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좋은 오빠동생에 가까웠던 바로 직전 관계로의 회복’이라는 게, 그렇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아직 까진 상대에게 차단을 당한 건 아니고 상대가 피하거나 대답을 하지 않으니 조금만 뭘 어떻게 하면 회복이 될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겉으론 그렇게 살짝만 달라진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속은 이미 불에 탄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그런 관계는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다.
오늘은, 관계를 불태워버리는 불길이 시작되는 ‘3대 발화지점’을 함께 살펴볼까 한다. 개별 사연을 다루며 전부 한 번씩 이야기 한 적 있는 부분들인데, 안타깝게도 많은 남성대원들이 ‘상대 공략법’만을 찾으려 하지 ‘상대를 경악하게 만드는 헛발질’ 같은 것엔 아예 관심을 안 두는 것 같다. 이번 주에 읽은 사연에서만 벌써
“관계를 회복하고, 연인사이로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좀 알려주세요.”
라는 부탁을 세 번 받았는데, 마침 그 사연들에 ‘3대 발화지점’이 공통적으로 등장했으니, 어디서 왜 불이 나 전부 타버렸나 함께 짚어보자. 출발.
1. 상대를 차갑게 대하는 건, 섀도 복싱일 뿐이다.
남성 모태솔로부대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를 꼽으라면, 난
-심술이 나면, 짝사랑하는 상대를 차갑게 대하거나 일부러 공격적으로 대하는 것.
이라고 답하겠다. 관련된 사례는
-회사에서 나보다 다른 사람과 더 친한 모습을 보이면 다른 핑계로 갈구기.
-얼마간 이어진 상대의 짧은 답장에 화가 나선 투명인간 취급하기.
-몇 번 제안해도 상대가 응하지 않으니 비아냥거리며 말하기.
-뜬금없이 ‘실망이네’라고 말하거나, 상대를 나쁜 여자라 여기며 비웃기.
등으로 그 형태가 조금씩 다르긴 한데, ‘상대에게 열심히 구애하다가도 실망하는 부분이 생기면 심술부리기’라는 의미에서는 동일하다.
저런 모습은 상대에게 그저 ‘괴상한 변덕’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쪽은 상대에게 세상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자길 괴롭히는 사람으로 여겨지거나, 지금 드러내는 모습을 보니 그간의 호의와 친절은 모두 가식과 위선이었던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얼마쯤 그렇게 행동하니 상대에게 반응이 있었다며
“얼마간 일부러 쳐다도 안 보고 지나가거나 불러도 못 들은 척 가버렸더니, 어느 날은 그녀가 절 불러선 자신에게 화난 거 있냐고 묻더군요.”
라는 이야기를 자랑인듯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건 은연중에 밀당 같은 게 저절로 되어서 상대가 당겨온 게 아니라, 화나고 짜증나고 답답하니 사람 무시하거나 일부러 티나게 심술부리지 말아 달라는 요청에 더 가깝다. 놀랍게도 이걸 ‘화해’라고 생각하며 ‘이제 좀 잘 되려나 보다’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저 일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엔 칼로 새긴 듯한 선명하고 지우기 힘든 선이 생길 뿐이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상대를 저런 태도로 대한 이유가 고작
-상대가 다른 사람과 하는 말을 듣다 보니, ‘친한 사이란 어떤 사이인가?’라는 주제에 대해 답한 게, 나와 상대의 사이를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아서. 그건 곧 나랑은 친한 사이가 아니라는 걸 의미하는 것 같아서.
일 뿐이라면, 그건 이쪽의 확대해석과 피해망상으로 상대를 괴롭힌 것에 가깝다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
그러고 난 뒤 상대에게 사과를 하면 일단 받아주는 것 같으니 화해가 된 것 같겠지만, 그 기막힌 이유까지를 들은 상대는, 이쪽에게 실수로라도 절대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그럼 또 일부 대원들은 “사과하고 잘 풀었는데, 그 이후로 뭔가 달라졌어요. 이전의 좋은 오빠동생사이로라도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좀 알려주세요.”하며 내게 사연을 보내는데….
2. ‘거부 하나, 안 하나’로 알아보려 하면 끝장이다.
짝사랑하는 상대와 단둘이 만날 기회가 생겼다고, 거기서 스킨십 진도를 나갈 생각은 하지 말길 권한다. 살짝 위험한 상황에 처할 것 같을 때 팔 정도 한 번 잡아주는 건 그러려니 할 수 있는데, 팔 잡았는데 상대가 거부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다음엔 어깨를 잡으려 하고, 어깨를 잡았는데 거부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다음 단계로 나가려다간, 그 다음 코스가 경찰서가 될 수 있다.
자신이야 상대를 짝사랑하는 중이니 그런 상대와 옷깃만 스쳐도 아찔하겠지만, 상대 입장에선 직장이나 모임에서 잘 대해주던 이쪽이, 이상하게 자꾸 만지려는 행위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한 대원의 말을 보자.
“제가 자꾸 팔만 잡았던 것 같아서, 그녀의 어깨동무를 하며 뒤로 물러서게 하려 했는데, 그때 그녀가 좀 피했던 것 같습니다. 그 날 이후로 직장에서 마주쳐도 그녀는 제가 다가가면 의식적으로 좀 떨어지려 하는 게 느껴졌고….”
그러니까 ‘거부하나 안 하나, 피하나 안 피하나’로 상대의 마음을 알아보려 했다가, 그게 실패한 후 상대에게 사과를 할 경우, 소제목 1번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상대가 그 사과를 받아도 이미 그 관계는 상대에게 어마무시하게 부담스러운 관계로 결론 났을 확률이 높다. 상대로서는 단둘이 만났다가 또 이쪽이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니 아예 그런 일이 생길 계기가 될 수 있는 것들을 다 차단하는 것이고 말이다.
스킨십을 시도한 것에 대해 종종
“남자가 팔을 잡아서 끌거나 아니면 운전할 때 이러이러하게 하는 게, 여자들이 심쿵하는 지점이라길래….”
라는 이유를 붙이는 대원들도 있는데, 여기서 확실히 정하자. 그건,
-상대와 자주 통화하는 사이이며, 만날 약속 잡을 때 상대가 쏘겠다며 만나자는 말도 하는 사이
일 때에만 적용되는 거다. 흔히 말하는 ‘썸’을 타는 와중에 그런 지점이 상대를 심쿵하게 만들기도 하는 거지, 밥 사줄 테니까 나오라고 아주 노래를 불러서 상대를 겨우 나오게 한 뒤 밥 다 먹고 집에 간다는 상대를 데려다 주겠다며 막 팔 잡고 어깨 잡고 그러면, 상대는 그냥 무서워서 심장이 쿵쾅쿵쾅할 수 있다. 대놓고 정색하면 무안할까봐 상대가 몸을 피하는 것 정도로 의사를 전달했는데, 그걸 모르곤 ‘다음 횡단보도에서 다시 시도’ 같은 계획을 짜다간 그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 될 것이고 말이다. 그러니 이쪽의 부담스러운 시도에 상대가 거부하나 안 하나로 뭔가를 알아보려 하지 말며, 그런 시도를 하는 걸 ‘용기’라 착각하지도 말자.
3. 내가 바라는 걸 같이 하자고, 매달리지 말자.
이건 소제목 하나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긴 한데, 여하튼
-내가 좋아하는 상대와 같이 하고 싶은 일들
을 얼른 막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처럼 행동하지 말자. 연애경험이 없는 대원들은 연애를 시작해서도 막 자꾸 커플뭐뭐를 사서 하자고 하거나 커플이니까 할 수 있는 것들을 급하게 같이 하자고 요구하곤 하는데, 그런 모습은 짝사랑을 할 때에도 나타난다.
어찌 보면 소제목 2번에서 이야기한 ‘거부하나, 안 하나로 확인하기’의 연장선에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이 대원들은 ‘상대가 부담스러워하진 않을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은 채 ‘내가 상대와 같이 하고 싶은 일들’을 제안한다. 카풀을 하자거나, 아침마다 같이 뭘 먹자거나, 함께 뭘 시키자거나, 끝나고 어딜 같이 가자, 또는 주말에 뭘 함께 하자는 식의 제안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제안을 하고 상대가 응하며 친해질 수 있는 것이긴 한데, 이 대원들에겐
-현재 둘의 상황이나 친밀도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지름.
-그냥 계속 물어보는 게 제안이라 생각하며 끈질기게 물어 봄.
-딱 그 주제에 꽂혀서, 그냥 그 말만 참 멋없게 계속 함.
-다른 얘기는 전혀 안 하며, 거절당하면 며칠 기다렸다 다시 물어 봄.
이라는 문제가 있다. 한 대원이 일주일간 상대에게 보낸 메시지를 보자
월요일 – 굳모닝. 밥묵?(거절)
화요일 – 밥묵? 같이 묵?(거절)
금요일 – 안늉안늉 밥묵? 빵묵?(거절)
토요일 – 저녁 같이 먹자.(거절)오키
그러니까 이게 ‘원래는 밥 같이 잘 먹던 사이’였기 때문에, 앞서 말한 몇 가지 이유들로 상대가 선을 그은 후에도 계속해서 저렇게 묻는다는 건 이해하는데, 무슨 식사봇처럼 계속 저러는 건 아무 의미도 없으며 그냥 눈물겨운 일이 될 수 있다. 또, 저렇게 말해서 상대가 거절하면 얼른 포기하고 다음 날 재도전하는 건,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가는 방법’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얘기를 난 해주고 싶다.
‘할 수 있냐, 갈 수 있냐, 시간 있냐’만 묻기보다, 스토리텔링을 활용해 흥미 돋게 만들거나 연락이 오로지 ‘만날 약속을 잡는 수단’은 아니니 그 순간에도 대화를 나눠보라고 내가 질리도록 얘기하지 않았는가. 말 꺼내면 입에 침 고일 정도로 닭칼국수와 겉절이에 대한 얘기까진 못하더라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며, 누구나 다 할 것 같은 아주 진부한 안부 한 마디에서 좀 더 나아가 최소한 서너 줄짜리 대화를 해보길 권한다.
지금까지 얘기한 저 세 가지 발화지점만 주의해도, 상대가 이쪽이라면 경기를 일으킬만한 일들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 저 세 가지를 다 저지르곤 내게 ‘지난 달까지 괜찮았던 오빠동생사이로의 회복방법’을 묻지만 말고, 뭔가를 안 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뭔가를 잘못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닌지부터 한 번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한다.
이번에는 ‘피해야 할 지점들’에 대해 이야기 했으니, 조만간 ‘선택해야 할 지점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눠보도록 하자. 남들은 그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 연애까지 하게 된 건지도 살펴볼 예정이니, 그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노멀로그를 즐겨찾기 해두시길 바란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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