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해안에 도다리가 핫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소문을 듣고 나니 앉으나 서나 도다리 생각. 낚시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조황 사진을 자꾸 보게 되고, 지인들과는 ‘도다리 낚시엔 12호 바늘 단 묶음추가 좋다’ 같은 입낚시를 하게 된다. 아내에겐
“거 쏠비치 삼척이 그렇게나 좋고 예쁘다던데….”
라며 미리 밑밥을 치곤, 입질이 오길 기다린다. 신통치 않자,
“거 쏠비치 삼척이 한국의 산토리니라던데….”
하며 다시 한번 밑밥 투척.
“그럼 다음 주말로 날짜 맞춰봐?”
됐다. 물었다.
여행 당일, 휴게소에선 방송의 여파로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 소떡소떡을 사 먹는다. 소스를 질질 흘려가며 맛있게 먹던, 방송 속 그 모습을 떠올리며 한 입 먹는데….
‘뭐야? 싸구려 소시지랑 부서지는 떡이잖아? 내가 생각했던 탱탱함과 쫄깃함이 없어….’
아내도 두 입 정도 먹고는 내게 ‘배고플 테니 더 먹어’ 란다. 받아들고는 휴지통 근처로 가보니, 거기엔 나처럼 잔반처리를 명 받은 아저씨 아줌마들이, 얼른 먹고 막대는 버리려고 두 개씩 들고 먹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힐끔힐끔 바라보는 것으로 공유하며, ‘그래도 돈 아까워서 끝까지는 먹는다’는 표정으로 남은 걸 입에 가득 넣고는 막대를 휴지통에 던진다.
더부룩한 속을 안고는 운전을 해 동해 도착. 동해에 왔으니 원래 첫판부터 생선회로 달리려고 했는데, 날도 추운데다 소떡소떡으로 더부룩해진 속 때문에 국물이 당긴다. 맛집으로 검색하면 광고가 하도 많으니,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곳’으로 검색해 식당을 찾는다. 우동 패스, 짬뽕 패스, 으응? 장칼국수? 처음 들어보는 음식 이름인데, 외국인까지 영어로 댓글을 달아 놓은 걸 보니 감동스러운 로컬푸드인 것 같다. 내비를 맞추고 출발. 검색한 지점에서 5분 거리.
곳곳의 균열로 세월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식당이었다. 상반이 불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는 은색 알루미늄 문. 일광에 지쳐 들뜨고 갈라진, 전면 유리에 뭍은 메뉴와 상호. 장사를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까지 댓글을 달 정도니, 지역 주민들에게 인기가 있는 진짜 맛집이란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할머니 몇 분이 만두를 빚고 계신다. ‘진짜 제대로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 그 모습을 보며 난 칼국수 대신 만둣국으로 주문을 한다. 갓 빚어낸 만두가 들어간, 뜨끈한 국물. 해답지를 보고 주문한 기분이다.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칼국수 맛도 보긴 해야 하니 아내는 칼국수로 주문.
그릇이 넘칠 정도로 칼국수가 나온다. 만두도 인심 좋게 여러 개가 들어 있다. 이건 진짜 맛이 없을 수가 없지! 하면서 국물을 한술 뜨는데
‘으응?’
방금 내가 뭘 맛본 거지? 하며 다시 국물을 한술 더 뜨는데
‘….’
맞은 편에서 국물을 떠먹던 아내도 놀라서 날 쳐다본다.
‘맛이…, 없어. 그냥 맛이 없는 게 아니라 너무 맛이 없어….’
내가 난생 처음 고추장 찌개를 한다며 고추장만 풀고 아무거나 넣어 끓였을 때 느꼈던, 그 맛이다. 만두를 먹어 본다. 시큼한 김치가 들어간, 그냥 그 신맛이 끝인 만두다.
‘분명 옆에서는 할머니들이 만두를 빚고 있는데, 그렇게 라이브로 빚고 있는 만두의 맛이, 어떻게 마트에서 산 만두보다 훨씬 맛없을 수 있지?’
아내와 난 칼국수와 만두를 바꿔서도 먹어 본다. 그나마 칼국수는, 시큼하진 않아서, 먹을 순 있다. 아내도 눈치챈 듯, 내가 칼국수를 주려 하자 자긴 이미 배가 부르다며 나더러 먹으란다. 만둣국은 자신이 알아서 어떻게든 해결해 볼 테니, 나라도 그나마 나은 칼국수를 먹으라는 투다. 그러면서 아내는 만두를 해체해 먹은 것인 양 발라내고 있다. 주인장과 할머니들께서 친절하신 까닭에 절반도 못 먹고 남길 수도 없다.
벌컥벌컥.
“그거 다 먹지 마. 그냥…, 그냥 남겨. 국물 마시지 마.”
물론 다 먹진 못했지만, 최선은 다했다.
놀라운 건, 음식을 남겨 그곳 사람들을 실망시킬 순 없다는 일념 하나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도, 계속해서 현지인들은 식당을 찾아왔다는 점이다. 그들은 우리가 주문한 것과 같은 음식을 주문했고, 정말 맛있게 먹었다. 아주 오래 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게 떠올랐다. 당시 난 지인의 강력 추천으로 줄을 서서는 막국수 맛집에 갔는데, 오래 기다려 먹었던 막국수의 맛은 충격과 공포였다.
‘이건 냉면도 아니고 뭐, 푸석푸석한 면이잖아. 게다가 간도 안 맞아. 이런 걸 먹자고 지금까지 다들 줄 서 있었던 거야? 이걸 왜 먹는 거지?’
여하튼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집’이라고 해서 모두에게 통용되긴 힘들며, 현지인과 객의 입맛은 다를 수 있다는 걸-또는 사람마다 입맛의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배운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낚시 얘기라고 제목을 달아 놓고는 낚시 사진 한 장 없이 먹는 얘기만 잔뜩 쓰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불만을 가질 수 있는 분들을 위해 ‘기이한 숙소 주인장’ 얘기는 생략하기로 하자. 아, 쏠비치 예약이 꽉 찬 관계로 하루는 일반 숙박업소에 묵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숙소는 방보다 화장실이 넓은 이상한 구조였으며, 질문을 한 번 하면 최소 5분 동안 설명을 해주시는 사장님이 계셨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 말고는 대부분의 숙박객이 러시아 사람들인듯했다.
아무튼 짐을 풀고 나와 낚시할 곳을 묻자 사장님은 숙소 바깥까지 우리를 인도해 ‘그 해변을 찾아가는 세 가지 방법 및 그 외 낚시할만한 해변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강연을 해주셨고, 그 길대로 우리가 잘 찾아가는지 들어가시지도 않고 계속 쳐다보셨다. 난 사장님이 시야에서 벗어난 걸 확인하고는 내비를 켜 목적지를 맞췄고, 내비는 사장님이 알려주신 것과는 좀 다른 길을 제시했다.
겨우겨우 찾아 해변 도착. 방파제 같은 곳이면 수레를 끌고 갈 수 있을 텐데, 모래밭이라 모든 짐을 들어서 옮겨야 했다. 동해는 보통 파도와 바람으로 인해 낚시를 하기 어려우며, 파도가 잔잔하면 바람이 불든가, 바람이 없으면 파도가 세든가 한 날들이 많다. 그런데 저 날은 파도도 바람도 잔잔했고, 도다리를 최소 10마리 이상 낚을 것 같은 희망이 부풀기 시작했다.
물론,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저곳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이 몇 명 안 보이는 게, ‘헛된 희망’의 복선이긴 했다. 하지만 낙장불입. 곧 해가 질 것 같아 자리를 옮길 수도 없었다.
부러지면 새 낚싯대를 사려고 대충 아무렇게나 쓰고 있는, 중국산 묻지마 낚싯대를 먼저 던졌다. 저게 얼른 부러져야 새 낚싯대를 사는데, 뭘 달아 던지든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어서 좀 당황스럽다. ‘어쩔 수 없이 바꿔야겠네. 부러져버렸어.’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25호 봉돌을 달고 후려치듯 던지기도 해봤는데, 우지직 소리는 좀 나지만 멀쩡히 잘 날아간다.
여하튼 저렇게 던져 놓고는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딸랑. 초릿대에 매달아 놓은 방울이 울린다. 진짜? 벌써?
게가 왜 여기서 나와? ‘깨다시꽃게’라는 게가 나왔다.
라면에 넣어 끓여 먹기로 결정하곤, 킵.
뭐야, 또 게야? 게가 얼마나 많으면 낚시에 걸려서 이렇게 나오지? 나오라는 도다리는 안 나오고, 게판이다.
게가 나오는 걸 보곤, 진로를 북북서로 돌린다. 도다리는 접고, 게낚시를 하기로 한다. 게낚시 미끼로는 고등어 대가리가 훌륭하다 알려져 있는데, 없으니 냉동 꽁치살로 대신한다. 저렇게 빨간 망에 미끼를 넣어두면, 그걸 먹으러 온 게들이 아래 하얀 그물에 걸리는 방식이다.
450(4.5m) 원투대를 하나 더 편다. 게낚시는 입질을 볼 필요도 없이, 그냥 던져 놓고는 15~20분 후에 건져 올리면 그물에 걸린 게들이 질질 끌려오는 방식이다.
털게 등장. 깨다시꽃게가 한 5마리 걸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저 털게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킹크랩과 같은 느낌의 게라서, 저 때부터는 ‘게라면’에서 ‘게찜’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게가 계속 나와줄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며 빈 그물로 올라오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도 바다 보며 낚싯대 펴고 어둑해지는 걸 보는 게 좋지 않냐고 하실지 모르겠는데, 물론 좋긴 했지만 추위에 점점 몸이 떨려왔다. 낮엔 따뜻했던 까닭에 후드자켓만 입고 갔는데, 저녁이 되니 바람도 부는 데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더 추웠다.
간간이 올라와 주는 깨다시꽃게. 그물을 던져 놓고 검색하다가, 깨다시꽃게의 가격을 봐 버렸다. 작은 건 1kg에 5천원, 중간 크기부터는 1kg에 9천원. 대략 5~7마리 정도가 그 가격인 것 같던데, 계산을 해보니 편도 톨게이트 비용이면 저 게를 박스로 사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원래 취미엔 돈을 따지는 게 아니잖은가. 금이 간 멘탈을 부여잡고 ‘괜찮아. 바로 직접 잡아서 먹는 건 또 다르잖아….’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작은 건 놔주고, 큰 것들로만 추린다. 금게는 튀김이 제일 맛있다는 정보도 검색을 통해 얻어낸다. 큰 거 다섯 마리 정도만 더 잡으면 배불리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아까부터 저체온증과 배고픔을 호소하지만, 먹을 정도의 양이 되려면 더 잡아야 한다. 그래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기로 한다.(응?)
낚싯대 총 출동. 좌측의 묻지마 대에는, 놓지 못한 도다리에 대한 미련으로 묶음추를 달고 지렁이를 끼워 던져놨다. 핫하다는 도다리가 두어 마리만 나와줘도 ‘도다리 회 + 게 찜’을 맛볼 수 있는데…, 애타는 내 마음과 달리 입질은 없다.
기다리던 중 두 가지를 알게 됐다. 하나는 근처 회 직판장들이 저녁 7시가 되기 전에 문을 닫는다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 가스버너가 없다는 거였다. 이미 7시가 다 되어가는 상황. 다급한 마음에 검색을 하다보니, 근처 하나로마트에서 포장된 회를 판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일산에서는 그 포장회가 대개 광어나 참치, 연어 정도에 그치곤 하는데, 동해에서는 도다리와 숭어도 파는 듯했다.
냄비와 찜기까지 챙겼는데 가스버너를 안 가져오다니…. 덕분에 게들은 무사할 수 있었지만, 나는 난감해지고 말았다. 게들은 놓아주기로 결정.
걸어서 갈 수 있도록 바로 놓아줬는데도 가질 않는다. 정이 들어서인가?(응?)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있는 녀석들을, 손수 한 마리씩 바다에 넣어주었다. 그렇게 그 날은, 마트에서 도다리 회와 숭어 회를 사와서는 먹고 마무리.
다음 날, 쏠비치 삼척에 체크인을 하고는 한 컷. 우측에 살짝 보이는 바다를 보면 알겠지만, 파도와 바람이 어마무시했다. 게다가 오후부터는 비까지 내린 관계로 낚시 불가. 바다를 코앞에 두고도 낚시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니…. 다음날을 기약하며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제대로 된 회를 못 먹은 게 아쉬워 묵호항 회센터에 들러 회를 떴다. 여러 가게가 붙어 있는 까닭에 어디서 구입을 해야 할지 어려울 수 있는데, 보통 수조 관리가 깨끗하게 이루어진 곳에서 사면 문제가 없다는 믿음이 있다. 물론 그것보다 더 나은 건, 블로그가 아닌 카페에서 사람들이 자주 말하는 집으로 가면 덤도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것. 가서는 두리번거림 없이 상호를 한 번에 찾아 ‘소문 듣고 왔어요’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장님들은 싱글벙글 하시며 덤을 많이 주셨다. 이번에 간 곳은 만나수산. 내가 저 사진을 찍자, 사장님이 잡어 세 마리를 더 넣어주셨다.
내가 산 고기의 가격은 삼만 원. 회 뜨는 건 다른 곳에 가서 따로 돈을 지불하고 떠야 한다. 회 뜨는 고깃값 만 원 당 천 원. 삼만 원 어치 샀으면, 삼천 원을 내면 된다. 난 사장님이 고기를 너무 많이 준 까닭에 회 써는 곳에서 돈을 더 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간 곳 역시, 검색을 통해 알아낸 ‘신의 손’이라 불리는 곳. 다른 곳은 얇게 떠주는데, 내가 간 곳은 두툼하게 잘 떠준다고 들었다. 그 얘기를 하자 역시 사장님은 싱글벙글하며 할인. 다른 곳에서 안 떠본 관계로 비교할 순 없지만, 개인적으론 만족한 까닭에 다음에 가게 되면 또 이용할 생각이다. 직접 잡은 고기도 돈을 내면 떠주는지 물어봤어야 하는데, 이걸 못 물어본 게 안타깝다.
숙소에 돌아와 상 차리고는 한 컷. 게찜을 못 먹은 게 한이 돼 대게도 좀 사왔다. B급 대게는 8~10마리에 5만원에도 구입할 수 있다고 하던데, 짜고 살도 별로 없다는 이야기가 많은 까닭에 A급으로 구매했다. B급이 10마리 5만원이라면, A급은 5마리에 10만원 정도의 가격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A급 대게를 마리 당 1.5만원에 구입한다 생각하고 흥정하면 적절할 것 같다.
개인적으론 그간 먹어 온 대게는 대부분 짜며 얼마 안 먹어도 물렸는데, 저 날은 회에 거의 손을 안 대고 대게만 먹었던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던 ‘대게의 맛’이 진짜 대게의 맛이 아니었던 느낌. 특별한 요리가 아닌 그냥 생물을 찐 것에 불과한 건데도, 그냥 말만 짬뽕인 흔한 짬뽕과 국물 흡입하게 되는 맛난 짬뽕을 먹을 때만큼의 차이가 났던 것 같다.
여하튼 저렇게 잘 먹고, 잘 쉬고, 다음 날 낚시를 기약하며 일찍 잠자리에 든 뒤 해 뜨기 전부터 낚시 준비를 했지만, 어마무시한 파도와 선풍기 3단 정도의 바람이 터져 아쉬운 마음으로 바다만 보다 돌아왔다. 다음에 가게 되면 가스버너 잊지 않고 챙기며, 고등어 대가리도 꼭 챙기고, 삼각대로는 파도를 넘기기 어려우니 샌드폴도 꼭 마련해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이번 여행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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