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네 번째 다시 쓰는 글인데, 이번엔 빙빙 돌아가는 것 없이, 그냥 짧고 굵게 제가 드리고픈 얘기들만 적어둘까 합니다. 복잡한 사연도 아닌데 왜 이걸 가지고 제가 마무리를 못 짓고 있나 다시 봤더니, 그건 아무래도
-부정적인 반응이나 조건을 아예 배제한 채 J씨가 질문을 해서.
인 것 같습니다. J씨는 ‘다가가는 방법’, ‘친해지는 방법’, ‘뭐라고 카톡을 보낼지’ 등을 물으시는데, 그걸 가지고 우리가 14박 15일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해 답을 낸다 해도
-상대가 J씨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경우.
라면 모두 부질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말하면 J씨는
“아 그러면, 저랑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는 상대와 친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해주세요.”
라고 하실 것 같은데, 솔직히 그래서 참 글을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보통의 경우 그런 일이 벌어지면 속상해하기 마련인데, J씨는 그냥 막무가내로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느낌입니다.
이건 정말 간단한 건데, 친해지고 싶다고 해서 다 친해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당연한 걸 설명하려니 지금도 갑자기 어려워지는데, 그냥 싫을 수도 있고, 일정 선 이상으로 친해지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며, 이쪽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굳이 친하게 지낼 필요를 못 느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언젠가 사십 대 회사원인 대원이 신입 여직원과 친해지고 싶다며
“사귈 생각은 없습니다. 뭐, 그렇게 된다면야 좋겠지만, 그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상대와 오빠동생 정도의 사이로라도 가까워지고 싶습니다. 도움 줄 수 있을 때 도움 주고, 어려운 일 있을 때 나눌 수 있는 사이 정도로 말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한 적 있는데, 그 대원 역시
-상대는 도움이 필요하지 않고, 어려운 일을 굳이 이쪽과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다.
라는 걸 이해 못 했던 게 기억납니다. 자긴 좋은 마음으로 그러는 것인데 왜 밀어내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만 반복했던 기억이 있는데, 여하튼 J씨가 그 대원만큼 심각한 건 아니지만 이 지점을 좀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여기서 보기에 J씨와 상대는 그냥 강사와 수강생 정도인 건데, J씨는 막
“그녀는 절 각성하게 해주었고, 그녀 덕분에 열정과 절실함이 솟구치며, 밝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것과 동시에 고마운 마음, 감사한 마음….”
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반대로 그녀 입장에서 보면, 그냥 정해진 시간에 자신은 운동강습을 했을 뿐인데 어느 수강생이 막 각성해서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아무래도 좀 이상하며 나아가 무서울 수도 있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이렇듯 제가 보기엔 그냥 처음부터 턱턱 걸리는 게 많은 이야긴데, J씨는 이런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녀에게 ‘내가 괜찮은 사람인 이유’를 작성해서 표현하면 어떨까요?
-번호는 알게 되었고 질문하며 첫 톡도 텄는데, 이제 뭐라고 카톡해야 하나요.
-시간이 걸려도 괜찮으니, 그녀에게 조금씩이라도 다가가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라는 이야기를 하고 계시니 제가 난감해지는 것 같습니다. 전 J씨가 상대의 번호를 직접 물어본 게 아니라 커뮤니티를 통해 알아내 연락한 거라는 문제, 그리고 한참 답이 없자 ‘연락 드렸는데 답이 없으셔서요’라고 하려 했던 문제, 상대의 답이 짧으며 긴 텀이 있었고 대답은 다음 날에나 확인한 문제 같은 것들로 고개를 가로저으려는 중인데, J씨는 이걸 두고도
“첫 고삐를 풀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는 좀 더 얼굴 보고 얘기하며….”
정도로 생각하시니 말입니다.
자꾸 글을 썼다 지웠다 하게 되는데,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있던 J씨가 크게 상심할까 봐, 그게 저는 자꾸 염려되는 것 같습니다. 이건 J씨가 부족하다거나, 나쁘다거나, 못나서 그런 거란 얘기가 절대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아 잠깐만. 근데 J씨도, 이전에 호감을 표현하려 했던 다른 여자분에게 연락이 와도, 이제는 그 호감이 사라진 까닭에 ‘다음에 보자’ 식으로 미뤄 버리지 않습니까? 예전 같으면 이쪽에서 조를 때 상대가 미지근한 반응 보이면 전전긍긍했지만, 지금은 상대가 두 번이나 먼저 만나자는 신호를 보내도 대수롭지 않게 거절해버리고 말입니다. ‘지금 더 호감 가는 사람이 있어서’라는 이유로 J씨가 그럴 수 있는 것처럼, 그런 이유로도 상대가 선을 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제가 이 사연을 두고 계속해서 고민한 또 다른 이유는, J씨가 1:1로 친밀한 관계를 맺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J씨는 이전에 대외활동도 많이 하고 2년 넘는 연애를 한 적 있다고 하셨는데, 그런 것 치고는 대화를 너무 못합니다. 특히 목이 아파서 하루 쉰 강사에게,
“약 같은 것보다, 만성이면 더 쉬는 게 나을 듯한데요.”
라는 이야기를 한 지점 같은 건 살짝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쉬면 좋아질 수 있는 거 누구나 알지만, 밥벌이를 해야 하니 못 쉬는 것 아니겠습니까? 역시나 상대도 “그래도 일을 해야 하니까….”라고 대답하던데, 이런 와중에 J씨는
“연락의 빈도도 늘려가야 하는 거 아는데, 어떻게 늘려나가야 할지….”
라고 하시니, 역시나 ‘내용’은 그냥 대수롭지 않게 스킵하고 ‘빈도’를 생각하시는 것에서 저는 또 난감해지는 것 같습니다.
‘사귀는 걸 우선으로 둔 게 아니라, 친해지려는 것’이라는 J씨의 훼이크도 제가 글을 쓰게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라 할 수 있는데, 아무튼 그게 훼이크가 아니라 진짜인 것이라 치고, 상대와 친해지는 건 ‘강사와 수강생’의 선 안에서 하길 전 권하고 싶습니다. J씨는 노멀로그의 이전 매뉴얼들에서 취사선택한 문장들을 제게 내미시던데, 그거 막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것만 택하시면 곤란합니다. 예컨대 저 위에서 예로 든 ‘신입 여직원과 친해지려는 사십 대 남자대원’이, 연락의 빈도를 늘리라는 어느 썸 관련 사연에서의 문장만 가져다가 카톡을 늘려가면, 부담스러우니 사적인 연락은 하지 말아 달라는 말 듣는 건 시간문제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선 안에서 친해질 수 있는 방법만도 39,782가지가 있습니다. 야외 자전거도 타냐고 묻고 주로 어디서 타는지 물으면 사는 곳도 알 수 있고, 언제부터 강습했던 건지 물으며 대략의 나이도 알 수 있으며, 주말에 날씨와 미세먼지 예보 좋다고 말하며 주말 일정도 살짝 알 수 있고, 지역 축제 소식 알려주면서 누구랑 보러 갈 것인지도 슬쩍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J씨는 이런 걸 다 접어두곤,
“다음 강습에 바뀌는 노래, 빠른 거예요? 빠르면 힘든데….”
라는 이야기만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얼른 상대와 개인 톡 트고자 알아낸 번호로 공적인 척 질문했고 말입니다.
상대를 알아 가는 이런 대화법은, 사실 여러 관계를 맺어가며 익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내게 물었을 때 괜찮았던 걸 나도 사용해 보고, 또 어느 질문을 했다가 상대가 불쾌해했다면 그런 시행착오를 겪어 가며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 이 강사분과는 선 안에서 일단 5분 넘게 대화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이를 목표로 하길 권하며, 동시에 J씨가 ‘이젠 호감 없으니 볼 필요 없음’이라며 끊어낸 다른 관계들에도 다시 관심을 갖고 임하셨으면 합니다.
J씨는 호감 가는 사람에게만 집중하며 모든 에너지를 거기에 쏟으려 하시는 것 같은데, 친구(또는 지인)와 같이 뭘 해 본 적 없는 사람은 연애를 시작해도 뭘 해야 할지 모를 수 있습니다. 더불어 그렇게 ‘하나에 올인, 안 되면 포기하고 다른 하나에 올인’ 하다 보면 맨날 같은 레퍼토리의 헛발질만 할 수 있으며, 친구나 지인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어야 할 정보들도 전혀 모르는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요즘 여자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걸, J씨는 전혀 모르시지 않습니까? 그건 이성인 친구들이 J씨를 생각해 불러낸 자리에만 가도 듣고 접할 수 있는 거고, 그걸 알게 된다면 다른 이성과의 대화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으니, 마음 변화에 따라 매달리거나 무관심해지는 두 가지만 고집하지 마시고 좀 더 두루두루 어울려 보셨으면 합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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