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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두 달 간 불타오르며 올인 하던 남친, 생각할 시간을 갖자는데

by 무한 2016. 12. 21.

남친이 ‘생각할 시간을 갖자’는 이야기를 하기 바로 전날 H양이 술취해 그와 통화를 한 적 있다면, 그 통화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를 내게 말해줘야 한다. H양이 경험한 것들을 최대한 상세히 말해줘야 나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거지, 연애에 대해 그냥 뭉뚝하게 ‘어디 갔을 때 행복했다’, ‘거기선 분위기 좋았다’, ‘며칠 전까지 크리스마스에 갈 리조트도 같이 예약했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만 하면 나도 그냥 ‘에구, 힘내요.’ 정도의 얘기밖에 해줄 게 없다.

 

다만 H양 사연의 경우, 남친이 뻔뻔할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했음에도 불구하고 H양이 그걸 캐치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여 이렇게 매뉴얼을 발행하게 되었다. H양은 남친이 한 말을 제대로 듣지는 않고 ‘생각할 시간을 갖자는 건 헤어지자는 말을 돌려 말한 것인가?’, ‘구여친을 다시 만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닌가?’ 등의 고민만 하고 있는데, 그게 H양이 가지고 있는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시작해 보자.

 

 

1. 이유나 과정이 아닌, 결과만 가지고 생각하는 문제.

 

남친이 모레 회사에서 시험이 있어서 그걸 좀 준비해야 하니 시험 끝나고 보자고 할 경우, H양은 덜컥 겁을 먹으며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러지? 우리 매일 만났었는데 왜 오늘 내일 안 보려고 하는 거지? 뭐가 잘못된 거지?’

 

라는 생각을 한다. 남친이 말한 ‘시험준비를 해야 하니’라는 이유에 대해서는 가볍게 넘긴 채,

 

- 남친이 오늘 내일 보지 말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틀간 못 만난다.

 

라는 것에만 꽂혀 갑자기 불안해하는 것이다.

 

이렇듯 ‘결과 위주의 결론’을 내려버리면, 웃고 떠들며 마냥 달콤하게 지낼 때에는 문제가 없지만, 작은 갈등만 찾아와도 쉽게 무너지고 만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H양의 사연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H양과 비슷한 태도를 보이는 한 여성대원은 남친이 구구절절 자신의 상황과 의도를 설명했음에도 결국

 

“어쨌든, 그래서 안 가겠다는 거잖아.”

 

라는 이야기만을 해 답답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사연 속 H양에게서도 저런 모습이 보인다. H양의 남친은 ‘시간을 가지고 싶은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을 했는데, H양은 그걸 두곤

 

- 아무 마음의 변화 없이 나를 좋아하는 거면, 이런 얘기가 나올 일 없을 것.

- 생각할 시간을 가진 뒤엔 더 잘 하겠다고 약속하면 난 기다릴 수 있음.

- 나에 대한 감정의 변화임. 앞으로 또 이러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보장 받음?

 

이라는 생각만을 하고 있다. 난 H양이 ‘남친이 말한 이유들’에 대해 좀 고민했으면 좋겠는데, H양은 ‘그 이유들로 인해 나온 결론’, ‘그 결론이 연애와 내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H양의 남친은 H양에게 ‘뭔가 너랑 나랑 잘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그 ‘잘 안 맞는다’는 것에는 H양의 이 ‘결과를 가지고 결론내기’라는 모습이 분명 포함되어 있을 거라 난 생각한다. 사람의 감정이란 전부 Yes or No 로 나눌 수 있는 간단한 게 아니니, 연애 중 연인의 말을 ‘된다/안 된다’, ‘한다/안 한다’, ‘좋다/안 좋다’로만 단순화시키지 말았으면 한다.

 

 

2. 남친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 이유는?

 

이건 이미 그가 H양에게 하나하나 다 이야기 한 까닭에 내가 다시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한데, 그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 이유는 아래와 같다.

 

- 너와 사귀며 매일 술 마시고 놀러 다니기만 하는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 같다.

- 내가 구여친과 헤어진 건, 결혼을 바라는 그녀와 달리 난 자리 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 너는 부족함이 없이 자란 것 같은데, 날 계속 만나면 힘들 것 같다.

- 얼마 전 친구들 만날을 때 널 감당할 수 있겠냐는 말도 듣고 구여친 소식도 들었다.

 

H양은 남친과 사귄 후 거의 매일 만났다고 했으며 그것에 대해 H양은

 

“오빠한테 결혼을 생각한 전여친이 있었다는 건 이미 사귈 때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린 행복한 연애 중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사귄 기간이 관계 깊이의 절대적인 척도는 아니지만 둘은 아직 사귄 지 두 달도 안 되지 않았는가.

 

연애가 시작된 이후 두 달 동안, 둘은 맛있는 거 먹고 실컷 놀러 다니긴 했지만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선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귀는 사이니까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은 함께했지만, 정작 ‘우리’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만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쉽게 말해 ‘친구’가 되는 과정은 생략된 채, 패키지여행을 와서 만난 다른 사람과 관광지를 함께 돌아다니는 것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겠다.

 

H양에게 남친은 아직도 ‘괜찮은 소개팅남’으로, 남친에게 역시 H양은 여전히 ‘괜찮은 소개팅녀’로 남아 있는 느낌이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솔직히 H양에게도 이 연애가 ‘애프터의 연속’정도로 느껴지지 않았는가? 보통 사귀는 사이라 하면, 꼭 뭔가를 자꾸 계획하고 만나서 뭐 할지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아도 그냥 만나면 즐겁기 마련인데, 두 사람은 그런 것 없이 만난다는 걸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아무래도 좀 형식적이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관계였던 것 같다.

 

둘의 연애는, 연애 그 자체가 목적인 듯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렇게 된 거라 생각하면 되겠다. 사실 그렇게 사랑하는 건 아닌데 사랑한다 말하고, 사실 전부 다 좋은 건 아닌데 전부 다 좋다고 말하고, 사실 연애 말고도 할 일들이 많은데 일단 덮어두고 연애에 올인 하며 지냈기에, 더는 계속 이렇게 지내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지금, 관계를 정리하려 들게 된 거라 나는 생각한다.

 

 

3. 그 외에 해주고 싶은 말들.

 

연애 중 둘 중 하나는 꼭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H양의 이번 연애를 보면, 앞서 말했듯 ‘계획’이나 ‘이벤트’가 있어야 무난하게 유지되었던 까닭에, 일반적인 연애에서보다 단기간에 많은 데이트 비용이 소모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둘은 매일 만났다고 했는데, 만나서 최소한 밥 한 끼는 같이 먹었을 테니 밥값만 해도 한 달 통계를 내면 만만찮게 들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거기다 다른 사람들이 포함된 술자리를 자주 가졌으며 여행도 다녀왔는데, 그렇다면 둘이 부담했던 비용으로 봤을 때 H양이 한 달 50만원을 데이트비용으로 지출했으면 남친은 120만원 정도를 지출했다는 얘기가 된다. 거기다 남친은 H양에게 선물도 했으며 크리스마스 이벤트, 새해 이벤트를 계획했는데, 그럼 최소한 30은 더 들어 한 달 150정도를 쓰지 않았을까 싶다.

 

H양 남친의 사정을 보면, 그렇게 넉넉한 상황이 아니다. 그에겐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상황인데, 이런 와중에 새로운 연애가 시작되어 덮어놓고 쓰고 난 뒤, 카드 고지서를 받아들고는 정신을 차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돈을 벌어 연애에만 쓰는 것이라면 그 생활이 유지는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몇 년을 만나든 경제적 상황은 제자리걸음이 될 것이란 걸 그도 깨달았을 테니 말이다.

 

남친의 이런 성향을 파악했다면 H양이 좀 단속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H양 역시 연애의 즐거움에만 푹 빠진 채 같이 만끽하고 있을 뿐이었다. 남친이 제안하고 지르는 걸 ‘리드’라고 생각한 채 따랐으며, 남친이 이것저것 계획을 세우면 그저 즐거워했다.

 

놀러 다니고, 사람들 만나 술 마시는 데이트가 즐겁다는 걸 남들이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덮어두고 지르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말처럼 그렇게만 살았다간 대책이 없어질 수 없어서 그러는 건데, 둘은 기분파인 남친이 기분 내느라 이것저것 지르고 H양은 기뻐하는 연애를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덜컥 정신을 차린 남친이 데이트의 횟수부터 좀 줄이려고 하다 보니, H양은 그걸 ‘남친이 변한 것’으로 생각해 ‘헤어지려는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 것이고 말이다.

 

H양은 마냥 좋기만 하며 신나고 즐거운 일들만 가득한 연애

 

- 남친이 내게 올인 하고 있는 것.

 

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결코 그렇지 않으니, 이제부터는 꼭 ‘정말 이대로 지속 가능한가’를 체크하며 현실에 발 딛고 있길 권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가 좀 무리를 하는 것 같을 땐, H양이 손을 뻗어 단속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역시 기억해 두길 바란다.

 

 

위에서는 H양이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을 이야기 한 것이고, 만약 H양이 내 여동생이라면 난 이별을 권할 것 같다. 개인적으론 H양 남친 본인이 다 벌여 놓고는 이제와 그 탓을 ‘연애’로 돌리는 게 좀 비겁해 보이기도 하고, 구여친과의 이별사유를 예로 들며 본인을 정당화 하려는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자친구가 무슨 외로움이나 달래줄 반려동물도 아닌데, 사귄 직후에 예뻐하며 혼자 오버하다, 상황이 달라지니 유기하려는 듯한 태도도 참 별로다.

 

“네가 지금 나를 떠난다고 해도 나는 붙잡지 않겠다.”

 

며칠 전까지 크리스마스에 뭐하자, 연말에 뭐하자, 새해에 뭐하자고 방방 뜨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해 저러는 것도 사람 참 가벼워 보이고,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겠다고 하면서 연애가 자신의 걸림돌인 것처럼 말하는 것도 그에 대한 실망만을 키운다. H양에게도 꼭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은 보이지 않으니, 가능하다면 ‘한 겨울밤의 꿈’을 꾸었다 생각하며 정리하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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