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씨 입장에선 당연히 서운하며 배신감이 들 수 있다. 같이 지방에 있을 땐 알콩달콩 잘 놀았고, 이후 남친이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을 때 현주씨도
‘그래, 같이 올라가서 지금처럼 지내며 취직준비도 하고, 그러다 자리 잡고 좀 더 사귀다 보면 결혼하게 되고 뭐 그런 거겠지.’
하며 따라 올라왔는데, 서울에서의 그는
-준비하는 거 이번에도 안 되면 그냥 내려가서 네 인생 살아라.
-너한테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너 징징거리는 거, 진짜 받아주기 힘들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주씨는 내게
“지방에 있을 땐 그곳이 남친에게 타지니까 저에게 많이 의지했는데, 서울에 오니까 여기엔 남친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전과 상황이 달라져서 이젠 딴소리를 하는 것 같아요. 남친에게 물어본 적 있어요. 내 인생에 1순위로 놓아달라고 하지 않았냐고. 그랬더니 자기는 ‘일을 제외하고 1순위’로 놓아주길 바랐던 거라 하네요.”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당연히 그런 부분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다만, ‘상황이 변하자 남친도 변했다’라는 결론을 내면 전부 그의 인간성이 그렇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란 결론밖에 나질 않으니, 그 외에 어떤 부분이 이 상황을 불러왔는지 좀 더 살펴보자.
1. ‘난 너 따라 왔는데’의 문제
남친이 ‘내려가서 네 인생 살아라’라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며 어떻게 인간이 이럴 수 있는가 싶겠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보면
-난 너 따라 왔는데 왜 날 외롭게 해?
-난 너 따라 왔는데 왜 날 걱정하게 해?
-난 너 따라 왔는데 왜 날 더 챙겨주고 돌봐주지 않아?
라는 이야기가 반복되자,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난 너 따라 왔는데 네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이런 거잖아.
로 귀결되는 필살기에 그도 “나 안 해. 나 따라왔는데 왜 그러냐고 계속 그럴 거면, 그냥 내려 가.”라는 반격을 한 거라 할 수 있다.
물론 현주씨의 남친이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현주씨가 타지에 와서 겪을 외로움과 힘듦까지를 돌아보고,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옆에서 버팀목이 되어주려 노력할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올라오기 전에는 알아서 잘 살았으면서, 올라와선 왜 이러지?’
라며 더욱 모진 말로 현주씨에게 채찍질을 해댔고, 현주씨의 연락을 간섭과 구속으로 여기고 말았다. 그럴수록 현주씨는 남친의 변화에 불안해하며 더욱 안절부절 못했고 말이다.
2. 불안할수록 빈번하게 등장한 ‘답정너 질문’의 문제
현주씨의 경우, 마음 속 불안이 커질수록 ‘답정너 질문’을 던진다.
“나 왜 만나?”
“결혼은 어떤 여자랑 할 거야?”
등의 질문을 하는 건데, 당연히 현주씨가 정해둔 답은
-사랑하니까 만나지.
-결혼은 너랑 해야지.
라는 것이겠지만, 이건 저 위에서 말한 문제와 겹쳐
-사랑하니까 만난다면서 왜 너 따라 온 나를 외롭게 해?
-결혼은 나랑 할 생각이라면서 왜 날 더 챙겨주고 돌봐주지 않아?
라는 제 2의 필살기를 부를 수 있기에 남친은 더 이상 현주씨가 듣고 싶어 하는 답을 해주지 않는다. 그도 이제는 이 관계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
-심심하니까 만나지.
-결혼은 결혼할 나이가 되어서 옆에 있는 사람이랑 하겠지. 네가 될 수도 있고.
라는 답을 할 뿐이다.
현주씨의 ‘답정너 질문’의 문제와는 별개로, 남친이 저 따위의 대답을 하는 관계가 된 거라면 그 관계엔 매뉴얼을 통해 꼭 확인하길 권했던 ‘책임감과 존중’이라는 게 아예 말소되어 있는 것과 같으니, 이걸 그저 ‘남친이 내 마음 상하게 하려고 일부러 못되게 말하는 것’ 정도로만 여기지 말고 왜 이 연애를 유지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곰곰이, 열 번 정도 다시 생각해 보길 권한다.
이것 외에도 현주씨가
“데이트는 주로, 제가 하고 싶은 거 미리 말해서 하는 식으로 했어요.”
“둘이 만나다가 지루해지면 지인들 불러서 같이 놀았어요.”
라는 이야기를 한 걸 보면 ‘데이트’와 관련된 문제도 있는 것 같은데, 신청서에 자세히 적혀 있지 않은 까닭에 확실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서로 각자의 삶을 진지하게 돌보지 않고 저런 소모적인 데이트를 반복할 경우, 나중에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관계는 ‘정리대상 1호’가 될 수 있다는 걸 기억해뒀으면 한다.
“전 이제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 거죠?”
현주씨의 3년 뒤, 5년 뒤가 어떨지를 생각하며 먼저 ‘내가 살 궁리’를 하자. 연애와 분리된 삶도 현주씨가 충분히 살 수 있도록 스스로 만들어 두어야지, 안 그러면 이 연애를 계속하든 다른 사람을 만나 연애하든 그 연애가 끝나면 ‘허송세월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1년간 겪어봤으면, 그 총합을 근거로 상대라는 사람을 평가하자. 달달하고 좋을 때 했던 말이나 약속만을 계속 증거로 내미는 건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전체를 봤을 땐 ‘그러니까 그런 사람’인 건데, 이걸 ‘원래 안 그런 사람인데 지금은 일부러 나 속상하게 하려고 그러는 것’이라고 해석하며 머물다 보면 1~2년 후딱 지나가며, 남은 일이라고는 막장을 경험하는 일일 수 있다.
난 만약 내 여동생이 남자친구에게 ‘심심하니까 너 만나는 거지’라는 말을 들었다면, 당장 서울에 올라가 오늘 중으로 여동생을 끌고라도 내려왔을 것 같다고 적어두도록 하겠다. 지금 가면 다신 안 올 청춘을, 저 따위 이야기를 하는 남자에게 애정을 더 달라고 구걸하며 보내진 말았으면 한다. 나가서 버스만 타도 그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버스 안에 수두룩할 테니, 부모님이 아시면 땅을 치며 우실 그 연애는 이쯤에서 그만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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