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둑어 낚시 빼고는 할 게 없다는 경기 북부에 살다 보면,
“인천에서 잡아봐야 망둑어인데, 한 시간 더 보태 태안 가죠.”
“태안도 사람 바글바글 한데, 30분 더 투자해서 만대나 안면도 가죠.”
“그러느니 거기서 1시간 더 써 군산은 어떨까요?”
라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물론 그러다 보면 ‘거기서 좀 더 써서’ 여수로, 통영으로, 추자나 제주로 가자는 얘기가 나오긴 하는데, 여하튼 꽉 찬 1박 2일 정도로 다녀올 수 있는 마지노선은 군산이 되기 마련이다. 이동시간에 자는 시간, 거기다 낚시하는 시간까지를 고려하자면 태안 정도가 딱 좋긴 하지만, 태안의 대표어종인 쥐노래미 금어기가 11월 1일부터 시작된 까닭에 이번엔 난생처음으로 군산엘 갔다.
아무것도 안 알아보곤, ‘군산 선유도 가면 고기를 줍는다’라는 카더라 통신만 믿고 간 것이었다. 군산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는데, 밥 먹을 곳을 찾다 보니 자꾸 짬뽕집만 나와선 ‘아니, 여기까지 와서 무슨 짬뽕을 먹어. 그나저나 왜 죄다 짬뽕집이지?’했을 정도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군산의 유명음식이 짬뽕이었던….
새벽같이 움직였음에도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엔 자리가 없었다. 낚시객들 말고도 등산객이나 관광객들로 만원이었으며, 방파제 같은 곳은 차 대는 건커녕 돌려나오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다. 섬을 잇는 다리는 놓였지만 주차공간이 확보되지 않았으며, 다리 쪽 대도로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길이 차 한 대 지나가면 다른 차가 옆으로 비켜줘야 할 정도로 좁았다.
-주말 고군산군도 낚시 포인트 인구밀도는, 주말 태안권 방파제 수준.
이라고 생각하면 꼭 맞겠다. 정말 운 좋게 자리 하나가 나 주차에 성공하더라도, 던질만한 자리엔 이미 사람이 가득하며 비어있는 곳은 전깃줄 때문에 캐스팅이 어렵거나 간조 시 뻘이 드러나는 자리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돌고 돌아 반나절을 다 보낸 뒤 도착한 곳이, 새만금 33센터. 왜 33센터인가 궁금했는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 새만금방조제가 33km이며 중간에 위치한 센터 건물이 33미터인 까닭에 ‘33’을 이름으로 걸었다고 한다. 방조제에서의 낚시는 시화방조제나 석문방조제에서 경험해 본 까닭에 낯설지 않았는데, 방조제 부분마다 해넘이, 돌고래, 33 등의 이름이 붙어있어 어딜 말하는 건지 헷갈리긴 했다. 역시 아무것도 안 알아보고 가면 현장에서 고생해야 하는….
전북 군산까지 운전해서 내려온 데다 어디서 낚시할지 반나절을 돌며 찾느라 진이 다 빠진 상태였는데, 앞에 바다가 보이니 다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저 안에 우럭이며 광어, 삼치, 고등어, 장어 뭐 다 있다는 거지? 이제 잡는 일만 남았다 진짜.’
첫 캐스팅을 앞두고는 늘 기대에 부푼 조급증 환자가 된다. 채비 묶는 시간동안 내가 낚을 고기들이 가버릴 것만 같은 느낌.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일단 묶어, 던진다.
450대가 있긴 하지만, 운용이 불편한 데다 오른팔 테니스 엘보가 온 까닭에 300짜리 민물대를 사용했다. 녹투성이에 플라스틱 릴이지만, 서해에서 붕장어 마릿수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남해에선 용치와 쏨뱅이 킬러로 활약했던 놀라운 장비다. 부러지면 버리고 바꾸려고 정말 막 썼으며 제주도 가서도 망가지면 버리고 오려고 했는데, 릴과 대 합쳐 만 원밖에 안 할 것 같은 녀석은 여전히 튼튼하다.
그래도 다행히(?) 지난 제주도 낚시 후 3대 가운데 하나의 가이드가 부서졌으며, 이번에 릴 하나가 수명을 다해 드랙 조절이 안 된다. 오케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 찌지지직- 하는 플라스틱 드랙음 말고, 띠리리링- 하는 맑고 고운 소리가 듣고 싶다.
첫 주자로, 복어가 올라온다. 복어가 올라온다는 건 오늘 나가리에 가깝다는 얘긴데…. 원투로 멀리 던져봐야 그 부근에 해초도 있는 것 같고 해서, 루어대에 찌낚시 채비로 변경하기로 했다.
꼬꼬마 쥐노래미 등장. 쥐노래미 금어기가 1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라서 녀석을 피해 군산까지 내려온 건데, 이렇게 나오다니 당황스럽다. 이후에도 계속 쥐노래미, 쥐노래미, 쥐노래미…. 그것도 손바닥 반만 한 녀석들이라 그냥 ‘토독’ 하는 입질뿐이다. 미끼로 쓴 염장 갯지렁이를 녀석들이 너무 좋아하는 듯하여, 이번에 처음으로 시도하는 ‘식자재마트표 냉동 튀김 오징어채’를 사용해 보기로 했다.
고등어 등장. 시장 사이즈는 아니고, 중등어 정도 되는 녀석이다. 고등어는 몰릴 때 떼로 훅 들어왔다가 빠지는 까닭에, 얼른 더 낚고자 같은 채비에 같은 수심으로 던져 본다. 하지만 겨우 한 마리만 더 나왔을 뿐이고, 이후 입질은 끊겼다.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 던져 놓은 원투대 때문에 찌낚시를 하기 불편해 원투대를 걷기로 했다.
원투대 걷는데 물로 골라온 박하지. 민꽃게, 돌게 등으로 불리는 녀석이다. 월미도만 가도 게그물 채비로 작은 두레박 정도는 가득 채울 수 있으며, 다른 게들보다 집게발 힘이 센 까닭에 집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같이 낚시 갔던 지인 하나는 박하지 집게발에 집혀 손가락에 구멍이 뚫린 적도 있다.
노을이 지고, 슬슬 밤이 찾아오는 시간. 흔히들 ‘애럭’이라고 부르는 새끼 우럭이 등장한다. 야행성인 녀석들은 해가 질 무렵부터 먹이활동을 왕성하게 하는데, 물이 들어오는 타이밍에 애럭까지 등장했다는 것은 곧 큰 녀석들이 나타날 거란 신호로 볼 수 있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고, 본격 우럭 채비인 플로팅리그로 채비를 교체했다.
새만금방조제의 일몰 풍경. 난 이번 낚시여행에 선글라스를 안 가져간 까닭에, 해가 지기 전까지 정면으로 해를 마주한 채 낚시해야 했다. 해가 질 때 든 생각은
‘하아…. 이제 겨우 찌 좀 제대로 볼 수 있겠네.’
였던 것 같다.
열심히 쪼아보지만, 우럭들의 입질이 없다. 항상 이쯤 되면 드는 생각은
‘그냥 차라리 집에서 쉬면서, 대방어나 사다 먹을 걸 그랬어. 여기 온 경비만으로도 대방어에 개불이나 낙지 추가해도 그게 싸게 먹힐 텐데….’
라는 것으로, 낚시 오기 직전까지 가득 차 있던 자신감과 기대가 바닥을 치게 된다. 권투선수 타이슨의 말이었던가.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링 위에 올라와 처맞기 전까진.
이렇다 할 방법도 없으면서 근자감만 가지고 군산까지 내려온 ‘오전까지의 나’를 탓하며 ‘지금의 나’는 침전한다.
오늘도 꽝인 것 같다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을 때 찾아온 큰 입질. 개볼락, 또는 돌우럭이라 불리는 녀석이 올라온다. ‘3짜 감시(감성돔)는 버려도 2짜 개볼락은 챙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탱탱한 살을 자랑하는 녀석. 내가 고기라도 먹고 싶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예쁘게 자른, 내 오징어채를 물고 올라와 줬구나. 고맙다 돌태식. 덕분에 난 언제 그랬냐는 듯 호랑이 기운을 내며, 아수라 발발타 주문과 함께 불꽃 캐스팅을 하게 되었다.
이어서 올라온 우럭. 바늘을 깊이 삼킨 까닭에 수술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프면 왼쪽 지느러미를 살짝 들라고 했더니 진짜 들었던 녀석. 무사히 바늘을 잘 빼고는, 입을 헹구라며 살림망에 넣어줬다.
우럭의 방생사이즈 기준은 23cm인 걸로 알고 있다. 녀석은 23cm를 훌쩍 넘었고, 덕분에 개볼락회와 우럭회, 그리고 고등어회를 먹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겼다.
채비를 다시 하고 있을 때 몰래 다가와, 지그헤드에 붙은 갯지렁이를 먹던 작은 게. 저땐 그냥 마냥 귀여웠는데, 이후 물에 담가둔 살림망을 꺼냈을 때 저런 게 100마리쯤이 고기들에 달라붙어 집게발로 뜯고 있었다. 어렵게 잡은 고등어 두 마리를 게들한테 잃을 줄은…. 더이상 입질도 잘 오질 않고, 거기다 우럭들마저 게들에게 당할까 싶어 서둘러 자리를 뜨기로 했다.
우럭과 개볼락으로 뜬 회. 야외에서 뜬 까닭에 물을 쓸 수 있는 곳도 없는데다, 이번엔 도마도 챙기지 않아 꽤 어려웠다. 횟집 내도 되겠다는 칭찬을 들었는데, 더 정진하라고 해주시는 칭찬으로 알고 늘 겸손한 자세로 최선을 다하며 회를 뜨도록 하겠다.(응?)
여하튼 저렇게 먹고는, 내일을 기약하며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난 평소 집에선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는 불면에 시달리곤 하는데, 낚시 한 번 가면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기절했다 일어나곤 한다. 저 날도 여지없이, 누울 자리를 확인하곤 바로 기절.
“개볼락이랑 우럭이랑 같이 먹은 것 같은데, 정말 개볼락이 더 맛있었나요?”
우럭이 마이구미라면, 개볼락은 과장 좀 많이 보태 하리보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사람들은 막 ‘우럭이 더 맛있다, 아니다 광어가 더 맛있다’ 같은 걸로 싸우던데, 개인적으로는 냉동참치 제일 싼 부위도 맛있게 잘 먹는다. 어차피 회는 식사가 아니라 안주인데 뭐…. 이런 내게도 신선한 충격을 준 새로운 회를 다음 날 먹어보게 되는데, 그 고기를 잡은 얘기와 회 뜬 얘기는 2부에서 하기로 하자.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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