 선이 있다는 걸 확실히 알려주려는 것 같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인사를 받는 내 표정은 좋지 않았다.

 

뒤풀이를 하러 노래방에 갔다. 사람이 많아 방을 두 개 잡았는데, 그녀는 내가 있던 방에 잠시 있다가, 다른 방에도 가보겠다며 나갔다. 내가 부른 곡이 마음에 안 들어서였을까. 내가 부른 노래 제목이 ** **** 였기에 부담을 느낀 걸까. 다들 노래방에서 나와 사람들이 내 노래실력에 대해 칭찬했는데,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무관심을 표현하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내 선곡에서 미묘한 뭔가를 느끼고 일부러 말하지 않은 걸까.

 

여기까지 읽고 난 J씨의 소감이 어떤지 궁금하다. J씨는 위에서 내가 보인 행동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가? 혹시 상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둘 사이에 무슨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고 착각하거나, 친해질 생각 보다는 ‘데이트 요청에 승낙’을 얻어내지 못했다고 패배감에 젖은 채 종종 심술이나 부려대는 사람이 보이진 않는가? 이처럼 J씨를 따라하게 될 경우 고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매력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작아지며 결국 ‘안 좋은 마지막’을 향해 전력질주하게 된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간 자신의 얘기라 잘 느끼지 못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내가 일부러 나를 주인공으로 삼아 살짝 비틀어 다시 적어놨으니, 이 와중에 정말 ‘그녀는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가 제일 중요한 것인지도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내가 준비한 얘기는 여기까지다. 환절기면 늘 찾아오는 알러지성 비염증상 때문에, 눈물 콧물을 열심히 닦아가며 매뉴얼을 완성했다. 쿨타임이 다 차서 또 막힌 코 풀러 가야하니, 배웅글은 한 문장으로 줄이기로 하자. 다들 불타는 금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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