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에 미쳤구나 싶을 정도로 많은 미끼를 준비했다. 염장 고등어, 염장 돌돔, 염장 강담돔, 염장 민물장어, 염장 갯지렁이, 백크릴, 각크릴, 빵가루. 이 정도로 준비했으면 진짜 물고기들을 혼내주려고 벼렀으며, 치밀하게 준비를 한 거라 할 수 있다.
욕지가 어디인가. 추자나 여서보다는 하나 아래지만, 생각만 해도 꾼들이 손맛과 입맛을 다시는 곳이며, 동네 고양이도 고등어나 전갱이를 물고 다닌다는 곳 아닌가. 그래서 난 가기 전까지만 해도
‘욕지도 물고기들 이제 큰일 났다. ㅎㅎㅎ’
하며 바늘도 아홉 종류나 준비했다. 대상어인 뱅에돔 바늘을 시작으로 지누 1호, 3호, 5호, 세이코 12호, 14호, 16호, 24호, 거기다 장어바늘까지. 남해에 문어도 많이 붙었다고 해서 작은 에기부터 큰 에기까지 문어와 갑오징어, 또는 무늬오징어 채비도 하고, 원투대에 루어대, 거기다 찌낚싯대까지 챙겼다.
잡은 고기를 신선하게 보관해야 하니 살림망, 기포기, 아이스박스, 얼음도 챙기고, 직접 회를 뜨기 위해 회칼, 도마, 키친타올까지 챙겨 차에 싣고 나니, 룸미러로 뒤를 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뭐라도 안 잡힐 수가 없는 거지 이건. 원양어업 나가는 어부보다 준비를 더 했는데.’
무 뽑듯 고기를 바다에서 뽑아낼 일만 남았다 생각하며, 120% 각성된 상태로 달려 통영에, 통영에서 다시 배를 타고 욕지도에 도착했다.
1. 준비한 채비를 반 정도 던졌더니 하루가 가고….
물고기들을 혼내주러 간 건데, 내가 혼나고 말았다. 집에서 편안한 상태로 의자에 앉아 지도로 포인트를 찾을 때와 달리, 필드에서는 강한 햇볕이 내리쬐며, 바람이 불었고, 입질이 없어 채비를 바꿀 때마다 몸은 점점 지쳐갔다. 이게, 집에서 구상할 땐 참돔이 그냥 바로 물어주는 채비였는데….
예상치 못한 복병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건 크릴에서 흘러나온 짠물(?)이 손톱 사이로 파고들어 쓰리고 아리다는 것이었다. 염장해 간 짠 미끼들을 계속 만져서 그럴 수도 있는데, 여하튼 초조해질수록 자꾸 건져 채비도 바꾸고 미끼도 바꾸다 보니, 손도 같이 절여졌던 것 같다.
입질은 없는데 바삐 움직이다 보니 손에 땀은 계속 차고…, 그래서 장갑도 벗어버렸다. 나중에 깨닫게 되었지만, 이때 장갑을 벗으면 안 됐다. 이 일로 인해 손은 까맣게 타버렸고, 저녁부턴 손에 찬물이 닿아도 뜨겁게 느껴지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려고 450km를 달려 배까지 한 시간 타고 들어온 게 아닌데….
하나의 어종을 노리고 하나의 채비로만 낚시를 하는 꾼들이야 자신의 채비에 믿음이 있으니 꽝을 치더라도 고집스레 한 우물만 파지만, 나 같은 무규칙 이종 낚시꾼들은 눈앞에 보이는 고기에 현혹되고 만다. 참돔이나 벵에돔은 미뤄두고, 지천에 널린 자리돔을 잡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리돔은 다 커봐야 손바닥 반만 한 크기의 물고기로, 지금 밖에 나가 개미를 찾는 것보다 쉽게 찾을 수 있다. 남해 어디 펜션에 놀러 왔다가, 장난감 같은 낚싯대에 미끼 달아 대충 던져도 잡히는 게 자리돔이다.
그런데 그런 자리돔이, 안 잡힌다. 실제로 근처에서 그냥 바다 구경하러 온 듯한 아주머니들이 어디서 낚싯대를 구해와 대충 휘적이면서도 한두 마리씩 계속 올리는데, 구명조끼 입고 밑밥까지 뿌려가며, 낚싯대만 세 종류를 가져온 나는 자리돔도 못 잡고 있었다. 난 물고기들이 뭘 좋아할지 몰라서 카드 채비도 바늘 크기 4호, 5호, 6호 다 준비했는데….
자리가 안 좋은가 싶어 포인트 이동을 결정했다. 낚시를 하던 청사 방파제는 욕지도의 북서쪽인데, 정반대인 남동쪽 노적 방파제로 옮겼다. 인터넷으로 포인트를 조사했을 때, 그냥 여행 와선 재미로 던진 원투에 참돔이 몇 마리나 나왔다는 곳이다. 진입하는 길은 ‘여기 사는 사람들은 차가 없으면 어떻게 이 길을 올라다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사가 가파랐는데, 그런 포인트라 사람 손이 덜 탔을 것 같다는 생각에 희망이 부풀기도 했다.
장기하의 노래였던가. <그건 니 생각이고>. 노적 방파제 앞쪽엔 그물인지 통발인지를 놓은 부표로 가득했으며, 온갖 해초와 쓰레기가 떠밀려 온 듯 앞을 덮고 있었다. 하염없이 기다려도 원투에 입질이 없길래, 해가 거의 다 져갈 때 자리돔 낚시를 다시 시작해 대여섯 마리를 잡았다. 자리돔이라도 마릿수를 채워 세꼬시를 해 먹으려 했는데, 자리돔마저도 해가 지고 나니 입질을 하지 않았다.
노적에서 더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 다시 북서쪽 대송 방파제로 향한다. 대송에 가보니 이미 꾼들이 자리하고 있다. 방파제 바로 앞으로 통발 그물이 있어서 멀리 칠 수 없다고 한다. 다시 섬 반대편으로 가보기로 한다. 이번엔 북동쪽 야포. 현지인들이 ‘야포 끝’이라고 부르는 포인트다. 야포 끝까지 가다 보면 오르막길이 나오는데, 오르막길 옆으로 100미터쯤 들어가면 숨겨진 포인트가 있다.
던지자마자 입질. 근데 크게 두어 번 울리더니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봉돌이 구르다가 돌에 박혔나?’ 싶어 한참을 기다렸다. 그러다 미끼를 갈아주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걷는데…, 붕장어다. 근데, 장어가 왜 여기서 나와?
세이코 12호, 14호 바늘에 염장 갯지렁이를 달아 던졌더니, 1타 1피 수준으로 붕장어가 나온다. 크기는 방생사이즈를 겨우 넘긴 수준이지만, 종일 무입질에 시달린 터라 감격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사람이란 게,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장어만 계속 잡히니 재미가 없다. 열 마리쯤 잡고는 바늘 크기와 미끼를 바꿔보며 다른 고기를 노려보지만, 소식이 없다. 손님 고기로 볼락 두어 마리 더 하고는 새벽 세 시를 좀 넘겨 철수.
숙소에 도착해 자리돔과 볼락, 장어 손질을 한다. 집에서 손질 영상을 보며 수십 번 이미지트레이닝을 했는데, 효과가 있는지 다행히 먹을 정도는 되었다. 자리를 파하고 나니 새벽 다섯 시. 세 시간 후인 여덟 시에 물이 들어오는 까닭에 그때 일어나서 다시 낚시 가기를 기약해 보지만, 혹사당한 까닭인지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정신이 들었다.
2. 아, 수달…. 수달!
일어나자마자, 욕지도에서는 안 가본 유동마을로 향한다. 유동 방파제에 도착했지만, 던질만한 곳엔 이미 사람들이 있어서 이동. 작은 방파제도 가보았지만, 거긴 그 비좁은 곳에 틈 하나 없이 사람들이 있었다. 이전에 한 번 가서 입질도 못 받았지만, 그래도 최근 벵에돔이 잘 나온다는 조행기가 있기에 청보리 오토캠핑장 앞 포인트로 향했다.
포인트엔 이미 낚시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닌 걸로 보이는 조사님 둘이 계셨다. 그래서 자리를 옮길까 했는데, 자리만 옮기다 물 때를 다 놓칠 것 같아 양해를 구하고 낚싯대를 펼쳤다. 두 조사님들은 30 안팎의 벵에돔을 뽑아내고 계셨는데, 난 같이 찌낚시를 하기엔 비좁아 입구 쪽으로 나와 원투를 쳤다.
좌대가 있는 10시 방향으로 던지고 싶었지만, 두 조사님들이 그쪽에서 찌낚을 하고 계신 까닭에 12시 방향으로 던졌다. 이번에 난 450 두 대와 300 세 대를 가져갔는데, 300대로 던지면 뒤에 있는 전깃줄의 간섭 없이 편하게 던질 수 있었다. 던지자마자 입질. 놀래기 밭인 듯 용치놀래기와 어랭놀래기가 느나(넣으면 나오는) 수준으로 나왔다. 쌍동가리와 쏨뱅이도 잡았는데, 쏨뱅이를 잡을 땐 녀석이 크게 입을 벌리고 있었기 때문인지 무거워선, 대물인 줄 알고 살짝 설렜다.
“놀래기랑 무슨 가리, 뱅이, 그런 거라도 많이 잡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라고 하실 분이 있을 수 있는데, 위에서 말한 고기들을 통틀어 잡어(잡고기)라고들 한다. 참돔 같은 게 수리부엉이라면, 놀래기 같은 건 그냥 참새, 까치, 직박구리 같은 뭐 그런….
놀래기도 맛있다고들 하는데, 생긴 걸 보면 먹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신다. 열대어 같은 그 색상 때문에 제일 먼저 꺼림칙하며, 흉측한 이빨을 보고 나면 한 번 더 꺼림칙해진다. 이번 낚시 여행의 주제가 ‘잡아서 먹는다’였던 까닭에, 별로 먹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 녀석들을 다 놔주곤 다시 어제 장어 타작하던 야포로 향했다.
야포에선, 꾼들 사이에 내려오는
-어제 고기 나왔다고 해서 오늘 또 나오는 거 아니다.
라는 말처럼, 열심히 던졌음에도 초딩급 장어 세 마리 정도밖에 나오질 않았다. 대개 장어 굵기가 야쿠르트병 만하면 중딩 장어, 박카스병 만하면 고딩 장어, 캔커피 만하면 대물로 쳐준다. 캔커피도 레쓰비 급과 칸타타급으로 나뉘는데, 여하튼 종일 옮기고 접고 던지고 하느라 바쁘기만 바빴지 인건비도 안 나오는 형편없는 조과에 심신이 지치고 말았다.
지쳐서 넋 놓고 있을 때 고양이 한 마리가 내가 없는 줄 알고 고기 담아둔 두레박을 뒤졌는데, 부스럭 소리에 놀라 쳐다본 나와 고양이 눈이 마주쳤고, 난 고양이가 있으리란 상상도 못했고 고양이는 내가 있는 줄 전혀 몰랐던 까닭에 우린 서로 몸의 모든 털이 곤두설 정도로 놀랐다. 입질이 없어 지치기도 했고 고양이 때문에 놀라기도 해서, 포인트를 옮기기로 했다.
그래서 다시 간 곳이 청사 방파제. 1년 전쯤 청사에서 전갱이를 지겹도록 잡았는데, -그래서 이번엔 전갱이 말고 다른 고기를 좀 잡고자 했지만 그게 여의치 않아- 그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로 했다. 수심 3~6미터로 조절하며 던지면 전갱이 파티를 할 수 있었던 곳이다.
분명 그랬던 곳인데, 찌가 그냥 쑥쑥 들어갔던 곳인데, 1시간 동안 수심을 바꿔가며 열심히 던져도 입질 한 번이 없었다. 새우도 써보고 지렁이도 써보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기분 나쁘게 찌에엑- 인지 삐에엑-인지 하는 새 울음 같은 소리만 방파제에 울려 퍼질 뿐, 찌는 미동도 없었다.
그러다 바다에 뭔가 떠가며 찌에엑- 삐에엑- 하길래, 쳐다보니 서너 마리 정도의 새끼오리 같은 게 떠 있는 것 같았다. 바다에 무슨 오리지, 하며 랜턴을 비췄는데, 방금까지 분명 헤엄치고 있었던 게 감쪽같이 사라졌다.
‘뭐지? 찌를 하도 쳐다보고 있었더니 이제 헛것이 보이나? 아니면, 나이 때문인가?’
하며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물속에서 뭔가가 나와 테트라포트로 올라섰다. 앞서 말한 고양이가 나타났을 때와 비교해, 대략 3.75배 정도 더 놀랐던 것 같다.
물속에서 나온 건, 수달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새끼오리들로 착각했던 건 수달의 발이었고, 배영을 하던 녀석이 내가 랜턴을 비추자 바로 잠수를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수달은 거무스름한 몸에 족제비보다 조금 큰 정도의 몸집을 지닌 것이었는데, 내 눈앞에 있는 수달은 베이지색이 섞인 잿빛에 짬타이거(군대에서 짬밥을 먹으며 사는 고양이) 정도의 크기였다.
테트라포트에 올라선 수달은, 전갱이로 보이는 물고기를 앞발로 잡은 채 씹어먹기 시작했다. 아삭아삭- 사각사각- 하는 소리가 났는데, 뼈까지 씹는 그 소리가 그때는 공포로 느껴졌다. 난 수달이 물고기를 다 먹고는 내 쪽으로 올지 몰라 랜턴을 계속 비췄는데, 녀석은 신경 안 쓴다는 듯 헤엄치다 잠수를 했다. 수달이 또 튀어나올 것 같은 불안감에 난 계속 주위를 살폈는데, 방금 전 수달과는 다른 녀석이 아까 그 찌에엑- 빼에엑- 같은 소리를 내며 내항 쪽 배 위에 올라와 있었다.
수달이 보이면 고기 다 도망간 거니 거기선 낚시 접으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내가 본 것만 두 마리인 데다 근처에서 또 그 새 울음 같은 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선 최소 세 마리 이상인 것 같았다.
‘날씨도 좋고, 물때도 좋고, 최근까진 조황이 좋았다는 소문까지 있었는데, 수달 때문에도 망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꽝 친 김에 수달 구경이나 할 생각으로, 배 위에 올라가 그물에 몸을 비벼대고 있는 수달을 한참 바라보았다. 개가 털갈이할 때 소파 같은 곳에 몸을 비비는 것처럼 비벼댔으며, 아예 드러누워선 몸을 기우뚱기우뚱해가며 등을 긁기도 했다. 근처에선 고양이가 하악질 할 때 나는 소리 같은 것도 계속 들렸는데, 수달이 그런 건지 고양이가 그런 건지는 확실치 않다.
여하튼 확실한 건, 전갱이 파티하게 될 줄 알고 잡은 고기와 장어도 다 놔줬는데 전갱이를 못 잡았다는 것이며, 욕지도 수달은 사람을 전혀 안 무서워하는 데다 혼자 고기를 잡아 놀리듯 낚시꾼 앞에서 먹는다는 거다. 근데 수달은 천연기념물이니 막 보기 어렵거나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통영에서 밑밥 사러 갈 때에도 보고, 욕지도에서도 보고, 수달 때문에 궁금해서 찾아보니 대구에서는 수달이 낚시카페에 들어가 물고기 뷔페 즐기다 검거당했다던데….
전갱이 파티 처참하게 실패한 까닭에, 비빔면 해먹을 때 넣으려고 산 캔 골뱅이로 허기를 달래고 잤다. 욕지도까지 와서 캔 골뱅이라니, 자존심이 얼마나 상하던지.
마지막 날에도 대상어는 못 잡고 말았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자. 대신 용치놀래기와 자리돔을 3초에 한 마리씩 잡을 수 있는 장소와 방법을 알게 된 것으로 만족한다. 아, 원투로 삼걸이(바늘 세 개에 물고기가 다 물려있는 것)도 했는데, 쌍동가리 두 마리에 용치놀래기 한 마리니 이것도 그냥 못 잡은 걸로 치자.
이렇게 내 인생 마지막 욕지도 낚시 여행이 막을 내렸다. 낚시를 접는 건 아니고, 거의 매해 가던 욕지도는 이 여행을 끝으로 졸업하기로 했다. 본섬에서 갈 수 있는 포인트엔 그물과 통발이 너무 많은 것 같고, 내비 안 켜고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니 좀 질리게 된 것도 같다. 벼르던 포항과 거제 한 번 찍고, 삼대장으로 불리는 추자도, 여서도, 거문도에 가고픈 게 지금의 희망사항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동해에 대물 붕장어가 많이 붙었다고 해서 꽁치를 염장하는 중이다. 마침 10마리에 5천원 세일을 하길래 사와선, 정성껏 포를 뜨고 잘라 소금을 뿌려 말렸다. 완전범죄를 꿈꾸는 까닭에 후다닥 처리하곤 흔적까지 모두 쓰레기봉투에 담아 내다 놓았는데…, 집안 비린내가 없어지질 않는다. 비린내 기막히게 없애는 방법 아시는 분은 댓글을 좀 달아주시길 부탁드리며, 이번 글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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