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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떠나지도, 다가오지도 않는 구남친. 어떡해? 외 1편

by 무한 2015. 6. 11.

상대에게 인간적인 실망을 주게 된 사연은, 나도 어떻게 해보기가 어렵다. 다신 안 볼 생각으로 상대의 부모님과 싸웠다거나,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웠다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를 배신한 적 있다는 사연 같은 건, 얼마간 저자세로 지낸다거나 말 몇 마디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다.

 

특히 심각한 사연을 보낸 대원들일수록, 본인을 위한 합리화를 마친 뒤 자기변호까지 하는 경우가 많아 난 참 곤란한 상황에 놓이곤 한다. 자신이 생각해도 관계를 전처럼 되돌릴 가능성이 적다보니 지원군 삼아 더 큰 방어기제를 마련하는 것이겠지만, 속으로 정신승리를 하려 노력하며 겉으로는 '미안하니까 일단 저자세'만 취해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더불어 그런 실망을 주게 된 '사건'이 벌어진 이후, 상대의 태도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관계를 지속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도 해야 한다. 단순히 상대가 쉽게 용서를 안 해주니 접으라는 게 아니라, 사건 이후 마치 '약점 잡은 사람'처럼 괴롭히기만 하는 건 아닌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다. 오늘 다룰 첫 번째 사연에 대해선, 이 '괴롭힘'의 영역까지 살펴보며 결론을 냈다는 걸 먼저 밝힌다. 출발해 보자.

 

 

1. 떠나지도, 다가오지도 않는 구남친. 어떡해?

 

 

문제를 하나 풀어보자. 그냥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과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 중 어느 게 더 아플까? 대부분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게 더 아플 거라고들 대답하시는데, 어느 도끼든 도끼에 발등을 찍히면 다 아프다.(응?) 저 위의 글에서 너무 힘이 들어간 것 같아 웃자고 한 소리고.

 

열정적인 '까'가 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이전에는 '빠'였던 경우가 많다. 애초에 믿음이 없었다면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고, 관심이 없다면 열정적으로 증오하며 어떻게든 상처를 내려고 하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S양의 구남친에게, S양은 첫사랑이었다. 그 이전에도 그가 연애를 한 적 있는데 무슨 첫사랑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가 자신의 모든 걸 바쳐가며 헌신적으로 매달린 여자는 S양이 처음이었다. S양은 도도한데다 그를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기에 밀어냈는데, 그런 S양의 태도가 오히려 그의 추격 본능을 자극해 그는 거의 '광신도' 형태의 구애를 하기까지 했다.

 

S양은 그의 구애에 못 이겨 연애를 시작하긴 했는데, 별다른 애정 없이 상대의 헌신적인 구애만을 받아들여 사귄 게 결국 사달을 냈다. 연애 중 S양이 다른 남자와 스킨십 하고 있는 걸 남친의 지인이 목격했고, 그 소식을 남친에게 전해 남친이 무너진 것이다.

 

"너에게 나는 뭐냐. 내가 널 얼마나 좋아했는지 너는 상상조차 못 할 거다."

 

남친은 저 말과 함께, 사과하며 붙잡는 S양에게 우린 이제 정말 끝인 거라고 말하며 돌아섰다. 이렇게 끝난 거라면 그냥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로 남았을 텐데, 이후 둘은 다시 만나게 된다.

 

재회 후 남친은 S양을 의심하며 괴롭혔다. S양은 본인이 잘못한 게 있으니 일단 저자세로 나가다 보면 그가 예전처럼 바뀔 거라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시기에 두 사람이 어땠는지는, S양의 말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저는 제가 정성을 다하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제 정성으로도 치유되지 않았고, 남친은 점점 냉소적으로 변해가기만 했어요. 남친이 예전 같은 애정을 주지 않는 걸 저는 견딜 수 없어 몇 번씩 헤어지기도 했지만, 그러다가도 다시 또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둘은 애증의 관계로 지내다가, 또 연인으로 지내다가, 어느 땐 헤어지자는 확실한 얘기도 없이 헤어진 것처럼 지내다가 하며 딱히 정의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나중 이야기들을 보면 헤어진 게 확실한 것 같기는 한데, 그렇게 남처럼 지내다가도 만나면 다시 연인처럼 지내기도 하고…. 두 사람이 언제 딱 헤어지기로 했는지는 확실히 알기 어렵다.

 

여하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난 저 첫 갈등의 시기에 보인 남친의 모습만 가지고도 S양에게 이별을 권하고 싶다. S양의 잘못을 빌미로 S양을 겁주고, 협박하는 사람과는 그가 누구든 멀어지는 게 좋다. 당시 남친은 S양 부모님을 들먹이며 위협하기도 했고, 실제로 S양을 파멸시킬 구체적인 계획까지도 준비했었는데, 난 이게 상당히 위험하고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두 사람이 계속 만났기에 이게 그저 작은 소란 정도로 덮이긴 했지만, 애정을 순식간에 증오로 바꾸며 S양을 부숴버리려고 하는 모습을 확인했다면 놓는 게 맞는 거라 나는 생각한다.

 

S양은 내게 '사귀는 건 아닌데 만나면 연인처럼 지내는 상황'에서의 남친 심리와 관계의 방향을 물었다. 난 남친의 마음에 대해선,

 

- 예전엔 그녀에 대해 신앙까지 가질 정도였지만, 지금은 그녀도 그저 하나의 작은 인간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된 상태.

 

라고 대답하고 싶다. S양에 대한 아무 환상이나 기대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그렇다면 왜 연락을 하고 만나려 하는 거냐고 물을지 모르겠는데, 그 이유의 8할은 '정'이며 나머지 2할은 '본능'이다. 사회의 대인관계에서 힘들 때, 날 잘 알며 긴장을 풀고 만날 수 있는 오랜 친구를 찾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어쩌다 만나서 연인처럼 지낼 때 그의 태도가 어땠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는 S양과 함께 하는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했는가, 아니면 이전에 나갔던 스킨십 진도만을 복습하려 했는가.

 

"저도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런데 누구를 만나 봐도, 남친 만한 사람이 없었어요. 제게 그렇게 큰 애정을 주던…."

 

과거는 이미 흘러갔다. 내가 실수로 밟아 깨먹은 카메라 렌즈도, 2주 전까진 멀쩡했다. 현재 S양을 대하는 남친을 보면, 그 역시 과거의 그 사람과 분명 다른 사람 같지 않은가. 그 시절 그 사람은 이제 없다는 걸, 난 S양이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2. 아직도 가깝게 지내는 구남친, 하지만 확신은 없다는데….

 

안녕하세요 J양. 저는 '미니 헤어그라스(재팬)' 라는 수초를 키워보고 싶은데, 저희 집 어항에서는 그러기가 불가능합니다. 조명이 LED인 까닭에 광량이 부족하고, 저면비료를 깔지 않았기에 영양이 부족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니 헤어그라스를 들인다면, 녀석들은 시들거나, 성장을 멈추거나, 운이 좋아 자라도 옆으로 뻗지 못한 채 웃자라기만 할 것입니다.

 

J양과 구남친의 관계가, 미니 헤어그라스와 저희 집 어항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J양은 쉽게 폭주하는 타입이고, J양의 남친은 남들보다 겁이 많습니다.  

 

겁이 많은 사람들은 상대의 무서운 얼굴을 떠올리는 버릇이 있습니다. 또, 상대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근거로 미래를 예측해 보거나 불길한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J양은 먼 사람에겐 상냥하고 친절하지만, 가까운 사람에겐 쉽게 무례해지고, 가시 돋친 말들로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제가 공쥬님(여자친구)에게 사랑 고백이 담긴 아흔아홉 통의 러브레터를 써도, 단 한 번의 저주를 퍼부으면 편지들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J양은 서른 통의 러브레터를 썼고, 일흔 번의 저주를 퍼부은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 연애할 때 두 사람의 관계를 보면, J양은 무서운 과외선생님, 남친은 혼날까봐 시키는 대로 다 하는 학생처럼 보입니다. 그러다 결국 헤어지고 연락만 근근이 이어가던 사이였는데, 최근 다시 결혼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가깝게 지내다 보니 피바람이 불고 말았습니다. J양은 다시 무서운 과외선생님으로 돌변했고, 남친은 겁을 집어 먹은 채 "일단은 그냥 지금처럼 아는 사이로…."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친 입장에선 J양과 그냥 '아는 사이'일 때가 좋은 겁니다. 앞서 말했듯 J양은 본인과 가까울수록 더 함부로 대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기에, 그는 J양과 가까워질수록 괴로워집니다. 전화만 하는 사이일 땐 J양이 상냥하고 따뜻한데, 조금만 더 가까워져도 따지고, 추궁하고, 저주하는 말들을 쏟아내는 겁니다. 이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과 연애하는 대원들이 종종 하소연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직원과 손님일 땐 정말 친절하고 상냥했는데, 사귀고 보니 상대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고 화풀이를 하려 드는 것처럼 보인다며 말입니다.

 

J양의 말대로 애매한 이 관계를 정리하고 J양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저는 그것보다 가까워질수록 상대를 괴롭히는 J양의 태도를 수정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J양은 상대가 확신도 없다면서 도대체 왜 그러는지를 제게 물어 보셨는데, 상대 입장에선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겁니다. 헤어진 후 2년 간 연락 정도만 하는 사이로 지낼 땐 J양이 반성도 많이 하며 온화하게 변한 것 같았는데, 나아졌다 생각해 다가가자 이번엔

 

"결혼 할 건지 안 할 건지 대답해. 나 왜 만나? 친구? 그럼 친구로 지내다 내가 다른 사람 사귀면 넌 아무렇지도 않겠어? 꺼져줄래? 나 좀 잘 살게."

 

라는 뉘앙스의 폭주가 시작된 것입니다. 친구로서 선물을 줄 땐 J양이 고마워하며 받았는데, 좀 더 가까워진 지금 선물을 주면

 

"이런 선물을 내게 주는 저의가 뭐냐. 날 희망고문 하려는 거냐. 나에 대한 확신도 없다면서 지금 뭐 하는 짓이냐. 넌 날 희망고문 하는 고문기술자일 뿐이다."

 

라는 식의 이야기를 할 뿐입니다. 

 

더불어 둘이 계속 어긋나게 되는 이유에는, J양의 '청개구리 성격'이 한 몫을 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상대가 프로포즈 할 때에는 J양이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참, 대체 뭘 어떻게 하자고 이러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면 가라고 하고, 가면 오라고 하고….

 

J양이 디테일한 이야기들은 생략해서 사연을 보내주신 까닭에 저도 더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진 못 하겠습니다. 전 그저, J양이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에게 만족을 하지 못 할 것 같으면 차단을 해서라도 관계를 끝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아니라 잘 해보고 싶은데도 안 되는 거라면, J양이 본인의 속마음을 털어 놓으며 리드하길 권하고 싶습니다. 아무 힌트도 안 주고 그저 틀렸다고 손바닥만 때리면, 그 누구라도 J양에게서 도망갈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놓고는 진심은 그게 아니었다고 사과했다가, 다시 가까워지자 이번에도 매부터 들면, 역시 그 누구라도 J양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것이고 말입니다.

 

"대체 제게 원하는 게 뭐냐고 묻자, 그는 일단은 친구로 지내는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전 남녀사이엔 친구가 없는 거라고 말했는데, 그는 우린 좀 특별한 사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전 그에게 친구로 지내고 싶으면 일 년에 한두 번만 연락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친구랑 이렇게 자주 안부를 물어가며 지내지 않는다고.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고, 저는 이제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J양의 버릇이 고쳐지지 않으면 다시 만나도 지옥문이 열릴 것이 뻔하기에, 제가 무작정 재회를 권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를 추궁해 답을 들으려고만 하지 말고 J양도 J양 생각을 말하며 같이 답을 구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쩌겠다고? 그런데 뭐? 그게 말이 돼?" 말고, "그래서 나는…. 그런데 나는…. 거기에 대해서 나는…."이라는 말로 대화를 해보시길 권합니다. 인연을 끊을 때 끊더라도, 그 정도 노력은 해보고 끊는 게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두 번째 사연은 세 번을 다시 썼다. 앞의 두 번은 재회를 권하는 긍정적인 내용이었는데, 'J양 남친도 겁부터 먹는 버릇을 고칠 수 있겠는가?'라는 것까지 생각해 보니 마냥 긍정적일 순 없었다. J양이 속마음과 다르게 행동하는 청개구리의 모습을 보이는 거라면, J양의 남자친구는 냇가에 묻어달라고 했더니 이번엔 진짜 냇가에 묻어버리는 청개구리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두 사람이 어떤 선택들을 하게 될 지 궁금하니, J양은 이후의 이야기들을 메일로 한 번 보내주셨으면 한다.

 

이제 하룻밤만 더 자면 불금이다. 우리는 내일 금요사연모음에서 다시 만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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