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양은 야망을 가진 채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길 원하고 있고, M양의 남친은 현실에 만족하며 지금 주어진 것을 즐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건 M양과 남친이 바라는 미래가 서로 다른 까닭에 발생한 문제라, 뭐라고 얘기를 하기가 참 난감하다.
만약 내 여동생이 M양과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면, 난
- 서로 가려고 하는 곳이 다르니, 같이 가기는 어려운 것 아닐까?
라는 질문을 먼저 했을 것 같다. 그런 뒤엔 남친에게서 보이는 몇 가지 위험한 지점들을 짚어가며 이별 쪽으로 좀 더 마음이 기운 이야기들을 했을 것이다. M양은 딱히 어떤 답을 구해달라고 한 게 아니라 자신의 심정이 그렇다는 걸 내게 토로했으니, 나도 M양을 내 여동생처럼 생각하며 몇 가지 이야기들을 해볼까 한다. 출발해 보자.
1. 스펙으로 상대를 가늠하는 게, 무조건 나쁜 행위만은 아니다.
M양은 이 연애 때문에 가족, 그리고 친척들과의 사이에서도 갈등을 겪고 있는데, 더 심해지기 전에 이 부분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누군가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에선, 그저 그 사람의 스펙만 듣고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다. 예컨대 ‘남친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대답이
- 호텔관련 학과를 졸업했다. 지금은 부동산 관련 일을 한다. 공인중개사 자격증 취득을 준비 중이었는데, 지금은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
라는 거라면, 듣는 사람 입장에선 좀 뒤죽박죽이 된 듯한 그 이력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겪어봐야 아는 거겠지만, 그 전까진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르는 입장에서 아무래도 좀 불안정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 수 있으니 말이다.
또, 출신학교를 두고도 선입견을 가질 수 있는 게, 좋은 학교와 우수한 성적이라는 건 그가 ‘선택과 집중’이라는 측면에서 이미 한 번 검증이 되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교 교사이신 M양의 친척 중 한 분은
- 남친이 나온 대학은 수능 어느 정도의 등급인 학생들이 주로 가는 학교다. 그 학교에 갔다는 건, 학창시절 그의 수업태도와 공부에 대한 성실함이 어땠는지를 알 수 있는 거다.
라는 이야기를 하셨다고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게 무조건 속물적이며 나쁜 짓인 것만은 아니다. M양은 그 친척 분이 M양의 남친을 존중하지 않으며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 평가했다며 인연을 끊다시피 했다고 했는데, 그 분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런 측면에서 바라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특히 M양과 친했던 그 분이 일부러 전화를 걸어 그런 이야기를 한 건, M양을 저주하거나 일부러 훼방을 놓으려 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마음이 쓰이는 친척이기에 그랬을 확률이 더 높고 말이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M양도 나를 속물로 여기며 나와의 인연을 끊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는데, 난 ‘좋은 학교 출신’이라는 게 상대의 모든 걸 증명하는 거란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학력이 인성까지를 증명해줄 순 없지만, 최소한 그 사람이 무엇 하나에 진득하게 매달렸고, 선택과 집중의 측면에서 흐트러지지 않았으며,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기는 하지만 쉽게 얻을 수 없는 걸 그는 이미 한 번 얻어 낸 경험이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는 거다.
M양의 가족과 친척들은 저 ‘이미 한 번 검증된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며, M양은 그것보다는 상대의 ‘인성’ 부분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거라 할 수 있겠다. 다만 M양 역시 이제 남친의 인성은 검증이 되었으니 ‘선택과 집중’이라는 부분에서 분발해주길 바라는 건데, M양 남친은 자신의 기대와 야망을 줄이는 것으로 부담과 책임을 덜려하고 있기에 문제가 어려워 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2. 남친의, ‘결혼부터 하려는’ 문제.
M양 남친은 M양 집안에서 자신을 반대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M양마저 그런 분위기에 흔들리거나 더 갈등하다 지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결혼’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M양이 ‘준비된 결혼’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자 그는
“이런저런 준비 다 할 때까지 기다리면 결국 결혼 못한다. 그러니 서로 좋아할 때 빨리 해야 한다.”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이런 남친의 태도에 난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M양과의 결혼을 서두르는 건, 아무래도
- 지금 결혼하지 않으면, 나중에 M양이 취업하는 등 상황이 더 나아져 눈높이가 달라질 수 있으며, 또 갈수록 M양은 날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은데, 이런 생각으로 하게 되는 결혼이 과연 행복할까? 좀 더 시간이 지나 M양이 좋은 곳에 취직하거나 나이가 좀 더 들어 ‘배우자의 기준’을 보다 현실적으로 설정하게 될 경우 지금의 남친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게 될 수 있으니, 뭘 잘 모르고 일단은 좋아하는 감정이 있을 때 억지로 밀어붙여 성사시킨 결혼이?
또 절반정도 농담 삼아 하는 말이겠지만, 그가 M양에게
“입사하고 나서 오빠 버리면 안 돼.”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역시, 은연중에 그가 두려워하는 부분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이것 외에도 그는 M양의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해도 M양이 그 반대를 이겨낼 것인지를 떠보려고 했는데, 이렇듯 그는 ‘현 상황’을 최고로 설정한 후 거기에 M양이 만족하기를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M양이 ‘우린 좀 더 나아질 수 있으며 무언가라도 해서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는 그것에 대해
“그래봤자다. 변하는 건 없을 거다.”
라는 뉘앙스의 대답만 할 뿐이고 말이다.
M양은 남친이 아주 작은 것 하나에라도 꾸준히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다. 그런 모습을 본다면 학력이나 직업과 관계없이 ‘마음먹으면 해내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먼저 자진해서 선포한 일도 해내지 못했고, 지금은 ‘그걸 해냈어도 바뀌는 건 없을 거다’라는 합리화가 완료된 결론만을 이야기 할 뿐이다.
M양이 1년 넘게 남친을 경험하고 난 뒤 내린 결론이 이렇기에, 나 역시 그런 M양의 염려에 대해 다 잘 될 거란 식의 무책임한 얘기를 할 수가 없다. M양이 말한
“남친에겐 결혼이라는 목표는 있지만,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한 계획이 없습니다. 이게 제가 가장 불안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고요.”
라는 지점 역시, 나 또한 가장 염려되는 부분이고 말이다. M양이 이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남친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하던데, 이렇게 ‘마음’이나 ‘사랑’에만 큰 의미를 둔 채 현실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나도 참 안타깝다.
3. 어렵지만, 그래도 결론을 지어 보자면….
M양은 신청서에
“남친은 제게 잔소리도 별로 안 하는 편이고, 제게 못마땅한 부분이 있더라도 수용하고 감싸 안아 줍니다. 그런 남친에 비해 저는 완벽한 사람을 바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라고 적었는데, 사실 M양의 생활패턴과 현재 상황을 보면 딱히 잔소리를 할 게 없다. M양은 명문대 졸업을 앞두고 있고, 주말에도 자기개발이나 교양 공부에 시간을 할애하며, 대한민국 사람 다 아는 기업에 곧 입사할 것이 확정되어 있지 않은가. 거기다 발이 넓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고, 그간 봉사활동도 해왔다.
어쩌면 이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M양 남친이 좀 더 부정적으로 보이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퇴근 후에 친구들과 별 의미 없는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또 회사 안 가는 날엔 게임을 하며 좀 쉬기도 하고, 남들이 시간 낭비라고 말하는 일이라고 해도 내가 즐거우면 거기에 좀 빠져 취미로 즐기기도 하는 게 보통 사람들의 모습인데, M양에겐 이러한 일들이 비생산적이며 비효율적인 일로 보이고 만다.
그래서 참 결론을 내기가 어렵다. 난 M양이 신청서에 적은
“남자친구가 매력적이고 멋있어 보이진 않고, 돌봐줘야 하는 커다란 강아지처럼 느껴집니다.”
라는 말을 가져다 이별을 권하는 이유로도 내밀 수 있지만, 이게 참 남친 입장에서 보자면 더 잘하고 싶어도 뭘 어떻게 잘해야 할지 모를 수 있고, 또 몸에 길들여진 것이 아니라 작심삼일로 끝나고 마는 게 본인도 괴로운 일인데 M양은 계속 더 잘하라고만 하니 미칠 것 같은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은, 이 관계를 정리한 후 삶의 목표가 최소한 비슷하기라도 한 사람과 만나는 거다. 똑같은 판매업을 꿈꾸더라도 동네 슈퍼를 차린 후 부부가 밤낮으로 교대해 운영하며 먹고 살 정도의 돈을 버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있고, 시작은 동네 슈퍼였지만 체인 매장을 늘려가며 기업을 만들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M양의 상황에 비유하자면 M양 남친이 전자 M양이 후자인 건데, 이렇게 지향하는 게 다르다면 동업은 서로에게 고문이 될 수도 있다. M양이 현재 남친의 기대와 야망을 줄이는 모습에 실망하고, 남친은 M양의 ‘미래 계획 얘기’에 ‘있는 그대로의 나로 만족할 수 없는 거냐’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 다른 방법은, M양이 남친에게 변화와 준비를 제안할 때, 그게 ‘우리’를 위해서 함께 머리를 맞대는 거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진 M양이 남친에게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뉘앙스로 이야기 한 까닭에, 그는 그걸 ‘M양의 불만족’으로 여기기도 했으며 약간의 자격지심으로 ‘내 직업이 부끄럽냐’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M양은 그가 계속 자기 직업에 대해 불평을 하니 그럼 다른 대안을 찾아보자고 말을 꺼낸 건데, 그는 그걸 좀 삐딱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게다가 M양이 그에게 바랐던 것들은 아무래도 좀 막연한, ‘시간 활용’이나 ‘미래 대비’같은 이야기들이었는데, 그렇게 뭘 어디까지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할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예컨대 ‘집 살 계획을 세웠으면 좋겠다’고 할 게 아니라 ‘언제까지 얼마를 모아보자’고 말하는 게 낫고, ‘자기발전을 위해 시간을 활용하자’라고 할 게 아니라 ‘일주일에 무엇을 얼마만큼 하자’고 말하는 게 낫다.
그리고 하나 더 중요한 건, M양은 말만 꺼낸 뒤 뒷짐 지고 그를 지켜볼 게 아니라, M양도 그를 도와야 한다는 거다. 그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칭찬을 해주고, 그가 흔들릴 때에는 응원과 격려를 해주길 권한다. 그래야 ‘잘 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날 수 있는 거지, 그저 시험하듯 그를 보고만 있으면 그의 입장에선 그게 ‘내가 열심히 해봐야 겨우 본전. 그냥 당연한 일이 되는 것’으로 여겨지기에 지루하고 보람 없는 의무처럼만 여겨질 수 있으니 말이다.
연애도 연애지만, 난 연애 때문에 M양의 ‘소중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금이 가는 것 같아 마음이 계속 쓰인다. 이 부분에 대해 그저 다른 사람들의 편견과 선입견을 탓하며 배신감을 느끼거나 인연의 끈을 느슨하게 할 게 아니라, 그들이 염려하는 지점에 대한 M양의 적극적인 변호와 확신을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 내가 좋아서 하는 연애인데,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반대야.
라며 발끈만 할 게 아니라,
- 그런 지점들에 대한 염려 보다는 이러한 부분에 대한 믿음이 있다.
라는 걸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만, 스스로도 그 연애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서 일부러 변호하기 위해 ‘확신이 있는 것처럼’ 꾸며서 이야기하지는 말고, 정말 상대와 무인도에 들어가 단둘이 살아도 ‘함께’라는 것으로 다 극복할 수 있고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있을 때, 그 믿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길 바란다.
자 그럼, 다들 편안한 화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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