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하고 싶지만 자신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건, 외국인과 영어로 유창하게 대화하고 싶은데 자신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단어, 문법, 발음 등을 완벽히 마스터한 후 대화를 시도해보겠다고 하는 거랄까요. 그렇게 말하며 영어를 익히겠다면서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산속으로 공부하러 들어가는 모습이, 연애할 준비가 안 된 것 같다면서 연애 이외의 것들만 열심히 준비하는 G씨의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 G씨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대원들을 종종 봅니다. 그들의 특징은
-매사에 진지하며 고지식함.
-자신에게 매우 엄격한 기준을 들이댐.
-내게 없는 걸 가진 다른 사람을 보면 곧장 비교함.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일이 벌어지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함.
라는 건데,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듣다 보면 저까지 걱정이 많아지며,
‘뭐야? 겨우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 난, 어떻게 연애하고 결혼까지 한 거지?!’
라는 생각까지가 들곤 합니다. 위에서 영어 얘기를 한 김에 여행영어에 비유하자면, 전 그냥 해외에서 ‘망고 스무디’를 ‘망고 스무스’로 주문하고도 뿌듯해하며 어찌어찌 잘 놀다 왔는데, 그런 저에게 자신의 첫 해외여행을 앞두고
“The와 a를 붙이는 것이 어렵습니다. 복수형에 대해서도, 글로 써진 걸 고치라고 하면 고칠 수 있지만, 말로는 아직 원활하게 하질 못합니다. 현지에서 쓰이는 속어나 축약어 등에 대해서도 아직 많이 익히질 못했습니다. 무엇을 더 배우고 익혀야 할까요?”
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을 만난 느낌입니다. 덕분에 저 역시,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을 때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It’s not work.”
라고 했던 흑역사를 떠올리며, 반성의 시간을 강제적으로 갖곤 합니다. 그러다 “Yes. 아니 아니 No No.”라고 했던 일까지가 떠오르면, 눈물이 만 갈래로 흐르며 ‘나 따위는 해외에 나갈 가치가 없는 인간이었던 건가….’라는 생각까지가 들곤 합니다.
G씨가 제게 보낸 매뉴얼 신청서만 보더라도, 그 정도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면 이미 연애할 준비는 다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좀 너무 학대하는 반성문 타입의 사연이긴 했지만, 그 안에는 그런 특징이 있는 하나의 인간이 담겨 있었습니다. G씨가 살아온 과정은 흥미로웠으며,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철학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바람직한 연애란, 이성과 바로 그런 얘기-G씨가 신청서를 통해 제게 털어놓은 얘기-까지를 나눌 수 있는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G씨는 그런 속 이야기들은 저와 비밀리에만 나누려고 하고, 밖에서 만나는 이성에겐 ‘좋은 남자’ 같은 걸 연기하려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냥 G씨라는 한 사람으로서 다가가면 쉬울 일을, G씨가 상상한 ‘연애에 적합한 캐릭터’를 만들곤 그것을 행해줄 아바타로서 하려 하니 어려운 겁니다. 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느라, 상대와 친구가 되어야 할 시간에 연구만 하고 있으니 G씨로서도 괴로운 것이고 말입니다.
자기계발은 분명 좋은 것입니다만, 누군가와 친해지는 일에는 ‘나’를 채우는 것보다 ‘남’을 채우는 일이 더욱 효과적입니다. 영어를 잘 하는 멋진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매일 영어 어플로 공부를 하는 것보다 상대에게 꾸준히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효과적이며, 고르지 않은 치열 때문에 연애를 못 하는 것 같다며 치아교정에 애쓰는 것보다 상대와 같이 맛있는 고기를 먹으러 가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취미를 가지기보다, 그냥 상대와 만나 상대의 취미가 뭔지 듣고 관심을 가져보는 게 더욱 효과적이고 말입니다.
그러니 쉽게 갑시다. 준비는 다 끝났으며, 앞으로 G씨가 배우고 교정해야 할 건 연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아니, 그것들은 사실 연애를 일단 시작해야 그 관계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지, 연애 밖에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뭘 어떻게 배우고 교정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모든 단어의 용례를 다 외우려는 사람처럼 연구만 해서는, 87세가 될 때까지 파고들어도 다 배울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87세에 연애박사 학위를 딴 뒤 경로당의 카사노바가 될 계획은 아니잖습니까?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들은 오늘도 하나둘 소멸해 가고, 지금이 아니면 만나지 못할 사람들도 하나둘 멀어집니다. 상대가 심사위원이며 G씨는 오디션에 참가한 지원자이고, 거기서 합격점을 받아 행복한 연애를 하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니, 듀엣을 하며 안 맞는 부분을 맞춰간다는 생각으로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듀엣 역시 어디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니, 하면서도 너무 겁먹거나 경직되진 말았으면 합니다. 듀엣이 엉망이어도 둘만 즐거우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내 노래 듣고 나 변함없이 좋아해 줄 사람 찾겠다며 혼자 노래 연습만 하지 말고, 같이 부를 사람을 만나 즐겁게 노래 부르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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