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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연애는 시작했는데, 이제 어쩌죠. 결혼하고 싶어요.

by 무한 2015. 7. 17.

세월이 참 빠릅니다. 어제는 2년 전 사연을 보내주셨던 분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그 분은 당시 폭풍우가 치는 망망대해에서 표류중인 사람의 모습을 하고 계셨는데, 지금은 아이 엄마가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후 연락이 없어 혹 여전히 힘들어 하시는 건 아닐까 마음을 쓰고 있었는데, 약간의 산후우울증이 찾아온 것 말고는 큰 문제가 없다니 참 다행입니다. 아 그런데, 그러면 신혼여행 다녀오시면서 제 열쇠고리라도 하나쯤 사오셨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웃자고 하는 소리 아니니까 마음 깊이 새겨두시기 바랍니다.(응?)

 

예전엔 이렇게 서두에서 수다도 떨고 그랬는데, 언젠가부터 수다를 생략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누가 너 강아지 키우는 얘기 듣고 싶대?"

"사연이나 빨리 말하지 뭔 말이 많아."

 

등의 댓글을 종종 접하게 되던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여린마음동호회 회장인 까닭에 상처를 좀 잘 받습니다. 그래서 저런 댓글이 달리면 날짜와 시간, 닉네임, 아이피주소를 데스노트에 기록해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원인으로는, 댓글을 남겨주시는 독자 분들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것도 한 몫 하는 것 같습니다. 연애 때문에 고민일 땐 노멀로그를 찾다가, 결혼과 동시에 발길을 끊게 되는 게 사실입니다. 육아매뉴얼이 있다면 찾겠지만, 사슴벌레나 물고기를 키우는 얘기가 있으니 찾지 않게 되는 거지요. 아이를 사슴벌레처럼 키우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요.(응?) 그래서 오래 사귄 친구 같던 독자 분들의 댓글이 점점 사라지면, 수다 같은 서두를 적었다가도 지워버리게 됩니다. 지금 이 서두도 세 번쯤 지우고 다시 쓰려다 일단 밀어붙이는 중입니다. 사실 맨 앞 문단은 지워버렸습니다. 노멀로그가 아직 낯선 분들은 '뭔 소릴 하는 거지?'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여하튼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런 마음인 까닭에 지금과 같은 형식을 취하게 되어다는 걸 좀 적어두고 싶었습니다. 어제도 감성에 젖어서는 참 긴 서두를 서놨는데, 쓰다 보니 매뉴얼 분량보다 수다가 더 많아져서 임시저장만 해두었습니다. 오늘도 이쯤에서 끊지 않으면 서두만 A4 열두 장을 쓰게 될 것 같으니, 이만 각설하고 매뉴얼 출발하겠습니다. 한 분의 사연을 중심으로 한 매뉴얼입니다. 자, 출발!

 

 

1. 연애만 하면 왜 혀가 짧아지는가?

 

제가 알기론 Y양이 '이렇기만 한 여자'가 아니거든요. 근데 연애만 하면 하나의 캐릭터로 굳어져 버립니다. 

 

"웅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맛있게 먹엉~~~"

"힝~ 졸려졸려 ㅠ.ㅠ"

"나 끄읕!!!!!!!!!!!!"

 

본래의 Y양은 센스가 있는 까닭에 다른 사람들과는 말장난도 잘 하고, 또 냉철하게 생각해야 할 땐 냉철하게 생각할 줄도 압니다. 보내주신 신청서만 봐도, Y양은 아무 생각 없어 "웅웅.", "아라썽~"이라는 말만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대체 연애만 하면 왜 이러는 걸까요? 

 

빅뱅이나 엑소의 노래를 들으며 학창시절을 보낸 분들은 아직 뭐 그래도 될 나입니다. 그런데 에쵸티와 젝키의 노래를 들으며 학창시절을 보낸 분이 이래버리면, 곤란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누굴 만나면 결혼까지 생각하며 만나는 나이가 되었는데, '귀여운 여동생'의 캐릭터만 고집하시면 안 됩니다. 동반자로서의 진중한 모습도 보여줘야 하고, 때로는 누나처럼 상대보다 더 넓게 보고 있다는 것도 보여줘야 합니다.

 

Y양이 '혀 짧은 여자' 캐릭터를 잡아버린 까닭에,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상대는 살짝 구박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물론 농담이 많이 섞여있긴 합니다만 상대의 자화자찬이 잦아지고, 뭐 하날 하더라도 '해주는' 것처럼 되어버립니다. 이런 관계로 계속 가게 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상대가

 

'쟤는 내가 다 알려주고, 다 가르쳐주고, 돌봐줘야만 되네.'

 

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착각이 시작되면, 상대에겐 이쪽을 존중하는 태도가 사라지게 되고 자신의 결정을 통보만 하는 형태로 변해가게 됩니다. 좀 극단적으로 예문을 만들어 보자면,

 

여자 - 오빠 우리 토요일에 보는 거지?

남자 - 나 토요일 출근.

여자 - 아 그래? 알았어. 일 많아서 힘들겠다. 오빠 힘내 ㅠ.ㅠ

남자 - ㅇㅇ

 

위와 같은 형태로 변한다 할 수 있겠습니다. 짧은 예문 하나 봤을 뿐인데도 저 대화 속 여자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 느껴지지 않습니까? 저렇게 변해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마냥 '오빠 짱! 오빠 최고!'의 태도에서 벗어나시고, 귀여움만 받고 싶은 욕심을 내려 놓으시길 권합니다.(때로는 상대를 꼬꼬마로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는 얘기도 적어두고 싶습니다.)

 

 

2. 결혼 생각은 내려놓고 만나야 합니다.  

 

현 상황을 보면, Y양은

 

"할 수 있는 한 내가 최선을 다해서 잘할게. 그러니까 우리 결혼하는 거지?"

 

라고 묻듯 혼신의 힘을 다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혹시, 주변의 보험설계사인 지인으로부터 가입 권유를 받아보신 적 있으십니까? 전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권유를 받아 본 적 있는데, 그는 다짜고짜 '을'을 자처하며 어떻게든 제게 호의를 베풀고 싶어 했습니다. 정말 부담스러울 정도로 말입니다. 수년간 연락을 안 하고 지냈지만 만난 이후로는 매일 좋은 글귀 등을 문자로 보내기도 했고, 분명 그런 친구가 아니었는데 대화할 때마다 늘 웃으며 '과잉 호감'을 표출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정상적으로 과거의 추억을 되짚어가며 술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도 잃게 되었고, 동등한 입장에서 다음에 만날 약속을 잡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남친을 대하는 Y양의 태도가, 저를 대하는 보험설계사 지인과 비슷합니다. 그냥 다 좋고, 다 괜찮다는 식입니다. 아무래도 '결혼'이라는 목적이 분명하기에 그러는 걸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 모습이 상대에게는 Y양이 뭔갈 숨기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사람이 그렇게까지 착하거나 맹목적으로 긍정적일 수 없는 게 사실인데, Y양은 상대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다 긍정인 까닭에 의심스러운 겁니다. 상대가 한 얘기 중에,

 

"우리가 지금까지 자주 만났기에 친한 느낌이 들긴 하는데, 그런데도 막상 만나다 보면 서로 모르는 부분도 많기에 좀 이상해."

 

라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저건 해석하자면,

 

"우린 뭔가, 연인을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라는 의미입니다.

 

헌신 말고 진심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Y양이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대화를 하다 보니 많이 웃게 되고 시간 가는 거 모를 정도로 즐겁지 않았습니까? 그럼 다음번에 만나도 그런 대화들을 이어가면 되는 겁니다. 연애가 시작 되어도 그대로 두 사람 다 그 즐거움을 유지해가면 되는 건데, 둘은 뭔가

 

'이제 연인이 되었으니, 우리는 많은 의무를 지니게 된 거야.'

 

라고 생각하며 애먼 곳에 힘을 빼고 있는 느낌입니다. 데이트를 위한 데이트를 하려하고,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려합니다. 둘이 아직 덜 친하다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하려 들고, 상대에게 좋은 점수를 받는 것에 신경을 쓰며 관계를 이어갑니다. 이건 분명 면접이 아닌데, Y양이 '결혼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자꾸 17번 지원자처럼 굴게 되는 것입니다.

 

훗날 상대가 그 어떤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더라도, 그때 Y양으로서는 상대와 인간적으로 친해지기 위해 진심으로 다가갔다고 말할 수 있으면 되는 겁니다. 상대에게 모든 걸 다 맞춰가며 좋은 점수를 따려 노력하는 거 말고, 그라는 한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려 노력하면 되는 거란 걸 잊지 마시길 권합니다.

 

 

3. 마음 가는대로 해도 괜찮습니다.

 

제가 아는 Y양의 치명적인 단점 두 가지는,

 

ⓐ 참고 참다가 나중에 폭발하기.

ⓑ 실제 본심과는 다르게 말하곤 후회하기.

 

입니다.

 

ⓐ는, 소제목 1번에서 다뤘던 내용과 연관되어 폭발할 거라 조심히 예상해 봅니다. 평소에는 겉으로 귀여움 받으려는 모습만 보여주며 참고 또 참다가, 위험수위를 넘게 되면 장문의 카톡과 함께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냉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웅웅", "아라썽~" 하던 것과 달리,

 

"서로 모르는 게 많다는 오빠의 말에 난 최대한 오빨 알아가려 노력했어. 그런데 오빠는 나에 대해서 뭔갈 알고 싶어 한 적 있나? 우리 지금까지 적지 않은 기간 사귀어왔지만, 오빤 내 신발 사이즈도 모르지? 매번 바쁜 오빠 스케줄에 맞추고, 오빠 몸 아프다고 하면 죽 사가고, 오빠가 내 얘기 끊고 오빠 얘기해도 난 다 들어줬어. 난 이렇게 노력했는데, 오빠는 무슨 노력을 했지? 오래 만났는데도 아직 어색한 부분이 많아서 확신이 안 든다고? 알려고 하고 신뢰를 가지려고 해야 확신이 생기는 거지, 그냥 만나다가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며 그게 고민이라고 말하면 다야? 이건 뭐 테스트 제품 더 써보고 결정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나도 이제 그만하고 싶다. 앞으로 연락하지 말아줬으면 해. 잘 지내."

 

정도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준비해 상대에게 날리는 겁니다. 저런 얘기를 듣고 상대가 크게 뉘우친다면 참 다행이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선 저 얘기를 들은 남자들이 두려움을 느끼며 피하려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간 보여준 친절이나 호의, 그리고 헌신이 전부 위선은 아니었을지를 생각해 보게 되고, 다시 "웅웅", "아라썽~"의 모드로 돌아온다고 해도 또 언제 이렇게 터질지 모르니 아예 포기할 수 있습니다.

 

ⓑ는, 본심과 다르게 말하곤 그걸 상대가 바로잡아주길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이건 걱정이 너무 많은 까닭에 그 중 '최악의 경우'를 선택해 말하고, 상대가 그걸 좀 격상시켜 주길 바라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본심은 이번 주 토요일에 상대와 보고 싶은 건데, 만나자고 하면 바쁜 상대가 곤란해질까 봐 아예 다음 주에 보자는 얘기를 먼저 해버리는 거라고 할까요. 이쪽의 바람대로 상대가

 

"다음 주? 왜? 이번 주에도 보고 다음 주에도 보면 되는 거잖아~ 내일 인사동 가자!"

 

라고 해주면 문제가 안 되겠습니다만, 저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리드하지 않는 상대라면 '슬플 거라 예상했던 그 결과'를 받아들게 됩니다. 상대가 이쪽에게 맞춰주려 노력할 경우에도 같은 결과를 받아들게 되는 것이고 말입니다.

 

ⓐ나 ⓑ 둘 모두 본심과는 다르게 행동하다가 망쳐버리는 경우이니, 이번엔 좀 Y양 마음대로 하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같이 있고 싶으면서도 상대가 붙잡아 주길 바라며 일부러 자리 뜨려 하지 마시고, 같이 갈비 먹으러 가고 싶으면서 아닌 척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연애엔, 둘 다 이건 바보 같은 일이며 시간낭비라는 것도 알지만, 그러면서도 함께 바보가 되어 같이 시간낭비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쪽의 볼일이 있다고 하면, 상대 일하고 나 쉬는 날 혼자 볼일 보는 게 가장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러 둘이 날짜를 맞춰 함께 쉬며, 한 쪽의 볼일을 둘이 함께 보는 것도 연인이니까 가능한 것이고, 또 그러면서 둘의 기반이 단단해지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그렇게 함께 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또 모든 일을 '너 따로, 나 따로'로 할 필요는 없다는 걸 기억해 두셨으면 합니다.

 

 

이정도로 매뉴얼을 마치려 했는데, 아무래도 이걸 하나 더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예상이긴 한데, 상대가 '종합평가서'를 제출하듯 Y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시점이 올 겁니다. Y양의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래서 제 점수는요…."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 말입니다. 꼭 Y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아무래도 우리는…."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땐,

 

"나는 오빠를, 오빠라는 한 사람으로 생각하며 받아들이려고 했다."

 

정도로 응답해 주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두 사람에 대해서도,

 

"우리가 천천히 친해지면 천천히 친해지는 대로, 우리의 어색함이 좀 오래가면 어색함이 오래가는 대로, 이게 우리의 만남이라 생각하며 마주해 왔다."

 

정도로 응답하셨으면 합니다. 친해지는 것에 규정 속도가 정해져 있는 거 아니고, 어느 커플에 비해 뭐가 어떻다고 해서 당락이 결정되는 것 아니잖습니까? 상대는 보통의 경우보다 좀 이성적인 사람이며, 자신이 설정해 둔 기준이 있는 까닭에 그걸 근거로 관계를 평가하려 들 수 있습니다.

 

그럴 땐 상대가 부정적인 성적표를 내밀었다고 해서 속상해하며 술을 찾지 마시고, 그 기준 자체가 '너의 기준'일 뿐이라는 걸 돌려서 말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걸 기억해 두시면 훗날 요긴하게 쓰실 수 있으실 겁니다. 상대가 낸 주먹에 주먹으로 맞서는 게 아닌, 보자기를 내 감싸 버리는 것. 이런 것까지 세세하게 알려주는 저, 참 친절하지 않습니까? 고마우면 나중에 신혼여행 갔다 돌아오실 때, 면세점에서 담배 한 보루 사다주시면 되는 겁니다. 자 그럼, 저는 청첩장 주실 날을 기다리며 이만 매뉴얼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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