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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10년 넘게 알아온 사이, 연인이 될 수 있을까? 외 2편

by 무한 2015. 2. 13.

막연한 질문엔, 나도 막연한 대답을 드릴 수밖에 없다. 신청서에

 

만나게 된 계기 - 소개팅.

첫 만남 시 분위기 - 좋음.

스킨십 진도(첫 만남을 기준으로) - 다나감.

현재 둘의 관계 - 나쁨.

 

라고 적어주시면, 나 역시

 

원인 - 남자 잘못.

예상 - 둘이 조만간 헤어질 것 같음.

해결책 - 잘 하면 됨.

 

이라고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 쓰는 게 너무 어렵다거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몰라 저렇게 쓰시는 거라면, '나는 ~했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라도 문장을 적어보시길 권해드리고 싶다. 초등학생이 쓴 일기처럼 단순한 문장의 나열만으로 사연을 적어도 괜찮다. 그렇게라도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는 것이, 혼자 다 평가하고 결론지어 '좋음/나쁨/잘 모름/괜찮음' 등으로 이야기 하는 것보다 백배는 낫다.

 

그리고 나 '노말', '노르말', '노멀', '놀마', '노말로그', '노멀로그' 아니라는데도, 자꾸 저렇게 호칭하며 사연을 보내는 분들이 있어서 가슴 아프다. 댓글 창에서 맨날 뵙던 분들도 사연을 보내실 때면 뭐에 씌이셨는지 노말님, 또는 노멀님 하시는데, 그르지 말자. 저런 호칭이 쓰인 사연을 다루지 않는다는 걸 농담으로 아시는 분들이 있는데, 진짜로 안 다룬다. 그러니 내 소심한 복수의 대상이 되진 마시길….

 

자 그럼, 불금의 기운으로 쓰는 금요 사연 모음, 출발해 보자.

 

 

1. 10년 넘게 알아온 사이, 연인이 될 수 있을까?

 

이게 사연을 보낸 정훈씨에게는 충격과 공포의 대답이 되겠지만, 정훈씨의 바람대로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훈씨가 삼고초려 해가며 그녀를 두드리면 연애까지는 어떻게 진행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연애는 그녀가 이전에 만났다는 사람과의 연애처럼

 

"날 많이 좋아해줘서 정말 고맙긴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설렘이 없어서 헤어졌어."

 

라는 결론을 맞게 될 수 있다.

 

현재 정훈씨가 그녀를 대하고 있는 모습은, 그녀가 차 좀 알아보려 자동차 매장에 들어갔는데, 영업사원이 옆에 바짝 붙어서는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온갖 혜택을 다 붙여 주겠다면서 차 볼 시간도 주지 않고 떠들고 있는 것과 같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먼저 묻고 그 얘기를 좀 듣거나, 아니면 상대가 질문하는 것에 대해 대답하며 거기에 약간의 부연설명만 붙이면 될 텐데,

 

"이 차 고객님들이 많이 타세요. 근데 저 차는 더 좋아요.

저 차로 하시면 제가 옵션 1, 2, 3 다 붙여드릴 수 있고요.

아, 그리고 저 뒤쪽에 있는 차도 보이시죠?

가족이 몇 이세요? 가족들과 차 탈 일 많으신가요?

그럼 또 저쪽 뒤에 있는 거. 저게 고객님들이 칭찬하시는…."

 

라며 신들린 듯 혼자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정훈씨는 현재 그녀와 대화를 자주, 그리고 또 많이 하고 있으니 곧 핑크빛 러브러브가 시작될 거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건 그냥 이쪽에서 친절과 호의를 계속 베풀며 인터뷰하듯 말만 많이 해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상황이다. 정훈씨가 아니라 내가 그녀에게

 

"어제 술 많이 마신 거야? 몸은 좀 괜찮아?"

"오늘 춥다. 옷 따뜻하게 입어~"

"주말에 참치 먹으러 갈까? 오랜만에 생선!"

"전에 말한 그 영화 벌써 개봉했네. 내일 저녁에 콜?"

 

라는 이야기를 해도 그녀는 거절하지 않고 대부분의 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냥 그녀가 거절을 잘 못 하는 성격이며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걸 싫어하지 않는 경우, 저 정도의 말에 '예스'를 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단, 대답만 있을 뿐 역시나 관심에서 우러나오는 리액션은 없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너는 어떤 하루를 보냈냐거나, 너는 점심에 뭐 먹었냐거나, 너는 주말에 뭐 하냐거나 하는 걸 그녀가 묻지 않는 것이다. 정훈씨가 첨부한 카톡대화에 그녀의 리액션 없이 대답만 가득한 것처럼.

 

내가 정훈씨라면, '내 얘기'를 조금씩 더 풀어 놓을 것 같다. "뭐해? 점심 맛있게 먹었어?"라고 묻기만 하는 대신, "오늘 점심은 쌀국수로 정했는데, 실패. 별점 두 개."라고 자연스레 내 얘기도 흘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쌀국수 좋아하냐고 묻는 질문으로 넘어가거나, 아니면 너는 오늘 점심선택 성공했냐는 질문으로 넘어가면 된다. 그런데 정훈씨는 현재 오로지 '새로운 메뉴제시와 새 계획'으로 자꾸 도전만 하는 까닭에, 여기서 보기엔 무슨 맛집 동호회 번개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화중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좀 말해줘야지, 오로지 "너 뭐 하고 싶어? 너 뭐 먹고 싶어? 너 어디 가고 싶어? 너 주말에 뭐 해?"라고 묻기만 해서 되겠는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좀 늘리자.

 

더불어 하나 더 말해주고 싶은 것은, 정훈씨에겐 '진행의 욕심'이 있다는 거다. 상대가 물었으면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하고 그 다음 이야기를 상대가 풀 수 있게 좀 기다려주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헌데 정훈씨는 자신이 질문하곤 그녀가 대답하면, 그 대답을 받으며 다시 한 번 자신이 질문한다.

 

정훈 - 뭐 먹고 있어?

상대 - 딸기 먹는 중. 냠냠.

정훈 - 나도 딸기 좀 줘 ㅋㅋ 과일 중에 어떤 과일이 제일 좋아?

상대 - 포도?

정훈 - 나도 포도 좋아해 ㅎㅎ 열대과일 중에는 어떤 게 좋아?

상대 - 과일은 거의 다 좋아해. 키위만 빼고.

정훈 - 키위는 왜? 아 혹시 망고스틴 먹어봤어?

 

상대에게 호감이 있기에 좋아하는 걸 얼른 알아내 다 해주며 마음을 얻고 싶은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제발 한 번에 하나의 질문, 또는 하나의 대답만을 하자. 지금은 뭐 상대가 먼저 "똑똑똑. 바빠?"라고 선톡을 해도, 정훈씨가

 

"바빠도 할 건 해야지. 자, 인터뷰 시작합니다.

지금 배고플 시간이겠네. 퇴근했어?"

 

라는 기세로 몰아치고 있는 까닭에, '인터뷰'가 아닌 '대화'는 불가능하다. 전에도 한 번 얘기했지만 '편'이 되는 것과 '팬'이 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정훈씨가 그녀의 '편'이 되어주겠다며 하는 행동들이, 사실은 '팬'의 입장에서 하는 행동들이 아닌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활주로만 계속 안전속도로 달리고 있으면 이륙을 못 하는 법이니, 오늘부터는 전화통화 시간을 늘리길 권한다.

 

 

2. 이 오빠 뭐죠?

 

안녕 하은양. 이건 하은양이 보낸 사연 속에 답이 나와 있는 관계로, 답만 적어두고 마무리 할까 해.

 

"그 오빠가 아는 여동생들한테 다 그러다가,

심심풀이용으로 제가 얻어 걸린 것 같기도 하고…."

 

내 생각도 하은양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해. 그리고 하은양은

 

"왜 갑자기 그렇게 변한 거죠?

며칠 전까지 여행 얘기도 하고 밥 먹자는 얘기도 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단답하며 제가 매달리는 것처럼 대답하고 읽씹하죠?"

 

라고 물었지? 뻔하지 뭐. 그는 그걸 -하은양 말로는 '가자미'닮았다고 한-여자친구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매달리는 애가 있는데, 내가 확실하게 선을 긋고 끊었다."라고 말하겠지. 그러니 그런 남자를 두고

 

"오빠가 빨리 헤어지고 제게 오길 바라는 건 너무 못된 생각인가요?"

 

하며 시간을 버리지 말고, 평생 다시는 만날 일 없도록 그를 하은양 인생에서 도려내버리길 권할게. 이렇게 말하긴 좀 그렇지만, 속된 말로 '똥 밟았다'는 상황이 딱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똥에 대고 화내거나 미련 두지 말고, 레릿고.

 

 

3. 이대로 포기하긴 싫은데, 뭘 더 해야 하죠?

 

자의식이 풍부한 대원들의 사연을 받을 때면 사실 좀 난감합니다. 거기에 문학적 상상력까지 더해진 사연은, 제 입장에선 '현실의 연애사연'을 두고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독서토론'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도 문학소년 놀이를 하며 청소년기를 보낸 까닭에

 

"나는 열아홉 살이었고, 그녀는 스물 네 살이었다."

"무슨 영화를 볼까 하는 내 질문에, 그녀는 '아무거나 웃기는 거' 라고 대답했다."

"그 날, 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가리지 않고 웃었다."

 

따위의 문장들을 쓴 적이 있습니다. 현실에서 1, 2, 3, 4…, 로 진행되는 일들을, 1, 1.4, 1.8, 2, 2.5, 2.9…, 등으로 잘게 쪼개거나 깊이 파들어가며 노는 일이 꽤나 재미있었습니다.

 

글만 그렇게 쓰고 현실에서의 생활은 현실대로 했다면 제 삶이 지금보다 3.2배 정도 평탄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잡이인 걸 숨길 수 없듯이, 잘게 쪼개거나 깊이 파들어가는 일은 삶 전체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습니다. 전지적 시점에서 스스로의 삶까지도 내려다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언젠가 어떤 사진가가 강의를 하며 이런 얘기를 했던 게 기억납니다.

 

"저는 지금 여기 들어오는 순간에도 모든 것들이 피사체로 보여요.

여러분을 찍으면 어떻게 찍어야 한다든가,

아니면 지금 이 강의실로 들어오는 빛이 어떤 성질의 빛이라는 거라든가,

이 상황에서 어떤 앵글을 잡으면 어떤 사진이 나온다든가,

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 거죠. 하도 하다 보니, 그냥 기계적으로 떠올라요."

 

기술적인 측면에선 저게 부러운 일이지만, 삶과 관련해서는 저게 별로 부럽지 않은 일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지 말아야 할 순간에도 상대를 피사체로 보게 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뜬금없지만, 혹시 사진을 많이 남겨야 하는 여행을 다녀오신 적 있으십니까? 전 그런 여행을 다녀오면 사진은 많이 남지만, 내가 정말 여행을 갔다 온 게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곤 합니다. 사진을 찍는 것과 여행을 즐기는 것은 둘 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 하나에 동력을 몰아주다보면 다른 한 쪽은 부족해지기 때문입니다.

 

풍부한 자의식을 가지고 삶을 살 때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잘게 쪼개거나 깊이 파들어가느라, 상대와 '마음 대 마음'으로 만날 시간이 부족해지는 것입니다. 상대와 만나고 있으면서도 그 만남을 구경하게 되고, 상대에게 어떤 캐릭터를 입히거나 의미를 부여하게 되며, '실제 20 상상 80'의 기울어진 시각에서 관계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 사람이 좋고 친해지고 싶어 연애를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짠 시나리오에 그 사람을 캐스팅 하듯 집어넣어 연애를 하려 들 수도 있고 말입니다.(B양의 경우를 두고 말하자면, 그가 '남자 주인공' B양이 '여자 주인공'이 아니라, 그가 '남자 주인공' B양이 '감독'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난 그때까지도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모르고 있었다."

 

라는 문장을 적기 위한 듯한 만남, 그런 만남으로 이 관계를 이끌어가선 안 됩니다. 모르면 그냥 물으면 되는 거고, 배고프면 그냥 밥 먹자고 하면 되는 거고, 주말에 보고 싶으면 그냥 만나자고 하면 되는 겁니다. 저는 Rialto의 <Monday morning 5:19>에 나오는

 

"And now it's almost six A.M.

And I don't want to try again

'Cause if she's still not back then this must be the end."

 

라는 부분을 좋아합니다만, 현실에서 저런 일이 벌어진다면

 

"At half past two I picture her In the back of someone else's car

He runs his fingers through her hair

Oh you shouldn't let him touch you there."

 

라는 생각만 하고 있진 않을 겁니다. 제가 부정적인 상상을 한 뒤 그걸 사실화시킬 수 있는 증거들을 찾고 있는 동안, 그녀는 백병원 응급실에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응?)

 

"'그럼 3월에 만나면 된다'는 그의 마지막 카톡을 제가 읽은 상태더라고요.

제가 아픈 와중이고, 또 잠결에 나눈 대화라 무의식적으로 그와 대화를 나눴던 것 같은데

제정신으로 확인했을 때엔 시간이 꽤 지나서 답장하기가 애매해 그냥 뒀습니다.

근데 생각해보니 3월에 보자는 말은,

일단 2월엔 보지 말자는 소리라고 볼 수 있으니,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냥 그 사람은 딱 거기까지인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풍부한 자의식을 가진 대원들의 사연을 볼 때마다 제가 가장 답답함을 느끼는 지점은,

 

- 실제로는 한 것도 별로 없으면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 본 것처럼 말하는 것.

- 분명 자신이 해 놓고도 '무의식중에'라거나 '제정신이 아닐 때'라고 말하는 것.

- 그냥 연락을 하면 해결될 일을 가지곤 연락을 안 한 채 혼자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

 

입니다. <가시나무>라는 노래는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라는 가사로 시작하지 않습니까? B양은 아직 상대의 전화번호도 모르고 있는데 망원경으로만 그를 바라 본 까닭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또 톡으로 그와 대화를 하거나 혼자 상상할 때에는 현미경으로 그를 들여다보려 한 까닭에 그의 일부만을 필요 이상으로 세밀하게 본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망원경이나 현미경 내려놓고, 상대와 돈가스부터 한 번 같이 드시길 권합니다. 서로 다른 돈가스 시켜서 나눠 먹으면 됩니다. 그가 왜 로스까스를 시켰을지에 대한 스물다섯 가지 생각은 하지 마시고 말입니다. 화이팅.

 

 

전에 이야기 했던 스킨도 정식배포가 되었고 해서, 주말 동안 블로그 리뉴얼을 할 예정이다. 스킨을 변경하는 동안 블로그 레이아웃이 깨지거나 글이 정상출력 되지 않을 수 있는데, 변경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이니 당황하거나 긴장하진 마시길 부탁드린다.(사실 뭔가를 잘못 건드릴까봐 내가 긴장하고 있다.)

 

자 그럼 나는 또 밀린 사연들을 읽으며 금요일을 불태우러 가봐야겠다. 다들 즐거운 불금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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