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좀, 안 낼 순 없습니까? 이게 H씨의 입장에선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논리적으로 따져보는 것’일 수 있는데, 그게 뭐든 그걸 좀 한순간이라도 안 할 수는 없는 겁니까? 특히 상대가 아플 때-위로한답시고 말을 꺼냈다가 어찌어찌 ‘연락’문제까지 대화가 이어졌을 때- 그때 아픈 상대를 두고 내가 하고 싶은 말로 꼭 그렇게 폭격을 가해야 하겠습니까?
H씨가 바라는 ‘오빠동생부터 다시’, ‘이미지 재정립’ 같은 게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유는, H씨가 억지를 부리며 화를 내기 때문인 게 가장 큽니다. 서운함과 분노에 휩싸였을 때, H씨는 한이 맺힌 사람처럼 상대를 공격합니다. 관계가 H씨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약이 올라서는,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말을 하며 상대보고 부정하거나 선택하라고 하든지, 아니면 상대가 하는 말은 듣지도 않은 채 ‘넌 솔직히 그래서 그런 거잖아’라는 식으로 따지고 마는 것입니다. 뜨끔할 말을 상대가 하면, 그것에 대해서는 ‘그래 그건 내가 백 번 잘못한 거지. 내가 한심한 놈이라 그랬나 보다.’라는 식으로 이상하게 비꼬아 받아치고 말입니다.
둘의 대화를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피곤하고 짜증 나고 불쾌한데, 그걸 실제로 당하고 있는 상대는 어떻겠습니까.
“내가 너를 화나게 만들어서 사이가 이렇게 되긴 했는데, 그게 막 이렇게 싫어할 정도까진가 싶기도 하다.”
그냥 막무가내이며, 마음대로입니다. 상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적으로 연락해오는 H씨의 연락’이 불편하다고 말한 건데, H씨는 ‘내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지만, 사적인 연락까지를 불편해할 정도까지인가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건 논리적으로 공격하거나 방어할, 또는 따질 문제가 절대 아닙니다. 상대가 불편하다는데, 거기에 대고
-이게 그렇게 불편씩이나 할 일인가?
-연락만 불편한 게 아니라 그냥 다 싫다고 말해라. 그럼 끝내마.
-사적인 연락도 못 하면 그게 무슨 오빠동생 사이냐.
-내가 언제 혼냈냐. 내 감정과 생각을 얘기한 거지.
-또 이렇게 흘러가네.
-넌 내가 연애 관련해서 매달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네가 이럴 정도로 내가 잘못했나 보다.
-알겠다. 너의 입장이 그렇다는 거.
라는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 건, 그냥 고문이 될 가능성이 크니 말입니다.
물론 이게 전부 H씨 혼자의 잘못 때문에 막장을 향해 가는 건 아닙니다. 상대의 행동이 모호한 측면도 있으며, ‘싫은 건 아닌데 불편하다’는 식으로 여지를 남겨두는 것 때문에 H씨가 더욱 미련을 갖게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차라리 연락을 안 받아주거나 ‘오빠동생도 싫다’고 확실하게 못 박았으면 H씨가 관계 개선이나 이미지 재정립 같은 헛된 희망을 안 품을 텐데, ‘지금은 싫다’라거나 ‘싫은 건 아니고 불편하다’는 식으로만 말하니 H씨는 그게 ‘남은 가능성’이라 생각해 계속 매달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상대를 대신해 정리해드릴까 합니다. 상대는 현재 H씨와 ‘좋은 오빠동생’으로 지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으며, 그녀가 말하는 ‘오빠동생’ 사이라는 건 공적인 영역에서 마주쳤을 때 일부러 피하거나 투명인간 취급은 하지 않는 것 정도를 말합니다.
그녀가 단호하게 H씨와의 관계를 잘라내지 않는 건, 어장관리의 측면도 약간은 있는 것 같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나쁜 여자가 되어가면서까지 몇 번이나 확인사살을 해줄 필요는 없다’는 이유가 더 클 것입니다. H씨는 그녀에게
“이 모임에 내가 있는 게 불편하면 말해. 내가 모임에서 나갈 테니까.”
라는 식으로 극단적 선택을 종용하지 않습니까? 때문에 그녀는 ‘사적으로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H씨가 ‘내가 모임에서 나가는 게 네가 원하는 거냐’는 식으로 돌려 갖다 대니, ‘H씨를 쫓아낸 여자’가 될 이유까지는 없어 그건 아니라고 하는 것일 뿐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H씨는 다시 한번 희망을 가지려 하는 건데, 그녀의 말은
-나가지는 말아 달라. 지금으로선 사적인 연락이 좀 불편할 뿐이다.
가 아니라,
-나가든 말든 그건 나랑 상관없고, 사적으로 연락하지 마라.
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H씨는 그래도 이 관계가 6~7 정도는 되었던 관계니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어찌어찌 될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이 관계는 6~7에서 –9까지 갔던 관계입니다. 때문에 H씨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다가가면 0이 아니라 –9가 되는 것이고 말입니다.
H씨가 처음 이 사연을 보내셨을 때, 제가 ‘관계 회복’ 같은 바람은 저 멀리 치워두고 공적인 영역에서 진짜 ‘좋은 오빠’가 되는 게 먼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H씨는 딱 한 번 모임에서 상대를 그렇게 대하곤, 그것에 상대가 크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다시 달려들고 말았습니다. 저 위의 대화를 나눈 것에 대해 H씨는 ‘의견충돌’이라고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데, 다시 말하지만 저건 의견충돌이 아니라 상대를 괴롭힌 겁니다. 그런 일들의 반복이 상대에겐 ‘H씨의 연락 = 혼냄이나 괴롭힘. 따짐. 자폭함.’으로 각인된 것이고 말입니다.
H씨는 상대에게 ‘이 인연을 잃긴 싫어서’라는 이유로 오빠동생으로 지내고 싶어하는 거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오빠동생부터 시작해 다시 사귀고 싶어서’가 진짜 이유이지 않습니까? 상대가 후자의 모습에 질색하면, ‘그런 게 아닌데 넌 왜 그렇게 오해하냐’는 식으로 아닌 척 할 뿐이고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기회를 엿보며 가끔 찔러보는 건 둘의 관계를 막장으로 만들뿐이니, 지금으로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공적인 영역에서 상대라는 사람을 그저 잘 대해주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내년 상대 생일에나 생일축하 개인톡을 보낸다는 마음으로, 지금의 이 조급함과 절실함을 내려두셨으면 합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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