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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남친은 좋은 남자지만 사귈수록 외로워져서 외 1편

by 무한 2015. 6. 2.

몇 년 전, 난 커플마사지를 받으러 간 적 있다. 날 담당한 남자 마사지가사 온 힘을 다해 마사지를 한 까닭에, 난 마사지를 받는 내내 고통을 참아야 했다. 보통 그럴 땐 아프다는 신호를 해야 한다는 거라던데, 난 그런 곳에 간 것이 처음이었기에 근성으로 참아냈다.

 

내가 별 반응을 안 보이자, 마사지사는 자신의 힘이 덜 들어가서 못 느끼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더 세게 눌러댔다. 특히 목을 뒤에서 누를 땐, 이러다 정말 목뼈가 부러질 수 있다는 공포감이 찾아왔지만, 난 어린 시절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긍정의 느낌으로 참아냈다. 에픽테토스의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아파테이아.

 

오늘 첫 사연의 주인공인 K양 역시, 연애에서 억지로 참아가며 '무반응'을 보였던 것 같다. 남친은 K양이 평소 불평을 하거나 불만을 말하지 않으니 괜찮을 거라 여기게 되었고, 그렇게 굳어져 가는 관계에 참다못한 K양이 폭발하며 두 차례의 이별선고를 해 헤어지게 되었다. K양은 남친이 참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미련이 남아 있지만, 현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K양의 이야기, 함께 살펴보자.

 

 

1. 남친은 참 좋은 남자지만 사귈수록 외로워져서.

 

K양은 남친에게 기쁨도, 재미도, 감동도 주지 못 했다. K양은 남친이 소홀하거나 마음이 식은 듯한 모습을 보였던 것에 대해서만 지적해 왔는데, 이렇게 반대의 입장이 되어 지적을 당해 보니 뭔가 새롭게 느껴지는 게 없는가?

 

연애 초, 남친은 K양의 마음을 얻기 위해 호의와 친절을 베풀며 헌신했다. 그건 남자친구가 선천적으로 그런 걸 즐기는 타입이라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하다보면, 쟤도 나를 이렇게 대해주겠지.'

 

라는 바람을 가지고 한 행동인데, K양은 그것에 만족하기만 할 뿐 별 보답을 하지 않았다.

 

이게 근본적인 문제다. 남친이 먼저 연락을 하거나 안부를 묻는 건 당연한 일인 반면, K양이 먼저 연락을 하거나 안부를 물을 땐

 

"너란 녀석은 지금까지 연락도 안 하고 뭐 하는 짓인가?"

 

를 추궁하는 청문회가 된다. 이러다 보니 남친은 이 연애에서 자신이 자원봉사자가 된 느낌이 들게 되었고, 자연히 친구나 지인, 취미활동 등으로 관심을 분산하게 되었다.

 

남친이 관심을 분산하기 시작했을 때 K양이 바짝 당겨 앉으며 그를 주목하게 만들었으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K양은 이해하는 척을 하거나 복수를 다짐하고 말았다. 이러면 '너 따로 나 따로'의 관계로 접어들게 되고, 소심한 복수들을 거듭하며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걸 피할 수 없다.

 

남친 - 자기야

K양 - 넵

K양 -??

남친 -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나?

K양 - 응?

K양 - 왜???

남친 - 있어 없어?

K양 - 왜?

남친 - 그냥 좀 뭔가 달라서.

K양 - 잘못한 거 없는데?

남친 - 그래? 알았어.

K양 - 그냥 요즘 뭔가

K양 - 음...

K양 - 아냐. 만날 수 있을 때 얘기하자.

 

둘의 연애 후반부 대화가 전부 저렇다. 소심한 복수를 하느라 일부러 답을 안 하기도 하고, 형벌을 내리듯 아무 말 없이 그냥 가버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근본이 되는 이유는 둘 다 말하지 않아 남친은 계속 어리둥절하며 K양의 형벌에 고통을 받을 뿐이고, K양은

 

"솔직히 지금은 오빠도 들을 기분 아닌 것 같고. 아무튼 잘 자."

 

라는 이야기만 할 뿐이다.

 

세상을 함께 살아가며 두 사람이 끌어주고, 밀어주고, 업어주고, 안아주고, 옆에 함께 앉아주고, 또 등도 두드려주고 하는 게 연애인데, K양 커플은 연애 때문에 서로가 제일 힘들었다. 끌어주긴커녕 다리를 걸고, 밀어주긴커녕 위험한 곳으로 밀어버린 것이다.

 

물론 K양에겐 나름의 이유가 있긴 한데, 그걸 여기다 자세히 밝히지 말아달라고 해서 적을 수가 없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서로를 힘들게 할 뿐인 연애는 필연적으로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본인 삶이 힘들고, 아프고, 하루하루가 재미없으며 괴롭기만 한 상황에서 연인에게 이해와 지지와 관심과 응원을 바라기만 하는 건 상대에겐 고문이 될 수 있다. 무엇이 힘들고 어디가 아픈지, 그리고 재미있게 살기 위해 뭘 어떻게 할 생각인지를 상대에게 전혀 말하지 않은 채, 그저 증상으로 나타나는 짜증과 불평, 불만만을 표출하는 태도가 고문기술인 셈이다. 헤어진 이후, 한 번 보자는 이야기를 했을 때 상대가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자 K양은 바로 태도를 바꿔 상대에게

 

"불편하거나 부담스러우면 안 만나도 된다."

 

라는 이야기를 해버리던데, 상대 마음만을 확인하려 애쓰지 말고 K양 마음을 표현하길 권한다.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말하면 되는 거지, 왜 상대에게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만을 확인하려 드는가. 꼬아서 생각하거나 돌려 말하지 말고, 곧장 질러가도록 하자.

 

 

2. 호감을 표현해 온 여자, 알고 보니 연애 시작 했다는데….

 

안녕 H군. 본인은 마음이 없는데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가 있어서 힘들다는 여자의 이야기를 액면가 그대로 믿지 마. 뚜껑 열어보면 그녀도 상대의 말에 리액션 해주고 중간중간 여지를 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 심지어 그녀가 먼저 호감이 있는 척을 해서 상대를 어장 안으로 불러들인 경우도 많아. 그래놓고는

 

"처음엔 아는 사람도 없을 때 그 사람이 잘 해주고 해서 연락하게 된 건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이성으로 보고 좋아하는 것 같아서 부담스럽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거지. 그녀의 저 말은 저건 사실인 것 같다고? 그녀가 상대와 무슨 대화를 어떻게 하는지 본 적 있어? 없잖아.

 

그녀가 H군과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기대고, 안기고, 뽀뽀하고 그랬지? H군과 친한 친구를 통해 H군을 칭찬하기도 했고, 또 호감이 있는 것처럼 표현해서 H군 귀에 흘러 들어가게도 했고 말이야. 그럼, 그녀는 그런 행동을 '본인은 마음이 없는데 자신을 좋아한다는 남자'에게도 할 수 있다고 봐야 해. 또, 그녀는 고민이 있는데 같이 술 한 잔 하자면서 H군에게 먼저 다가왔지? 그런 그녀의 행동들 역시 '다른 남자'에게도 할 수 있다고 봐야 해. 그녀에게 빠지는 사람들은 '내가 특별해서 나에게 이러는가 보다.'라고 착각하곤 하는데, 사실 이건 모두에게 진입장벽이 낮은 거지 이쪽만 특별해서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거든.

 

보통 그런 여자들을 '끼 부리는 여자'라고들 표현해. 왜 남자들 중에도 어딜 가든 이성이 보이면 말을 걸거나 장난을 쳐서 가까워지는 사람들 있잖아. 그런 유형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물론 그녀가 남자들이 그럴 때처럼 의식적으로 개그를 치거나 어떻게든 구실을 만들어 보려고 하진 않아. 반대로 먼저 약간의 스킨십 등을 하며 멍석을 깔아주고, 고민이 있다며 걱정을 털어 놓아 보호본능를 자극하곤 하지. 대개 밤공기와 약간의 취기, 옆에 딱 붙어 앉거나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행동 등으로 인해 시작되는 거야. 뭐가? 어장관리가.

 

그녀의 고민 대상이었던 '본인은 마음이 없는데 자신을 좋아한다는 남자'는, H군 보다 먼저 그 어장에 들어와 있던 남자일 가능성이 높아. 그녀가 H군에게 했다는

 

"이렇게 날 위로해주고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

 

라는 말은, 그 어장 선배도 똑같이 들었을 수 있고 말이야. 그런 얘기를 들었던 게 아니라면 그가 걱정이 된다며 술자리에서 그렇게 난리를 칠 일이 없거든. 이렇게 생각해 봐. 그 어장 선배가 없다고 가정을 하고, 그녀가 H군과 달달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중이야.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다른 모임 사람들과 만나서는 취기가 한껏 오른 상태일 때까지 술을 마셨어. H군은 당연히 걱정이 되니까 그녀를 데리러 갔지. 그런데 그녀는 안 가겠다고 하네? H군에게, 자신은 알아서 들어갈 테니 먼저 가라고 해. 그럼 술이라도 그만 마시라고 H군이 말했는데, 그녀는 그것도 싫다고 해. 이럴 때 H군은 어떻게 행동할 것 같아? 그 어장 선배가 했다는 행동과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까?

 

이런 유형의 여자가 등장하는 사연들을 보면, 그녀들에겐 꿩도 달래고 닭도 달랜다는 특징이 있어. 바로 위에서 가정한 것처럼 그녀는 모임에 남고 H군은 씩씩거리며 집에 갔어. 그러면 또 그녀는 모임에서 잠깐 나와 H군에게 전화를 하는 거야. 어둑한 복도 같은 곳에 찾아가서 전화를 하지. 상황이 좋지 않으면 저자세로 나가긴 하는데, 그러면서도 H군에게 가거나 H군의 부탁대로 움직이진 않아. 통화를 마치면 또 모임의 어장 후배가 달려 나와 무슨 일이냐며 달래주고, 그녀는

 

"이렇게 날 위로해주고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

 

라는 멘트를 다시 꺼내야 하거든. 패턴이 이래. 이런 식으로 다리를 걸치며 어장을 확장해 나가더라고. 그러다 어장 내 일등 참치가 지쳐서 나가려고 하면 비밀연애를 제안하기도 하고, 뭐 그런 식이야. 이게 반대로 남자가 이랬다면 여자 네트워크 블랙리스트에 올라 매장당할 수 있는 일인데, 여자가 이럴 땐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아. 오히려 남자끼리 치고박고 하거나, 그래도 어쨌든 그녀와 사귀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며 구애를 계속하곤 하지. 헝거게임, 베틀로얄, 뭐 그런 것처럼 말이야.

 

그녀와 만나게 된 이후부터 H군에겐 차례로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를 되짚어봐. 처음엔 딱히 그녀에게 호감이 있다거나 그녀와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그녀가 H군을 좋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실제로 지인들을 통해 고백 아닌 고백 같은 말을 흘리니 관심이 갔잖아. 그러는 와중에 그녀가 먼저 고민 있다며 술을 마시자고도 했고, 이후 H군에게 고맙다는 말을 계속 하며 약간의 스킨십도 먼저 해왔어. 그래서 H군도 완전히 홀리게 되었는데, 그녀는 사귀게 된다면 오랜 사이가 될 수 없으니 조금만 더 보자고 말했지.

 

그런데 알고 보니 저 타이밍에 그녀는 이미 어장 선배와 비밀연애를 하고 있었네? 그걸 H군도 어쩌다 알게 되었고, 이제 그녀는 미안한 표정으로 무언가 핑계를 대려 해. H군은 나중에나 얘기 하자고 그녀에게 손사래를 쳤고. 잘 한 거야. 그녀가 늘어놓을 변명이야 뻔하지. 어장 선배와는 어쩔 수 없이 사귄 거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거나, 확실하게 단념시키기 위해 잠시 사귀었다 헤어질 생각이라고 말하겠지. 신뢰할 수 없는 사람과는 멀어지는 게 답이야. 그저 추격본능과 보호본능 때문에 그녀가 의식적으로 흘려대는 고민이나 감정의 모조품들을 주워 담지 말고, 그녀의 일은 그녀가 책임지도록 놔두길 권할게.

 

 

며칠 전 난 친구와 자전거 라이딩을 했는데, 라이딩을 마치고 맥주를 한 잔 하다가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전에 네 다른 친구들이랑 같이 모인 적 있었잖아. 그때 네가 우리 쪽은 잘 안 챙기고, 그 친구들만 챙기는 것 같아서 좀 서운했었다."

 

난 전혀 생각지 못 했던 부분이라 당황하긴 했지만, 그렇게 말해준 게 고마웠다. 덕분에 평생 오해하며 마음 한 구석에 쌓아두고 있을 수 있는 부분들도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고, 난 '이 친구들은 나랑 더 친하니까 어색해 할 수 있는 친구들을 먼저 챙겨야겠지'라고 생각했던 게 누군가에겐 서운함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다시 깨닫게 되었다. 공쥬님(여자친구)과는 조금 전 서로가 했던 행동 하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는데, 친구들과는 그런 부분에서 좀 부족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말하면 뭔가 속 좁아 보이거나 치사해 보일 것 같은 이야기도, 꺼내 놓고 나면 부정적으로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 대화를 계기로 좀 더 속 깊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고, 당연하게 생각하며 아무 문제없을 거라 예상했던 부분들이 문제가 되고 있음을 일깨워 줄 수도 있다. 그러니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 채 그저 행동으로 복수하려 하거나, 마음을 덜 쓰는 걸로 답하려 했던 분이 계시면, 한 번 털어 놓아 보시길 권한다. 그 시도가 관계의 답답함을 해소하고 둘 사이에 있던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걸 무너뜨릴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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