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가 나온다고 했다. 한 주 전에 100마리 넘게 잡은 게시글도 봤고, 바로 전날 57마리를 잡았다는 게시글도 봤다. 대상어는 고등어에 손님 고기로는 학꽁치, 그리고 회유성 어종인 그 둘을 제외해도 붙박이로 숭어가 있으니,
-고등어
-학꽁치
-숭어
셋의 채비를 준비하기로 했다.
동시에 서해로 낚시갈 때 챙겨야 할
-우럭
-붕장어
채비도 챙겼다. 매번 낚시를 갈 때마다 짐 때문에
‘다음엔 진짜 딱 필요한 것만 챙겨야지. 대상어 딱 정하고 그 채비만!’
이라고 다짐하지만, 무규칙 이종 낚시꾼인 까닭에 결국 모든 짐을 가방에 넣고 만다. 바늘도 호수별로, 봉돌(추)도 호수별로, 찌도 호수별로. 거기다 낚싯대도 원투, 찌, 루어까지.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그 말이 꼭 맞다.
“고등어요? (먼바다로)빠졌을 텐데? 나온대요? 아무튼 지난주까지는 확실히 나왔어요. 근데 지금 나오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갑이나(갑오징어) 주꾸미 하세요. 그거 제일 많이 하죠. 올해가 좀 이상해서 그렇지, 원래 이쯤 되면 고등어 안 나와요. 한 2주 전에 오시지. 밤낚시 하시게요? 위험해서 못 해요. 여기 사람들은 밤 되면 안 해요. 내일 해 뜨면 나와서 하면 되는데 뭐하러 위험하게 밤에 해요. 그냥 주무시고, 내일 하세요. 사람들 나와서 쭉 서 있을 거예요.”
밑밥을 사러 현지 낚시점에 들어가기 전까진 사기가 120% 끓어오르고 있었는데, 낚시점 사장님의 저 말을 들으며 음절 단위로 무너지고 말았다. 좋은 밑밥 배합은 2:1이나 3:2, 반유동 수심 1미터 주고 방조제 앞 10미터 캐스팅, 핫스팟은 방조제 중간에서 수문으로 500미터 더 가서. 이렇게까지 공부를 해가지고 왔는데, 고등어가 안 나온다니.
평소 ‘남들이 고기 못 잡는다고 나까지 못 잡는 건 아니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낚시점 사장님이 너무 확신에 차 이야기하는 까닭에 신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장님은 저기다 옮겨 놓은 이야기 외에, ‘그래서 나도 몇 시 이후엔 원래 문 닫는데 오늘 어찌어찌해서 이러저러하게 된 거다.’ 등의 이야기까지를 정말 TMI로 쏟아내셨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사장님의 고향과 평소 생활패턴을 알고, 이번 주말 모임이 있는 것까지를 알고 있다.
졸리고, 피곤하고, 배도 고프고 해서 민박집 입성. 처음 낚시 다닐 땐 나도 막 펜션을 알아보고 그랬는데, 가서 짧게는 6시간 길어봐야 9시간 있다가 나올 거라 민박으로 방향을 돌렸다. 잠자리만 따지면 펜션이나 민박이나 큰 차이가 없긴 한데, 딱 하나 단점을 들자면 대부분의 민박집은 잠들기 힘들 정도로 냉장고 소리가 너무 크다. 그래서 취침 전, 수면제 삼아 소주8 맥주2의 꿀주를 복용한다. 꿀주의 부작용이라면 어디까지 얘기하다가 잠들게 된 건지 마신 사람 전부 다 기억을 잘 못 하는 것 정도.
이번에 잡은 민박집은 방조제 바로 옆에 있는 곳이었는데, 사장님의 ‘적극적 친절함’이 무서울 정도였다. 누가 새벽부터 세차를 해주고 계시길래 ‘저거 우리찬데 왜 닦고 계시지?’했는데, 그게 사장님 특유의 ‘이슬 맞아 하얗게 덮인 차를 닦아주는, 안전을 위한 서비스’였다. 사장님의 경영 철칙은
-새벽에 나가시는 손님이 있더라도 일어나서 인사하기.
-커피나 차 권하며, 떠나는 손님의 활기찬 하루 응원하기.
-내 집을 찾아주신 귀한 손님이다 생각하며 극진하게 대하기.
등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때문에 난 짐 싣고 민박집을 나오기까지 사장님과 90도 인사만 열두 번 정도를 한 것 같다.
부푼 마음으로 천수만 해상낚시 체험공원 매표소에 입장. 대부분의 좌대는 입어식(그물에 가둬놓은 고기 잡는 것)과 자연식(좌대 부근의 자연산 고기 잡는 것)으로 나뉘는데, 천수만 해상낚시 체험공원 역시 두 가지로 나뉜다. 최근엔 입어식을 안 하는 건지 가격 안내가 사라지긴 했는데, 자연식의 경우
-중고등학생 및 성인 2만원, 초등학생 1만원, 유아 무료.
-오전 8시 첫 입장, 오후 5시 퇴장. 매주 월요일 휴무.
라고 공지되어 있다. 매표소(관리소)에서 사람 수에 맞게 계산을 하고, 배를 타고 좌대까지 들어가야 하니 승선명부를 작성하고, 구명조끼와 목걸이형 입장표를 받으면 된다.
일찍부터 와서 짐으로 줄 세워 놓곤 낚시를 하고 계신 조사님들. 하나둘 걸어 내시길래 뭘 잡으시나 봤더니 주꾸미다.
‘어? 난 고등어, 학꽁치, 숭어, 우럭, 붕장어 채비를 다 챙겼지만 주꾸미 채비는 빼고 왔는데? 여기서 주꾸미 하면 정신건강에 해로울 정도로 안 나온다고 했는데, 뭐지?’
시험 범위를 잘못 알고 공부해간 학생의 느낌이랄까. 하지만 애써 긴장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밑밥과 떡밥, 그리고 다른 채비만 10만 원어치 넘게 챙겨오지 않았는가. 이 정도 준비했으면 진짜 뭐라도 못 잡는 게 이상한 거다.
배 타고 들어가 좌대 입장. 천수만 해상낚시 체험공원은 1,500평으로, 우리나라 해상 좌대 중 가장 크다고 한다. 이미 입장 전
-화장실 쪽 우측 끝이 고기 잘 나오는 포인트.
라는 것까지 조사하고 갔기에, 배에서 내리자마자 그곳을 선점하기 위해 뛰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열심히 조사를 하고 갔음에도, 현장에서 맞닥뜨리게 된 문제도 하나 있긴 했다. 바로
-그 우측 끝이라는 게, 모서리에서 화장실 쪽이냐 먼바다 쪽이냐.
라는 것으로, 좌대에선 두세 발짝 차이로 조과가 달라질 수 있기에 난감하기도 했다. 이럴 땐 ‘내가 고기라면 어디에 더 살고 싶을지?’를 고민해 보는 게 좋다. 내가 고기라면 어디에 살까. 먼바다 쪽 고기도 살고, 방조제 석축에 붙는 고기도 사는 곳. 내 결론은 화장실 쪽이다.
화장실 쪽에 자리를 잡은 데다, 바람까지 우리 쪽으로 분 까닭에 냄새가 좀 나긴 했다. 하지만 고기만 잘 잡힌다면 냄새가 문제겠는가. 30호 봉돌 매단 묶음추 하나 내려놓고, 슬슬 이 동네 고등어 씨를 말릴 카고 채비를 준비한다. 춥지 않고, 바람도 적당하고, 파도도 없고, 모든 게 완벽하다. 이제 남은 건 정신 없이 고기를 잡아 올리는 일.
네 시간이 지났다. 입질이 없다. 욕지도에서의 6시간 꽝, 안면도에서 10시간 꽝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땐 지금보다 더 피가 끓을 때라
“밥? 난 고기를 잡아야 밥을 먹어. 잡기 전까진 안 먹어.”
라고 했었는데, 그렇게 빈속에 커피만 마신 까닭에 속을 다 버리고 말았다. 때문에 이번엔, 적당히 타협해 ‘먹을 건 먹고’ 낚시를 하기로 했다.
챙겨온 먹거리가 꽤 되었기에, 옆에서 낚시를 하시던 부부 조사님들께도 같이 드시길 권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이곳을 찾는다는 분들이었는데, 식사를 함께 하며 남편분이
-화장실 쪽 말고 먼바다 쪽이 포인트임.
-고등어 같은 건 귀찮아서 안 잡음. 셀 수도 없이 잡아 봄.
-숭어 잡고 싶음? 뒤쪽 그물 없는 가두리가 포인트.
-고등어? 오후부터 따뜻해지며 떼로 들어옴.
-내가 여기 와서 진짜 제일 못 잡았을 때가 열 마리.
라는 이야기를 속사포로 꺼내놓으셨다. 난 오전 내내 꽝을 치곤 시무룩해져 있었는데, 그렇게 장담하는 분의 확신의 찬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다시 호랑이 기운이 솟아났다. 진짜 이제 잡은 일만 남았다.
망드래곤 등장. 4짜(40cm)가 넘는 망둑어다. 이 정도 망둑어를 난, ‘망둑어’ 말고 ‘망드래곤’으로 부르고 싶다. 대상어에 속하지 않으니 방생할 것이긴 하지만, 간조부터 만조까지 아무 소식 없던 중에 나와주니 반갑다. ‘고기가 들어왔다. 이제 잡힌다.’는 희망을 준 녀석으로, 다시 전부 미끼도 갈고 힘차게 캐스팅 해선 고기 맞을 준비를 했다.
옆 조사님도 망둑어 1수, 주꾸미 2수. 주꾸미 중 한 마리는 큰 녀석으로, 저 정도 크기면 낚시꾼들은 ‘문꾸미(문어+주꾸미)’라고 부르곤 한다. 주꾸미 채비도 아닌 묶음추에 잡힌 녀석들. 이럴 줄 알았으면 대상어를 주꾸미로 하는 거였는데…. 필드에서의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으니, 다시 마음 잡고 열심히 쪼아보기로 한다.
다시 또 망둑어 겟. 망둑어를 잡으러 서산까지 내려온 게 아닌데, 망둑어만 계속 나온다. 저 이후로도 계속 망둑어, 망둑어, 망둑어. 좌대에서 누군가 뭘 걸어 올렸을 때 무슨 고기인지 보면 전부 망둑어다. 아니 여긴 고등어랑 학꽁치, 숭어가 주 어종이라고 하지 않았나? 망둑어 얘기는 없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밑밥을 열심히 뿌려봐도 고등어나 학꽁치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으니, 그 둘은 잠시 접고 숭어를 노려보기로 한다. 처음 시도해 보는 숭어 떡밥채비.
-아쿠아텍2(한 봉) + 찐버거(두 봉) + 딸기글루텐(작은 거 한 봉)
저 배합으로 준비해 바닷물을 섞고, 10여 분 간 불도록 두었으며, 다시 비벼 채비에 야구공만하게 달아 던졌다.
풀린 떡밥이 바닥에 쌓여 집어가 될 수 있게, 10분 마다 저 짓을 반복하라고 해서 참 열심히도 내렸다. 던지고, 10~15분 후 감아올려 떡밥 달고, 다시 최대한 같은 자리에 들어가도록 내렸다. 서너 반만 반복해도 한 시간이 훌쩍 간다.
세 시간 동안 그 짓을 했다. 입질은 없었다. 난 솔직히 다시는 숭어 떡밥낚시를 하고 싶지 않다. 딴 고기 못 잡으면 큰 숭어 한 마리라도 잡아서 먹으려고, 또 숭어가 그리 잘 나온다니 뭐 한 번쯤 경험해 보려 했던 낚시였는데, 재미도 없고 보람도 없고 조과도 없다. 10~15분마다 떡밥 새로 갈아줘야 하니 힘만 들고, 떡밥 다느라 손 버리고 옷 버리고….
이런 내 속도 모르고 망둑어는 계속 나온다. 망둑어 밭인지, 바늘 두 개짜리 채비를 넣으면 두 마리가 잡히고, 세 개짜리 채비를 넣으면 세 마리가 잡힌다. 내가 이러려고 서산까지 왔나 자괴감 들어….
좌대는 다섯 시까지 영업인데, 두 시 넘으니 두 팀 남고는 다 빠져나갔다. 나머지 두 팀도 세 시가 되어가자 집에 갈 준비를 한다.
“최소 열 마리라는 그 아저씨는 어떻게 됐나요? 오후 되면 고등어 떼로 들어온다고 장담하신 분.”
그 분은 한 시가 넘자
“야아 참 어떻게 이렇게 안 나와? 너무 안 나오니까 막 짜증이 나네.”
라며 다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하셨고, 두 시가 넘자
“지겹다 지겨워. 오늘 안 돼. 안 되는 날이야. 가야지. 그냥 가야 돼.”
라고 혼잣말을 하신 후 눈을 피하셨다. 그러곤 세 시간 되기 전 ‘어쩌면 이제 고기가 들어올 수도 있다. 나는 일할 게 있어서 먼저 가는 거다.’라며 끝까지 밑밥을 뿌리곤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로부터 한 시간이 더 지날 때까지 망둑어 말곤 구경할 수 없었다.
네 시가 되기 전에 좌대에서 나왔다. 더 있어 봐야 스트레스만 받을 것 같았으며, 해가 지기 전 다른 곳에 가서라도 한 번 던져보고 올라가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지금 올라가 봐야 막힌 도로에서 시간을 다 보내야 하니, 올라가는 길에 있는 석문방조제에서 몇 시간 더 쪼아보기로 했다.
석문방조제 도착. 이렇게 사진으로 보면 낚시 하기 좋은 환경 같지만, 저 돌들이 물 빠지기 전엔 바닷물에 잠겨있던 돌이라 엄청 미끄럽다. 아무것도 모르고 갔다가 저기서 팔다리 부러지거나 넘어져 손바닥 찢어진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을 정도. 네 발로 기어 내려가선, 겨우겨우 자리를 잡았다.
애럭 히트. 새끼 우럭을 꾼들은 ‘애럭’이라 부른다. 좌대에서 종일 꽝을 치다가 손맛을 보니 희열이 느껴지긴 했지만, 23cm 미만의 우럭은 놓아줘야 하는 까닭에 ‘잡고 바늘 빼서 놓아주기’만을 반복해야 하는 게 지겨워지기도 했다. 낮에 꽝을 칠 땐 ‘애럭이라도 한 마리….’ 라고 기도를 했으면서, 애럭만 잡히자 배부른 소리를 하다니, 사람이 참 이렇게 간사하다.
거의 2타 1피 수준으로 애럭은 계속 나왔다. 오징어보다는 염장 갯지렁이에 반응이 좋았으며, 작은 녀석이라도 물고 바로 들어가는 까닭에 입질 역시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채비는 간단하게
-면사매듭, 반달구슬, 구멍찌, 엉킴방지봉, 도래추, 목줄, 바늘
순으로 연결했다. 3물 간조 수심 2~2.5미터(완전 간조시 1미터), 캐스팅 거리 10~15미터. 들물에 좌로 던져 우로 흐르는 중 돌무더기 부근에서 입질.
3짜(30cm) 오버 우럭 등장. 이럴 줄 알았으면 돈 내고 좌대 탈 것 없이, 그냥 낮에도 석문에서 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애럭만 나올 때는 ‘여기서도 먹을만 한 걸 못 건져가네….’하며 좀 침울한 분위기였는데, 3짜 잡고 난 후에는 저런 게 더 있을 거라며 그걸 잡아내려 미친 듯이 캐스팅을 했다.
최종 조과는 3짜 1수, 2짜 후반 3수. 18호 이상 되는 바늘과 지그헤드가 있었으면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겠지만, 쓸데없이 고등어, 학꽁치, 숭어 채비들만 가득했던 까닭에 그만 접고 가기로 했다. 잡은 고기들은 모두 피만 빼서는 비닐에 담아 아이스박스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회를 떴다. 그간 회 뜨는 영상을 100번쯤 본 것 같은데, 영상에서와 달리 현실에선 자꾸 칼이 뼈까지 잘라버리곤 한다. 날이 무디니 힘만 잔뜩 줘서 그런 것 같은데, 그걸 좀 교정해보고자 숫돌을 주문했다. 회 뜨는 걸 정식으로 배워볼까도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사진엔 없는데,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와 김밥 위에 와사비를 얹고, 거기에 초장 찍은 회를 올려 먹으면 꿀맛이다.
낚시를 하고 돌아와 집에서 회를 떠 먹는 것의 가장 큰 단점은
-집 도착 후,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자고 싶다는 것.
인데, 이걸 극복할 수 있게 좀 더 일찍 잡아 집에 빨리 오든지, 아니면 간단한 손질 후 숙성했다가 다음 날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고기의 신경까지 제거하는 이케시메? 신케지메?의 세계까지 들어가야 하는 건지…. 여튼 일단 고기부터 좀 더 잘 잡아 보기로 하고, 조행기 올렸으니 이제 다음 낚시(1순위 볼락, 2순위 붕장어, 3순위 우럭)를 준비해야겠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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