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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6)

정말 똑똑한데 연애만 못하는 여자, 이유는?

by 무한 2018. 4. 15.

평균 2~3주에 한 번 꼴로, 난 똑똑한 여자들의 사연을 받아보곤 한다. 그녀들은 아는 것도 많고, 들은 것도 많으며, 자신만의 확고한 연애관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썸을 타거나 연애한 상대에 대해

 

-<그 분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연구>, 2018 공민지

 

류의 신청서를 보낸다는 특징이 있다. 그 내용은 대략

 

“엄밀히 말하면, 그분은 사회적 생존력이라는 측면에서 결혼상대자로서 적합한 사람은….”

 

이란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는데,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뭐야 이거, 그럴 듯 하잖아…’하며 그녀를 연애연구소 직원으로 뽑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연구직으로. 그녀들은 혈액형 별 사람 분류에 대해 코웃음을 치지만 MBTI 성격유형은 신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여하튼 그렇게 논문 몇 편은 후딱 쓸 수 있을 정도로 분석을 잘하지만 정작 실제 연애에선 고전을 면치 못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오늘 함께 살펴보자.

 

 

1. 연애는 입시가 아니잖은가?

 

똑똑한 대원들에게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문제 중 하나는, 연애를 입시처럼 생각한다는 점이다. ‘객관적인 조건’을 기준으로 그 관계가 발전할 가능성을 따지거나, 나름의 가치기준인 ‘인격과 교양’ 등을 근거로 매칭 확률을 따지곤 한다.

 

뭐 둘 다 정략적인 목적으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는 거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틀린 건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연애는 같이 있는 게 즐겁고 재미있고 좋을 때 불붙어 시작하게 된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만났을 때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이쪽의 매력 중 하나인 거지, 그게 상대가 이쪽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결코 아니다.

 

아주 간단하게, 내게 호의적이며 드립도 잘 치는 냉면 배달하는 친구 A와,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가끔은 너무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듯 보이는 친구 B가 있다고 하면, 대부분 같이 놀러갈 친구로 A를 택하지 않겠는가. 친해지는 과정이라는 게, 바보스러운 일도 같이 하고, 시간낭비처럼 여겨지는 시간도 함께 보내고, 딱히 이렇다 할 주제가 없이 만나도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느낌이 들 때 인간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고 말이다.

 

종종 상대가 ‘인격과 교양이 별로인 다른 여자’와 친하게 지낸다며 그것에 분개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걸 좀 다른 기준으로 말하자면 상대에게 그녀는 ‘편한 츄리닝 같은 사람’이며 이쪽은 ‘넥타이까지 갖춘 정장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쪽이 무례함으로 생각하는 그녀의 모습이 상대에게는 친근함과 털털함으로 보일 수 있는 거고, 이쪽이 교양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무지가 상대에게는 힘 빼고 허튼소리를 해도 이해 받을 수 있는 편안함으로 느껴질 수 있는 거다.

 

오히려 반대로, 이쪽이 생각하는 ‘인격과 교양’이라는 게 상대에게는 부담스러울 정도의 높은 예의거나 ‘아니 뭐 나는, 농담도 못 하나?’라는 생각이 들게 될 정도의 고지식함일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봤으면 한다. 이쪽도 좀 허당인 구석이 있고 가끔 허튼 짓도 한다는 걸 드러내야 서로 로봇이 아니며 사람이라 생각하며 친해질 수 있는 거지, 마냥 옳고 바르고 빈틈없는 대화 하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간 그냥 사무적인 관계로 굳어질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2. 상대를 좋아하는 게 맞는가? ‘좋아함’은 무엇인가?

 

내가 어제 매운 걸 먹어서 지금 속이 좋다가도 좋지 않으니, 여기서부터는 곧장 질러가자. 이미 다리에 힘이 많이 빠진 상태다. 유산균 먹으면 좋다고 해서 챙겨 먹는데도 왜 이러지? 여하튼.

 

똑똑한 대원들이 말하는 ‘좋아함’을 보면, 그게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아함’과는 좀 거리가 있는 듯 보인다. 그 대원들의 좋아함이란,

 

-저기 있는 강아지가, 내가 불렀을 때 오길 바라는 것.

-나한테 더 잘해주고 생각 못했던 선물도 해주길 바라는 것.

-내 속마음을 다 들어주고, 위로와 격려를 해주길 원하는 것.

-뭔가 하고 싶을 때, 원하는 게 딱 그 순간 그 자리에 있길 바라는 것.

 

에 더 가깝다. 진짜 ‘너’를 좋아해서 좋아한다는 게 아니라, ‘나’의 바람들을 상대가 얼른 채워주는 상황이 오길 바라는 걸 좋아함이라 말하는 거랄까.

 

때문에 상대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이나 호기심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상대에 대해서는 진작에 이쪽 마음대로 분석을 마친 후 ‘저 사람을 소장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중점을 두고 관계에 임하곤 한다. 더불어 그 ‘상대에 대한 분석 완료’ 라는 건

 

-자기애가 강하긴 하지만 자존감은 낮아 보임.

-친해져야 자기를 드러내며, 그 전까진 눈치 보는 것 같음.

-호불호가 강한 듯 행동하지만 어느 지점에선 대세를 따름.

-어머니께 전화를 자주 드리지만, 마마보이는 아닌 듯.

 

정도를 말하는데, 거기엔 대개 상대를 얕잡아 보거나 너무 한 가지의 모습으로 정의해둔 문제도 포함된다. 종합하자면, ‘이 남자는 이런 사람일 것’이라고 못 박아둔 채, ‘이 남자를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거나 갖는 것’에 몰입하는 거라 할 수 있겠다.

 

위와 같은 지점들로 인해, 상대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쉽게 실망하거나 분노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넌 다정한 캐릭이니 내 얘기를 듣고 공감과 위로를 해주면 되는데, 왜 뜬금없이 훈계식 조언질이냐’의 마음이 되기도 하고, ‘너도 호감이 있어서 지금 이러고 있다는 거 나도 아는데, 갑자기 발 하나 빼고 다른 카드 만지작거리는 건 뭐냐’의 마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 위에서 말한 ‘진짜 좋아하는 게 맞는가?’의 문제가 결합되어, 상대에게 실망을 드러내곤 관계를 끊거나 ‘내가 사람 잘못 봤네….’하며 호감을 증오로 바꾸기도 한다.

 

 

3. 헛똑똑이가 되고 마는 문제.

 

이 똑똑한 대원들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속으로의 똑똑함과 겉으로의 똑똑함이 다르다는 점이다. 난 사연 신청서를 읽으며 ‘이렇게까지 예리하고 정리 잘 하는 사람은 둘의 관계에서도 똑똑함을 보여줬겠지?’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생각으로 카톡대화를 열어보면

 

-생각이 너무 많아서인지, 정작 말은 제대로 못함.

-혼자 무슨 선문답 하듯 괴상한 얘기를 하고 있음.

-유아 수준의 얘기를 하다가, 정리할 때만 예리해짐.

 

의 모습이 보여 충격과 공포에 빠지곤 한다.

 

자기는 자기 삶을 살고 있는 중이며 모든 일을 자신이 겪었으니 다 잘 알지만, 상대는 그런 이쪽에 대해 ‘지금까지 본 모습’만을 알 수 있을 뿐이라는 걸 잊지 말자. 상대와 통화하며 요즘 스트레스 받는 것들에 대한 얘기만 늘어 놓곤 “뭐,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말았다면, 그냥 그런 사람으로 보이고 말 수 있는 거다. 그러니 상대 역시 이쪽을 그냥 ‘그런 사람’으로 여길 수 있는 거고 말이다.

 

또, 이쪽이 상대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상대를 현미경으로 분석하는 것과 달리, 자신은 어떤 모습을 상대에게 보여주고 있는지도 꼭 진지하게 돌아봤으면 한다. 한 여성대원의 경우 상대에 대한 논문 세 편을 완성한 상황에서

 

“오빠 친구 누구누구 소개시켜줘. 소개팅 하고 싶다는 건 아니고, 그냥 인간적으로 친해지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그게 무슨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이든 저게 그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던 상대에게 유쾌한 일은 결코 아니다. 반대로 상대가 이쪽에게 “네 친구 누구누구 소개시켜줘. 걔한테 이성적인 호감 말고, 인간적인 호감이 있어서 친해지고 싶어.”라고 말했다면, 이쪽은 그걸 ‘개수작’이라고 생각했을 것 아닌가. 훗날 아무리 열심히 ‘내 진짜 의도’를 설명해도 상대가 쉽게 설득되지 않는 행동같은 건, 애초에 하질 말길 권한다.

 

 

위와 같은 태도로 상대를 대하다 관계를 엎지르고 만 똑똑한 대원들은

 

“제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혹 여성적인 매력이 부족해서 그랬던 거라면, 그런 매력을 더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남자를 대할 때 가지면 좋을 마인드에 대해서도 알려주시고요.”

 

라는 이야길 하곤 하는데, 난 그렇게 뭘 더 꾸며가며 일부러 연출하기보다, 상대에 대해 ‘겪어봐야 안다’고 생각하며 일단 만나지는 대로 좀 만나보길 권하고 싶다. 단둘이 밥 먹은 적도 별로 없으면서 상대를 관찰하기만 하며 ‘상대는 성매매 같은 걸 할 사람인지?’ 같은 질문에 혼자 답을 내려 하지 말고, 일단 좀 만나며 어떤 사람인지 겪어보자. 혼자 만 가지의 가정을 하고 그것에 대한 결론을 낸다 해도, 겪어보니 그게 아니라면 전부 소용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노래가사처럼, 내 안이 온통 나로 가득 차 있으면, 상대가 들어올 틈이 없다는 것도 기억해 뒀으면 한다. 내가 다 정의하고 결론짓고 예상하고 판단해 놓은 채 상대를 대하면, 그것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상대의 모습은 전부 실망이나 충격이 되거나, ‘내가 상상한 이상적인 상대’와 현실에서의 상대를 비교해가며 현실의 상대에게 ‘난, 너는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했어.’같은 말들만 하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내 마음대로 8할을 다 정해놓고 만나지 말고, 내 몫 절반 상대 몫 절반으로 둔 채 겪어보며 최신화 했으면 한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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