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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연하남과의 3주 연애, 그리고 이별

by 무한 2014. 8. 6.

연하남과의 3주 연애, 그리고 이별

이 사연은 짧은 까닭에 '연애 전 / 연애 초반 / 연애 후반 / 이별 후'로 나누어 살펴보기가 용이할 것 같다. 각 시기에 따라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그 변화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사연의 주인공인 L양이 한 질문에는 어떤 답이 옳은지 등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1. 연애 전 - 편한 누나.

 

특별히 갈등이 있을만한 부서나 직책에 얽힌 관계가 아니라면, 회사에서 같은 부서의 이성과 '동료'로서 친해지기는 쉬운 일이다. 이성과 무슨 얘기를 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숫기가 없거나 개인적인 이유로 남들과 담 쌓고 사는 게 아니라면, 이상한 상사를 같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거나 '동료 네트워크'를 꾸려 서로 '좋아요'누르듯 대화하며 금방 친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회사의 인원이 적거나, 일반적으로 '썸 타는 사이'로 보기 힘들 정도의 나이 차이가 나면 보다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인원이 적으니 다른 직원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도 마음껏 수다를 떨 수 있으며,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 경계심을 가지지 않은 채 서로를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L양과 연하남이 놓여 있던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면, 나도

 

"누난 휴가 어디로 가요?"

"이부장님 집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또 회사에서 푸시네. 점심 먹은 거 체할 듯."

"어제 또 달리신 겁니까? 누나 앞으로 하니라고 불러야 할 듯. 달려라 하니."

 

하며 누나동생 사이로 지냈을 것 같다. 입이 심심할 때를 대비해 간식 준비해 가고, 시무룩해 보이면 무슨 일 있냐고 묻고, 사용하는 컵이 낡아 보이면 생일에 컵 선물하고, 꽃단장 하고 오면 오늘 무슨 약속 있냐고 물어보고, 대화 중 알게 된 정보가 있으면 그것에 대한 최신 정보를 내가 알게 되었을 때 알려주고, 상대에게 미드나 영화 추천 받은 후 나도 같이 보며 수다 떨고…. 매일 같은 공간에서 보는 사이인데 굳이 담 쌓고 남남처럼 지낼 필요는 없기에, '좋은 동료'로 지내고자 나 역시 노력했을 것이다.

 

L양과 연하남 역시 위와 같이 '수다 친구'가 되어 친해졌다. 그러다 연하남은 L양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며 고백했다. 솔로부대원 둘이서 그렇게 친하게 지내다가 호감을 가졌다면 축하할 일이긴 한데, 연하남에겐 여자친구가 있었다. L양은 평소 연하남의 연애상담을 해준 까닭에 그에게 '이별을 말하지 못해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정리하고 고백해라."라는 이야기를 했다. 며칠 후 연하남은 여자친구를 정리했다며 다시 고백을 했고, 둘은 사귀게 되었다.

 

난 여기서 L양이 그의 '연애관'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가 여자친구가 있으면서 다른 여자 팔짱끼는 남자, 여자친구가 있으면서 다른 여자에게 고백하는 남자, 여자친구가 있으면서 다른 여자에게 저녁에도 계속 연락하며 작업 거는 남자라는 걸 분명하게 보고 거절했다면, 훗날 피가 거꾸로 솟게 만드는 그의 행동들을 경험하진 않았어도 되리라 생각한다.

 

연하남은 L양을 '편한 누나'라고 생각하던 와중에, L양의 '거절하지 않는 모습'에서 '사귈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 같다. 만나자고 하면 만날 수 있고, 뭐 사달라고 하면 사주고, 스킨십을 시도하면 스킨십 할 수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고백했던 것 같다. 또 자신이 많은 책임을 져야 했던 연하의 여자친구에 비해 L양은 알아서 다 잘 하고 챙겨주기까지 하니, '마음고생, 몸고생' 하지 않고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2. 연애 초반 - 폭풍 애교와 스킨십.

 

둘의 연애 초반은 '뽀뽀와 하트'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카톡대화를 봐도 깨물고 싶다, 뽀뽀하고 싶다, 우쭈쭈쭈, 토닥토닥 등이 거의 전부다.

 

난 사연을 읽으며 L양이 이 부분에서라도 그가 유난히 '스킨십'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길 바랐다. 기-승-전-스킨십 이라고 할까. 그는

 

"잠깨게 뽀뽀해주까."

"모르는 게 없네. 뽀뽀해줘야겠네."

"(사무실에서)뽀뽀하러 갈까?"

 

라는 멘트들로 '스킨십 결핍'에 걸린 사람처럼 뽀뽀 얘기를 해댔다. 그리고 그는 "난 솔직하게 다 말하는 타입."이라며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아 스킨십 진도의 마지막 챕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이 연애를

 

'그건 지내던 그대로 + 스킨십'

 

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가 L양이라는 한 사람보다 '스킨십'에만 더 집중했다는 건, L양이 아파서 출근도 하지 못한 날 그가 한 멘트에서 잘 드러난다.

 

"이제 자기 건들지도 못 하겠네."

 

뿐만 아니라 지나가듯 한 얘기지만, 그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스킨십 진도를 나가려 하지 않는 L양에게 '비정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L양은 당시 그걸 '애교의 연장선'으로만 보고 말았다.

 

L양은

 

"나이차이가 많이 나긴 했지만,

저도 당장 결혼생각은 없기에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라고 말했는데, 그렇기에 나 역시 뭐라 해 줄 말이 없긴 하다. L양이나 상대 둘 모두 어차피 헤어지면 그만이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만나던 중에 헤어짐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것이니 말이다. 

 

 

3. 연애 후반 - 결혼 생각 없다면서?

 

바로 위에서 한 이야기한 것처럼, L양은 그에게 '결혼 생각 없다'는 뜻을 확실하게 밝혔다. 그런데 연애 후반에는

 

"자기는 그럼 나 엔조이로 만나는 거야?"

 

라며 상대를 탓하는 말을 하기도 했고, '남친의 의무'를 일깨워주는 말을 하기도 했다. L양은 이 부분에 대해

 

"가볍게 만나려던  마음은 점점 처음과 달라져 갔고,

다정하던 그는 처음과 달리 점점 내게 소홀해 진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는데,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우리 결혼할 사이 아님'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충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귄다고 무조건 결혼이 전제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굳이 '결혼 생각 없음'이라는 팻말을 걸어두고 시작할 필요도 없는 거다. 상대의 입장에선 L양이 '결혼 생각 없이 만나는 중'이라고 하니 자신도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기 시작했다가, 나중엔 "그럼 나 엔조이로 만나는 거야?"라고 물으니 덜컥 겁을 먹곤 헤어지자고 한 것 같다. 그가 댄 핑계는

 

"나는 사귀다 헤어져도 이십대 후반이지만,

자기는 나랑 사귀다 헤어지면 삼십대 중반이다.

우리 만나는 걸 객관적으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라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더불어 연애 초반에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형태로 연애가 변화하고 있었기에, 그가 더 겁을 먹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이 매뉴얼 <1.연애 전 - 편한 누나> 파트 말미에 내가 적어 둔 문장을 기억하는가?

 

"또 자신이 많은 책임을 져야 했던 연하의 여자친구에 비해

L양은 알아서 다 잘 하고 챙겨주기까지 하니,

'마음고생, 몸고생' 하지 않고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라는 문장. 연애가 진행될수록 그는 저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헤어지기 일주일 전부터 L양은

 

"내 기분이나 컨디션은 전혀 배려하지 않아서 화가 나네."

"나 다음 버스 탈 거니까 같이 갈 거면 맞춰서 오고."

"답장이 무미건조하네. 심하네. 실망이네."

"전화 안 받네. 쩝."

"그럴 땐 말이라도 내 생각한다 그래야지."

"집에 들어와서 전화했는데 안 받네…."

 

등의 말들을 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어차피 연애만 하다 말 사이로 둘 다 알고 있는데, 그러던 중 L양이 '의무'를 이야기 하고 명령조의 말을 시작하니 그는 서둘러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이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면 나쁜 사람 될 것 같으니, "나이가 있으니 객관적으로 생각해 봐라.", "나랑 헤어져도 회사 다닐 거냐?" 등의 말로 L양이 이별을 말하도록 유도한 것이고 말이다.  

 

 

4. 이별 후 - 드러난 본성.

 

헤어지고 나서 연하남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카톡 프로필 배경을 'L양과 사귀기 전에 정리한 여친'과의 대화창으로 바꾼 것이었다. L양과의 관계는 정리되었으니, 이제 자기 살 길 찾아 구여친에게 '난 널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자 벌인 일이었다.

 

L양은 그의 예의도 없고 개념도 없는 그런 행동에 분노했다. 회사에 가서 따지니, 그는 "사귀면서 그런 것도 아니고, 헤어지고 나서 한 일 아니냐."라는 뉘앙스의 대답을 했다. 그 대답에 분노한 L양은 소리를 높여 더 따졌는데, 그는 어쨌든 미안하다고 말하며 사람들이 들으니 퇴근하고 얘기하자고 말했다. 물론, 그는 그 약속과 달리 정시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근했다.

 

이후 L양도 더는 그와 말을 섞지 않았는데, 그러자 그는 아예 구여친과 찍었던 커플사진 등을 SNS에 올리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다른 직원에게 여자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거나, 여자에게 줄 선물 등에 대해 묻기도 했다. L양과는 이제 완전히 끝났으니 다시 또 자기 연애를 위해 팔을 뻗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은 'L양이 회사를 그만 두는 것'이고,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회사 사람들이 L양과 자신이 사귀었다는 걸 아는 것'인 것 같다. 헤어지기 전 그가 L양이 화를 낼 수 있음을 무릅쓰고도

 

"만약 나와 헤어진다면 회사 계속 다닐 거야?"

 

라고 재차 확인한 것, 그리고 이별 후

 

"사람들한테 들리겠다. 나중에 얘기하자."

 

라며 입막음에 집중한 것에서 그것이 잘 드러난다. L양은 그의 뻔뻔하고 개념 없는 행동 때문에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인사도 안 하고, 말도 안 거는데, 그는 그것에 개의치 않고 사람들에게 농담을 던지거나 특유의 싹싹함으로 상사들을 대한다. 사무실에서 L양이 잠시 자리를 비우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로 다른 여직원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말이다.

 

회사생활이 불편한데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지, 아니면 버텨야 하는지를 묻는 L양에게 난 당연히 버티라는 얘기를 할 것이다. L양이 이렇게 나가는 건, 그가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도록 자리까지 마련해주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회사에서 버티라고는 말하지 못 하겠다. 둘의 이야기를 잠시 접어두고 '회사업무'와 관련해서만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L양보다 업무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있는 듯한 그가 인정받기 좋은 조건에 있고, 또 그는 회사 사람들에게 싹싹하게 굴고 있는 까닭에 그들과 더 친해질 수 있으며, 겉으로 활발하고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이며 상사들에게도 잘 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회사생활에서 유리하다. 게다가 L양은 그가 찝쩍거리는 '다른 여직원'에게 그와의 일을 모두 말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그녀가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어떤 선택을 할지는 미지수다. '연애냐, 동료냐'의 기로에 섰을 때 별 망설임 없이 연애를 택하는 사례가 꽤 많으니 말이다.

 

그에게 인간적인 충고를 해서 그를 불편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긴 한데, 지금까지 보인 그의 행동으로 미루어 보면 그것 역시 씨알도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헤어지고 나서도 무슨 미련이 남아서 날 이렇게 괴롭히려 하는가.", "지금 그냥 직장동료로 잘 지내고 있는 것 아닌가. 나도 참견 안 할 테니, 댁도 참견하지 말아 달라."라는 대답이 돌아올 수 있다.(사귈 때에도 그는 L양에게 '댁'이라고 했다가 혼난 적 있다.)

 

그래도 그나마 그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여자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여직원'에게 그가 들이댈 때 했던 행동들과 헤어지고 난 이후 보인 행동들에 대해 이야기 하며 '여자 네트워크'를 구성하길 권한다.

 

 

오로지 L양의 편만 들기 위해 '여자 네트워크 형성'을 권한 게 아님을 밝혀두고 싶다. 난 솔직히 이 사연을 '가볍게 만나려고 했다가 정말 가볍게 만나게 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이별 이후 상대가 L양을 제외한 회사의 모든 사람들과 친분을 쌓으며 L양을 외톨이로 만들어 제 발로 걸어 나가게 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여자 네트워크'를 권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회사에서 자신이 밀려날 위기가 오면, 헤어질 때 요청했던 '다시 누나동생으로'를 L양에게 또 제안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땐 그가 아쉬울 때만 아쉬운 소리를 하고 그렇지 않을 땐 남들에게 소개팅 시켜달라는 소리 등을 하며 L양을 괄시했던 것을 떠올리기 바란다. 사람 마음 가지고 장난치는 건 백 번 양보해 어리니까 그러려니 하며 눈 한 번 감아줄 수 있지만, 장난질로 남의 밥그릇까지 엎어 버리려는 태도에는 사람 무서운 걸 알려줘야 하지 않나, 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이겨봐야 좋을 게 뭐 있나."라거나 "용서가 진정한 복수."라는 댓글이 달릴 수도 있을 텐데, 내 그릇이 이것 밖에 안 돼서 이런 옹졸하게 보일 수 있는 방법을 권하게 되었다는 사과의 말씀을 미리 적어둔다. 좀 더 넓은 그릇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이번은 용서해 주시길.

 

 

 

 

 


 

 

▼ 큰사람 만들어 준다는 큰사발을 한동안 끊었더니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새우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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