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둑어 낚시는 절대 실패할 일이 없다. 워낙 개체수가 많은데다 식탐이 강한 녀석들이라, 아무거나 대충 꽂아 던져도 잘 물고 올라온다. 마음먹고 가서 반나절 잡으면, 아이스박스 하나 가득 망둑어를 채워올 수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둑어 낚시를 즐기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게 갓 낚시에 입문한 사람들이나 체험낚시를 하려는 사람들만 망둑어를 잡을 뿐, 자기 돈 주고 낚싯대를 살 정도라면 웬만큼 꽝을 치지 않는 이상 망둑어낚시는 잘 하지 않는다. 너무 흔하고 쉬운 게 그 이유이며, 무엇보다 망둑어란 녀석들에게선 이렇다 할 입질이나 손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얼마 전 세 번 정도 꽝을 치다 성질 뻗쳐서는, 망둑어에게 화풀이 하러 실패 없는 망둑어 낚시를 다녀왔다. 그런데 이 녀석들, 언제나처럼 그냥 덥석 한 번에 먹이를 물고서는 가만히 있는다. ‘이거 뭐야? 잡힌 거야 안 잡힌 거야?’ 하고 릴을 감아보면, 아무 저항도 하지 않은 채 또 질질질 끌려 나온다. 다른 고기였으면 막 파이팅 넘치게 이리저리 뛰고 바늘털이도 할 텐데, 망둑어는 ‘아, 이게 미끼였습니까? 알겠습니다.’하며 조용히 끌려온다.
때문에 초반에 가서 한 열 마리 금방 잡고 나면, 오히려 미끼 끼우고 또 캐스팅 했다가 릴 감았다가 하는 게 귀찮아져 낚싯대를 내려놓게 된다. 숭어나 좀 물어줬으면 해서 멀리 던져 방울 달아놔도, ‘딸랑-’ 한 번 하곤 이어서 소식이 없는 걸 보니 또 망둑어라 그냥 놔두게 된다. 그렇게 그냥 놔둬도 어차피 감아보면 물려 있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낚시하러 가서 아무리 지쳐도 “딱 두 번만 더 던지고 가자. 진짜 딱 두 번.”이라며 미련을 못 버리는 나도, 망둑어 낚시를 하러 가서는 금방 “집에 가자.”라는 소리를 하게 된다.
1.망둑어 같은 남친과의 연애.
사연의 주인공인 B씨는 화를 내는 일이 거의 없으며, 의견이 엇갈릴 때 포기나 양보가 빠르고, 여자친구가 다다다다 쏟아내는 말을 이렇다 할 대꾸 없이 잘 듣는다.
“그럼 좋은 거 아닌가요? 화가 나서 막말을 하거나, 주장을 굽히지 않거나, 말하는 걸 듣지 않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뭐 그런 식으로 비교해 따지자면 그렇다고 할 수 있긴 한데, 그게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조율이 필요한 시점에 말을 꺼내도 그냥 맹목적으로 양보하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는 반응을 보일 뿐이라면, 그런 양보와 무조건적 허용이 상대에겐 얻어 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 않은가.
개성이 느껴지는 한 사람과 연애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아무 색 없는 사람에게 접대를 받는 느낌이라고 할까. 내가 이러겠다고 하면 이러라고 하고, 저러겠다고 하면 저러라고 하며, 넌 하고 싶은 거 없냐고 물으니 너 하고 싶은 거 하면 된다는 말이 돌아오는 연애. ‘자기주장 너무 강한 상대’와 연애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차라리 이런 연애를 부러워할지 모르지만, 이런 연애는 또 이런 연애대로 ‘영혼 없는 서비스’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사람이라면 좀 섭섭해 할 때도 있고, 질투할 때도 있고, 투정을 할 때도 있고 그러는 게 일반적인데, 그런 게 전혀 없이 ‘모두 허용, 내가 다 받아들임’인 상황인 거다. 친구랑 만나러 간다고 하면 ‘재미있게 놀아’라는 대답이 오긴 하는데, 그 이후로는 그냥 ‘알아서 잘 만나고 들어와서 자겠지’ 하며 이쪽은 이쪽대로 할 거 하다가 그냥 잔다. 여친이 못 가겠다고 하면 알았다며 받아들이고, 못 하겠다고 하면 하지 말라고 하며, 너는 왜 네 생각을 말하지 않는거냐고 하면 ‘미안해, 근데 난 별로 그런 거 없는데’라는 말이 돌아오는 것이다.
물고기에 비유하자면 망둑어다. 입질도 단순하고, 손맛이라는 걸 느낄 것도 없이 그냥 질질질 끌려온다. 이쪽은 ‘난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편하게 만들어 주려 노력한 건데, 왜 이런 내 노력은 안 알아주는 건가?’하며 나름대로 답답해하는데, 여친이 바라는 건 그런 노력이 아니라 솔직한 생각과 의견과 주관을 드러내는 거다. 더 많이 ‘예스’를 하라는 게 아니라 ‘예스맨’에서 벗어나달라는 것이니, 뭘 더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냐고만 묻지 말고, B씨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말하길 권한다.
2.과잉보호인지 핑계인지 확실친 않지만, 하지 말자.
카톡대화가 전부 다 첨부된 게 아니라서 확실친 않지만, 첨부된 만큼의 내용을 보면 B씨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그때 그건 널 생각해서 그랬던 거다.
라는 이야기를 한다.
전화 일찍 끊은 것 -> 너 빨리 자야 하니까.
주말에 안 만난 것 -> 너 약속 있었으니까.
그때 약속 안 잡은 것 -> 너 아팠으니까.
티켓 취소한 것 -> 너 안 간다고 했으니까.
저게 정말 과잉보호 때문이든 아니면 나중에 핑계를 대려다 보니 나온 말이든, 연애는 관계인 거지 일이 아니며, 여자친구는 어린애가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걸 다 B씨가 짐작하고 예상해가며 하려 들다간 B씨도 지치게 되며, 상대는 상대대로 ‘잘 차려져 있지만 결국은 B씨의 손바닥 위’에만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여친의 몫까지 다 고려해서 결론내지 말고, B씨의 몫만 하자. B씨가 해야 할 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거다. B씨는 여친과 토요일에 만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여친이 친구를 잠깐 보기로 했다고 말하면,
“아 그래? 알았어. 재미있게 놀아.”
라고 말하는 대신,
“아 그래? 난 이따가 보려고 했는데! 친구랑 몇 시에 보기로 했어?”
라고 말하며 B씨의 생각을 표현하면 된다. 지금까지 B씨는 그러지 않은 채 전자처럼 행동하다, 나중에 갈등이 생기면 그제야
“근데 난 그때 너 만나려고 했었는데? 너 약속 있어서 못 만나게 된 거잖아. 나한테 뭐라고 할 게 아니라, 시간 많은 토요일에 내가 아닌 친구를 만난 너의 잘못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만 할 뿐이니, 여친은 속이 뒤집히고 울화가 치미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B씨의 여친이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게 바로 저 지점인 거다. 날 과잉보호 한다고 하지만 그러면서 결국은 둘 다 만족 못하는 결과 때문에 또 싸울 거라면, 우린 대체 왜 만나고 있냐고 묻는 것이다. 그러니 나중에 내 핑계만 댈 게 아니라 그냥 너도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생각하는 거 다 말해달라고 하는 건데, 그걸 B씨는 잘못 알아듣고는 “그럼 멀리 여행 한 번 다녀올까?”하며 또 봉사활동 하듯 접대식 데이트 하려 하니, 상황은 점점 꼬이게 된다.
3.이 순간 가장 필요한 건 뭐다? 박력과 비전.
폰만 붙잡고 있지 말자. 매력적인 남자들은 절대 폰만 붙든 채로
“너무너무 미안한데 내가 잘 이해를 못하고 있나봐….”
“내가 왜 자기를 일부러 힘들게 하겠어…. 그런 거 아니야….”
“자기야 난 그랬던 거예요…. 내가 전화할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라며 시간 질질 끌지 않는다. “전화할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라니, 그게 웬 말인가. 매력적인 남자라면 모름지기
“전화는 내가 건다.”
라며 박력 터지게 통화 버튼을 누를 수 있어야 하며, 지금처럼 상대의 투정에 논리로 다가가 끝도 없이 “미안해요…. 그럼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따위의 이야기를 할 게 아니라 급하게 달려가 “수연아 내가 이렇게 널 사랑한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섭섭하고 서운하다는 상대에게 사과만 할 게 아니라, 그냥 번쩍 들어 “해달라는 거 다 해줄게. 말만 해.”라며 풀 줄도 알아야 한단 얘기다.
“여자친구 팔십키로 넘는데요….”
꼭 번쩍 들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니, 거기에 대해선 다른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자.
웃자고 한 소리고, 여하튼 저렇게 저자세에 저자세에 저자세로 사과하다가, 결국 그런 모습에까지 경악한 여자친구가 당분간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고 해서
‘그래…. 그러고 싶은 거라면, 내가 힘들어도 여자친구가 하자는 대로 해야지….’
라며 연락 안 하고 있으면, 그 연애는 거기서 막을 내리게 될 수 있다. 여친이 낭떠러지로 드리블을 해가면 만사 제쳐두고 여친을 막아야지 그걸 보며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놔둬야지’ 해선 안 될 것 아닌가. 그러니 지금까지 그냥 언제나 가만히만 있었던 것과 달리, 이젠 나서야 할 때 나서는 박력을 좀 갖추길 바란다.
더불어 B씨가 연애에 임하는 태도를 보면 ‘뭘 어디까지 생각하며 만나는 건지’를 전혀 알 수 없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하나씩 B씨의 생각을 꺼내놓길 권한다. 여친은 이미 결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꺼내놓은 적 있음에도 불구하고 B씨는 역시나 그걸 듣기만 했는데, 그렇게 그걸 그냥 다 듣고 또 여친의 뜻대로 맞추려고 하지 말고 B씨의 생각도 말하길 권한다. 현재 여친의 입장에서 이 연애를 보면, B씨가 유효기간 다 할 때까지 맹목적인 양보를 하며 데이트메이트로 지내다가, 그 기간 지나고 나면 언제든 쉽게 굳빠이 할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 연애를 하며 여친은, 내게서 아무 확신도, 비전도 보지 못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끝으로 하나 더 얘기해주고 싶은 건,
-자, 여기까지가 내 할 만큼임. 이거면 충분함.
이라며 너무 빨리 등을 돌리진 말자는 얘기다. 데이트 하며 내가 돈을 더 쓰고 상대가 하고 싶다는 것 위주로 만나며 하루를 보냈어도, 헤어질 때쯤 되어 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가는데 쳐다도 안 보고 저벅저벅 가버리는 사람은 무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난 그런 것에 서운함을 느끼는 대원들에게
“모자란 점만 보지 말고, 그 사람과 하루 종일 같이 있었다는 것도 생각하세요. 그 사람도 분명 함께 하고 싶어서 나왔고, 데이트를 했고, 또 그렇게 바래다 준 것일 테니까요.”
라며 너무 서운해할 거리만을 찾지 말길 권하고 있는데, 반대로 그렇게 무심히 등돌리고 가버리는 대원들에게도
“화룡점정을 빼먹으셨군요. 곧 날아갈 것 같은 용을 그렸어도 눈을 안 그리면 미완인 것 아니겠습니까? 집에 꿀단지 숨겨놓은 까닭에 얼른 달려가서 혼자 먹어야 하는 거 아니면, 차에 탄 상대가 다시 ‘빠빠이’를 할 때까지 10초만 기다려도 많은 것이 해결됩니다. 연락도 그래요. 아침에 인사했다고 저녁까지 침묵하고 있지 말고, 날씨얘기라도 한 번 건네 보셔요. 주말에 둘이 뭐할지에 대해서도 대화해 보시고요.”
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자신은 원래 친한 사람들과도 그렇게 자주 연락 안 하고 폰을 자주 확인하는 타입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혼자 지낼 때의 이야기만을 하며 ‘나는 원래 그래’만 내세우지 말고, 즐겁고 행복한 연애를 위해 고 정도는 좀 노력하길 권해주고 싶다. 나 원래 그렇다며 계속 그렇게 살 거면 혼자 살지 뭐하러 연애하는가. 하루에 딱 3분만 더 연애에 마음을 쓰면 더 좋은 사람,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밑져야 본전이니, 날 믿고 한 번 해봤으면 한다.
▼아니 이거 왜 무슨 뭐 주말마다 태풍이 오는 거지? 낚시가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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