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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잘난 그 남자와의 이별 후 자존감이 바닥났습니다.

by 무한 2018. 10. 13.

H양은, 인생의 운전대를 상대에게 맡긴 후 상대의 궤변에 세뇌당한 거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럴 경우, 이쪽이 의사고 상대가 백수인 상황에서도 상대가 가타부타 하는 얘기에 휘둘릴 수 있습니다.

 

의사 그까짓 거 집에서 밀어주고 책만 파면 될 수 있는 건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면서 겨우 의사 되었다고 우쭐댈 것 없다는, 의료계의 이러이러한 문제들과 병폐를 넌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거라는 식의 상대 이야기에 말려드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상대가 몇 년째 간단한 시험에서도 떨어지고 있다는 것도 망각한 채, 상대가 ‘진리의 말씀’을 해주시길 바라는 종교적 믿음까지를 갖게 되기도 합니다.

 

저런 사례가 종종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상대는 그냥 무수히 많은 증권사 직원 중 하나일 뿐인데 그가 우리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생각한다든가, 그냥 중학교 선생님일 뿐인데 그가 한국의 교육계를 이끌어가는 유일한 교사인 것처럼 여기게 된, 그런 사례 말입니다.

 

잘난 그 남자와의 이별 후 자존감이 바닥났습니다.

 

 

뭐, 연인에 대한 특수성을 부여하다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으며, 내 사람에게 그만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게 과해

 

-이렇듯 대단한 상대의 말은 언제나 옳은 것.

-그가 내게 지적하는 걸 난 다 고쳐야 함.

-상대가 하는 건 뭐든 중요하며, 난 다 이해해야 함.

-이런 상대의 이별통보 역시,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선택.

-상대는 별로인 날 버리고, 대단하고 훌륭한 여자를 만날 것.

 

이라는 생각까지를 하게 되면, 거기서부터는 ‘먼저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노예생활’을 하게 됩니다. 상대가 원하는 건 다 들어주게 되며, 너무 과한 요구라 못 들어줄 경우엔 타박을 받게 되고, 다 들어준다고 해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흥미를 잃은 상대의 무관심함과 무신경함을 온몸으로 겪는 처절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게, 처음부터 저렇게 시작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처음부터 하대하며 지적질이나 해대는데 애정을 키워갈 사람은 없지 않겠습니까? 대부분 처음에는 상대가 열정적으로 구애하거나, 온갖 달콤한 말들로 이쪽의 마음을 사려 하거나, 이런 사람 또 없을 정도의 다정함으로 어필하거나, 평생 옆에서 힘이 되어줄 것처럼 잘 챙겨주거나 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처음에는 이쪽에서 경계를 좀 하다가 마음을 열게 되는데, 그 이후 시나브로 의지하고 점점 세뇌당하며 결국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러면서 ‘상대와의 행복했던 이전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선, 상대가 지적하는 것들을 모두 고치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곤 합니다.

 

 

때문에 전 가장 먼저, 그 ‘잘난 남친’이 정말 잘난 사람인가를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직업을 월급이란 잣대로만 봐선 안 되는 것입니다만, 상대가 속물적인 잣대를 들이대니 같은 방식으로 짚어보자면, 상대는 많이 잡아봐야 월 300 벌이 하면서 하루 24시간, 일주일 7일을 오롯이 할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당황스러운 건, 상대와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칠 것이며 그 윗사람들도 무수히 많을 텐데, 자신이 그 그룹의 주춧돌인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 그의 오만함과 근자감은 연애에서도 그대로 발휘되어, 자신이 심사위원인 듯한 태도만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따위 모습을 그가 구애할 때나 연애 초기에 보여줬다면 H양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차버렸을 텐데, 이미 조금씩 세뇌되어 상대가 정말 그런 존재인 것처럼 여기고 있기에, 결국은 벌벌 떨며 맞춰갈 생각 같은 걸 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더불어 그 ‘논리적이고 이성적인’이라는 부분도 자세히 다시 보시길 바랍니다.

 

“만나고 싶은 건 네가 바라는 거고, 만나고 싶지 않은 건 내가 바라는 건데, 만나지 않는 게 왜 잘못된 거냐. 내 시간을 보내겠다는 게 왜 잘못이냐.”

 

저런 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게 아니라, 피콜로 더듬이 빠는 소리에 더 가까운 겁니다. 연락은 원래 잘 안 하니까 안 하는 거고, 만나기 싫은 건 내 시간을 보내야 하니까 안 만나는 거고, 우선순위는 일과 인맥이 먼저니까 널 그 후 순위에 두겠다는 사람과 무슨 연애를 할 수 있으며 거기에 무슨 미래가 존재하겠습니까. 애착과 사명감, 엄청난 야망 뭐 그게 뭐든 간에, 대화와 만남을 거절하고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과는 친구도 될 수 없는 겁니다.

 

하나 더.

 

‘내가 못나서 잘난 사람을 놓쳤으며, 상대는 다른 사람 만나 행복하겠지만 난 이제 끝장이야.’

 

라는 생각으로 땅을 파기 시작하면, 점점 더 깊은 곳에 자신이 갇히고 말 뿐이라 걸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얘기했듯 상대는 ‘잘난 사람’이라 보기 어려우며, 상대처럼 말하거나 상대처럼 행동하는 남자를 이해하며 맞춰갈 수 있는 여자는 찾기 힘들 겁니다.

 

-내 생각이 불만이면 이런 내 생각을 바꿔봐라.

-왜 서운한지 이해를 못 하겠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일과 사람과 성공이 먼저다. 그다음에야 네가 있을 뿐이다.

 

아직 중2병을 겪고 있을 나이에 저런 얘기를 했다면 뭐 철없어서 그런 거라고 이해라도 하겠습니다만, 상대는 이십 대도 아니잖습니까? 그냥 뭐 엇나가며 냉정하게 굴면 멋있다는 착각에 빠져 사는 것 같은데, 저따위 태도로는 강아지 한 마리도 돌보기 어렵습니다.

 

예뻐하고 싶을 때 예뻐하지만 나머지 시간엔 방치해두며, 책임지고 돌봐야 할 시간에 자기 할 일이 먼저라며 내팽개쳐두면, 강아지는 굶어 죽거나 우울증을 앓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사람에게서 이제라도 벗어나게 된 것은 축복이지, ‘못난 내가 잘난 남자를 놓친 것’이 절대 아닙니다.

 

H양은 ‘그래도 상대가 보였던 젠틀했던 부분들’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워하시는 것 같은데, 젠틀한 학대나 젠틀한 유기 같은 건 없는 겁니다. 마지막 날 보인 상대의 젠틀한 행동 역시 그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또 책잡힐 일을 없애기 위해서 깐 포석일 뿐, 상대는 원래 젠틀한 남자인데 H양이 모자라거나 잘못해서 헤어지게 된 게 아닙니다.

 

이별통보를 하고 헤어질 거면서도 H양을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는 것에 대해, 그는 스스로 ‘멋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그의 노림수에 넘어가 자책하는 일은 그만 두셨으면 합니다. 어떤 남자를 만나 다음 연애를 하든 이 연애보다 나을 확률은 98.72% 이상이니, 땅 파던 삽 내려놓고 얼른 거기서 올라오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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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을 액세서리 정도로만 생각하는 남자. 그의 액세서리가 되려 노력하진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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