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6월엔 유독 파혼 사연이 잦다. 내 주위에서도 한 커플이 지난주에 파혼했고, 어제도 지인 하나가 파혼을 해 글을 쓰다 말고 나갔다 왔다. 지인과 만나 새로 나온 소주들을 종류별로 다 마시게 되었는데,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다. 거꾸리에 매달려 피가 머리로 쏠릴 때의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다.
어제 술에 취해 혀 꼬인 지인이
"내가 부덕해서 그래. 다 내가 부덕해서 이렇게 된 거지…."
라며 되풀이 하던 말이 아직도 내 귓가에 맴돈다. 지인이 혀가 짧아 '부족해서'를 '부덕해서'로 발음했는데(응?), '부덕'이 더 매력적인 것 같다. 오래 사귀고 뜨겁게 사랑했지만 결국 결혼의 문턱에서 이별하는 커플들, 대체 무엇이 그들을 갈라서게 만들었는지 오늘 함께 짚어보자.
1. 착한 비판? 좋은 자극?
둘 사이엔 별 문제가 없지만, 결혼을 앞두고 서로의 부모님과 만나는 횟수가 잦아지며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제일 많았다. 부모님들과의 갈등으로 파혼하게 된 경우, 대개 자존심에 치명상을 입는 관계로 회복이 불가능한 사례가 많다.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사례가 하나 있는데, 사연 속 남자주인공은 예비 장인어른께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비전이 없잖은가. 우리 딸 데려다 고생 시킬 게 뻔한데, 지금이라도 공무원 시험을 보는 게 낫지 않겠나.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으면, 비전이라도 있어야지."
예비 장인어른은 그에게 '좋은 자극'을 주려고 한 말이겠지만, 그게 남자 자존심엔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법인데, 대놓고 말만 하지 않았을 뿐 결론은 "너 별 볼 일 없잖아."라는 의미인 말에 분노와 증오까지 하게 되었다. 여자도 상황이 심각한 건 알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우리 아빠가 우리 생각해서 하신 얘기잖아. 잘 되길 바라면서 한 얘기지, 일부러 비판하려고 하신 거 아니잖아. 틀린 말도 아니지. 사실 지금 자기 상황도 객관적으로 보면…."
이라는 말로 그의 속을 더 긁고 말았다. 딴에는 수습하고자 한 말들인데, 그게 남자에겐
'얘도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이런 애랑 내가 결혼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불러일으켰을 뿐이었다. 차라리 여자가
"우리 아빠가 좀 그래. 옛날 분이셔서 옛날 사고방식으로만 생각하셔. 그러니 자기가 좀 이해해줘. 속상했지? 미안해."
라고 얘기했으면 남자의 마음이 사르르 녹았을 텐데, 그러지 못하곤 감정이 격해지자
"나도 자기 부모님에게 서운한 게 없는 줄 알아? 전에 집에 갔을 때 어머님이…."
라며 맞불을 놓아 둘의 관계는 재가 되고 말았다. 여자는 자신도 서운한 적 있었다는 걸 어필하고자 한 것인데, 그런 말을 꺼낸 상황도 좋지 않았거니와 의도와 달리 "너희 부모님도 이상하다."라는 공격이 되고 말았기에, 5년을 사귄 두 사람은 이제야 서로의 본모습을 본 것 같다며 갈라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두 사람은 같은 편이어야 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너 VS 나'가 되는 순간 그 간극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진다. 남과의 갈등이 있을 땐 둘이 잘 뭉치지만, 피가 섞인 가족과의 갈등이 생기면 가족을 변호하거나 '우리 집 VS 너희 집'의 문제로 확대되어 더 큰 싸움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이때는 '난 무슨 일이 있어도 네 편'이라는 걸 보여주고 증명하는 것에 힘을 쏟길 권한다.
2. 식은 어디서? 우리 엄마가…. 오빠네 부모님은….
난 사실 공쥬님(여자친구)과 같은 지역에 살고 있기에 이걸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다. 그런데 두 사람의 집이 멀 경우, '결혼식을 어디서 할 것인가?'를 두고 집안 간 신경전이 벌어지는 사례도 있었다. 둘이 좋아서 결혼하는 것이니 사실 어디서 하든 큰 관련은 없는 건데,
-우리 쪽 손님이 더 많으니 우리 쪽에서 해야 한다.
-원래 결혼은 전통적으로 남자 집 부근에서 하는 거 아니냐.
-거기서 할 것 같으면 우리 손님들 모셔갈 전세버스 마련하라고 해라.
-그쪽 손님이 더 많이 올 것 같으면 밥값 일정부분은 그쪽도 부담하라고 해라.
-겨우 그런 데를 잡았다고 하냐. 그 집 안목도 참….
-교회에서 하는 건 절대 안 된다.
-우리 쪽에서 잡은 날이 길일이니 이때 해야 한다.
등의 이유들로 양보하지 않으며 대립하는 것이다. 남녀가 둘 다 정신적으로 부모에게서 독립된 사람들이라면 위와 같은 주장들도 적당히 다독여가며 조율하곤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말을 그대로 전하거나 부모님의 의견이 곧 내 의견이라고 여기며 같은 주장만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아빠가, 오빠네 집은 왜 식장을 그런 곳으로 잡은 거냬."
"우리 어머니께서 알아보셨는데, 6, 7, 8월은 피하라고 하셨다."
"오빠 쪽 손님이 더 많이 올 것 같으면 식권 따로 주고 각자 정산해야지."
"원래 식장 정하는 쪽에서 상대방 전세버스까지 마련해 주는 거라던데?"
부모님이 신혼집에 들어온 스크래치 난 가구를 보고
"이거, 그 집에서 중고품 사서 보낸 거 아니냐?"
라고 한 얘기를 그대로 전해, 다투다 어이없게 파혼한 사례도 있다. 또, 부모님이 "그 집에서는 결혼하는데 신경 안 쓴다니?"라고 한 걸,
"오빠네 부모님은 결혼식에 별로 관심이 없으신가봐?"
라는 말로 전해 역시 파혼하게 된 사례도 있다.
둘이서만 하는 연애일 때에는 두 사람이 합의하고 조율할 수 있었지만, 부모님이나 가족, 친척의 의견이 개입되며 중심을 잃는 것이다. 둘만 놔두었다면 고구마 농사를 지으면서라도 잘 먹고 잘 살았을 커플이, 제 삼자의 의견 때문에 흔들리다 결국 갈라서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3. 가족, 친척 중 꼭 하나 있기 마련인 푼수, 또는 멍충이.
결혼을 앞두고 인사를 다니고 가족, 친척 모임에 참여하다 보면, 그 무리 내에서 '폭탄'으로 분류되는 인물과 꼭 한 번은 마주하게 된다. 그런 사람과 사회에서 만났다면
'멍충이들에겐 약이 없지. 쟨 그냥 평생 멍충하게 살게 놔두는 게 최선이지.'
하며 넘길 수 있을 텐데, 중요한 자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푼수나 멍충이라면 생각지도 못한 내상을 입을 수 있다. 신부의 언니가
"그거 하면 한 달에 얼마 벌어요? 별로 많이 못 버네."
라고 이야기를 한다든가, 친척이
"성이 뭐라고? *씨? *씨는 상놈 아니여? 천방지축마골피 그런 얘기도 있잖아."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남친의 누나가 외모나 학력 지적질을 해 파혼 후 원수가 된 사례도 있고, 뒷조사를 한다며 상대가 웹에 올린 기록들을 찾아서는 폭로한 사례도 있었다.
"너 모 병원 게시판에 글 올린 적 있더라? 비밀글이던데, 산부인과에 글은 왜 올렸어?"
등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멘탈이 강철로 된 사람이 아닌 이상 누구라도 충격과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나아가 SNS에 오만한 댓글을 달아 곤란하게 만든 사례, 카톡으로 집요하게 연락하는 사례, 내 친구는 결혼할 때 뭐뭐 해갔는데 넌 안 해도 되니 편하겠다 등의 이야기를 해 망쳐버리는 사례 등, 상식 이하의 일들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모 연예인의 경우도 남동생이 "우리 누나가 얼마 전까지 사귀던 사람, 지금 결혼하려는 그 신랑이 아니다. 내가 입을 열면 누난 크게 다칠 것이다."라며 폭로를 하던데, 이렇듯 가장 잘 아는 가까운 사람이 안티인 경우는 참 많은 문제들이 벌어진다.
푼수나 멍충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지적 받아도 그것에 반성할 줄 모른다. 남동생에게 주의해 줄 것을 부탁받은 후,
"그 말이 그렇게 싫었어? 그럼 나한테 말하지 그랬니. 아무튼 미안하다. 앞으론 주의할게. 악의가 있어서 한 말은 아니니까 마음에 담아 두진 마. 그런데 그 정도로 기분 나쁜 거라면, 그건 네 자격지심일 수도 있어. 아무튼 잘 지내보자. **(남동생)이 한테는 내가 연락했었다고 말하지 말아줬으면 해."
라고 말한 사례도 있었다. 대체 뭘 먹고 어떤 교육을 받으면 사람이 저렇게까지 될 수 있는진 모르겠지만, 여하튼 '정말 좋은 사람' 주변에도 이런 '지뢰'같은 사람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을 늘 가까이에 두고 보던 사람들은 '그러려니'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따귀를 맞았을 때처럼 어안이 벙벙해질 수 있다.
이럴 때 역시 한 쪽에서 다른 쪽의 편을 들어주며 같이 "이건 전부 우리 누나가 잘못했네. 진짜 사람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하거나, "우리 집에서도 우리 누나에 대해선 거의 포기상태야. 어디 가서 말실수만 해서 모임에도 잘 안 데리고 나가. 그런데 이번에 사고를 치고 말았네. 정말 미안하다."라고 말하면 어떻게든 봉합이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대개는
"우리 누나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네가 그냥 이해해라."
"그래도 최악인 다른 경우들 보다는 나은 거 아니냐."
"우리 누나가 좀 푼수긴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다."
"별 것 아닌 일인데 뭐 그거 가지고 그러냐. 우리 누나랑 살 것도 아닌데."
"네가 먼저 살갑게 굴면, 우리 누나도 너한테 잘 할 거다."
라는 이야기를 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만다. 연애 내내 '우리 둘'의 울타리 안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다가, 이때 처음 벽을 느끼고 갈라서는 것이다. 이땐 내가 이해한다고 해서 그걸 상대에게도 똑같이 이해시키려 하지 말고, 상대를 이해하는 게 먼저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원래 그러니까 이해하라고 말하지 말고, 상대가 느꼈을 당혹감과 모욕감을 먼저 살필 수 있도록 노력하자.
글을 적다 보니, 이거 매뉴얼 한 편으로는 다 다룰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이 매뉴얼은 여기까지 1부로 마무리 하고, 2부에서 또 다른 내용들을 적을까 한다. 위의 내용은 외부의 자극들에 의한 파혼이 대부분이었는데, 2부는 내부의 문제로 인한 파혼들을 다루도록 하겠다.
위에서 이야기 한 내용들이 본인에게는 절대 안 일어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사연의 주인공들 역시 예식장 계약하고 청첩장 돌릴 때까지도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닥치면 이성적인 판단이나 올바른 대처를 못 할 수 있으니, '이런 경우라면, 나는 어떨까?'를 가볍게 한 번 생각해 본다는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한다. 자 그럼, 우리는 2부에서 다시 만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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