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황이면, 두 사람은 사귀는 건데? 그러니까 딱 언제부터라고 정해서 ‘우리 사귀자’는 말이 없어서 세영양은 당황스러울 수 있는데, 원래 삼십 대의 연애는 이십 대의 연애와 다르게 딱 언제라는 기준 없이 그냥 이미 시작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게 모두 바람직한 것은 아니어서 이렇다 할 기준 없이 시작된 관계가 이렇다 할 말 없이 끝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요 정도 상황이라면 이미 둘의 관계가 시작된 거라 생각하며 좀 더 속내를 털어놔도 괜찮다.
세영양은 ‘우리는 사귀는 사이가 맞다’는 상대의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그런 말을 이끌어 내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상대가 주변인들에게 세영양의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할 때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고 소개했나 물으며 답을 들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친구들에게 오빠 얘기를 했다’는 이야기를 꺼내 답을 들을 수도 있다.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꺼냈다고 하면 뭐라고 소개했나 궁금해 할 텐데, 그러면 “어…. 알아가 보는 중인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게 맞는 거죠?” 정도로 되물어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선을 통해 만났으니 ‘주선하신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것 같다. 오빠에게는 아무 말 없었냐’는 이야기를 흘려도 되고, ‘오빠가 생각하는 여자사람친구와 여자친구의 차이는?’이라는 질문 같은 걸로 멍석을 깔아도 된다. 아님 ‘손잡고 걷는 건, 사귈 때 그러는 거잖아요. 난 아직 고백도 못 받았는데… .’ 정도로 밑밥을 깐 후 ‘에에? 고백엔 꽃이 있어야 하는데?!’라는 이야기로 상대가 머리를 긁적이게 만들어도 괜찮다. 세영양의 경우 그냥 ‘우리는 무슨 관계….’ 라며 전주만 연주해도 상대가 알아서 ‘사귀는 사이’라고 답을 할 테니, 다른 게 너무 어려우면 그냥 정공법으로 질러가길 권한다.
동시에, 세영양이 현재 유지하고 있는 ‘4학년 오빠를 대하는 1학년 신입생의 모습’이란 태도도 바꿔야 한다. 세영양은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진지하고 깊은 얘기를 하거나, 마음을 보여주기가 좀 그래서.
라는 이유로 긍정적 리액션만 해주고 있는 중인데, 그러다 보니 세영양은 아무 색깔없는 ‘리액션 봇’의 느낌이 강해지고 말았다. 상대도 이걸 이상하겨 여겨
-세영이는 이성적이며, 마음을 안 보여주는 것 같다.
는 이야기를 했고 말이다.
너무 그래 버리면, 개성을 지닌 하나의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잊지 말자. 그렇게 대하면 아무 사고나 사건도 안 일어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상대는 지루해지거나 뭐가 본심인지 몰라 ‘긍정의 벽’과 대화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내게 사연을 보낸 독자분들 중, 말 잘하고 아는 것 많음에도 불구하고 선남과의 대화에선
“네네.”
“ㅎㅎㅎㅎㅎㅎ”
“아 정말요?”
정도로 돌려막기만 해 자신의 매력을 1g도 보여주지 못한 사례가 꽤 된다. 상대에게 한 말이 부모님들 귀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나, 상대가 날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서 예의상 대화를 이어가는 것 같다는 걱정에 위축되어 그럴 수 있긴 한데, 그게 무서워 맹목적으로 ‘긍정 리액션’만 하다가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으로도 인식되지 않고 끝날 수 있다는 걸 기억해뒀으면 한다.
끝으로 하나 더. 세영양은
-사귀는 사이라는 게 확정되면, 그때 내 마음과 본모습을 보여줄 것.
이라고 했는데, 그렇다고 그게 이전까지 보여주던 ‘긍정의 모습’과 달리 너무 부정적인 모습이어선 안 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연애가 시작되었다’고 확정되고 나면 그때부터 조율이라는 핑계로 상대에게 하나둘 바라는 것들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사례가 많은데, 그러면 상대는
‘썸탈 땐 완전 착하고 긍정적이었는데, 사귀기 시작하니까 불만투성이에 리액션도 안 해주네.’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더불어 그토록 바라던 연애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지? 헤어지는 거 아니야?’
라며 이상하게 겁부터 먹고는 자꾸 ‘상대가 변했다는 증거’를 찾으려 하거나 ‘헤어질 것 같은 낌새’를 막 잡아내려 애쓰는 대원들이 있는데, 그래 버리면 연애 전엔 연애 못 할까 봐 전전긍긍, 연애가 시작되면 끝날까 봐 전전긍긍하며 매번 전전긍긍하는 일만 반복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세영양은 내게, 상대와의 관계에 대해
“전혀 누군가를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타이밍에 좋은 사람을 만나서 기쁘고, 이야기하다 보면 크고 작은 것들이 정말 잘 맞아 너무 놀랍습니다. 상대와 연락하며, 이 사람인가보다 싶을 정도로 제 마음이 편해지고 빠져드는 것을 느낍니다.”
라고 말했는데, 그걸 두 번째 문장 빼고 상대에게 전달하면 아주 좋은 ‘감정표현’이 될 수 있다. 그게 바로 상대가 알고 싶어 하는 ‘세영양의 마음’인 것이고 말이다. 돈을 걸어야 한다면 난 이미 둘이 사귀고 있을 거라는 것에 올인할 수 있을 정도로 긍정적인 사연이었으니, 이미 잘 만나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이번 크리스마스는 둘이 따뜻하게 보냈으면 한다. 둘이 서로 띄워주고 챙겨주고 난리 났던데 뭐. 걱정은 접어서 서랍속에 넣어두고, 마음껏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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