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성들의 구애를 받지만, 낯가림이 심한 까닭에 그 중 한 사람과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사례가 종종 있다. 풍요 속 빈곤이란 말이 꼭 맞는 사례인데, 이런 경우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그냥 우물쭈물하며 망설이다 흐지부지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번 사연의 주인공인 K양 역시 그렇다. K양은 친구 커플이 자신들이 아는 남자와 잘되도록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중인데, 열 번 가까이 함께 어울리며 상대를 봤지만 상대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으며, 대화도 제대로 한번 나눠본 적 없다. 상대의 속마음에 대해선 이미 친구 커플을 통해
-상대는 네가 맘에 든 눈치다. 너와 대화도 많이 하고 싶어 한다.
-네가 진짜 예쁘며, 자기가 넘볼 수 있는 급이 아니라는 얘기도 했다.
라고까지 확인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둘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지금은 ‘친구 커플이 아는 다른 여자’까지 등장해서, 오히려 상대가 그 여자와 편하게 얘기하고 농담하며 가까워지는 중이다. 이처럼 밥상이 다 차려졌는데도 수저를 들지 못하곤 망설이고 있다가, 애먼 사람이 다가와선
“왜? 너 이거 먹기 싫어? 그럼 내가 먹을게.”
하며 고기반찬을 집어가 버리는 일을 경험하는 대원들. 그 대원들을 위해 이 매뉴얼을 준비했다. 출발해보자.
1. 말을 못 하겠으면, 눈이라도 쳐다보자.
말도 못 하는데 눈도 못 마주치면 방법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말을 못 하겠으면, 눈이라도 마주치자. 이 ‘눈 마주침’으로 도서관에서, 회사에서, 지하철에서, 모임에서 남자의 물음표를 이끌어 낸 선례가 수두룩하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쳐다보면 된다. K양의 경우라면 상대가 얘기할 때 뚫어져라 쳐다보면 되며, 대화 중 눈이 마주치면 피하지 말고 3초 이상 그대로 있어 보자. 남자들 사이에선 본능적으로 눈을 피하지 않는 게 공격의 의사처럼 느껴져 눈이 마주쳐도 금방 피하곤 하는데, 그게 이성일 때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여기에 상대 얘기에 동의한다는 끄덕임과 살며시 짓는 미소 정도를 더해주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으니, 혼자 겉돌지만 말고 바짝 다가앉자.
난 종종 친구나 지인의 소개로 ‘연알못’이라는 대원들을 오프라인에서 소개받곤 하는데, 그 중 낯가림이 심한 대원들의 경우 한 시간이 넘도록 말을 안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럼 난 속으로
‘저렇게 말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말하면 입냄새가….’
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지금 입냄새가 중요한 게 아니고, 여하튼 그런 대원들은 나에게 곧장 말할 수 있는 것도 옆에서 친구에게 의지하며 속닥거리곤 대신 물어봐 주길 바라는 경우가 많다. 그런 ‘대리 질문’을 몇 번 하다가 “아 뭐야, 네가 말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겨우 질문 하나를 하곤 아직 궁금한 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네네. 다 이해했어요.”라며 서둘러 대화부터 마치려 들기도 하고 말이다.
누가 계속 먼저 말을 걸어줘야만 대답하며 대화할 수 있다거나, 아니면 낯가림이 정말 심해 이성이 앞에 있을 경우 머릿속이 하얘지는 타입이라면,
-물리적으로라도 가까워져야 한다. 눈도 맞추고, 웃고, 끄덕여야 한다.
라는 주문을 외우며 행동으로라도 관심을 표현해보길 권한다.
그리고 상대와 둘만 남는 건 너무나 불편하고 무서운 일이라 주선자가 화장실 간다고 하면 같이 막 따라가려고 하거나 뭐 사러 나간다고 하면 자신도 같이 가겠다고 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때에도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지지 않기’라는 주문을 외우며 주선자는 보내고 상대와 같이 있도록 하자. 어색하고 불편할 것 같아도 그렇게 있다 보면, 걱정과 달리 상대가 말이라도 걸며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그런 가능성을 애초에 차단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니, 걱정이 너무 많아 피하기만 하는 모습에선 이제 벗어나 보자.
2. 오오, 아아, 그래요?, 진짜요?, 정말요?를 애용하자.
낯가림이 심한 대원들의 카톡대화를 볼 때, 또는 그런 대원들과 내가 카톡으로 대화할 때 가장 답답하게 느끼는 지점은,
-이렇다 저렇다 무슨 말이 없다는 것.
이다. 나도 내가 이해했으면 이해한 걸로 가타부타 말 없이 지나가는 버릇이 있는 까닭에 그게 무슨 마음에서 그러는 건지 아는데, 자신이 이해했다고 대답하지 않을 경우 상대는 그 ‘무반응’에 대해 오해할 수 있으며, 무슨 이유에서 그랬든 그것에 결코 유쾌한 감정을 느끼진 못할 거란 걸 기억하자.
그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사는 데에 있어 아주 기본적인 것으로, 내가 어디 나갈 경우 같이 사는 사람에게 ‘어디에 나갔다 오겠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단톡방에서 어떤 공지를 한 사람에게 대답해주는 것, 또 그저 특별할 것 없는 안부인사에 웃으며 화답해주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그런 게 사라질 경우 상대는 그 무반응을 ‘무시’라고 여길 수 있으며, 썸이 막 시작되려는 관계에서는 그게 ‘관심 없음’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속으로 생각하며 혼자 다 추측하거나 예측만 해버리면, 할 말이 없어진다. 모임에서 옆자리에 앉은 심남이가 뭔가를 찾고 있으면 “왜요? 뭐 찾으세요?”라고 물을 수는 있어야지, 그걸 그저 곁눈질로 살펴보며 안주 집어 먹는 것에만 열중하다
‘아…. 뭐 찾나 보다.’
해선 안 된단 얘기다.
혼자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관찰만 하느라 그 상황에 참여는 못 하고, 뒤늦게야
‘아까 그냥 내가 물어볼걸. 아까 이렇게 할걸. 아까 말을 먼저 꺼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만 하는 대원들이 정말 많다. 그렇게 한 번 후회에 빠지면 나머지 시간에도 후회만 하느라 상대와 닿을 수 있는 기회들을 또 다 놓치곤 하는데, 생각부터 다 하고 입장을 정리해 이야기 하는 것이 습관화된 까닭에 그렇게 한 번 놓쳤다 하더라도, 나중에 다시 그 얘기를 꺼내는 방법이 있으니 실시간으로 찾아오는 기회부터 잡길 바란다. 오프너 찾는 상대에게 물어볼 기회를 놓쳤다 해도, “아까 오프너 찾으신 거죠?”라는 얘기를 하며 오프너를 건네주는 방법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 거 다 놓치곤 다른 사람이 오프너 갖다 주며 둘이 농담하는 거 보면서
‘저 여우 같은 것. 저 자리는 내 자리여야 하는데 쟨 뭐 하는 거야. 여우도 여우지만, 여우한테 홀려서 웃고 이는 쟤도 진짜 완전 실망.’
하고 있으면 기회도 청춘도 그냥 다 지나갈 수 있다.
3.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며, 패턴을 익히자.
K양의 사연을 읽으며 내가 놀랐던 건, 열 번 가까이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에 대해
-상대는 남자고, 나이는 몇 살이고, 이름은 뭐고, 그 외에는 잘 모름.
정도로밖에 말을 못 한다는 거였다. 둘은 서로에게 관심이 있고 주변에서는 둘을 밀어주고자 계속해서 자리까지 마련해주고 있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 채팅으로 대화를 나눈 사람보다도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없다니 놀랍다.
“전 사실 지난 주말에 친구네 집에서 만났을 때, 상대와 대화를 많이 나누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가 저절로 찾아오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게 아니라, 한두 마디를 나누게 되었을 때 상대에게 상냥하게 대답을 해주며 되물어주기도 하고, 정 할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아까 그게 좀 짰던 것 같아요. 목 안 마르세요?”라며 물이라도 한 컵 가져다주자.
정말 단순한, ‘춥다/덥다’, ‘벌써 배고프다/아직 배부르다’, ‘요즘 날씨가 어떤 것 같다’ 등의 이야기만 해도 이후의 이야기는 계속 꼬리를 물며 이어질 수 있다. 그러진 않고 그냥 눈 마주치면 피하고, 자꾸 어색하다며 ‘내 친구 쪽’으로만 붙어 멀리 떨어지려 하며, 상대가 말을 걸어도 ‘네/아니요’로만 답하고 마니, 상대도 자꾸 새로운 주제를 꺼내야만 이쪽과 겨우 한 마디 나눌 수 있다는 것에 지치는 것 아니겠는가.
낯가림이 심한 대원들의 경우 ‘나와 친한 사람’들과만 많이 어울린 까닭에,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주고받을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들’의 패턴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건 마치 어르신을 많이 대해보지 않은 사람이 적절한 존대를 사용하지 못하거나, 어르신이 뭔가를 하고 계실 때 제가 하겠다고 나서는 센스가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것이니, 직접 부딪히며 익혀가길 권한다.
이건 지금 익혀놔야 나중에 연애하며 연인의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과의 관계도 매끄럽게 이어갈 수 있으며 그 이후에도 육아 등 필연적으로 발휘해야 할 때 사용할 수 있으니, 꼭 익혀두길 권한다. 이게 안 되는 까닭에 연인과 연관된 사람 아무도 안 만나고, 집들이 같은 건 꿈도 못 꾸며, 모든 걸 연인에게 다 맡겨둔 채 뒤에 숨어 갈등이 생길 수 있으니 말이다. 이게 처음에만 어렵지 하다 보면 운전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니, ‘나는 원래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이라며 ‘넉살 좋은 남의 일’로만 두지 말고 하나 둘 해보도록 하자.
자, 오늘 준비한 얘기는 여기까지다. 그럼 다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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