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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노멀로그 2009년 8월 결산

by 무한 2009. 9. 15.
더이상 선풍기가 필요 없는 계절이 오자 사슴벌레 유충들은 톱밥 깊숙히 파고들기 시작했다. 활발하게 톱밥을 갉아대던 녀석들이 보이지 않자 나는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든다. 심술이 나서 통을 툭툭 쳐 보지만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긴 동면에 들어간다. 몸속에 비축해둔 영양분을 가지고 별 일이 없는 한 다음 봄이 올 때까지 깨지 않는 깊은 잠을 잘 것이다.

나에게도 겨울잠을 잘 수 있는 행운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부지런한가보다. 난 사실 사슴벌레로 태어났어야 했다. 먹이와 짝짓기 외에는 관심이 없는 그냥 보통의 녀석으로 태어나 누군가의 수집벽에 납취를 당하지도 않고, 흔하고 흔해 나무에 매달려 있어도 지나가는 이들은 별 관심이 없는 애사슴벌레 정도로, 어느 참나무 수액에 혀를 꽂고 있으면 참 좋았겠다. 

회사를 그만두고는 시간이 참 많아졌지만, 나는 괴테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거의 모든 시간을 살아가기 위한 일에 바친다. 그러다가도 약간의 한가한 시간이 생기게 되면 이를 어쩔 줄 몰라 하며 마음의 안정을 잃어버린 채 기를 쓰고 그 시간을 없애려 든다.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에서


잔디밭에 누워 구름 흘러가는 것을 보는 것이 직업이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쓰기엔 과분한 여유가 생겼지만, 통장의 잔고가 줄어드는 것 처럼 이 여유도 눈사람 녹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질거란 생각에 마음이 바쁘다.

블로그에 자주 놀러오는 사람들에게 한 달에 열명, 선물을 하기로 했던 것도 힘들어 질 것 같다. 내 갤로퍼는 서 있는 날이 더 많아졌고, 이제는 밖에 나갈 때 운동화 끈을 꽉 매게 되었다는 얘기로 설명이 될 지 모르겠지만, 날은 춥고 불우한 이웃들은 겨울이 되면 더 불우해진다.

불우한 것은 형편뿐이 아니라 마음에도 찾아온다. 갈증이 나는 사람처럼 책을 읽어 댄다. 며칠을 굶은 듯 소설을 읽고 만화를 보고 시를 읽다 보면 잠이온다. 그러면 나는 영양분이 비축된 유충처럼 이불 깊숙히 파고 들어가 잠을 잔다.

내년엔 나도 어른 사슴벌레가 될 수 있을까?

더듬이가 날 자린지, 이마가 간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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