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씨,
-명랑하고 웃음 많으며, 말 걸면 반갑게 맞이해주고 대답도 잘 해주는 예쁜 여자사람.
에게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설레기 마련이잖아. 그녀가 이성과 단둘이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는 것에도 별 거부감이 없어서, 약속을 잡는 게 크게 어렵지 않으며 선연락도 오는 편이라면, 누구나 ‘이제 이 다음이 연애인 건가?’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거고 말이야.
그런데 사실 그런 관계가, 연애로 발전시키기 제일 어려워. 이쪽이 생각할 때 상대에겐 내가 ‘좋은 오빠’고 나머지 남자들은 다 ‘들이대는 그저 그런 애’처럼 여겨지겠지만, 뚜껑을 열어 상대 쪽을 살펴보면 이쪽 역시 그냥 ‘주변에 있는 남자들 중 하나’인 경우가 많거든.
‘경수씨라서 상대와 같이 하는 게 가능’ 한 거라 생각했던 지점들이, 사실은 상대에게 ‘모든 이성들과 같이 하는 게 가능’ 한 거라 할 수 있어. 상대가 이성들의 대시를 은근히 즐기며 자신이 홍일점이 되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면, 연애 중에도 그런 남자들과의 교류를 끊지 않고 이어갈 수 있고 말이야.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상대는 지금도 몇 명의 남자들이 대시 한다고, 자긴 그냥 좋은 관계로 지내고 싶은데 대시 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제게 말하기도 했어요.”
너무 순진하게, 그 말을 그냥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해. 그건 사실 고민이 아닌 자랑이 72.36% 함유된 말이라 할 수 있거든. 그녀의 말과는 좀 다른, 사실관계를 살펴봐 봐. 남자들의 그런 대시가 불편하다고 하는 그녀지만,
-그런 남자들과 어쨌든 잘 지냄.
-대시 하는 남자들 중 하나와 사귀기도 함.
-남자친구가 생겨서 너무 좋다는 말도 한 적 있음.
이라는 일들이 벌어지곤 했잖아? 이것에 대해 경수씨는
“그 아이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되는 건지….”
라고 말하던데, 절대 그렇지 않을 확률이 99.82%라고 할 수 있어. 그냥 그렇게 말하는 거지, 별로 좋지도 않고 통하는 것도 전혀 없는데 강하게 대시 한다고 사귀진 않았을 거야.
또, 경수씨는 상대가 뭐 속은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는 밝고 웃고 뭐 그런 얘기도 했는데, 그것도 너무 그렇게만 볼 게 아니야.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상대는 좋아해 주는 사람 많고, 만날 사람 많고, 위로해주려는 사람도 많아. 오히려 경수씨가 상대에 비해 이성과의 교류가 별로 없는 편이며, 상대가 다른 이성과 함께 하던 자리에 부르면 달려가는 쪽이잖아. 경수씨와 상대가 단둘이 만났을 때에도, 상대는 짬 날 때마다 다른 이성들과 열심히 카톡을 주고받는 상황이고 말이야.
나도 경수씨에게, 이렇게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아. 근데 이건 진짜 상황이, 경수씨가 생각하는 거랑 아주 많이 다른 거거든. 경수씨 생각처럼 ‘좋은 오빠 -> 남친’이 되는 게 아니라, 상대에겐 그냥 ‘좋은 오빠’와 ‘남친’이라는 카테고리가 따로 존재하는 거야. 잘 생각해 봐봐. 상대에겐 ‘좋은 동생’도 있고 ‘좋은 친구’도 있고 뭐 그렇잖아. 얼마 전엔 경수씨가 그들 중 하나와 상대를 같이 보기도 했고, 경수씨와 만나기로 한 날에 상대가 그들 중 하나와 같이 가도 되냐고 묻기도 했잖아.
게다가 경수씨는 예전에, 상대에게 고백을 했다가 퇴짜를 맞은 적도 있어. 지금이라고 해서 그때보다 둘이 가까워졌다고 보기도 어려워. 상대는 여전히 경수씨에게 존대를 쓰잖아. 또, 당장은 상대가 다시 솔로부대에 입대했으니 경수씨와의 연락이 잦지만, 상대가 연애를 시작하면 경수씨와 연락하는 걸 상대 남친이 싫어할 경우 차단까지 하며 연락을 끊기도 하잖아.
상대의 연애가 끝났을 때, 또는 상대가 외롭고 심심해졌을 때 경수씨에게 하는 말들만 가지고 생각하지 말고, 전체를 봐봐. 가만히 보면, 상대에게 경수씨는 목표지점이 아니라 베이스캠프 같은 느낌이 훨씬 강하잖아? 상대는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면서도 연애에서의 부족한 감정들을 경수씨에게서 채울 수 있으니, 굳이 경수씨와의 관계를 더 발전시킬 필요를 못 느낄 테고 말이야.
그래선 난 경수씨에게, 지금까지 상대에게 베풀었던 호의를 절반 미만으로 줄이길 권하고 싶어. 데리러 와줬으면 하는 상대를 데리러 가 줄 수는 있는 건데, 거기에 다른 남자까지 불러서는 뭐 다 친하게 지내자는 식의 술자리를 이어가는 곳에 버티고 있을 필요 없는 거거든. 일등 참치끼리 상견례 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뭐야. 그런 거 하지 말고, 까닭 없이 상대에게 힘이 되어주려 하지 말며, 상대가 경수씨에게 오롯이 집중할 때 경수씨도 상대를 존중하며 대해주자고. 상대가 만나고 싶을 땐 만날 수 있는데 반대로 경수씨가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없는 관계는 바람직한 관계가 아니니까. 공짜 호의를 절반 이상 거두어도 상대가 경수씨와의 연을 이어가고 싶어하는지를 먼저 보고, 그러고 나서 뭐 물질적인 것부터 들이밀지 말고 그냥 경수씨 자체로 다가가서 친해져 보자고.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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