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막 사업이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라 당장은 결혼이 어렵고, 자신과 자신의 가정이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설 2년 후에나 결혼을 구체화 할 거라 생각할 순 있다. 그럴 순 있는데, 사람이라는 게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기 마련이라 그 ‘안정권에 들어선 후’의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며, ‘안정권’이라는 것도 상당히 막연한 개념인 까닭에 2년 후가 되어 ‘조금만 더’라는 마음이 들 경우 결혼은 그 다음 해로, 또는 다음다음 해로 미뤄질 수도 있다.
B양의 사연을 읽으며 내가 안타까웠던 것은, 결혼 얘기가 너무 빨리 나왔으며, 둘의 결혼이 전부 상대의 결정에 달려 있는 듯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B양은
-상대가 안정적인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결혼해야 할지, 아니면 2년 후의 결과는 누구도 보장할 수 없으니 지금 결단을 내리고 돌아서야 하는지.
를 택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고 말았다. 차라리 ‘너는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나는 결혼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둘 다 터놓은 거라면 나았을 텐데, 결혼에 대한 남친의 생각만을 물은 후 그 생각에 동의하면 일단 사귀며 기다려보는 것으로, 반대하면 헤어지는 것으로 결론을 내야하는 상황이 만들어져 버렸다.
B양은 내게 10년 넘게 연애사연을 받고 매뉴얼을 발행한 입장에서 이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냐고 물었는데, 만약 돈을 걸어야 한다면 난 부정적인 결론 쪽에 돈을 걸 것 같다. 그 이유는
-연인 간의 지극히 기본적인 데이트도 전부 나중으로 미뤄지고 있음.
-남자는 나중에 보답하겠다 하지만, 그게 나중엔 감당 못 할 정도로 불어날 수 있음.
-둘이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 B양은 기다리고 남친은 할 거 하며 지냄.
-B양은 남친이 결혼을 미루는 것에 ‘헤어지고 싶나, 함께하고 싶지 않나’로 해석하기도 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혼을 나중으로 미뤘음에도 훗날 잘 된 선배 커플들의 경우, 대개 둘의 사정을 터놓고 함께 준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2년 내로 둘이 1억을 만든 뒤 결혼하자든지, 아니면 3년 내로 둘이 무엇을 어떻게 해서 결혼하자든지 하는 비전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B양 커플의 경우 서로 오픈한 것도 별로 없는 것 같고, 그냥 그 와중에 ‘결혼할 생각 있냐, 있다면 언제쯤이냐’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남친이 ‘결혼 생각은 있지만 올해, 내년에는 불가능’이라는 이야기를 한 정도다. 남친의 사정까지를 다 들어본 후 왜 남친이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고 만나는 게 아니라, 그냥 막연히 ‘결혼은 안정적인 상황 마련 뒤’라는 얘기만 들은 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위한 남친의 준비’ 때문에 지금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대부분 나중으로 미루며 때문에 B양이 외로움을 느낄 정도라면, 남친은 남친 대로 자신이 유예한 것들에 대한 책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 있으며, B양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보상과 보답을 바라게 될 수 있다. 연애를 해도 분명 혼자 감당해야 할 외로움이 있는 법인데, 그것까지를 남친 탓으로 돌리게 될 수 있고 말이다.
때문에 이대로라면 난 둘의 관계가 전부 B양의 인내심과 남친의 책임감에만 의존한 채 가야할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한다. 역시나 차라리 남친이 ‘2년만 기다려 달라’고 한 상황이라면 난
“반년 넘게 만나며 그가 자신이 한 말들에 책임을 져왔는지, 그리고 그가 단순히 자신의 의지를 근거로 한 주장을 하더라도 그걸 믿어볼 만큼 괜찮은 사람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그런 뒤, 결정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라는 이야기라도 할 수 있을 텐데, 그는 그저
“결혼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해서, 또 혹시 이러다가 정말 좋은 여자를 내가 놓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머리가 많이 복잡하다.”
라는 말을 하고 있을 뿐이라서 난 저런 권유를 하기도 어렵다.
B양의 사연엔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남친이 결혼은 2년 후에나 가능하다고 한 것’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인 까닭에, 솔직히 나도 무슨 말을 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사실 이건 내가 앞장서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도울 게 아니라 B양의 남친이 간절함을 보여서라도 확신을 주려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 그게 안 된다면 나도 더 해줄 말이 없다.
그래도 애써 결론을 내보자면, 더 만날 생각이 있는 경우엔 둘의 재정 상태나 가정상황 등을 서로 오픈한 뒤 1년 후, 2년 후를 계획해 보는 게 좋을 것이며, 이해와 양보로만 다 미뤄둘 게 아니라 ‘하려면 할 수 있는 작은 것들’부터라도 함께 해나가는 게 좋을 거라 할 수 있겠다. 이런 게 안 되는 사이라면 다음 주에 당장 결혼이 가능한 사이라고 해도 이후 많은 갈등을 겪을 수 있으니, 이 부분부터 해결해보길 권한다.
▼피라미 낚시 가고 싶다. 피라미 낚시 가고 싶어. 고기 잡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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