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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애교도 유머감각도 없는 여자사람이, 짝사랑 중입니다

by 무한 2017. 7. 12.

세연씨는

 

“이미 제 이미지는 과묵한 숙맥으로 굳어진 것 같은데, 여기서 제가 갑자기 발랄하게 가면 미친 여자 취급 받을 것 같기도 하고….”

 

라고 했는데, 진짜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러니 여자아이돌 애교 영상 보면서 혼자 연습하고 막 그러지 말고, 옷을 좀 소녀소녀하게 입고 가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며 패션에 몰두하고 그러지도 말자. 청순청순한 원피스로만 골라 입고 간다고 해도, 상대가 말 걸 때 얼어붙어서는 무표정으로 대답하면 소용없는 일이니 말이다.

 

 

 

물론 애교 많은 여자의 경우 남자에게 진입장벽이 낮은 듯한 착시현상을 불러오는 까닭에 대시하는 사람이 많고, 유머감각이 있는 여자의 경우 같이 웃으며 말을 트기까지의 기간이 짧으며 금방 친해진다는 장점이 되긴 한다. 하지만 그건 있으면 좋은 거지, 없거나 부족하다고 해서 결정적 결함이 되는 건 아니다.

 

다만 ‘애교가 없다’거나 ‘유머감각이 없다’고 말하는 대원들의 경우, 그것과는 별개로

 

-혼자 예측하고 판단하고 결론까지 지어버리는 일이 많음.

-애교나 유머감각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말과 표현이 없음.

-상대가 농담을 해도 웃지 않고, 질문을 해도 단답을 함.

-상대가 다른 사람이랑 얘기하면 급속도록 좌절하거나 암울해 함.

 

라는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호감 가는 상대가 포함된 회식자리에 가서는 상대와 농담따먹기를 하는 다른 이들을 보며 위축되고, 때문에 그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허물어진 것을 삼겹살 폭풍흡입 같은 걸로 채우고 말며, 며칠 뒤 상대에게 커피를 한 잔 선물하고는

 

“낮에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잠이 안 오네요. 이게 다 세연씨 때문이니까 세연씨가 책임지세요. ㅎㅎ”

 

라는 카톡이 오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만 품고 마는 것이다.

 

 

난 꼬꼬마시절 SBS에서 어쩌다 한 번씩 중계해주는 NBA 농구 경기를 비디오로 녹화할 정도의 농구광이었다. 한국 농구도 좋아해서 농구대잔치 경기도 녹화할 정도였는데, 그러던 어느 날 롯데월드에 갔을 때 연세대 농구팀이 롯데월드에 방문해 팬미팅을 했다. 토크가 끝나고 관객들에게 공을 던져주는 시간이 마련되었는데, 난 온 마음을 다해 서장훈 선수를 쳐다보며 내게 공을 던져주길 바랐지만, 그는 손을 들어 공을 던져달라고 외치는 중앙의 관객들에게 얼른 공을 몇 개 던져주고는 빈손으로 서있었다.

 

난 그의 신체 사이즈를 전부 외우고 있으며 그가 휘문고를 졸업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는데, 그런 내게는 공을 던져주지 않고 농구도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은 애먼 꼬꼬마들에게만 공을 던져주고 만 것이다. 그때 느낀 그 허탈감과 배신감은 정말…. 그런데 그게 서장훈 선수의 입장에서 보면,

 

‘쟤는 그렇게 공 받고 싶으면 일어서서 어필을 하든가 아니면 손을 들고 내 이름이라도 불렀어야지? 그런 것도 안 하고 그냥 빤히 쳐다보기만 해놓고는 내가 뭘 어떻게 알고 공을 던져주길 바란 거야?’

 

하는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

 

이처럼 이쪽에서 말도, 표현도 하지 않으면 상대는 알 방법이 없음을 잊지 말자. 세연씨 혼자 백날

 

-상대가 전문적인 강의를 하는 것 때문에 내가 그것에 혹한 건가를 살펴봤을 때, 상대와 똑같은 강사인 다른 사람을 봐도 설레지 않을 걸 보면 이건 이 사람이라서 내가 좋아하게 된 것이 분명해.

-이게 이 관계가 아닌, 밖에서의 소개팅으로 만난 관계라고 했을 때에도 내가 상대에게 호감을 가졌을 거야. 그러니 교육이나 서비스직에 대한 호감이라고도 볼 수 없지.

-수강생에 대한 예의와 친절 때문에 내가 상대에게 대시하려는 게 아니라, 진짜 그냥 좋아서 ‘짝사랑’의 감정으로 시작해 순수하게 대시하려는 거야. 그러니 착각을 기반으로 한 건 아니지.

 

라고 결론을 내봐야 그건 결론을 위한 결론이지 이 관계에는 1g의 도움도 되지 않는 결론들이다. 이게 착각 때문에 시작된 호감 아니고 상대라는 사람에 대한 좋은 감정으로 인해 시작된 짝사랑이라 완전하게 확정지은들, 말도 안 하고 표현도 안 하는데 뭐가 달라지겠는가.

 

“전 제가 먼저 좋아할 경우, 얼른 고백하거나 애정표현을 해서 결론에 빨리 도달하는 걸 속편하게 생각해요. 근데 노멀로그의 글을 읽어보니까 그게 이성을 쫓아내는 방식인 것 같더라고요. 그럼 전 이제 어떻게 좀 조심스럽고 조신하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요?”

 

세연씨의 상황에서라면, 상대가 현재 강사인 동시에 현직을 겸하고 있다고 하니, 세연씨가 몸담으려 하는 그쪽 세계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으로 대화를 틀 수 있다. 이미 살짝 묻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 쪽의 실무와 비전에 대해 묻고는 대답에 대한 보답으로 밥을 한 번 사도 되고, 세연씨 취미가 베이킹이며 꽤 오랫동안 해왔다고 하니 동료 수강생 몫까지 좀 더 만들어 자연스레 상대에게까지 주는 방법도 있다. 이걸 좀 이렇게 보여주고 표시하고 하면서 알려야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상대는 세연씨를 ‘수강생1’로만 알고 있을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또, 수강생과 강사의 뒤풀이 자리 같은 곳에서는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상대에게 질문도 하고, 아이컨택도 하고 하자. 그런다고 해서 세연씨의 머리채를 잡을 사람 거기 없고, 올해 이후로 평생 볼 일 없을 가능성이 높은 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세연씨의 연애 밥그릇에 손도 못 대고 있는 일은 나중에 분명 후회로 남을 일이다.

 

내가 세연씨라면 누가 수군수군 대든 말든 상대와 건배도 하고 생일도 물어보고 칭찬도 할 것 같다. 그 사람들 그냥 그 강의 같이 듣는 거 끝나면 다신 볼 일 없을 사람들인데, 왜 그 사람들 눈치를 보느라 그저 구석에서 혼자 삼겹살만 집어먹고 있는가. 그래, 저 사람들 의식할 필요 없어. 이건 내 인생이고 어차피 책임은 내가 지는 거야. 저 사람들은 자리 뜨면 사라질 얘기를 하고 있는 거고.라고 일부러 주문이라도 걸어가며 좀 더 용기를 내길 권한다. 일단 저지르고 나면 이후의 일은 내가 도울 것이며 잘못 되더라도 수습하는 것을 도울 테니, 망설이지 말고 더 다가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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