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의 변화가 너무 극단적인 사람은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 만약 내가 오늘 연인에게 오전엔
“세상에 있는 70억의 사람 중에, 나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은 너 하나야. 네가 내 옆에 있다는 것에 오늘도 감사해. 뜬금없지만, 너를 위해 난 무엇이든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지금 들어서,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 사랑해.”
라는 이야기를 해놓고는, 저 메시지에 대한 연인의 답장이 늦자
“읽씹인가? 매번 이런 식이네. 읽었으면 뭐라고 대답이라도 해줘야지 아무리 바빠도 그냥 넘겨버리는 건 아무래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이 점은 네가 고쳐야 할 것 같아. 나는 나름 진실한 고백을 한다고 한 건데, 넌 그냥 읽고 아무 대답도 안 하니까 기분이 별로네. 다음부터는 저런 메시지 보낼 일 없을 거야.”
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어떨 것 같은가? 처음에 보낸 메시지도 절대 내 진심처럼 느껴지지 않으며, 오히려 좀 심술이 난 채 날선 말을 하려는 모습이 내 본색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내가 한 사랑한다는 고백은 상대의 리액션을 기대하며 보낸 것일 뿐이며, 거기에 기대만큼의 리액션을 하지 않자 곧바로 응징하려고 드는 걸로 봐선, 아무래도 그게 좀 비뚤어진 애정처럼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자신은 연애를 하면 헌신하는 타입이라든지, 아니면 올인 하는 타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위와 같은 태도의 변화를 보이곤 한다. 오늘 사연의 주인공인 Y씨도 그런 타입의 사람 중 하나인데, Y씨는 저 후자의 태도를 점점 더 극단적으로 보이다가 결국 나중엔 ‘헤어지자’는 말까지를 해버렸다.
Y씨의 그런 태도 변화에 지친 상대도 이별에 수긍했고, 그러자 Y씨는 ‘내가 헤어지자고 했지만 왠지 차인 느낌’과 더불어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과 함께 표류하게 되었다. Y씨는 현재 상대에게 ‘돌아갈 기회’를 달라며 매달리는 중이다. 난 두 사람이 재회하기는 어려우며 재회하더라도 헤어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왜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지를 Y씨도 알아야 정리가 가능할 것 같으니, 아래에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출발.
1. 바란 건 딱 하나, 날 사랑하는 여친의 마음?
헤어지기 전 여친과 통화를 할 때, 여친이 Y씨에게 한 말을 보자.
“난 오빠 기분 풀어주려고 지금 통화를 하는 중인데, 오빠는 내가 오빠를 많이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서운하다는 말 밖에 안 하잖아.”
여친이 지적한 바로 저 지점이, 두 사람이 계속해서 갈등을 겪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겠다.
여친의 입장에선 Y씨가, 옆에서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저 앞으로 먼저 가선 계속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Y씨는 사연신청서에
“제가 여친에게 바란 건 정말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 그것 외에는 바란 게 없습니다.”
라고 적었는데, 그걸 바란 건 전부를 바란 것과 같은 거다. 또, 그런 기대를 갖고 있으니
- 날 사랑하는 거라면, 여친이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 날 사랑하는 거라면, 여친이 빨리 답장을 할 텐데.
- 날 사랑하는 거라면, 여친이 회사 동료 말고 날 만나고 싶어할 텐데.
- 날 사랑하는 거라면, 여친이 게임이나 미드보다 연애에 충실할 텐데.
- 날 사랑하는 거라면, 여친이 지금 내게 연락을 하고 보고 싶다고 할 텐데.
- 날 사랑하는 거라면, 여친이 지금 내가 느끼는 서운함을 풀어주려고 할 텐데.
하며 필연적으로 거의 모든 지점에서 실망하고 서운해 하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기대를 하며 Y씨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친의 모습’과 현실에서의 상대를 비교할 게 아니라, 그냥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며 차분하게 만났어야 한다. 연인이 되었으니 이제 상대가 내게 빠져 죽고 못 사는 모습 보이며 그 어떤 것들보다 연애에만 집중하고 올인 하는 모습을 보이는 걸 기대하는 게 아니라, 그냥 둘이 현재 사귀고 있고 통화하고 있고 만나고 있으니 거기에 닻을 내린 채 서로를 알아가는 것 말이다.
2. 더 잘 참는다고 해결될 문제일까?
Y씨는 상대와 다시 사귈 수만 있다면 앞으로 자신의 서운함과 섭섭함 같은 건 꾹 참고 절대 드러내지 않으며 상대에게 다 맞출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렇게 ‘더 잘 참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참아봐야, Y씨가 연애에 대한 판타지를 가진 채 그것과 현실에서의 연애를 비교하며 계속 불만을 축적한다면 언젠간 결국 터지고 만다.
재회를 요구하며 여친에게 매달리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Y씨는 ‘재회를 원하는 남자가 해야 할 것 같은 일들’을 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난 그렇게 자꾸 뭔가를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다며 저지를 게 아니라, 일단 현실에 먼저 좀 발을 딛길 권하고 싶다.
슬픈 발라드 작사하는 것도 아닌데
“**씨, 내 마음 믿기 어렵겠죠…. 그 상처 덮기 어렵겠죠…. 가슴이 미어져요. 내가 그 상처를 줬다는 생각에….”
라며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으면 곤란하다. Y씨가 놓인 그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은 보통
“그건 진짜 이러이러해서 그랬던 거야. 그런 사정이 없었다면 나도 그러지 않았을 거야. 그 부분은 정말 오해인 거고,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은….”
이라며 오해를 풀거나 자신의 의도나 생각을 설명하기 마련인데, Y씨는 그냥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며 밑도 끝도 없이 혼자 너무 애절하다.
“한순간에 탔다가 한순간에 지는 사랑이었으면 그냥 잊히겠죠. 하지만 진짜 난 여전히 **씨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에요. 내 마지막 사랑, **씨에게 모두 주고 싶어요.”
그거, 땅 파는 거다. 나도 한때 열심히 땅을 파서 굴착기능사 1급 자격증까지 취득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열심히 파며 현실과 동떨어진 땅굴로 들어갈 게 아니라, 그냥 눈앞에 보이는 상대에게 다가가서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3. 왜 더 노력할수록 힘들어졌을까?
책을 읽지는 않고 겉표지를 예쁘게 장식할 생각만 하고 있으면, 진도는 진도대로 안 나가고 책 포장하다가 지치고 마는 것 아니겠는가.
Y씨는 여친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아가려고 하기 보다는, 빨리 그녀가 Y씨가 바라는 대로 연애에 올인 하며 Y씨를 너무 사랑해 어쩔 줄 모르기를 바랐다. 때문에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에 꽂힌 채 계속 그녀에게 ‘부족하다’는 표현을 했던 건데, 그러다보니 여친 입장에선 Y씨와 대화를 하는 게 스트레스가 되었으며, 연락을 해도 뭐라고 하고 안 해도 뭐라고 하니 점점 더 지치게 되고 말았다.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회사의 분위기도 다르잖은가. 또, 성격 상 폰을 계속 붙들고 실시간 대화를 이어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여유롭게 대화할 수 있을 때’ 대화를 하려고 일단 어떤 내용인지 확인만 한 채 나중에 대답을 하는 등의 성향의 차이도 있을 수 있다. Y씨는 실시간 대화를 추구하는 타입이었고 Y씨의 여친은 여유롭게 대화할 수 있을 때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타입이었는데, 이걸 두고 Y씨는 계속 서운해 하고 섭섭해 했다. 여친이 자신을 정말 사랑한다면 어떻게 읽고 그냥 넘어갈 수 있겠냐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런데 내 경우를 예로 들어 말하자면, 나 역시 공쥬님(여자친구)이 직장에 있을 땐 내가 보낸 톡을 확인하고도 바로 응답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며, 실시간 대화를 하다가도 일이 생겨 ‘잠깐만 기다려 달라’는 고지 없이 대화가 끊길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Y씨처럼 서운함과 섭섭함을 전달하거나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 그게 날 일부러 골탕 먹이려 하거나 덜 사랑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믿고, 또 알기 때문이다.
온 신경을 저기다가 다 집중한 채 ‘날 죽고 못 살 정도로 사랑한다는 증거’를 찾으려 하지 않으면, 그것 외에 상대가 날 사랑하고 있다는 정말 많은 증거들을 발견할 수 있다. Y씨가 두려워하는 것처럼 정말 상대가 Y씨에게 별 호감이 없는 거라면, 왜 그녀가 Y씨와 사귀며 Y씨와 대화를 하고 데이트를 하겠는가. 이런 증거들은 다 접어둔 채 ‘내 기대대로 그녀가 표현하며 부응하지 않는 부분’만을 바라보고 있으니, Y씨는 점점 더 불만족의 늪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던 거다.
하나 더. Y씨는 연애 내내
- 여친 기분을 풀어준다.
- 여친에게 맞춰준다.
- 여친을 더 생각해 준다.
라는 것에만 집중하던데, Y씨는 연애를 하는 거지 접대를 하는 게 아니니 너무 그렇게 ‘헌신하고 올인 하겠다’며 상대를 모시려고 애쓸 필요 없다. 또, Y씨의 그런 접대는 결국
- 내가 이렇게 헌신했을 때, 여친이 날 사랑한다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
이라는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들일 뿐이니, 그러다 혼자 지쳐 여친에게 불만을 표시하지 말고 그냥 좀 Y씨도 편하고 즐겁게 연애를 하길 권한다. 난 Y씨가 사연에 적은
“저는 여자친구가 먼저 자고 난 뒤에야 제가 자려고 노력했습니다. 항상 카톡으로도 먼저 안부를 묻고 연락하는 등의 노력도 했고요.”
라는 이야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상대가 원한 것도 아닌데 그걸 Y씨 마음대로 ‘노력’이라며 해놓고는, 이제 와서 ‘난 이렇게까지 했는데….’ 라며 상대에게 보상을 바라면 어쩌자는 건가. 상대 보다 먼저 잔다고 연애가 뿌리째 뽑히는 거 아니니, 그런 좀 이상하고 애먼 노력은 그만 두길 바란다.
제발 다시 받아 달라고 매달리기만 할 게 아니다. 운이 좋아 그녀가 Y씨를 받아준다고 해도, Y씨는 또 열심히 헌신하고 올인 하며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여친도 내게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주겠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을 것 아닌가. 매뉴얼을 통해 내가 질리도록
“뒤 쫓으며 상대에게 뭘 원하냐고 물어보고 상대가 원한다는 걸 해주려 하지 마세요. 그렇게 하곤 그 대가로 상대가 날 사랑해주길 바라지도 마세요. 상대의 뒤가 아닌 앞으로 가야 합니다. 원하는 걸 다 해주겠다는 사람보다, 상상도 못했던 걸 보여주는 사람에게 끌리는 법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Y씨는 여전히 ‘받아주기만 하면 맹목적으로라도 다 맞추겠다’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 까닭에 내가 ‘재회의 가능성은 없어 보이며, 재회를 해도 힘들 것 같다’는 결론을 내게 된 것이니, 당장의 다급함에서 벗어나 천천히 다시 한 번 이 관계를 되짚어 보길 권한다. 자 그럼, 불금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으니 다들 조금씩만 더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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