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의 연애, 싸운 적도 없는데 멀어진 이유.
- 2015. 6. 16. 04:04
- Written by 무한™
S양과 남친의 연애는, 산소 호흡기를 차고 있는 관계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고시생인 S양의 시험이 끝나기 전까지는 의식이 없는 이 상태가 계속 될 것이 확실하며, 시험이 끝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험이 끝나기 전에 이 연애가 먼저 끝나게 될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사연을 주신 S양도 이미 이 점을 피부로 느끼고 계신 듯
"다음에 연애를 할 때는, 어떤 점을 주의하면 좋을지 짚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는 말씀을 하시기에, 그 부분을 중점으로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1. 고시공부와 연애.
자신만의 엄격한 규율을 세워 지키지 않는다면, 고시생활은 조급한 마음과 책임회피로 점철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거 저거 하다가 틀려버렸네. 내일은 열심히 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미루기만 한 까닭에, '내일'엔 할 일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친척 언니 결혼식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공부해야 할 분량을 문제없이 소화했다면, 길어도 세 시간 정도인 토요일 결혼식에 참석하는 건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런데 오늘은 공부가 안 되니까 쉬고, 내일은 방청소부터 해야 할 것 같아서 공부를 미루며, 수요일엔 형광펜과 노트 등 수험생활에 필요한 걸 재정비 한다는 핑계로 역시 공부를 미루면, 금요일쯤 가서는 결국 조급한 마음이 듭니다. 때문에
'친척언니 결혼식보다 내 인생이 더 중요한 거잖아?'
'왜 하필 지금 결혼하는 거지? 지금은 나한텐 정말 중요한 시기인데.'
'내 사정 아니까, 내가 결혼식에 참석 못 하는 것도 이해할 거야.'
'엄마 아빠는 딸이 지금 고시 준비 중인데, 무슨 결혼식에 데려가려는 거지?'
하는 생각들을 하며 괜히 분노하거나, 자신을 합리화 하는 것에 공을 들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방법으로 결혼식에 불참하더라도, 남는 시간엔 집중이 잘 안 된다는 핑계로 머리 식힌다며 미드 같은 걸 다운 받아서 볼 수 있고 말입니다.
더불어 고시공부를 할 땐, 대개 자신이 '잉여인간'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합니다. 공부하고 있다는 걸 제외하면 고시생의 생활패턴은 백수와 꼭 닮아있는 까닭에, 남들은 다 제자리를 찾아 잘 살고 있는데 나만 방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또, 합격에 대한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 곁엔 늘 불안함이 있게 되고, 불합격 할 경우 주변 사람들이 혀를 차진 않을지에 대한 공포도 늘 존재합니다.
때문에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피처로의 '연애'를 택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오늘 공부가 안 된다고 얘기하면 상대가 내일 하면 된다며 위로해주고, 또 서로의 감정을 속삭일 때에는 고시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느낌이 드니, 자꾸 상대에게 기대려 들거나 위로를 받으려 들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S양의 이번 연애가, 위에서 이야기 한 부분들 중 '좋지 않은 부분'들의 교집합이 되고 말았다고 생각합니다. 연애가 도피처의 기능을 발휘해 S양의 불안을 덜어주긴 했지만, 한편으론 연애에 할애되고 있는 시간이 S양을 합격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갈팡질팡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모습들이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지는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2. 미안한데, 다음에 보자?
S양과 남친의 대화를 잠시 보겠습니다.
1.
남친 - 오늘 우리 만나는 거지?
S양 - 너 피곤할 거 같은데
(잠시 침묵)
S양 - 괜찮겠어?
남친 - 난 괜찮은데
남친 - 넌 어때?
(역시 잠시 침묵)
S양 - 몇 시에 돼?
2.
S양 - 정말 미안한데, 나 오늘 몸 상태가 조금 안 좋은 것 같아.
S양 - 다음 주에 보면 안 될까?
(이후 S양 몸 상태에 대한 이야기 생략)
남친 - 그렇구나. 너 보려고 지금 가는 중이었는데 아쉽다.
S양 - 그러니까 내가 더 미안해 ㅠ.ㅠ 저녁때라도 시간 내서 잠시 볼까?
S양 - 나 때문에 무리해서 오는 거였는데.
남친 - 아냐. 아픈데 쉬어.
S양 - 정말 미안해서 어쩌지 ㅠ.ㅠ
3.
S양 - 정말 미안한데 우리 다음 주에 보면 안 될까?
S양 - 어제 얘기를 했어야 하는 건데 미안해 ㅠ.ㅠ
남친 - 다음주….
남친 - 왜?
(이후 한참 연락 없음.)
S양은 이런 부분들에 대해
"약속을 자주 취소하거나 변경한 것. 이 점은 제가 잘못한 겁니다."
라고 하셨는데, 이건 '이 점은'이라는 말 정도로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몇 번씩이나 이랬다저랬다 하면, 그걸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오만 정이 다 떨어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만나기로 한 날 아침에, 또는 만나러 가는 와중에 "다음에 보면 안 될까?"라는 말을 들으면, 호구와트 졸업생이 아닌 이상 어떤 남자라도
'얘에게 나는 뭔가?'
'얘는 나와의 약속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인가?'
'얘에겐 나와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한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변명같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고시공부를 하다보면 정말 어떤 날은 저도 감정이 오락가락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남자친구를 보면 더 힘들어질 것 같기도 하고 해서, 혼자 그냥 머리를 식힐 겸 약속을 미룬 적도 있습니다. 부모님 눈치가 보여 그런 적도 있고요."
어떤 사정이 있든, 무책임한 건 무책임한 겁니다. S양이 고시에 합격해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어느 날은 출근하면 더 힘들어질 것 같다고, 또 어느 날은 오늘 출근하면 월요병 같은 것에 시달려 능률도 안 오를 것 같다고 회사에 결근을 통보하면, 직장을 바로 잃게 되지 않겠습니까? 더도 말고, 딱 타인에게 지키는 예의만큼만 연인에게 지켜도 꽤 많은 문제들을 막을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3. 뭐뭐 해줬으면 좋겠어.
S양은 좀 이상한 방식으로 표현을 합니다. 남친에게 펜을 선물 받고 난 후 S양이 한 말을 보겠습니다.
"네가 준 펜으로 공부하니까 정말 공부 잘 된다. ㅋ 담에 또 사줘~"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일반적인 경우라면,
"네가 준 펜으로 공부하니까 정말 공부 잘 된다. ㅋ 고마워~"
라는 멘트가 등장할 것입니다. 그런데 S양은 감사의 인사를 생략하고 어리광을 부리는 까닭에, 타인의 시각에서 보면 뻔뻔하고 이기적인 여자로 보입니다. 남친과의 대화에 나오는, S양의 말들을 몇 개 더 보겠습니다.
"재미있는 얘기 해줘~ 나 빨리 괜찮아지게!"
"자기야 열 시에 전화해 줄래? 나 자기 목소리 듣고 싶어."
"아침에 간단하게 굿모닝이라두 해줬으면 좋겠어."
저게 연인 사이에서 못 할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대로 S양은 본인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약속을 변경하거나 취소하지 않습니까? 그런 와중에 바라는 것까지 많은 여자가 되어 버리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남친 입장에서 한번 이 연애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S양에게 빚을 지거나 죄를 진 것도 아닌데, S양의 남자친구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모진 고난을 겪어야 하지 않습니까? 고시생인 S양의 시간만 소중한 거 아니고, 고시생인 S양만 바라는 게 있는 건 아닌데 말입니다.
이 상황에 대해 S양이 한 말을 보겠습니다.
"분명한 건, 제가 슬프고 힘들었다는 겁니다. 구걸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싫었습니다. 저 혼자만 연애하는 것 같아서요. 저도 나름대로 이겨보려고 노력을 해봤지만…."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원인제공을 한 건 S양입니다. 연애를 떠나서, S양을 만나러 오는 친구를 세 번 돌려보내면, 그 친구는 S양이 주말에 보자고 말해도 이제 믿지 않으며 무덤덤하게 반응할 것입니다. 약속을 해도 S양 기분에 따라 변경되거나 취소될 수 있으니,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며 아무 기대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일로 상처를 입은 친구라면, S양의 태도를 똑같이 흉내 내어 언제 한 번은 친구 쪽에서 약속을 취소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사연과 카톡대화를 다 읽은 저는, 현재 S양의 남친에게 이 연애에 대한 기대나 애정이 전혀 없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S양의 태도 때문에 남친의 감정이 급속히 식어가는 중에도, S양은
S양 - 오늘 무슨 날이게?
남친 - 오늘?
남친 - 오늘…. 글쎄.
S양 - 나 시험 100일 남은 날이야.
S양 - 그냥 그렇다고 ㅎㅎㅎ
남친 - ㅋㅋㅋ 금방이네.
위와 같은 대화들을 이어갈 뿐이었습니다. 역시나 이 연애에 남친을 위한 자리는 없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는 대화 같지 않습니까?
"제가 며칠 전에는 남친에게 서운하다고, 저 힘들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남친은 어제 저녁에 일이 있다며 만나자는 약속을 미루기까지 했네요."
S양 본인이 그럴 땐 잘 몰랐지만 당해보니 짜증나지 않습니까? 바로 그 감정들을, 지금까지 남친은 계속 느껴왔던 겁니다.
둘의 대화 중에는, 남친이 S양을 떠보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런데 거기서, S양은 실망스러운 대답을 하고 맙니다.
S양 - 오늘 자기 말이 없네~ 자기 보고 싶다~
남친 - 그럼 나 보러 올래?
S양 - ㅋㅋㅋ 가고 싶기는 하지만 못 가니 아쉽네.
S양 - 그 뜻은 아니고, 카톡이 없어서 그랬어 ㅠ.ㅠ
비겁한 변명입니다.(응?) 가서 만날 생각은 없으면서, 상대에게 연락 충실히 하라는 걸 요구하기 위해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건 연인 역할극일 뿐입니다. 남친 또한 이젠 그 역할극에 질려 "그래그래." 정도의 영혼 없는 대답만을 반복하고 있는데, 둘 다에게 시간과 감정의 낭비일 뿐인 이 연애는 얼른 그만두시길 저는 권하고 싶습니다.
"무한님은 남자친구와의 연락은 어디까지가 최소한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최소한 최대한 뭐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적어도 상대에게 예고 없이 손편지 하나 쓸 정도의 마음은 있어야 그게 연인인 거고 연애인 것입니다. 그 마음이 있다면 '어디까지가 최소한' 같은 건 자연히 고민하지 않게 될 것이고 말입니다.
이 매뉴얼을 읽고 S양 마음의 변화가 있다면, 본인은 남친을 방치해두고 있으면서 남친 보고는 충성을 다하라고 했던 점에 대해 사과하시길 권합니다. 저는 이 관계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관계의 밭을 잘 일궈두면, 나중에 또 무엇을 심기에 적합한 형태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에 시험 합격하시길 저는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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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쏭2015.06.16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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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lalfqlalf2015.06.16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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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김2015.06.17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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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해야하는게 맞는거 같아요. 오늘도 글 감사합니다!
마음에 넣어 놓을 글이 많아요
건강하시고 좋은 날 되세요 •ㅅ•
투우소 IX2015.06.1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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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자분 멘탈 괜찮으실지 걱정이....
연인이라는 특별한 관계가 되어 남에게도 안할 몹쓸짓을 하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됩니다.
종종 인터넷에서 떠도는 말로, 모니터 뒤에 사람있다는 말이 있는데요...
연인이라는 관계뒤엔 상대가 나와 동등한 인격체임을 잊지않는것. 기억해둬야 겠네요.
초코꽃2015.06.17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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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2015.06.17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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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튀김2015.06.1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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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시고 시험 꼭 합격하시길!
유머조아2015.06.17 17:4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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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신나라2015.06.17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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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제 얘기였습니다.
그사람은 좋은사람이었고, 놓치기 아까운 남자였죠. 저의 꿈이.. 이 시험이.. 인연을 놓아버리게 만들더군요. 포기할수없는 꿈 과 달콤한 연애사이에서..늘 고민하고 자책하고..
시험도 원망스럽고, 그인연의 타이밍도 원망스럽고...
린2015.06.18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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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마음관리 잘하셔서 좋은 결과 빨리 받으시고 어서 세상으로 다시 나오시길 바래봅니다..
AtoZ2015.06.1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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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가는 소리'라는 동시가 있는데, 참 좋습니다.
구름 가는 소리
윤석중
구름 가는 소리가 나나 안 나나
두 눈 감고 가만히 들어보아라.
잠나라에 달님이 뜨나 안 뜨나
꿈 속에서 가만히 살펴보아라.
박꽃 피는 소리가 나나 안 나나
두 눈 감고 가만히 들어보아라.
꿈나라에 나비가 자나 안 자나
꿈 속에서 가만히 살펴보아라.
날이 많이 덥습니다. 무한님도, 공쥬님도, 어항 속 새우들도, 소식 들은지 꽤 된 간디도 모두 건강하신지요?^^
ww2015.06.1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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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2015.06.19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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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독하게 먹고 공부해요. 고시공부면 그거 다 견뎌야돼요. 그럴 자신 없으시면 다른 길 찾는게 나을겁니다. 어설프게 공부하다간 정말 낭인되거든요.
이여사님2015.06.1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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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님. 저에게도 합격을 빌어주세요. 점심먹었으니 다시 공부 시작하러 갑니다^^ 모두들 보람찬 하루 되시길~
흠2015.06.2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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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힘들다고 계속 머해달라 나 이거땜에 힘들다 이런식으로 나오면 너무 피곤해서 만나기 싫던데. 근데 그게 꼭 힘든상황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원래 그런 스타일인 사람이라는게 함정이요
졸릴땐잠자장2015.07.3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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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릴땐잠자장2015.07.3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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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보2015.12.01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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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시름2016.11.03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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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친구 중에 저렇게 지멋대로인 친구가 있는데 정말 만나기 싫죠ㅜㅜㅜㅜ
죠이2020.12.17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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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재수로 이제 곧삼수인데
집안에 반대도 있어ㅅㅓ
뭔가 끝이보이기에 더이상 이관계를이어가면
상대방에게 상처줄까 말해야겠는데
제가말하는순간 이별이 되어버릴것이 두려워서인지
말을 못하겠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