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아무래도 어렵겠다, 고 생각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헤어졌을 때에도 일편단심’이라는 남친의 연애 판타지로 벌어진 갈등은 둘째치고, 둘의 관계가 일방적이며 많이 기울어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연애의 미래는 밝지 않습니다.
헤어지기 전 두 사람이 하던 연애의 모습은
-남친이 차를 사면, 그때 같이 놀러 다니는 행복한 연애를 할 것. 그러니 그 전까지는 잘 안 만나거나 집데이트만 겨우 해도, ‘차를 살 그 날’을 위해 꾹 참고 기다릴 것.
과 같았다 할 수 있습니다. 저 문장에서 ‘차를 사는 것’은 ‘취직을 하는 것’이나 ‘돈을 많이 버는 것’, 또는 ‘결혼을 하는 것’ 등으로 바꿀 수 있는데, 차가운 머리로 생각해 보면 그건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 ‘남친의 목표’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둘이 결혼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막연히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던 커플 중 3할 정도가, 바로 E양의 사례와 같은 저런 문제로 갈등을 겪거나 헤어지곤 합니다. 한쪽은 저렇게 ‘앞으로 ~만 되면’이라 말하고, 다른 한쪽은 ‘그것만 철석같이 믿고 기다리며 뒷바라지를 했다’고 말하는 경우인데, 이런 경우 둘 모두의 노력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마주하거나 연애의 형태를 기울어진 채로 굳히는 문제를 발생시키곤 합니다.
‘차를 사면 그때 제대로 여행도 가고….’라며 모든 걸 보류하고 미룬 상황일 땐 차만 사면 전부 해결이 될 것 같지만, 실제로 차를 사면 세금도 내야 하고 보험도 들어야 하고 기름도 넣어야 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까? 그럼 또 그땐 ‘차가 없을 땐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고, 앞서 자신이 했던 장담들을 지키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취직이나 이직, 아니면 뭐 ‘크게 한 방’ 같은 것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직만 하면 꽃길이 보장될 줄 알았는데 입사해 보니 ‘고액 연봉을 주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더라’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될 수도 있고, 그렇게 바뀐 상황에 맞춰 시각이나 생각이 변할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이건 다 내가 이룬 것이지 같이 이룬 것이 아님’이란 삐딱한 마음을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
관계가 그렇게 변해가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인내, 기다림, 침묵 = 노력 = 뒷바라지
라고 생각하며 버티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따지고 보면 그 인내와 기다림, 침묵은 상대가 요구한 것이기에 이쪽에선 상대의 요구대로 잘 따르는 중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러는 동안 둘의 관계는 그냥 그렇게 굳어질 가능성이 크며, 각각 무책임과 불만족에 젖어 들 수 있습니다.
E양 역시, 그런 남친과의 연애가 너무 버거워 먼저 이별을 말하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제가 봐도, 상대는 좀 과하게 E양을 방치했으며 ‘나중의 보상’이란 말만 걸어둔 채 너무 많은 것들을 생략하거나 미루었습니다. 물론 그가 일부러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건 그의 시행착오라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는 그렇게 생략하고 미뤘던 것들을 나중에 자신이 해야 할 땐, 그게 전부 ‘의무’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걸 몰랐던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카드를 만들어 쓸 땐 기분 내며 긁었지만, 고지서를 받고는 ‘내가 이렇게까지 썼다고? 내가 안 쓴 것도 청구된 것 같은데? 이건 뭔가 착오가 있는 걸 거야.’ 라며 놀라 카드를 잘라버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연애 중 그가 ‘보상’을 약속하며 했던 말들 또한, 듣기엔 달콤할지 몰라도 사실 바람직한 얘기들은 아닙니다. 남친으로서 할 수 있는 건 남친으로서의 몫을 하는 것일 뿐인데, 그는 자신이 나중엔 E양을 평생 업고 살 것처럼 이야기했으며, 자신이 없는 E양의 삶은 외로움으로 점철된 무료한 삶인 것처럼 묘사하는 듯 제겐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실제로 뭐 대단하게 해준 것도 없고, 대부분 보류하거나 유예하기만 했으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전 E양에게, 지금처럼 매달리고만 있진 말길 권하고 싶습니다. E양은 상대가 다시 결혼까지 추진하는 모습으로 돌아서기만 하면 과거의 약속들도 전부 다 유효해지는 거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것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매달리는 E양을 보며 상대는 ‘다시 사귀기엔 내가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으며, ‘다시 사귀게 된다면 당연히 이전의 의무는 다 없던 일로….’라는 마음을 먹게 될 수 있습니다.
지금 E양에게 필요한 건, 상대의 꼬투리 잡기나 지적에 맹목적으로 사과하는 게 아니라, 처음 그가 적극적으로 대시할 때의 ‘E양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당장 그때처럼 그랬다간 상대가 진짜 끝낼 것 같아서 무서울 수 있는데, 저를 한 번 믿고 상대가 아쉽지 않으며 상대가 없어도 충분히 잘살고 있었던 그때의 마음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그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현재 E양의 상황에선
-상대가 이별의 뉘앙스를 풍기며 위협하면 덤덤하게 들어주기.
-먼저 연락해 울며 잡고 싶어도 허벅지를 찔러가며 참아보기.
-다만, 상대가 연락해 와서 안부를 묻거나 하면 친구 대하듯 대해주기.
-그간 전혀 못 했던 거절도 해가며 상대의 요구대로만 움직이지 말기.
정도만 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둘의 카톡대화를 보면 상대는 이쪽에 대한 불만이나 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E양을 다급해지게 만들던데, 그동안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면 놀라서 울며 붙잡던 모습에서 벗어나 ‘너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구나.’ 정도로 응하시면 됩니다. 더불어 상대가 ‘너의 생각, 너의 결정’만을 먼저 물으며 조건부의 대화를 하려 할 때면, 거기에 넘어가 대답만 하지 마시고 똑같이 그냥 ‘너의 생각, 너의 결정’을 물으셔도 됩니다.
이건 ‘E양의 결정과 노력’만으로 판가름 나는 게 아니라는 걸, E양 스스로가 먼저 좀 곰곰이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상대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E양은 ‘우리의 결정과 노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일방적이거나 기울어진 채로 오래 지내온 관계일 때 상대는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이쪽이 더 나은 누군가를 만나 아무 문제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으니, 필요하다면 그 지점에 대해 환기를 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뭘 더 희생하거나 사과해야 하나 겁먹은 얼굴로 묻던 것에서 벗어나 둘의 관계를 좀 더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시길 바라며, 그러는 와중에 또 고민이나 문제가 생기면 사연 주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 "무한님 오늘 매뉴얼이 왜 짧은 느낌이죠?" 내가 제주 낚시여행 가기 때문에. 곧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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