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다 하고 청첩장까지 나온 상황에 파혼통보를 하는 게 더 없이 무책임하고 잔인한 일로 느껴지겠지만, 그렇다고
“알겠고, 그런 건 미안하고 아무튼 고칠 테니, 일단 결혼하자.”
라며 그저 몇 번 잡다가, 상대의 마음이 돌아설 기미가 안 보이자 저주하며 ‘다 네 탓’이라는 얘기를 하진 말자. 파혼할 마음까지를 굳힌 상대를 대충 달래서 일단 식을 올릴 생각하거나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상대를 다시 돌아 앉힐 생각하는 것보다, 결혼을 미루더라도 ‘우리 둘의 문제’가 대체 뭐였는지, 상대가 왜 그런 생각까지를 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확인해 봐야한다.
1.그가 파혼을 결정한 첫 번째 이유
그는 결혼준비를 하며, 자신이 생각했던 결혼과 현실에서의 결혼은 큰 차이가 있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 G양과의 연애가 힘이 되고 행복하니, 당연히 결혼하면 둘만의 공간에서 같이 살며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을 거라 단순히 달콤한 꿈을 꾸었는데, 결혼날짜를 잡고, 서로의 부모님과 더 많이 마주치고, 또 같이 살 집을 알아보고 하는 과정을 겪던 중 서로가 생각하는 결혼에는 차이가 있다는 걸 점점 느끼게 된 것 같다.
남친이 자신의 현재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에 대해 말했는데, 그것에 대해 여친이
“우리 그렇게 시작해야해? 첫 시작을 그렇게 하는 게 좀 그러네. 우리 엄마가 이 얘기를 들으면 속상해하실 듯.”
이라는 반응을 보이면, 그는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여친이 기대한 반응은
“지금은 이렇게 시작하지만, 꼭 행복하게 해줄게!”
라는 것이겠지만, 현실에서의 상대는 그걸 자신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며
‘난 이렇게 시작하는 거라 해도 둘이 함께 있어서 좋은데, 쟨 아닌가보네. 더 좋고, 더 크고, 더 괜찮은 것들을 내가 해줘야만 그제야 겨우 보통은 된다고 생각할 것 같네.’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특히 결혼 후 일단 남자의 벌이로 생활하는 것까지만 얘기가 된 상황이라면, 그에겐 그간 자신의 벌이로 혼자 먹고 사는 것에 대해 별 걱정 없이 살던 삶이, ‘둘이 같이 살 경우 상대의 불평과 불만족을 야기할 수 있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냥 연애만 할 때에는 각자 책임지고 있어서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부분들이, 결혼 후엔 온통 자신의 책임과 의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불평이 많아지는 걸 보니 결혼 후엔 그게 다 잔소리가 될 것 같고, 불만족하는 부분들을 가만히 들어보니 현재의 자신에게 만족하는 것 같지도 않은 상황이라면, 자연히 그 결혼을 포기하는 게 가장 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가 꿈꿨던 결혼은 둘이 산속에 들어가 고구마 농사를 지어먹으며 살아도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것 같던 것이었는데, 결혼을 진행하며 돌아가는 걸 보니 여친은
-꼭 산속에 들어가서 살아야 함?
-나 손에 흙 묻는 거 완전 싫음. 농사 노노.
-아 멀리가기 싫다. 아는 사람들도 다 여기 있는데.
라는 생각을 가진 듯하기에, 서로 다른 결혼생활을 꿈꾸고 있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품고 있는 와중에 여친은
“결혼식 준비 내가 거의 다 알아서 하는 중인데 넌 나 신경 안 쓰냐. 빨리 신혼살림도 사고 사진촬영도 예쁘게 해야 하는데, 금방 다 되는 게 없어서 난 요즘 답답하다.”
라는 이야기를 하니, 자신은 자꾸 잘못해서 사과해야 하는 사람이 되고 미안하다는 얘기를 하며 그 보답을 해주겠다는 약속으로 진정시켜야 할뿐이니, 앞으로의 생활이 독촉 받는-그렇게 독촉 받아 애써 보답해도 그게 겨우 ‘제로’가 될 뿐인- 삶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점점 포기에 대한 마음을 키워간 것 같다.
2.그가 파혼을 결정한 두 번째 이유
G양이 그의 가족들과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그에게 따지며 날 선 이야기들을 한 게, 그로 하여금 파혼에 대한 결심을 굳히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라 난 생각한다.
남친 부모님과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또 댓글로 콜로세움이 열릴 수 있으니 그 부분은 여기서 덮어두자. 다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자꾸 다 자신이 사과를 해야 하는 일들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이제는 부모님에 대한 불평까지 등장하니 그는
‘둘만의 문제 외에도 다른 문제들이 이렇게 있을 수 있겠구나. 둘의 문제는 내가 그냥 사과하는 것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해도, 이건 그렇게도 할 수 없을 것 같네. 내가 생각했던 결혼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흘러가는 걸 보니 내려놓는 게 맞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보면
‘내가 이 결혼만 포기하면, 나는 나대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으며, 뭔갈 갚아나가거나 사과하며 지내지 않아도 될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테니 말이다.
여보 자기 쪽쪽하며 애정표현할 땐 좋긴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땐 어김없이 ‘너’라고 불리고, 또 인정도 못 받은 채 여친이 답답하다고 해도 사과, 서운하다고 해도 사과, 화내도 사과해야 하는 관계. 그런 현 상황을 기반으로 미래를 그려보면, 아무래도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을 것처럼은 보기 힘든 것 아닐까.
경황이 없고 오만 가지 감정이 다 들어 그런 것이겠지만, 그가 파혼을 이야기 할 때 G양이 보인 대처 역시 악수였다고 난 생각한다. 갈라서게 된다면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은 채 심술을 부릴 거란 얘기를 한 지점이라든지, 앞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건 상대가 될 거라고 말한 지점 등이 그렇다. 어르고 달래 봐도 안 되니 겁이라도 주거나, 아니면 어차피 파혼할 거라면 속이라도 시원하게 복수해주고 싶어서 그런 걸 수 있는데, 그런 선택들은 둘의 관계를 세 번이나 확인사살 한 거라 할 수 있겠다.
위에 적어둔 ‘부모님과의 일’을 다시 한 번 읽어보니 저렇게만 써두면 ‘상대 부모님에 대해선 절대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고 잘못 읽힐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내 말은 상대 부모님의 태도에 상처를 받았을 경우 그걸 상대에게 말하며 속상함을 전달해야지, 그것에 대한 화풀이를 상대에게 하려 들거나 ‘그리고 너희 부모님만 문제가 아니라 너도 문제야’라며 불만까지를 쏟아내선 안 된다는 얘기로 받아들여줬으면 한다.
3.그럼 이제 전 뭘 어떻게 해야 하죠?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게 단순히 ‘남친의 무책임함’때문에만 벌어진 일은 아니며, 그의 입장에서 느꼈을 여러 감정들에 대해 G양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권하고 싶은 건, 지금까지처럼 단순히 ‘다 고칠 테니 다시 생각해봐라’라는 이야기만 하기보다는, 그가 느꼈을 감정과 가지고 있었을 고민들을 짚어보며 G양에게 떠오른 감정들을 그에게 전하는 거다. 그리고 그가 다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것 같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했던 행동들, 또 배신당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극단적으로 했던 행동들에 대해서는 사과했으면 한다.
그간 둘의 연애는 G양이 리드하거나 그를 설득해 G양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왔으니, 이번엔 아무 것도 제안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말고 그냥 G양의 생각과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 정도만 했으면 한다. 말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G양이 그렇게 이끌어온 부분들이 많았기에 G양은 더 불안하고 서운한 지점들이 많았던 것 같다고 말해도 좋다.
-이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 다시 회복될 가능성은?
이라는 질문에 대한 내 솔직한 대답을 원한다면, 난 ‘이미 너무 많은 재확인을 하며 부숴나서, 결합은 아무래도 힘들 듯’이라고 대답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양에게 위와 같은 해결책을 권한 건, 그래도 한때 결혼까지 진행할 정도였던 두 사람이 이런 마지막으로 인해 서로에 대한 기억을 잿빛으로만 남겨두지 않기 위함이며, 더듬거리며 말하더라도 G양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에서 상대는 희망을 볼 수도 있고, 나아가 그런 시도가 G양에게도 앞으로의 연애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G양은 부모님과도 자신의 연애에 대해 어렵지 않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 같으니, 이 매뉴얼을 읽고 G양에게 든 생각들까지를 부모님께도 말씀드리길 권한다. 그래야 혹 상대와 극적으로 화해를 하더라도 이후의 일이 완만할 수 있는 거지, 부모님들께서 지금처럼 겉으로 드러난 것만 문제만을 보시곤 상대를 ‘무책임하게 파혼한 놈’으로만 여기면 재회를 해도 상대는 부모님께 원수로 여겨질 수 있다. 마침 주말이고 하니, 부모님과 치맥 한 잔 하며 허심탄회하게 G양의 속내를 털어놔 보길 바란다.
나도 치맥 한 잔 해야지. 남은 연휴 다들 편안하게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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