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씨는 자신의 사연에 대해
“아마 제가 평범한 연애를 했기에 그녀는 질렸던 것 같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난 대부분의 여자가 ‘지훈씨 여친’이라는 자리에서는 버티기 힘들었을 거라고 본다. 내가 발견한 지훈씨의 문제는
-무심하다
-답답하다
-자주 꿍한다
-포기가 빠르다
등으로, 사연 곳곳에 지뢰처럼 산재해있다. 지훈씨는 답답하고 억울한 점이 있지만 일단은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맹목적인 사과와 재회요청을 할 생각인 것 같은데, 그러기에 앞서 ‘무엇이 문제였는가’를 분명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난 생각한다. 출발해 보자.
1.엄마와 여자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
엄마와 여자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엄마가 집에 있을 때 여자친구를 불러 집데이트를 하는 것이다. 둘이 방에 들어가 문 닫은 채 엄마에게 전혀 관심을 안 두는 것만으로도 우선 반은 성공이다.
방문 닫고 둘이 꽁냥꽁냥 하다가, 배고프다는 여자친구를 위해 요리를 해 방으로 들고 들어가면 더욱 효과적이다. 엄마를 위해서는 라면 하나 끓여준 적 없던 아들이,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친구를 위해 요리를 하는 모습은 엄마를 시험에 들게 하기 충분하다. 요리한 걸 방으로 가져가 여자친구를 먹이고, 이후 설거지는 늘 그랬듯 당연히 엄마 몫인 것처럼 주방에 갖다 두면, 설거지를 하는 엄마에게 처참한 기분까지를 선물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어머니께서 ‘뼈가 담긴 농담’을 한 마디 하실 수 있는데,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냥 듣고 흘리는 게 좋다. 여자친구는 그 말에 담긴 뜻을 알아채곤 불안해하고 곤란해 할 텐데, 여자친구의 그런 모습은 확대해석이나 과잉반응으로 여기며
“우리 엄마 내가 잘 알지. 나쁜 마음으로 그런 얘기할 사람 절대 아니야. 우리 엄마가 그런 의도로 얘기할 사람이 절대 아니라니까?”
정도로 대응하는 게 좋다. 엄마가 그냥 별 의미 없이 한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그녀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며, 앞으로 집데이트를 줄이려는 그녀에겐 ‘돈 아껴야 하지 않냐’는 이야기로 대응하자. 이런 대응에 발끈해 ‘왜 내 편은 안 들어주냐’고 말하는 그녀에겐 이별통보를 하면 된다.
2.권태기를 부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일단, 움직임을 최소하하며 핑계를 찾자. 시간이 안 맞으니 남는 시간엔 그냥 서로 할 거 하기로 하고, 여행은 돈도 들고 번거로우니 그 돈으로 차라리 동네에서 아무거나 하며 보내고, 데리러 가거나 만나는 일에는 상대가 잘못하고 있는 걸 찾아내 그걸 핑계로 호의를 거두자. 매번 내가 운전해서 데려다 주고 오고하는데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식의 핑계를 찾아내면 된다.
무슨 데이트를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 같은 건 번거롭고 귀찮은데다 나만 해야 하는 일도 아니니, 그런 건 접어둔 채 그냥 만나지는 대로 만나는 게 좋다. 너무 안 만나면 권태기 부르는 걸 넘어서 이별을 부를 수 있으니, 의무적으로 주말 정도는 함께 보내자. 토요일쯤 집으로 오라고 해서 밥 먹고 예능 좀 보다가, 다음 날 상대가 간다고 하면 집에 데려다 주면 되는 거고, 아니면 일요일도 대충 토요일과 비슷하게 보내면 된다.
여행 같은 건, 사서 고생하는 일이니 생략하자. 이불 밖은 위험하다. 그냥 이렇게 만나도 잘 만나지는데 뭐하러 더 알아보고 찾아보고 계획하는가. 고민은 ‘무슨 영화 다운 받아 볼까?’ 정도면 충분하다. 나가기 귀찮으니 음식은 집에서 시켜 먹고, 내가 보고 싶은 거 연인이 안 본다고 하면 할 거 하라고 둔 채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 이런 게 일상의 연애며, 자연스러운 연애며, 편한 연애 아니겠는가.
칭찬, 감사, 애정표현 같은 것도 생략하자.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니 말 안 해도 알 것이며, 나도 내 시간과 돈 할애하며 연애하고 있는 것 아닌가. 어제 치킨도 내 돈으로 시켰고 집에 갈 때도 내가 바래다 줬는데! 상대가 뭔가를 더 바란다면, 참 바라는 것도 많다고 생각하자. 몇 주 전에는 상대가 하도 징징거려서 아웃백도 데려가지 않았는가. 뭐가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냐고 물어보고, 제대로 대답도 못하면 나도 모르겠다며 내버려두자. 한옥마을 같은 거 보고 싶다고 하면, 거기 가봐야 바가지고 주말엔 사람 미어터지는데 뭐하러 가냐며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대응하자.
대략 6개월에서 1년 정도를 이렇게 만나면, 상대는 결국 ‘우리 연애엔 미래가 안 보인다. 생기도 없고 재미도 없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상대가 질려서 헤어지겠다고 하는 거고 방법 없으니, 알겠다고 답하고 헤어지자. 오래 전부터 마음이 식어간 것 같고 이별도 덤덤하게 말하는데 뭘 더 어떻게 하겠는가. 나도 연애하며 늘 즐겁고 좋기만 하진 않았던 부분들을 찾아내 합리화 하며, 쌍방과실로 정리하자.
3.마음 편하게 이별에 대처하는 최고의 방법
왜 갑자기 이별통보를 하게 되었는지를 묻자. 어렴풋이 알 것 같아도, 상대에게 재차 확인 받아야 하니 묻자. 그러면 그녀가 ‘갑자기 이별을 결심한 게 아니라 예전부터 블라블라….’라는 이야기를 할 텐데, 다른 건 다 접어두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큰 내색 안 하며 날 만나왔다는 것에 분노하고 실망하자.
그렇게 그녀에게서 ‘이별사유’를 듣고 난 뒤엔 전화번호, 카톡, 페북, 인스타 등을 전부 삭제하거나 차단하는 게 좋다. 혹 그녀에게서 이별통보를 받자마자 분노하고 실망했다면, 바로 그때 삭제하거나 차단해도 좋다. 이별통보를 문자나 전화로 받은 즉시 삭제하고 차단하자. ‘너라는 사람에 대한 모든 걸 지워버리겠다’는 마음자세로 물건도 정리하고, 데이트 통장 같은 게 있으면 즉시 정산해 송금한 뒤 폭파하자.
그러고 나면, 한 일주일 쯤 지나 ‘내가 잘못했던 것들’이 하나 둘 떠오르며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수 있다. 바로 그때 상대에게 연락해 고해성사 하듯 내 잘못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게 널 아프게 했을 것 같다고 말하면, 끝장이다. 그러다간 다시 만나게 될 수 있으니 절대 그래선 안 된다. 자책은 말 그대로 혼자 하는 것이니 혼자 하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서른한 가지 내 잘못과 미안한 점들에 대해서 상대에게 구구절절 말해선 안 된다. 상대에게는 ‘다 미안하고, 다시 만나면 잘해주겠다’ 정도로 결론만 얘기하자.
여기까지 잘 해냈다면 그녀도 이제 그런 대화를 하는 것에 피곤해하기 시작할 텐데, 그땐
‘내가 이렇게 붙잡는데도 안 잡히는 걸 보니, 정말 마음이 떠도 많이 떴구나. 그래, 사실 다시 만난다고 해도 난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할 텐데, 그러느니 안 만나는 게 나을 수 있어.’
라며 실망하고 체념하자. 그렇게 지내며 이별 후에는 친구들 만나 어울리며 ‘역시 솔로일 때가 편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좀 하다가, 훗날 공허함과 외로움이 느껴지면 새로운 사람 만나 ‘두 시간 거리도 한달음에 달려가기’를 시전하다, 편해지고 익숙해지면 또 ‘일상적인 연애’한다며 집 데이트를 하면 되니 말이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두 사람이 헤어진 것이 그저 ‘집 데이트만 해서’라거나 ‘이벤트가 없어서’라는 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리라 생각한다. 그 관계는 그냥 만나지는 대로만 만나졌을 뿐이며, 이전에 존재했던 기쁨과 즐거움과 열정은 딱딱하게 말라 비틀어져 있었고, 편한 것만 찾다보니 고립된 곳에서 움직임 없이 만나게 되었으며, 익숙해진 까닭에 생략하는 게 많아졌다. 그런 관계가 지속되다 보니, 미래도 참 재미없고 지루할 것처럼 느껴지게 된 것이고 말이다.
더불어 위에서 이야기 한 것들은 사실 ‘지금 처음 듣는 것’이 아니라 연인이 지속적으로 호소해왔던 부분들인데, 연애할 땐 그게 다 잔소리 같고 상대가 이상한 불평을 하는 것 같아서 이쪽의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대응으로 묵살하기 마련이었다. 아니면 나도 억욱하고 답답하고 분한 것 많은데 상대가 불평을 하니 그만 두자는 얘기를 몇 차례 해선, 관계에 실금이 가도록 만들었던 것이고 말이다.
그렇게 되어버린 현 상황에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상대가 이 연애를 하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 것인지 내가 다시 짚어가며 사과하고, 내가 그 연애에서는 어떤 사람처럼 보였을 것인지 이제 알 것 같다는 이야기를 털어 놓는 것이다. 이렇듯 ‘늦었지만 이제라도 문제가 뭔지 알았고, 그래서 그것 때문에 네가 어떨지 깨달았으며, 다시 시작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알 것 같다’는 고백이 선행된 뒤 재회를 요청해도 요청해야 하는 거지, 단순히 ‘진짜 잘해주도록 노력할 테니 다시 만나보자’는 이야기만 해서는 아무 효과도 없으리라는 걸 기억해뒀으면 한다.
그 결과가 꼭 재회가 아니더라도, 지훈씨의 속마음을 다 꺼내 상대에게 보여주는 건 지훈씨에게도 분명 큰 도움이 될 테니, 그간 ‘결론’만을 말하거나 ‘말 안 하고 넘어가는 게 내가 참는 것’이라 생각하며 답답하게 굴었던 것과 달리 이번엔 속 시원하게 다 털어 놓고 대화해 보길 권한다.
▼ "무한님도 집데이트 하시잖아요?" 그건 낚시가 너무 힘들다고 살려달라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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