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일 만에 400만명이 다녀가셨네요. 물론, 그 중의 절반은 생사를 알 수 없는 김창식씨(응?) 겠지만요. 한RSS 독자가 1000명을 정말 넘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얼마 후면 1300명이 되겠네요.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사람들이 그 글을 보러 와 준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에요.
원래 400만 히트 하고 그러면, 이웃 블로거들이 그림도 그려서 보내주고, 축하 선물(응?)도 보내주고 그러지 않나요? 새 매일이 왔다는 표시가 떠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메일함을 확인해보니,
"맨날 가슴앓이만 하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메일 보냅니다."
이런 제목의 메일이 와 있네요. 괜찮아요, 지금도 메신저로는 주말에 소개팅하신다는 여자분이, 상대방 남자가 자신이 SF라고 말했다며, 이런경우 정말 SF일 가능성이 큰지를 묻고 있으니까요. 조만간 집 앞에다가 <무한 철학원>같은 걸 하나 낼 지도 모르겠네요.
옛날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물론 한글 사용이 조금 다른 까닭에 사전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지만, 요즘의 작품들처럼, 읽으며 작가의 유식함을 따라가지 못해 혼나는 듯한 느낌을 안 가져도 되거든요. 인터넷의 발달로 머리가 커진 괴물들이 많아 쏟아져 나오긴 하지만, 전 차라리 그 전에 글을 썼던 사람들이 부러워지네요. 이것도 일종의 도피겠지만요.
400만 히트를 기념해서 블로그를 쭉 남의 블로그 보듯이 돌아봤는데, 이렇다할 소설은 보이지 않네요. 소설이 다는 아니지만, 회사를 그만두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단편과 장편을 마음껏 쓰는 일이었는데, 골골 거리는 병아리 보고 있는 소년의 마음으로 어쩔 줄을 몰라하네요. 괜찮아요. <귀신을 보는 남자>와 <Tobor>그리고 <몰카>를 연습장에 막 적어 놓았으니까요.
옛날 작가들 만큼이나 웹툰 작가들도 참 부러워요. 아무래도 1차적으로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건 글보다 그림이 빠를테니까요. 과거에 퇴마록이 연재되던 PC통신 시절만 해도 작은 모니터에 바란바탕, 흰 글씨로 집중하며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시선을 뺏들 것들도 참 많거든요. 뭐, 다 변명이죠. 정말 재미있는 글을 써 낸다면, 꿀이 가득한 꽃이 있다면 나비와 벌이 그냥 지나가진 않을테니까요.
여유가 많아지니까 재털이가 무거워지는 것 처럼 마음도 무거워지네요. 다 알고 있으면서 하지 않고 있는 건 게으름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깨끗이 손을 씻고 완벽한 상태로 모든게 차분해져야 그때 비로서 작품을 쓸 수 있다고 믿는 일종의 잘못된 신앙인 것 같네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보면, 갖다 줘야 한다는 마음이 계속 커져서 결국 기일을 넘기고도 다 읽지 못하고 지연반납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블로그에 소설을 연재하게되면 그것도 같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다음편은 써야 하는데, 매뉴얼도 써야 하고, 사슴벌레 사진도 찍어야 하고, 케이군 이야기도 써야 하는데 하다보면 연재는 밀리고, 독자입장에서는 긴장감도 다 사라지고, 그래서 다 쓴 후에 조금씩 공개할 생각이에요.
솔직히 얘기하자면, 블로그를 통한 소설 공개보다는 앞으로 문예지등에 소설을 써서 보낼 생각이에요.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면 재미있기는 한데 PC방에서 친구랑 실컷 놀고 나온 느낌이 나거든요. 캐릭은 높은 레벨에 올라갔을지 모르지만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발걸음이 그냥 피곤한 것 처럼요. 노멀로그 초기에 모자님이 권해주셨던 "블로그를 그만둬라" 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네요.
파워 블로거나 프로 블로거 따위가 되고 싶은게 아니에요. 어제 메신저로 노멀로그에 자주 오시는 분과 대화를 나누다, "소설을 쓰고 있는데 잘 안풀려서 답답하네요, 자꾸 글이 안드로메다로 가 버리거든요" 라고 했더니, "나중에 블로그로 공개하면 반응이 어떨까 불안하세요?" 라고 하셨는데, 반응이 궁금한게 아니에요. 잘 썼다고 칭찬받고 싶어서 쓰는 글들이 아니니까요. 제가 쓴 글이 제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래요. 저한테는 그게 제일 중요하거든요.
몇 십년 전에 이상이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를 했을 때, 독자들은 미친놈의 개소리라고 했지만 다시 몇 십년이 지난 지금, 전 이상 전집을 주문했거든요. 누가 뭐라고 하든 제가 읽었을 때 재미있으면 되요. 요즘에는 재미라는 말이 그저 값싼 의미를 가질지 모르겠지만, 감동이든 웃음이든 놀라움이든 저에게 몰입할 수 있는 건 다 재미있는 거에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 블로그에 올리는 연재글들은 즉흥적으로 쓰여지기 때문에 순간 순간 감정에 많이 치우친다는 단점이 있지만요.
사실, 블로그에 쓰는 글을 '이게 제 글입니다' 라고 이야기하기도 좀 그래요. 일기처럼 떠오르는 생각을 옮겨 적은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넓은 아량으로 보듬어 주신다고 생각해요. 제가 사랑하는 문학작품들이 잘 차려진 밥상이라면, 지금 블로그의 글들은 햄버거 같은 거에요. 시간이 없는 분들에게 요긴한 점심이 될 수 있지만, 밥상보다는 영양가가 떨어지죠. 그래도 먹는 사람의 건강이 걱정 될 정도로 아무렇게나 만들진 않아요. 위생도 신경쓰고, 최대한 괜찮은 햄버거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죠.
노멀로그를 운영하며 가지고 있는 철직은 '돈 때문에 글을 쓰진 말자' 에요. 당장 리뷰 하나 써주면 몇 십만원 준다는데 그런 요청이 들어와도 모두 거절하죠.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뭐 어때' 라고 생각한 적이 있긴 하지만, 마음속의 누군가가 그러네요 '그건 아니야' 라고 말이에요. 그래서 내 글을 사겠다는 사람이 오면 응하더라도, 돈 줄테니 특정한 글을 써달라고 하는건 하지 않아요. 회사를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로 작정하며 비축해둔 돈으로 생활비를 대야 하지만, 이제 급한마음은 먹지 않기로 했어요.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다시 취업을 해야 한다고 해도 후회 없을 것 같아요. 난 모두가 내일 출근 때문에 잠 자고 있는 시간에, 나가서 별똥별을 보고 들어온 아이의 마음이 되었으니까요.
누군가 "무한님은 뭐든 밟고 올라가는 야망이 없네요" 라고 하지만, 괜찮아요. 전 그냥 가만히 누워 있어도 행복하거든요.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도 많고, 나보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도 많고, 나보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도 많아요. 최고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지금대로 좋아요. 내가 행복할 수 있을 만큼만 잘 하고 싶어요. 아픈 곳 없이 건강하며, 내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먹을 수 있다면 행복해요. 가끔 욕심이 고개를 들때면 부족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거든요.
그렇게 난 하루하루 감사하게 살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노멀로그도 400만 히트를 기록하게 되었네요. 결국은 다녀가신 분들의 발자국이 400만을 만든 거에요. 구독자도 등록해 주신 분들이 그 숫자를 만들어 주신 거구요. 제가 한 일이라고는, 그만두지 않고 계속 글을 쓴 것 밖에는 없네요.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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