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축하드립니다. 오랜만에 주신 사연이 커플부대에 입대했다는 사연이라 저마저 기쁩니다. 얼마 전 노멀로그 원로 독자이신 모 대원도 연애소식을 들려주시던데, N씨마저 이렇게 소식을 주시니 이제 1세대 독자분들에 대한 마음의 짐이 거의 다 덜어진 것 같습니다.
N씨의 경우 제가 ‘백화점, 시계’라고 암구호 같은 말만 해도 무슨 의민지 알아들으실 테니, 짧고 굵게 짚어가 볼까 합니다.
N씨가 만난 연하남과 제 다른 매뉴얼에 등장하는 연하남을 똑같이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제 매뉴얼에 등장하는 연하남들에겐 각각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으며 먹고 살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함.
-현실에서의 도피로 연애를 택해 감정이든 물질이든 마구 소비하는 중임.
-뭐든 다 가능할 것처럼 말하지만 돌아보면 다 말 뿐임.
-둘만 고립된 상황에서 길어야 주말까지만 내다보는 만남을 이어감.
-원래의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을 연기하며 연애 판타지를 실현하려 함.
등의 문제가 존재하기도 하는데, 연하남이라고 해서 저런 문제들을 꼭 가지고 있는 건 결코 아닙니다. 말도 안 되는 보장을 장담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그런 걸 이뤄내는 사례도 있으며, 나이만 어릴 뿐 현실에선 앞장서서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리더십을 보이는 사례도 있고 말입니다. 이건 물론 N씨가 한 말들을 근거로 한 판단이긴 합니다만, N씨의 상대에게선 위의 문제들이 보이지 않기에 저는 참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정도 모르면서 ‘나이 얘기’만 듣고 N씨의 연애를 폄하하는, 그 지인의 얘기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지인이 했다는 그 얘기들은 진심 어린 걱정이나 염려가 아닌 고정관념에 근거한 비판이며 일부러 N씨가 어쩔 줄 몰라하는 걸 보며 극딜을 넣은 것이라 할 수 있으니, ‘너나 잘하세요.’의 느낌으로 흘려보내시기 바랍니다. 그 지인 말고 나머지 지인들은 거의 9:1의 비율로 축하를 해주지 않습니까? 악플 같은 그 지인의 말만 보지 마시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해주는 축하와 응원도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N씨는 제게
“아무래도 남자친구가 연하다 보니, 그로 인한 걱정과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요. 이런 상황인데 맘껏 사랑해도 괜찮을까 싶은 걱정도 되고….”
라고 하셨는데, 저는 반대로 N씨에게 이번엔 좀 그 ‘맘껏’을 해보시라는 얘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 우물쭈물하느라 뭔가를 다음으로 미루면 그건 그만큼 기회를 잃는 게 될 수 있고, 아직 벌어진 것도 전혀 없는데 걱정만 하느라 ‘더 표현하는 건 다음에’하고만 있으면 상대는 딱 거기까지가 이쪽의 마음인 줄 알 수 있으니 말입니다.
닮은 점을 찾아보고, 다른 점도 흥미롭게 보아가며, 솔로부대 복무 중 나랑은 관련이 없었던 것처럼 여겨졌던 커플템도 해보고, 더 추워지기 전에 한강 근처도 걸어보며 거기서
“아 제발 박카스급 장어 한 마리만…. 와라, 와라, 물어.”
하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의 낚시왕 장모씨도 구경하면 됩니다. 더불어 학창시절 별명이 뭐였는지도 얘기해 보고, 부모님께 제일 크게 혼났던 일도 공유해 보며, 제일 처음 내 돈 주고 산 앨범은 뭐였는지, 친구들과 여행을 가본 적 있는지, 잃어버려서 가장 속상했던 건 무엇인지, 열심히 돌봤던 첫 애완동물은 뭐였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주의할 점이라면 ‘결혼’에 대한 고민이 크다고 해서 만난 지 100일도 안 되었는데 막 어떤 확답을 받으려 해선 안 된다는 것이며, ‘언젠가는 변할 거야. 나이가 들면서 더 현실적으로 변하겠지.’라는 색안경을 낀 채 두고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식적으로라도 N씨 스스로 나이를 잊고 그 관계에 임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으며, 상대가 어리다고 해서 내려다보며 채점하려 하지 말고 상대라는 ‘한 사람’의 말과 행동에 그만큼의 무게를 두셔야 합니다.
나아가 ‘사귀다가, 헤어질 수 있다’는 것에도 너무 겁먹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건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누구라도 보장해줄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그런 보장만으로 연애를 채워가려 하면 긴장감도 사라지고 그저 모든 게 의무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지금까지는 내 좋은 모습만을 봐서 날 사랑한다는 것일 수 있어. 그런데 그게 아닌 모습들을 보고 날 싫어하게 되면 어쩌지?’
라는 고민을 하는 건, 장이 예민한 데다 화장실에 대해 많이 낯가리는 제가 외부활동을 할 때 ‘화장실 문제’를 걱정하는 것과 비슷한 일일 뿐입니다. 걱정과 달리 그런 사정에 대해 얘기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해주며, 한 술 더 떠 자신의 급똥경험이나 폭풍설사의 추억 등을 공유하려 들기도 합니다. 휴지를 나눠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러니 일단 저지르고 보면 별 것 아닐 일이 될 것들을 걱정만 하지 마시고, 다른 사람 다 기계처럼 완벽한데 N씨만 연약한 사람이라 어설픈 점 있는 거 아니니, 누구나 다 콧물도 흘리고 배꼽냄새도 맡고 한다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N씨는 이 연애에 대해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은 내 아름다운 시간들.”
이라고도 하셨는데, 그거 살얼음이 아니라 상대와 함께 배에 올라탄 거라 생각하시는 게 낫습니다. 어느 배든 좌초나 침몰의 위험이 있긴 하지만, 그게 염려된다며 정박지에만 있진 않잖습니까? 마침 지금 순풍도 불고 있는데, 닻만 내린 채 ‘안전이 보장되면 그때….’ 하고만 있으면 이끼 끼고 따개비만 붙을 뿐입니다.
이 연애, N씨 혼자 끌어가며 결국 혼자 다 책임져야 하는 게 절대 아니니, 이미 절반의 몫을 다하며 N씨를 반겨주고 애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봐주는 상대와 마음 놓고 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 먹으며 함께하는 거, 그것만으로도 쉬이 누릴 수 없으며 그러고 싶다고 마음대로 그럴 수 있는 것 아니잖습니까? 걱정되는 일이 벌어지거나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생기면 제가 낚싯대 팽개치고 달려올 테니, 만에 하나 그런 일 생기면 긴급사연 주시는 걸로 하고, 그 전까지는 맘껏 연애하셨으면 합니다. 요즘 날도 좋으니 손잡고 거리도 원 없이 걸어보시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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