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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마마보이라는 것만 빼면 다른 건 괜찮은 남친, 어쩌죠?

by 무한 2016. 11. 11.

스물 몇 살 때였나, 지인이 자신의 아버지께서 타시던 연식이 좀 된 차가 있는데 내게 가져다 타겠냐고 물었다. 차에 묶여 있는 과태료만 다 처분하고 가져다 타라고 했는데, 나는 그때 ‘이니셜D’와 ‘분노의 질주’에 한창 빠져있을 때였기에 이게 웬 떡이냐 하며 고맙다고 했다.

 

그런데 그 차의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주행하다가도 신호등에 멈추면 복불복으로 시동이 꺼질 때가 있다는 거였다. 정비소에 몇 번 가서 고쳐보긴 했으나, 고친 후 얼마쯤만 멀쩡하고 다시 같은 증상이 반복된다고 했다.

 

난 실제로 지인이 몰고 나온 차를 타보기도 했는데, 신호대기 중 시동이 꺼져 충격과 공포에 빠졌었다. 기어가 ‘D’에 가있는 상태에서 시동이 꺼진 거라 다시 ‘P’에 놓고 시동을 걸었어야 했는데, 그땐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계속 ‘D’에 놓은 채 열심히 키만 돌려댔었다. 당연히 시동은 걸리지 않았고, 뒤차들이 크랙션을 울려 난 머릿속이 하얗게 된 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차는 못 쓰는 거다. 당시 그 차도 꽤 괜찮은 ‘프린스’라는 차였는데, 후륜구동이라는 특징이 있고 내부 구성 잘 되어있고 어쩌고저쩌고 해도, 주행 중 이렇게 복불복으로 멈춰대면 타다가 죽을 수 있는 거다.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밟아대다 갑자기 시동이 꺼졌는데, 차는 굴러가는 와중에 브레이크와 핸들까지 락이 걸리면 그 길로 곧장 요단강까지 건너게 되는 것 아닌가.

 

Y양의 연애가 딱 이런 모습이다. Y양 남친은 어느 부분에서는 흡족할만한 조건을 갖췄지만, 다른 지점들에선 Y양을 한정 없이 비참하게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남친의 어떤 부분들이 Y양을 그렇게 만들 수 있으며 Y양은 무슨 선택을 해야 할지, 함께 살펴보자.

 

 

1. 남친의 마마보이 기질.

 

부모님의 입장에서 자녀가 연애 때문에 ‘가족의 일’에 소홀할 경우 서운할 수는 있지만, 그게

 

“너희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

“왜 여친이랑만 놀아주고 엄마랑 안 놀아주냐.”

“(통장 조회를 해)이거 먹고, 여기 가며 돌아 다녔구나.”

 

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면 분명 문제가 있는 거라 할 수 있다. 그것도 자녀가 이십대 초반의 꼬꼬마가 아닌 이십대 후반이라면, 저건 정도가 좀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게 좀 그렇다. 남친의 통장을 남친 어머니께서 관리하시는데, 그렇기 때문에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돈의 내역을 어머니께서 알고 계신다. 게다가 아들에 대한 관심이 거의 집착 수준이라, 아들이 외박이라도 하고 들어오면 둘 사이엔 나가라느니, 호적에서 파겠다느니 하는 말들이 오가곤 한다.

 

지출내역에 대한 부분은 Y양 이름으로 커플통장을 만들어 쓰는 걸로 해결해 볼 수 있고, 또 외박 문제는 되도록 외박을 줄이는 것으로 해결해 볼 수 있겠지만, 남친은 그냥 이런 상황 자체를 ‘엄마가 잔소리하는 것’ 정도로만 여기고 있기에 과연 이게 해결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Y양과 남친 사이엔 결혼 이야기도 오가는 중인 것 같은데, 남친이 정서적, 경제적 독립을 못 한 상황에서 결혼을 해버리면, 그 결혼은 ‘남친’과만 하는 게 아니라 ‘남친과 남친 어머니’와 하는 결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남친 어머니께 Y양은 ‘내 아들 빼앗아가려 하고,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결혼 후 Y양은 남친 어머니의 질투와 복수로 인해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경험하게 될 수 있다.

 

보통의 경우라면 난 남친이 물리적인 독립을 먼저 하고, 이후 자연스레 남친이 가정에서 분리되는 방법을 사용해보라는 걸 권했겠지만, 둘은 절반 정도 이미 물리적인 독립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Y양이 남친에게 ‘남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남친이 억울하고 분해하며 우는 상황이라, 뭐라고 얘기를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평소 대화를 할 때에도 남친은

 

“나 마마보이 맞는데?”

 

라는 이야기를 할 뿐이고, 실제로도 하나부터 열까지 남친 어머니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남친이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없기에, 더욱 할 말이 없다.

 

“언젠가는 데이트 중에, 저더러 ‘엄마’라고 잘못 부른 적이 있어서 소름이 돋았던 적도 있어요.”

 

현재 Y양의 남친이 ‘온전한 한 사람의 성인’으로 보일 수 있는 건, 뒤에서 거의 모든 뒤치다꺼리를 해주시는 ‘남친 어머니’가 계시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친이 일상생활을 유지해갈 수 있는 건 8할이 남친 어머니의 도움 덕분인 것 같으니, 남친에게서 남친 어머니가 분리 되었을 때 과연 그가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지를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지금 이 상황에선 결혼이 문제가 아니라, 남친이 스스로 자신의 생활을 책임질 수 있느냐 없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니 말이다. 

 

 

2. 좋은 점 VS 나쁜 점?

 

좋은 점 6가지에 나쁜 점 4가지라고 해도 뭐 맞춰가며 사귈 수 있는 것이긴 한데, 좋은 점 9가지에 나쁜 점 1가지라 하더라도, 그 ‘나쁜 점 하나’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며 Y양을 비참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은 것이라면, 관계를 계속 유지해가는 건 죽음의 골짜기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 될 수 있다. 서두의 이야기에서처럼, 시동이 꺼지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차가 목숨을 앗아갈 수 있듯이 말이다.

 

난 사실 Y양의 연애에서 ‘남친이 마마보이’라는 것보다, 이게 훨씬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Y양은 남친의 장점에 대해

 

- 지나가며 한 말을 잊지 않고 뭔가를 사다준 적 있음.

- 뭘 먹고 싶다고 했더니, 며칠 후에 일부러 찾아 데려가 줬음.

- 어디 가고 싶다, 뭐 하고 싶다고 하면 거의 다 해줌.

- 그게 왜 필요하냐고 뭐라고 하면서도 결국은 사줌.

 

라고 말했는데, 물론 저런 일들이 Y양에 대한 남친의 애정처럼 느껴질 수 있고, 나아가 다시 생각해도 뭉클하게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저런 장점 뒤에,

 

“술 취했으면 집에나 쳐가 미친X아.”

“니 애X 백수.”

 

라는 이야기를 하는 단점이 있다면, 이건 못 쓰는 관계인 거다. 만약 내 지인이 이 사연을 들고 와 내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했다면, 난 이건 고민하고 말고 할 가치도 없이 당장 헤어져야 하는 관계라고 대답했을 것 같다.

 

난 Y양이 이 모든 걸 섞어서 대충 생각하지 말고, 정확한 세 가지 시점에서 판단을 했으면 한다.

 

A. 지금도 남친의 호의와 친절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는가?

B. 다 좋고 즐거울 때 말고, 삐치거나 기분 상하거나 짜증났을 때의 남친은 어떤가?

C. 집에 올 때 빵 사오는 걸로, ‘니 애X’라고 말하는 걸 정말 퉁칠 수 있는 건가?

 

남친은 이제 같이 밥 먹어도 으레 Y양이 다 치우는 걸로 생각하며 몸만 빠져나갈 뿐이며, A양이 뭔가를 하고 싶다고 해도 자신이 귀찮으면 억지를 부려 다음으로 미뤄버린다. Y양이 그의 장점이라 생각하는 것과는 꽤 많이 멀어진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엔 그랬으니까’라는 걸 근거로 남친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지금 그가 Y양에게 보이고 있는 모습이, 그의 ‘본모습’일 확률이 훨씬 높으니 말이다.

 

또, 그가 Y양에게 뭔가를 베풀고자 할 때는 ‘기분 좋을 때’이다. 그럴 땐 Y양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이것저것 계획을 짜서 서프라이즈를 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Y양이 졸라도 들어주질 않는다. 자신이 하라는 걸 Y양이 하지 않았다고, 지인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미친X아.”라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고 말이다. 저게 순간 분노조절이 안 되어서 그런 것이든 뭐든, 난 Y양에게 저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역시나 그의 ‘본 모습’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자기 기분 좋을 때 사랑꾼처럼 서프라이즈를 하면 뭐하는가. 그렇지 않을 땐 스스럼없이 욕부터 하는데.

 

게다가 장난이든 뭐든, 이십대 후반 적지 않은 나이에 여친에게

 

“니 애X. 니 X비.”

 

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 그의 인격적 결함으로 봐도 무리가 아니다. 이걸 두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냐.”라고 말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이 “응 니 애X 백수.”라는 건, 그는 상종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증거에 가깝고 말이다. 상대에게 이런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내가 먹고 싶다고 했던 걸 기억해서 사다 주기도 한다며 퉁치려 하는 건, 욕을 먹긴 하지만 빵도 같이 주기에 참겠다고 하는 것과 다를 것 없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Y양은 말한다.

 

“제가 욕심을 더 버리고 남친을 이해하려 해야 하는 걸까요?”

 

여기서 더 욕심을 버리고 이해하면, 이제 ‘언어폭력’ 뿐만 아니라 ‘물리적 폭력’을 당하는 일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남친이 지금까지는 자신이 지적을 당해도 억울해하고 분해하며 우는 것으로 그쳤지만, Y양에게 분노를 표출하며 선을 넘기 시작한 이상 거기서 한 발짝 더 내딛는 건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남친이 회사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평가가 좋고 친구들과의 대인관계도 좋고 뭐 그런 게, Y양이 남친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하는 절대적인 근거가 되어선 안 된다는 얘기도 해주고 싶다.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하며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Y양에게 막말을 해가며 상처를 주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Y양에게 나쁜 사람이다. Y양의 사연을 보면 연애 초반 그가 Y양에게 잘 해줬던 일들, 그가 Y양을 짝사랑하며 호의를 베풀고 헌신하던 일들, 그리고 앞서 말한 ‘나쁜 행동’을 제외하면 그래도 그만큼 Y양을 위해주는 사람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행동들을 떠올리며

 

‘원래는 괜찮은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지금 Y양을 대하는 그의 모습이 ‘그의 본 모습’이라는 걸 절대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는 Y양에 대해 자신이 만든 이미지와 의미를 부여하며 종교처럼 여기다가, 사귀고 보니 이제 환상도 깨지고 자신이 생각했던 모습과 달라 본색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그런 걸 겪었다면 그것까지를 상대의 모습이라 생각해야지, 유효기간 지난 호의와 헌신과 애정만을 어루만지고 있어선 안 된다.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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