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끝난 게 아니라, 이쪽이 끝낸 거다. A군은 상대에게 며칠씩 연락도 하지 않았으며, 마지막 대화에서도 이렇다 할 리액션 없이 그냥 이모티콘 하나 보내고 말지 않았는가.
“하지만 3일 전부터의 카톡을 보면, 그 3일간은 제가 연락 많이 했는데요?”
그러니까 그게, 상대에게 번호 주곤(보통 번호를 묻곤 하는데, A군은 상대에게 자기 번호를 주는 방법을 사용했다) 3일 열심히 연락하다, 이후 침묵하며 상대의 연락을 기다리는 게 맞는 걸까? 기다려봐서 상대에게 답이 오면 앞으로 잘 될 가능성이 있는 거고, 안 오면 어차피 안 될 거니 마음을 접으면 되는 걸까?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녜요. 며칠 후 제가 저녁 먹자고 카톡 보냈잖아요. 근데 저랑 먹기 싫은 건지, 한참 후에 이미 먹었다고 답장 온 거고요.”
이 관계를 흐지부지되도록 만든 가장 큰 원인이, 바로 A군의 그 ‘이상한 자격지심’이라는 걸 기억하자. 그냥 상식적으로 봐도 A군이 상대에게 저녁 먹었냐고 물은 시간이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난 후였고, 상대가 폰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아니니 누군가와 밥을 먹다가 카톡 확인을 못 하고는 시간이 좀 지나서 보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A군은 그것까지를 전부
-나랑 저녁 먹고 싶지 않기에, 못 본 척 시간 때우다가 나중에 지나서 거짓 변명을 한 것.
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겨우 저녁 먹자고 말 한 번 하곤, 그것에 대한 상대의 반응이 부정적인 것 같다며, 급격히 실망해선 다 내려놓고 만 것이다.
그런 이상한 자격지심에서 좀 벗어나 그 대화를 다시 보면, 대화엔 전혀 문제가 없으며 상대는 착실하게 ‘다음 대화’까지를 이어나가려 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상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보자.
“전 오늘도 이거 하느라 일찍 못 잘 것 같아요 ㅠㅠ”
상대에게 정말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면, 굳이 저런 이야기로 새 주제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만약 상대가 저 말 이전에 한 “네네~ A씨도요!”하고 끝냈다면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의지가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라 ‘내 사정’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가.
그런데 ‘내가 저녁 먹자고 말하려던 걸 상대가 거절했다’는 것에 꽂힌 A군은, 저 말에 그냥 이모티콘 하나 보내고 끝내고 말았다. 그러니 상대로서도 자신이 꺼낸 주제에 이모티콘 하나 띡 보내고 만 A군에게 더 뭔가 말할 필요는 못 느끼며, 이후에도 A군에게 연락이 없으니 굳이 자신이 먼저 할 이유도 없는 것 아닐까?
누군가에게 연락처를 줘 놓고는, 이후 상대가 알아서 적극적으로 대답하고 선연락도 하길 바라는 대원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건 마치 중고물품 거래를 하며
“글 보고 연락드립니다. 고프로6 아직 판매중이신가요?”
라는 질문까지만 해놓곤, 이후 판매자가 알아서 설명도 하고 약속도 잡길 바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구매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정말 그걸 사고 싶은 데다 먼저 연락까지 했으니 판매자도 자신의 구매의사를 잘 알 거라 생각하겠지만, 판매자 입장에선 저 문자에 ‘아직 판매중입니다’라는 이야기를 해도 이후 이렇다저렇다 말이 없으니 ‘그냥 찔러보는 구매자 중 하나’로 생각할 수 있다.
이번엔 정말 잘해볼 생각이었고, 차분히 천천히 다가가는 중이었고, 원래 이성과의 대화가 별로 익숙하지 않고, 뭐가 어쩌고저쩌고 다 필요 없다. 그건 이쪽 사정이지, 번호 받은 상대가 그것까지를 다 관심법으로 읽어가며 이해하고 배려해가며 연락해야 하는 건 아니잖은가. 다시 말하지만 그런 태도는, 상대에게 그냥 번호 한 번 주고는 며칠 들이대다 알아서 떨어져 나간 사람처럼 보일 뿐이다.
A군은 상대가 자세히 보니 이쪽의 외모가 마음에 안 들어서, 또는 성격상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서, 아니면 어떤 말이나 태도에 실망해서 더는 연락을 안 하기로 마음 먹었다 생각하는 중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 이건 상대가 인연을 끊으려 마음먹어서 끊어진 게 아니라, A군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그냥 저절로 끊어진 거다. 믿기 힘들 정도로 단순하며, A군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 아닌가?
내가 내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통장을 걸고 말하는데, 지금 A군이 상대에게 카톡을 보내면 120%의 확률로 상대는 아무렇지 않게 답장할 것이다. 이건 그냥 A군이 혼자 겁 먹고 상심해선 연락 안 해 흐지부지된 해프닝이지, A군이 염려하는 것처럼 상대가 A군에게 실망하거나 연락하지 말아줬으면 해서 연락 안 한 게 절대 아니다. 그리고 이건 아직 뭐 시작한 것도 없기에 끝날 것도 없는 관계니, 자기 그림자에 놀라 도망가는 거 이제 하지 않기로 하며 다시 한번 다가가 보길 권한다. 이 글을 보는 즉시 연락해보길!
“무한님 이건 그냥, 무한님이 저 기운 내라고 해주는 긍정적인 말 아닌가요?”
매번 뭐든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먼저 생각하니, 될 것도 안 되는 거다. 서로 갓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을 때, 먼저 커피 마시자고 멍석을 깐 것도 상대이며, 이제 막 알게 된 사이일 때 물어봐야 할 것들을 먼저 물어본 것도 상대다. 그 3일 연락은 거의 상대가 다 리드해서 이끌어가게 된 거라 할 수 있는데,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A군은 상대가 이후에 선연락 하나 안 하나, 나랑 같이 지금 밥 먹을 수 있나 없나를 가지고 ‘잘 될 가능성’만 점치려 했다. 이 정도면 뭐 중앙선 넘어오지도 않고 공 차서 골을 넣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일 뿐이니, 최소 보름 이상은 좀 드리블을 해서 골대 가까이 까지 가보자. 혼자 무슨 ‘숨은 의미나 의도’같은 걸 찾아내려 하다 시무룩해져선 자포자기 하는 건 그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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