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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내 헌신에 고마워 할 줄 모르는 여친, 헤어져야 할까?

by 무한 2017. 10. 12.

태곤씨 난, 사람들이 그런 것 좀 안 했으면 좋겠어. 여친에게 비타민이 필요한 것 같다면서 과일 한 박스 보내고, 커피 마셔가면서 하라며 기프티콘으로 커피 보내고, 데이트하다 뭐 예쁘다고 하면 그거 몰래 구입해서 선물하고 그러는 거.

 

“그게 여자들이 바라는 걸 거고, 또 그렇게 해서 내 마음을 표현하는 건데 그걸 왜 하지 말라고 하나요?”

 

그게, 그저 상대가 좋고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전하는 선물이라면 해도 돼.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그래놓고는 그 선물에 대한 반응을 얼마나 성의 있게 하는지를 살펴보려 하거나, 내가 해준 것들 다 기억에 저장해 두고 있거나, 아니면 그것에 대한 보답을 돌려받으려고 기대하고 있거든.

 

 

1.무엇을 위한 헌신인가?

 

게다가 저런 경우, 그렇게 자신이 상대를 위해 헌신한다 생각하며 베풀 때가 있는 반면, 실질적인 두 사람의 관계에서는 상대에게 ‘내가 바라는 연애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라’라는 이야기를 하며 폭군처럼 굴거나, 아니면 이것도 고치고 저것도 고쳐야 한다는 식의 잔소리만 하는 일이 많아.

 

비유하자면, 집에 친구를 초대해 ‘너는 편히 누워있어 내가 알아서 다 해줄게’라는 이야기를 하며 밥도 차려주고 과일도 내주고 해놓고는, 밥 다 먹고 밤낚시 가자고 권하는 거야. 상대는 낚시를 싫어하는 까닭에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난 널 위해 알아서 다 해줬는데 너는 내가 하자는 거 같이 해주지 못하는 거냐. 내가 밥도 차려주고 과일도 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도 모르냐. 그리고 내가 그렇게까지 해줬으면 설거지 정도는 네가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라면서 정색하고 말하는 거야. 그러고는 내게 사연을 보내.

 

“제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고마움도 모르고, 또 이렇듯 비협조적인 모습만 보이는 게 사람 맞나요?”

 

라고 말이야.

 

해준 사람, 베푼 사람 입장에선 당연히 억울할 수 있지. 자신은 그렇게까지 상대를 생각하며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베풀었는데, 돌아오는 게 없으니 괘씸하거나 짜증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래놓고는 여친이 이상하지 않냐고 익명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있거나, 그것에 대한 보복으로 여친에게 일부러 더 차고 냉정하고 모질게 대하며 무슨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하듯

 

“내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 지금 얘기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나 보겠다.”

 

하고 있다면, 그게 뭐야. 관계 자체는 그렇게 엉망이 되어버리는 건데, 거기서 의식적으로 더 노력해 무슨 연애 수행평가 점수 받아야 하는 것처럼, 왜 그래야 해?

 

 

2.보답과 보상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벌어지는 재판

 

여친을 너무 사랑해서라며 자긴 진라면 매운맛 먹으면서도 여친을 위해 벨기에 초콜릿을 사서 선물해. 그래놓고는 그걸 여친이 알아주지 않는다면서 너 내 생일은 아냐, 내 전화번호는 외우냐, 내 옷 사이즈는 아냐 하면서 청문회를 열어. 그것에 대해 여친이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 앞으로 얼마간 나도 뜬 마음으로 널 대할 거라 말하거나, 다 알려주고는 다음에 시험 볼 것처럼 외워두라고 해. 나는 네게 이렇게까지 하는데 왜 너는 날 최우선순위로 놓지 않냐고 따지기도 하고, 넌 고마움도 모른 채 받기만 하는 것 같으니 앞으로 내 호의와 헌신도 줄이겠다는 식의 위협을 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야.

 

어떤 경우는, 여친 회사 회식이라 회식 끝나고 알아서 택시타고 가겠다는데도 우겨선 데리러 가겠다며 먼 거리를 달려가 기다리는 사례도 있어. 그 마음이야 물론 좋지. 그런데 회식 시작 30분 후부터 언제 끝나냐고 계속 묻고, 밖에 차 대고 기다리다가 혼자 열 받고, 회식이 길어져 한 3시간 후에 끝나니 사람 기다리고 있는데 연락도 제대로 안 받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니냐고 따지고, 여친이 분위기 풀어보려 미안하다고 하는데도 차가운 분위기 조성하며 한 마디도 안 하고, 집에 내려준 뒤 일부러 나 기분 안 좋다는 거 표현하려 풀악셀 밟아 부아앙- 하면서 가버려.

 

그게 헌신이야? 그냥 상대가 알아서 택시타고 들어오게 놔뒀으면 오히려 나았을 걸, 이건 그냥 거기까지 가서는 사람 불편하게 만들고 이후엔 또 기분 나쁘게 만든 거 아니야? 그게 상대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모습이야? 세상 누구보다 앞장 서 상대를 괴롭히는 거 아니고?

 

이 이야기를 보면서 생각해 봐봐. 난 내일 중요한 시험이 있어서 준비해야해. 그런데 오늘 여친이 코스트코에 장보러 간대. 난 차가 있는데 여친은 차가 없어. 여친은 택시 타고 다녀온대. 난 그 말을 듣고는 잠깐 짬 내서 같이 다녀오면 될 거라 생각하고는 내가 같이 가주겠다고 해. 여친은 고맙대. 같이 장 봤는데 사람도 많고 해서 시간이 좀 걸렸어. 거기다 여친이 코코 왔으니 치킨베이크는 먹어줘야 한다면서 그걸 또 같이 먹으며 시간을 보냈어. 점심시간쯤 나갔는데, 장 보고는 집에 다 올려다 주고 돌아와 보니 반나절이 지나가 있어. 다음 날, 준비를 잘 못했던 시험은 망치고 말았지. 그리고 낙방에 대해 위로하는 여친에게 난

 

“넌 내가 다음 날 시험인 걸 알았으면 그렇게 무계획적으로 장을 봤으면 안 된 거지. 내가 같이 가겠다고 한 건 살 물건들이 정리되어 있는 줄 알았던 거야. 근데 넌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야 한다면서 위층 올라갔다가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기도 했잖아. 그리고 치킨베이크 먹어야 한다고 해서 주문하느라 기다리고, 자리 안 나서 자리 날 때까지 또 기다리고. 집에 가서 짐 올려줄 때에도 고마워하기보다는 냉동식품이랑 뜨거운 거 같이 놔두면 안 되는데 왜 같이 담았냐고 말하는 널 보면서 좀 그렇더라.

여하튼 그래서 난 앞으로 너 장보러 갈 때 같이 안 가기로 했어. 내가 이런 얘기를 한다고 서운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이런 이유가 있어서 이런 결정을 한 거라 생각해줘. 네가 날 정말 생각했다면, 내가 장보러 같이 가겠다고 했을 때 시험 준비를 하라면서 말렸어야 하는 거 아닌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내가 이렇게 말해도 아마 넌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또 핑계부터 댈 것 같은데, 핑계를 듣고 싶은 건 아니니까 핑계를 댈 거라면 답장 안 해도 돼. 가만히 있으면 미안해하는 걸로 생각할게.”

 

라는 이야기를 해.

 

저게 맞는 말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숨 막히지 않아? 끔찍하지 않아? 장보러 같이 가준 건 선한 가면 쓰고 한 일이고, 실제로는 불만과 짜증 투성이인 저런 마음을 지니고 있는 사람인 걸로 보이지 않아? 내가 저럴 경우, 여친은 눈물로 반성하고 회개하며 내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날 대하면 되는 거야? 그럼 난 마음이 풀어져 앞으로 또 헌신과 호의를 베풀고, 여친은 그것에 감사하며 보답하는 모습으로 날 만나야 ‘서로가 서로를 위하며 힘이 되는 바람직한 연애’가 되는 거야?

 

 

3.논리적으론 내가 다 맞으니, 여친이 구제불능인 걸까?

 

여친이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 공감능력도 떨어지고 애정표현도 안 하기 때문에 헤어질 거라 말한다면, 나도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어. 겪을 만큼 겪어봤는데 아니다 싶다면 헤어져야 하는 거지 뭐. 그런데 그런 판단을 하게 된 계기들-여친에겐 나만큼의 애정이 없다, 고마워할 줄 모른다, 공감능력이 떨어진다-이, ‘난 나도 돌보지 않고 연애에 올인하려 하는데 여친은 자길 돌보면서 연애하려는 것 같아서’라면, 그건 이쪽에게도 큰 문제가 있다고 봐야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

 

“저는 좀 멀리까지 내다보며 연애하는 편입니다. 지금 뭔가 안 되고 안 맞는 게 있다면, 더 이어갈 것 없이 정리하는 게 낫지 않아 싶어요. 이제 여친 생일도 다가오는데, 정말 아닌 것 같은 사람이라면 생일에 돈 쓸 게 아깝네요.”

 

여친 생일에 돈 쓰는 게 아까울 정도라면, 무리해서 그 연애를 유지하진 마. 실제로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무리해서 선물 한 번 해보고 상대의 반응을 보고 있으니까, 자꾸 못마땅하거나 불만족한 부분이 생길 수도 있어. 어렵고 부담되는 건 하지 마. 둘 다 돈 별로 없는데 기념일이라고 15만원짜리 숙소 예약한다며

 

“네가 6만원정도만 부담해. 그럼 나머지는 내가 부담할게.”

 

하고 있으면 산통도 깨지고 분위기도 안 살고 그러는 거야. 누구 보여주려고 연애하는 것도 아닌데, 뭐하러 그렇게 연애를 위한 연애를 하면서 둘 다 고통 받아?

 

논리적으로만 따지자면 태곤씨가 하는 말들도 다 맞아. 저렇게 말했어도 어쨌든 태곤씨가 상대보다 더 부담하겠다 제안한 건데, 저런 이야기에 그저 실망하거나 6만원 부담하는 게 당장 어려울 것 같다말하지만 ‘내가 다 댄다고 하면 그저 따라왔겠지’하는 마음으로 보면 괘씸할 수도 있어. 근데 연애는 논리로 하는 거 아니고, 내가 벌여놓곤 상대에게 얼마 부담하라고 하는 건 현명하지 않은 일이잖아.

 

단순하게 생각해 봐. 내가 이번 추석에 태곤씨에게 선물을 하나 하려고 했어. 근데 3만원짜리 과일상자 하나 했으면 둘 다 기분 좋게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난 태곤씨에게 연락해선

 

“내가 선물하려고 하는데, 곶감 알아보니까 4만 9천원이네. 3만원 내가 부담할 테니까 네가 2만원 정도 부담할래? 아니라고? 어차피 곶감 사서 주면 네가 다 먹는 건데 2만원 쓰기가 싫어? 아님 그냥 3만원짜리 사과 받고 말든가. 난 제안했으니, 선택은 네가 해.”

 

라는 이야기를 해. 그럼 그 사과가 고맙게 느껴지겠어? 또, 내가 매번 명절마다 연락해선 저런 식으로 말하면, 태곤씨도 나랑은 뭐든 안 주고 안 받기 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끝으로 하나 더 말하자면, 여자친구가 태곤씨가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날 경우 현재 ‘여친의 문제’로 여겨지는 많은 부분들이 아예 벌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한 번 해봤으면 좋겠어. 무조건 이렇게 생각하라는 건 아니지만, 여친이 탄탄하게 자리를 잡은 또래의 남자와 만났다면 결혼 이야기도 진행되고 있을 거고, ‘남친 덕’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받았을 수 있고, 앞으로 서로를 더 존중하기 위해 존댓말 사용해라 마라 하는 이야기 안 듣고도 연애할 수 있잖아. 태곤씨만 더 괜찮고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라, 여친 역시 그럴 수 있다는 얘기야.

 

어떤 커플을 보면, 치킨 먹을 때 여친이 양념 묻은 손으로 무를 집어 먹었다는 걸로 갈구고, 공포 분위기 조성하고, 여친이 속상해서 울면

 

“야. 울지 말고 먹으라 했다. 아 진짜 짜증나게.”

 

따위의 이야기만 하는 사례가 있어. 그 남자는 여친이 진짜 개념도 없고 말해도 고쳐지지 않는 하자 투성이의 사람이라 생각하며 이별통보를 했는데, 그 여자는 이별 후 좀 힘들어 하다 현재는 새로운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 고 있어. 새로운 남자는 양념 묻은 손으로 무 집어 먹었다는 걸로 갈구지도 않고, 자취방 지박령이 붙어 나가지도 않은 채 겨우 치킨이나 시켜먹는 데이트만 하지도 않아. 태곤씨가 보기엔, 이 커플의 사례에서 누가 문제였던 것 같아?

 

다 태곤씨 잘못이며 태곤씨가 틀렸다는 얘기는 아니야. 태곤씨도 속상하고 억울한 부분이 있다는 거 알아. 아는데, 여자친구와 헤어지더라도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들을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그렇지 않을 경우, 다음 사람을 만나도 그저 똑같은 지점에서 ‘이 여자도 문제가 많네. 여자들이 다 이런가?’하며 상대의 한계를 긋는 걸 반복할 수 있거든.

 

태곤씨가 태곤씨의 입장에서 논리적으로만 따져 여친과의 이야기를 웹에 올리면, 많은 사람들이 태곤씨 편을 들어주며 여친이 이상한 여자인 거라 말하겠지. 그러면 그 ‘이상한 여자’인 여친을 얼른 정리해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들 거고, 그런 생각을 가지며 만나다보면 보는 것마다 이상하고 이해 안 가는 부분들이 더 보이겠지. 심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상대를 보면 모든 게 다 의심스러운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불쌍해. 그 사람이. 며칠 전까지 둘이 전시회 같이 보러 갈 얘기를 했으니 기대하고 있을 거고, 곧 자신의 생일이 돌아오니 생일도 함께 보낼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고, 또 지적 받은 것들을 고치려 노력하며 이쪽이 제안한 대로 존대도 쓰고 있는데, 이쪽은 그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게 뒤에서 헤어질 준비와 정리하고 있잖아. 그것도 사실 오래 전부터.

 

그러니 헤어질 거라면, 좋은 기억으로 남기겠다며 다른 핑계를 대며 상대를 보내주는 것처럼 말하지 말고, 갑자기 최근에 튀어나온 일을 구실 삼아 이별하게 된 것처럼 꾸미지 말고, 그냥 지금까지 들었던 감정과 생각들을 모두 다 털어 놓은 채 헤어지길 권할게. 속으로는 다른 생각 하고 있으면서도 괜찮은 척, 이해하는 척, 아닌 척 하는 건 그간 많이 해왔으니까, 마지막으로 이번만이라도 상대가 태곤씨의 말을 모두 알아들으며 이해할 수 있는 ‘동등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전부 말했으면 해. 상대는 못 알아들을 거라 생각하며 대충 상대 레벨에 맞게 말해주려 하는 건 배려가 아냐. 기만이지. 설령 그게 배려라고 해도 이제는 그런 게 다 의미 없고 필요 없으니까, 마지막은 진솔할 수 있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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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자친구였으면 이러이러 했을 것 같은데." 여자친구는 네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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