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훈씨처럼 썸을 타거나 연애하면, 매 순간순간이 너무 힘들며 결국엔 슬픈 마지막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상훈씨는 상대가 100%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줘야만 겨우 마음을 놓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의심을 하고, 동시에 실망할 거리가 생기면 ‘이 관계는 내가 이렇게까지 연연할 필요 없는 관계’라며 마음부터 떼려 하지 않는가.
“이런 제가 저 역시 너무 싫고, 스스로가 무섭기까지 합니다. 저 같은 사람이 나중에 결혼하면 의처증을 보이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저를 똑같이 좋아해 주지 않는다고 해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싶어요.”
그게 해결책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똑같이 좋아해주지 않아도 의연하게 대처’ 하기로 마음먹은 선배대원들이 있긴 한데, 그들은 대부분 아무에게도 둥지를 틀지 못한 채 늘 타인으로만 있다가 자리를 옮겼을 뿐이다.
상훈씨의 썸이나 연애가 얼마 버티지도 못하며 계속 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작부터 그 관계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면서 동시에 자신은 뭐 이렇다 할 무언가도 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일하다가 만난 거래처 사람과 겨우 두어 시간 웃으며 얘기를 했다고, 지금부터 상대가 이 관계에 온전히 집중하며 앞으로 상훈씨를 평생지기로 생각해주길 바라는 거라고 할까.
물론 일하다가 만난 거래처 사람과 평생지기가 되지 말란 법은 없는 법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집중과 이해, 함께 보낸 시간, 서로를 특별한 한 사람으로 느낄 수 있는 대화와 사건 등이 필요하다. 짧게 말해 ‘친해짐의 시간’과 ‘서로에게 증명되는 계기’등이 필요한 건데, 상훈씨는 보통의 경우와 비교해 이 부분을 놀랄 정도로 못 하며, 못 해서 안 되고 있는 걸 그냥 인내나 포기로만 버티려 하고 있다.
이번 상대와의 대화를 하나 보자.
상훈 – 지은아 우리 토요일에 만나기로 한 거, 좀 일찍 볼 수 있어?
지은 – 앗. 나 그날 저녁 전까지는 친구랑 만나고 있을 텐데….
상훈 – 그러면 일요일은 일찍 볼 수 있나? *** 같이 가려고 했어.
지은 – 난 저녁에 잠깐 보는 걸로 이해하고 있었거든.
지은 – 일요일은 괜찮아!
상훈 – 응 내가 정확하게 얘기했어야 하는 건데.
상훈 – 그러면 일요일 1시쯤 보는 걸로 하자.
지은 – 응응!
상훈 – 그래 오늘도 수고해~!
딱 요것만 놓고 보면 크게 이상하지 않긴 한데, 썸 타는 와중에 그냥 저 대화가 하루 대화의 전부이며, 다음 날 상대가 다시 말을 걸 때까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게다가 저 대화에서 알 수 있듯, 늘 그냥 ‘용건만 대략’ 말하고 대화를 끝낸 까닭에 약속에 대해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도 문제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썸을 ‘서로의 집에 놀러 가는 것’에 비유한다면, 상훈씨는 늘 상대 집 1층 현관 앞에서 인터폰으로 몇 마디 대화를 하고 돌아오는 것만 반복하고 있는 거다. 뭐 좀 사 가지고 상대 집에 들어가기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소파에 앉기도 하고, 냉장고를 열어보기도 하고 하며 친해져야 하는 건데, 이상하게도 상훈씨는
‘언제간 상대가 그런 걸 다 허락해주었으면…. 난 지금 상대가 우리 집에 와서 그런다고 해도 참 기쁘며 다 허락할 수 있을 텐데….’
하고 있다. 상대는 상훈씨가 인터폰으로 용건만 말하고 얼른 등 돌려 가버리니 들어오란 소리도 못한 건데, 상훈씨는 또 ‘상대가 내게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어…. 그럴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한 거겠지. 아니면 사실 내가 별로 반갑지 않다든가.’ 하며 속으로 부정적인 생각만 하고 만다.
통성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거나, 아니면 이제 막 소개팅으로 만나게 되었을 땐 상훈씨처럼 대화해도 괜찮다. 하지만 애프터, 삼프터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소개팅 첫 만남’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디테일한 대화도 하지 않는다면, 관계는 뿌리 내리기 힘들며 상대가 엄청 적극적으로 연락하고 먼저 수다를 떨지 않으면 둘의 간격은 좁혀지기 힘들 것이다.
그냥 아주 단순하게, 이게 연애가 아니라 상훈씨와 내가 친해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해 보자. 우리가 탁구장에서 같은 강사에게 레슨을 받는 수강생으로 만났다면, 서로 친해지기 위해선 ‘다음에 탁구 같이 칠 약속’만 잡을 게 아니라 같이 어울려야 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아닌가. ‘언젠가는 정말 친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만 할 게 아니라 자주 연락해야 하며, ‘탁구 칠 약속’을 잡기 위한 연락 외에 재미있는 이야기도 공유하고 이것저것 묻기도 해가며 다양한 주제를 함께 짚어봐야 하는 것이고 말이다.
상훈씨가 바로 저걸 못 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썸을 타거나 어찌어찌 연애를 ‘시작’ 까지는 할 수 있는데, 거기서 더 가까워지기가 힘들며 짐도 풀지 않는 객의 느낌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이제 막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이번 주는 선약이 있어서 같이 탁구 못 치겠다고 한다면, 상훈씨는 홀로 좌절하며 ‘무한 형이 원래 나랑 탁구 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건가? 아니야. 이런 생각하며 속상해 할 것도 아니지. 우린 그냥 탁구장에서 같이 레슨 몇 번 받은 사이인데, 안 보면 그만인 거잖아.’하며 인연을 놓을 생각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상훈씨가 내게 보낸 사연만 보면, 그 상황까지는 전혀 걱정할 게 없는 그린라이트였다. 상대가 약속을 한 번 미루긴 했지만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으며, 늘 상훈씨의 연락에 반가워했고, 다음에 뭐 같이 하자는 말에 전부 긍정적이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걱정을 만들며 ‘긍정적인 이 태도 속에 숨어 있을 상대의 부정적인 진심’이 있을 것이란 의심을 한 건 상훈씨이니, 그걸 좀 내려놓고 만나서 맛있는 거 먹으며 즐거운 시간 보냈으면 한다.
그런 시간의 축적이 서로에게 서로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거지, 처음부터 특별함과 애틋함이 100% 차 있을 순 없는 거다. 이제 막 장만 봐왔으면서 요리도 생략한 채 만찬을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 아니겠는가. 함께, 재료를 다듬고 썰고 끓여가며 요리를 해봤으면 한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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