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다투게 된 지점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다루지 말기로 합시다. 현재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두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합의를 제대로 못 본 지점이고, 거기다 그 부분에 대해 S양의 지인들조차 확연히 갈린 의견을 내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건 꼭 누가 맞고 누가 틀렸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들이니 말입니다.
제가 여기서 얘기하는 건 ‘둘 중 누구 말이 맞나’가 절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연애를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또는 ‘아주 보통의 사람과 연애를 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에 대한 부분이라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건 S양이 보낸 사연이니 전 S양이 생각해 봐야 할 부분들을 주로 다룰 텐데, 그러다 보면 S양은 ‘내가 틀렸다는 건가?’라고만 받아들일 위험이 있기에 미리 적어두는 얘깁니다. 자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S양의 남친에게서는, 제가 수많은 사연을 통해 보게 되는 ‘여자를 힘들게 하는, 그의 문제’라는 것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S양에게 큰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더 이해하고 양보하고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도 불평하지 않고, 부모님과 S양 사이에서도 현명하게 대처하며, S양 지인들과 만난 이후 그들에게서도 극찬을 받을 정도입니다. S양 역시 남친에 대해
-집안 괜찮고, 직업 좋고, 사람 성실하고, 경제관념 있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상대가 조건도, 인성도, 애정도, 환경도 좋다고 해서 무조건 S양이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S양이 상대에게서 보는 1할의 ‘답답한 점’ 외에 9할의 ‘훌륭한 점’도 좀 봤으면 하기 때문이며, 반대로 그런 상대에게 S양은 ‘어떤 여자친구’인지도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S양 또한 제게
“남친이 말을 밉게 해서 그렇지, 행동으로만 보면 잘못한 게 없어서 고민입니다. 결혼해도 잘해줄 것 같고요.”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어디에 더 무게를 두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좀 갈릴 수 있는 부분이라 말하기 조심스럽긴 한데, 지극히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의견 차이’ 때문에 이 정도의 남자와 헤어진다는 건 훗날 큰 후회를 할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상대가 막 권위주의적이며 평소 행동에서도 문제가 있는 거라면 뭐가 어떻든 이별까지 고려할 수 있는 게 당연하겠지만, 여기서 보면 그런 부분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딱 하나 있는 문제라면 그 ‘젠더감수성’이라는 지점에서 S양과 말싸움을 할 때가 있다는 건데, 그것에 대해서도 그가 막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게 아니며, 그냥 ‘S양과 달리 생각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정도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러다 싸움이 커지면, 결국 그가 의견을 철회하고 S양의 기분을 풀어주는 형태로 마무리되고 말입니다.
“남친과의 일들을 친구들에게 얘기하면, 제 페미니스트 친구들은 극대노 하며 헤어지라고 합니다. 그런 걸로 스트레스 안 주는 사람 만나라고 해요. 다른 친구들은 뭐 그런 걸로 싸우냐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고요. 여튼 남친을 직접 본 제 친구들은 굉장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화났을 때 남친에 대해 깔 것만 얘기하니까, 그것만 들은 친구들은 남친에 대한 괴물 같은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으로 인해 S양이 온갖 고난과 구박과 핍박만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남친이 대부분 S양을 만나러 온다는 얘기, 얼마간 멀리 갔을 때에도 빠짐없이 그 먼 거리를 달려 보러 왔다는 얘기, 자신의 부모님과 S양 사이에서 현명하게 자를 거 자르고 필터링 할 거 필터링 한다는 얘기, 매일 날씨도 알려주며 인사한단 얘기, 퇴근하면 꼭 전화한단 얘기, 데이트하고 나서 집에 안 데려다 준 적 없다는 얘기 등도 전부 하셨습니까? 평소에 이런 연애를 하고 있다는 걸 그 친구들이 알면서도 ‘스트레스받지 말고 헤어져라’라는 얘기를 한 거라면, 그런 태도로 현실에서 길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라 전 생각합니다.
보통의 사연들과 달리 S양의 사연에선
-끔찍함, 너무 싫음, 극혐함, 저주함.
등의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래서인지 호불하고 너무 분명하며 ‘불호’에 대해서는 ‘싫어’ 정도가 아니라 ‘응징해서 없애버려야 할 것’처럼 여기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것에 대한 표현이 과격하며(이것에 대해 친구들은 무서워 하며, 전남친도 무서워했고, 현남친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승패’에 집착해 한 올의 반대도 없이 만들려 하는 느낌도 있고 말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S양은
“그건 현대사회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바뀌어야 할 것들을 안 바꾸고 있으니 바꾸려는 제가 이상해 보이는 거 아닐까요? 그런 일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거나 알면서도 분노하지 않는 게 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라고 말하실 수 있을 텐데, 저 역시 그런 열정이 세상을 바꿔왔다 생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선봉에 서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멍청하며 깨어있지 않은 적폐일 뿐이라고 말할 순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잘못을 나부터라도 소소한 실천과 전파로 바로잡겠다 생각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지적을 하고 그 사람과 의견이 비슷하다는 부모님까지도 적폐로 몰아버린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더불어 남친과의 의견충돌이 생기는 근본적인 원인이, S양이 남친에 대해
-사회문제에 대해 더 알고, 더 공부해야 함.
-편견이나 관념 같은 거, 밑바닥까지 갈아엎어 고쳐야 함.
-이 부분에 문제없었던, 어떤 다른 남자처럼 변화해야 함.
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도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저 중엔 S양이 직접 말한 것도 있는데, 여기서 보기엔 남친을 이미 그렇게 ‘개조가 필요한 대상’으로 놓고 있다 보니 자꾸 답답해하거나 한심하게 생각하는 지점들이 생기지 않나 싶습니다. 누군가를 영알못(영화 알지도 못하는 사람)으로 선정해 놓고 대화를 시작하면, 그가 말하는 감상평이 그저 우습게만 들릴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S양은 ‘남친에게 책임감은 확실히 있는 것 같은데, 존중이 없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수많은 연애의 형태를 본 제 입장에선 현재 S양의 남친만 하더라도 정말 무리를 해가며 연애에 임하는 거란 얘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현 상황에서 둘의 입장이 완전히 바뀐 연애라면 S양은 일주일 버티실 수 있겠습니까? 한 3일만 바꿔도, ‘내가 왜 이래야 해? 내가 뭐 빚졌어?’라는 생각이 들 것 같지 않으십니까? 전 S양이 말하는 그 ‘남친의 책임감’엔, 존중과 더불어 헌신과 애정과 신뢰까지가 포함되어 있는 거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만족스럽지 않으며, 조오오오온중 까지 원하니 묻고 더블로 가야 한다고 하시면, 저는 뭐라 더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충분히 신사답게 행동하고 있는 남친에 대한, 그가 S양을 위해 마음과 정성과 시간과 돈 등을 아낌없이 쓰고 있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 남친이 상처 받았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선 정말 진심으로 다시 사과하세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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